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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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나는 축구보다 야구를 더 좋아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우리 가족은 한 달에 1-2번씩은 꼭 야구장에 가서 응원을 했었는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구장에 여자 팬들이 지금처럼 많지가 않았다. 선수들 이름은 물론이고 팀 응원가를 포함하여 세세한 야구룰까지 자연스레 익히며 그 재미에 빠지게 되었는데, 특별한 일이 없던 주말아침에는 캐치볼을 하는 아빠와 오빠 사이에 끼여 (가장 작은 글러브였음에도 손에 크기만 했던) 파란 글러브를 손에 낀 채 함께 공을 던지고 받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문방구에서 당시 유행하던 야구 스티커를 뽑다가 같은 반 남자아이를 만나게 됐는데, “너는 여자아이면서 그런 걸 왜 모아?”라고 물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요즘엔 그래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싶었는데, 초등학교 선생님인 내 친구 얘기를 들어보면 아직도 여전히 아이들의 작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별 이분법이 자연스레 고착돼있다고 한다. 교사인 자신도 그렇고 보호자들도 여전히 거기서 자유롭지는 못하다고. (여전히 남자는 축구, 야구. 여자는 피구, 발야구 위주)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끌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축구도 아니고 우아하고 호쾌하기까지 한 여자축구에 관한 이야기인데 어찌 끌리지 않을 수 있으랴.

 

이 책에서도 물론 축구를 남자의 영역으로 고정시킨 채 대 놓고 선 긋는 사람들이 나온다. 맨스플레인을 비롯하여 여기서 축구하고 있으면 남편 점심은 어떡해요?”라며 지나가며 묻는 사람들까지. 읽는 내내 참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이 컸었는데, 주장의 화끈한 페이크와 로빙슛을 보며 가슴 한 가운데에 맺혀있던 체증이 확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도끼로이마까 깐데또까 같은 여자라는 말에 얼마나 웃었던지ㅋㅋㅋ) 그렇게 말뿐만이 아닌 실력과 행동으로 숱한 차별과 논쟁을 이겨내며 여기, 피치 위에 축구를 하는 멋진 여자들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WK리그가 무료라는 것과 일반 여자들이 만든 축구팀이 전국 곳곳에 많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팀을 주로 40~50대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람과 동시에 조금은 짠해졌다. ‘엄마가 되면서 자신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희생해야만 했던 그녀들이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해서 육아에 자유로운 40~50대가 되어서야 자신의 꿈을 찾을 수 있다는 현실에 마음 아팠다. 그리고 동시에 꿈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들이 정말 멋있게 느껴졌다.

 

총무 언니의 마지막 오프더볼과 시니어 팀 17번 할아버지의 부고, 조의금에 대한 의견차, 선수들의 재활훈련에 관한 부분에는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축구라는 분야를 다루고 있지만, 이 또한 삶의 한 부분이라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건지도.

 

마치 이 책은 혼비 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과 같다.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며 많이 웃었고 선수들의 부상과 아픔에는 함께 울었다. 혼비 씨가 축구인으로 하나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뿌듯해졌고, 함께 기합을 넣으며 축구경기를 같이 뛴 것만 같아 심장이 뜨거워졌다. 정세랑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운동장의 9분의 1쯤만이 허락되어 온 우리에게, 이 책은 든든하고 따뜻한 응원과 희망을 보내주는 것만 같다. 혼비 씨의 다음이야기가 궁금하다. 함께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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