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마음을 갑갑하게 만드는 이유다. 바다. 아마도. 게다가 모든 것을 물들이는 녹청의 색조. 제주에는 좀 더 강한 감정이 스며 있다. 세계의 끝. 旣知의 것이 끝나는 쪽의 문, 태평양의 무한함과 지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가장 넓게 뻗은 대륙의 받침 그 사이에 서 있다.
제주 바다에 온 최초의 서양인 헨드릭 하멜이 난파하기 전에 이 섬을 보았을 때 가졌을 느낌을 상상해 본다. 폭풍우에 밀려 번개 사이로 2000m 높이로 솟은 거대한 화산의 실루엣을 보았을 때 그는 지옥의 문 앞에 선 듯한 느낌을 가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네덜란드인이 검은 해변을 지나 싱그러운 숲, 용암의 유황 냄새, 칸나와 야생 선인장의 향기를 발견했을 때 지옥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가졌을 것이다.
하멜은 10년 동안 포로가 됐다가 섬을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평생 제주에서 맞은 최초의 순간에 대한 향수, 웅장한 화산, 처음 몇 날을 보냈던 어부의 집, 대나무 통속에서 끓인 밥맛, 미역국, 새빨간 김치, 몸을 데우는 소주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제주는 온화함과 가혹함, 슬픔과 기쁨의 혼합이다. 검정과 초록의 혼합, 이 섬의 우수는 섬동쪽 끝 성산일출봉에서 잘 느낄 수 있다. 이 봉은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 보고 선 가파른 검정이다.
성산일출봉을 보고 있노라면 마다가스카르 동쪽의 화산섬 마우리티우스의 모른 봉이 떠오른다. 똑같은 비극을 담고 있다. 성산일출봉은 제주 4.3사건 때 민병대에 끌려온 성산 마을 주민들이 죽어가면서 봤던 바로 그곳이다. 마우리티우스의 모른봉은 반란 노예들이 인도양으로 솟아오른 봉우리 끝까지 기어올라 허공에 몸을 던진 곳이다.
오늘날 냉전의 기억은 사라졌다. 아이들은 그 바다에서 멱을 감고 자기 조상의 피를 마신 해변에서 논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성산 마을의 한 여인이 경찰에 남편이 끌려가는 것을 봤다. 남편의 시신을 찾지 못한 채 몇 달이 지나갔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사는 여인의 삶은 고달팠다.
그러나 운명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경찰 중 한 명이 그와 사랑에 빠져 청혼을 했다. 고통스러웠지만 여인은 받아들였다. 경찰은 그가 처형했던 남자의 아이를 키우고 자기 아이처럼 사랑했다. 이 감동적이면서 잔인한 역사, 슬프면서도 삶의 욕구로 가득 찬 철학이 제주의 영혼이다.
제주의 신비한 형상 중 가장 친근한 것은 돌하르방이다. 돌의 할아버지. 그는 길이 서로 마주치는 곳이나 마을 입구에, 때로는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그는 높은 모자를 쓰고 있다. 수염을 기른 얼굴은 웃음으로 갈라져 있으나 전구 같은 눈은 감히 자기에게 다가오려는 사람들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마을 입구에 쌓인 검은 돌탑의 꼭대기에는 날개를 펼친 수리의 형상이 보인다. 지구 반대편 멕시코 중부의 푸레페차 인디언의 마을에서도 똑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잡초들 사이에 반원형으로 배치된 堂神 조각상. 시간의 밤으로부터 솟아올라 바람과 비에 일그러져 가면이 돼 버린 돌 조각에서 태평양 마르키즈 제도의 폴 고갱 무덤 앞에 있는 오비리(Oviri)조각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집의 거대한 나무들은 오방색 리본을 한 채 거인의 팔처럼 낮은 가지를 벌리고 있다. 나무 위 리본은 태양빛에 바랬고 거미줄이 쳐져 있다.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현대 세계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자연과의 접촉을 되찾으려는 열망을, 모든 추상을 배격한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숭배의 가능성을 여기서 발견한다.
제주는 감정의 섬이다. 한국어는 감정적 뉘앙스가 많은 언어다. '정'이나 '한'은 번역이 불가능하다. 효성, 혈연, 원한? 한국 영화는 그런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제주에는 보람이란 감정이 있다. 그것은 고통과 긍지가 섞인 것이다. 이런 감정이 해녀에게 있다. 어릴 적 태평양 섬에서 조개나 진주를 캐기 위해 반쯤 벗은 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여성에 관한 에로틱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진실은 산문적이다. 해녀는 실제로는 고기잡이의 프롤레타리아다. 하늘과 바다의 상황이 어떻건 매일 바다에 뛰어들어 조개를 잡는다. 오늘날 제주 해녀의 대부분은 나이든 여성이다. 그들은 관절염 류머티즘 호흡기장애를 안고 산다. 채취할 수 있는 양은 줄어들고 그들은 점점 더 멀리,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지탱하는 것은 보람, 즉 희생의 정신이다. 그들의 딸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은 다 그들 덕분이다.
제주 사람은 늘 바다로 향한다. 바다는 고기를 제공하고 뗏목을 제공한다. 외부의 침략이 시작되고 파괴적인 태풍이 오는 것도 역시 바다로부터다.
바다와 죽음의 이상한 근접. 여행자를 감싸는 우수의 감정이 태어나는 곳이 여기다. 진실하고 충실하고 환상적인 제주, 모든 계절에 그렇다.
출처 : 2009. 3. 7. 동아일보 (프랑스 판 지오(GEO) 3월호 30주년 기념호에 실린 '제주 여행기' )
르클레지오 : 1940 프랑스 니스 출생.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