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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 Sunn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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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이 재밌는 영화를.  

  공짜표가 두 장 생겨서 친구와 함께 이 영화를 봤다. 정말이지, 대박이다. '대박'이라는 의미는 두 가지를 뜻한다. 하나는 영화 내적 이야기. 우선 별 기대도 않고 표를 날리지 않으려고 영화괸엘 갔는데, 별르고 별러 본 영화보다 훨씬 더 감동을 받았다는 점.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이 웃었다. 웃으면서 눈물을 찔끔거렸다. 아니 그냥 눈물이 번졌다. 유쾌하고 짠한 영화. 그 다음은 영화 외적 이야기. 영화 잘 봤다면서 친구가 늦은 점심을 샀는데, '빕스'에서였다. 그것도 문을 연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곳. 꼭꼭 씹어가며 오래도록 요것조것 맛있는 것들을 골라먹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점심을 먹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중학교 동창생들이 떠올랐다.  

  영화에서는 여고시절을 그렸지만, 난 중학교 시절 일곱 명이 어울려 놀았었다. 써클의 이름은 '알쏭달쏭클럽'이었고, 우리가 만든 노래의 제목도 '알쏭달쏭'이었다. 우리가 만들었다고 해서 작사작곡을 직접 한 건 아니었다. '서울의 찬가'에 가사만 바꿔서 불렀는데, 개사 작업은 내가 도맡아서 했다. 개사한 가사는 이렇다. 

  새들도 지저귀다  의문 남기며 뒤돌아보는 알쏭달쏭 클럽에는 누구누구 있을까요 ...... 정다운 연경귀문윤순경 칠성미녀들의 노래소리에 해님과 달님도 미소 띠며 윙크를 하죠 

  연 경 귀 문 윤 순 경. 각 이름의 첫 자다. 

  멤버 대부분의 학업성적이 전교권 내에 드는 우리는 사실 폭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70년대 중반, 동해안의 작은 어촌 마을에 살았던 우리는 고작해야 엄마 몰래 냄비를 들고 오십천에 물놀이를 가는 따위가 다였다. 어떤 친구는 그 귀한 쌀을 엄마 몰래 도시락에 담아 들고 나왔고, 어떤 친구는 고추장과 멸치, 또 어떤 친구는 말린 미역귀를 가져오곤 했다.  

  우리 동네는 구비구비 먼 길 흘러온 오십천이 마침내 바다의 품에 안겨드는 곳이다. 강물이 바닷물이 되는 곳. 바다와 만나기 조금 전의 동네 이름이 소월천이었다. 그곳에는 물이 야트막해서 보릿짚단을 타고 물놀이를 하기도 좋았고, 발로 모래를 비비면 재첩조개가 제법 많이 나오기도 했다. 물이 깨끗하기도 했거니와 맛이 좋아서 식수를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놀다가 목이 마르면 두 손으로 강물을 떠서 그냥 목구멍으로 흘려넣었다. 두 손으로 강물을 떠올리면 푸른 하늘도 함께 담겨왔고, 때로는 하얀 구름조각도 둥실 떠 있곤 했다. 여름이면 우리 주먹만 한 녹색의 풋사과를 몇 개 가져가서 그것을 저기로 던져 놓고 집으러 헤엄쳐 가곤 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거의 모두가 지지리도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수영복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모두가 하나같이 팬티와 면 난닝구를 입고 놀았다. 다르다면 팬티 색깔이나 꽃무늬 정도였을 뿐. 

   우리는 해수욕장에도 우루루 몰려다녔고, 시험 공부도 모여서 함께 하곤 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하면서 우리는 뿔뿔이 헤어졌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은 대구로 유학을 왔고, 한 명은 서울로 전학을 갔고, 세 명은 중학교에 붙은 상업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지금은 모두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때부터 죽 혼자 지내온 s. 우리는 모두가 나서서 s를 친구 중에 젤 먼저 결혼을 시켰다. 훈남인 아들 둘과 남편과 지금도 잘 살고 있다. 결혼 초창기에는 남편의 직장 따라 강원도 태백에서 살았는데 아이들 교육 문제로 부산으로 옮겼다. 직장을 그만둔 그녀의 남편은 택시 운전을 하였는데, 지금은 그만두고 둘이서 함께 토스트를 구워 판다고 한다. 대학가에 가게가 있는데 장사가 엄청나게 잘 된다고 어느 동창생이 내게 소식을 전해준 게 얼마 되지 않는다. 돈 많이 많이 벌어서 부자 되길 빈다. s는 우리 중에서 덩치도 젤 크고 마음도 넓어서 큰언니 노릇을 도맡아 했었다. 영화 속의 하춘화 같은 역할.

   한 친구는 세 번 결혼에 세 번 이혼을 했다. 

   또 한 친구는 교육대학교를 나와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는데, 수도권 어느 초등학교에서 아직도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단다.  웃을 때마다 입이 합죽하다고 우리는 더 크게 웃곤 했는데, 그 친구의 반 아이들은 참 좋겠다. 선생님 얼굴만 보면 웃음이 터질 테니까.  

  나? 

  난 금융권에서 중간관리자로 이십 년을 근무하고 IMF때 명예퇴직을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대학교를 나왔는데, 직장을 그만둔 뒤, 제대로 대학생활을 하고 싶어서 3학년에 학사편입을 해서 작년에 졸업을 했다. 지금은 공공도서관에서 초등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한다. 글쓰기, 독서캠프, 역사논술.....가르치기도 하고 함께 놀기도 하고 학부모들에게 '내 아이 독서 지도'에 대한 강의도 한다.  

   그 외의 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난 모른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친구들이 화면 가득 떠올랐다.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은 모습들. 함께 어울려 봄이면 딸기밭엘 가고 여름이면 강가에서 설익은 밥을 먹으면서도 깔깔거리던 얼굴들. 

  아이를 키운다고 힘들게 오른 은행의 과장 자리를 내던졌던 내 삶. 아직도 직장에 남아 이제 지점장이 된 동기들을 보면서 풀이 죽곤 했던 나. 영화를 보면서 나 또한 다른 이들처럼 새삼스레 내 역사를 되새겨보았다. 그래 그랬다. 내게도 나만의 역사가 있었다.  

  나미가 벤치에서 여고시절의 자신을 만나 손을 꼭 잡아주던 모습. 자기 안에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있던 그 시절의 자기를 위로하던 손길.  

   그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 또한 중학교 시절과 고교 시절의 내가 아직도 내 안에서 주춤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꾸었던 꿈을 이루지 못해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그 모습 그대로 내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나. 그 시절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거칠어진 손을 내민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내 손을, 보드랍고 숫기 없고 자그마한 내 손을 잡아준다. 까만 눈망울을 색 바랜 지금의 눈동자로 지그시 바라본다. 고개도 주억거려준다. 

 

   영화가 끝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난 친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친구의 눈자위에도 얼룩이 번져 있었다. "넌 천상 주인공 얼굴이야!" 친구가 빙그레 웃으며 내게 말을 던진다. "너도 주인공 얼굴이야. 개성 있어!" 

 ' 그래. 난 나 자신만의 역사를 가진 주인공이야! '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내 또래 여자들의 얼굴이 유월의 녹음보다 더 환하고 싱그러웠다.

 

 




 
 
 
데저트 플라워 - Desert Flow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와리스 디리(아마도 소말리아어로 썼어야 했을), 사막의 꽃, desertflower.  

  서로 다르게 생긴 이 세 가지 말들의 의미는 같다. 

 

  비 내리는 토요일 아침. 

  내리기 시작하자마자 싸리나뭇가지만한 굵기로 변한 빗줄기를 삼단접이 우산 하나로 막아내며 집을 나섰다. 

  동성아트홀. 

  방음도 되지 않고, 의자 높이가 어깨 밑이어서 머리를 기댈 수도 없는데다가 앞뒤 좌석의 거리가 짧아서 다리가 너무 불편한 낡은 영화관. 그런데  예전에 소극장이었던 이 영화관이 '데저트플라워'를 보기에는 오히려 제격인 듯싶었다. 시설 좋고 반짝거리면서 사람들로 북적대는 영화관보다야 얼마나 더 잘 어울리는가. 메이저급 영화관에서 앞서 본 영화 '시'보다도 '데저트플라워'가 훨씬 더 시적으로 느껴지는 건 아마 상영관과 어우러지는 느낌들 때문이지 싶다. 

 

  와리스 디리, 사막의 꽃. 

  그녀의 이름은 참으로 그녀 생에 걸맞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녀 삶의 지도가 그녀 이름대로 그려진 것일까? 

  그녀가 3살 때 받았다는 할례. 나는 부끄럽게도 이 영화를 보면서 여성할례를 처음 알았다. 영화를 보고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 검색창에 '여성할례'를 쳐넣었다. 검색한 글들을 읽는 내내 할례를 받으면서 울부짖던 세 살배기 와리스의 울음소리가 머리를 울려댔다. 아니 고통스런 그 울음소리는 내 온몸을 찔러댔다. 피가 낭자하던 여린 사타구니. 모시조개보다도 더 작았을 그녀의 소중한 살들-음핵과 소음순과 대음순-을 새가 먹었다고 했다. 그 살들은 새에게 먹혀 새의 피울음이 되었을까? 아니면 새의 깃털이나 허공에 남겨진 새의 발길질이 되었을까?

  여성할례의 전통은 참으로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금속이 아닌 돌칼을 쓰기도 한단다. 이 악습은 남성들이 여성들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것을 함축적으로 대변한다. 이에 의하면, 여성은 남성의 오락물인 동시에 그들의 후손을 생산하는 도구이다. 번식 이외에 쾌락의 목적으로 섹스를 하는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인간의 한 축인 여성의 성감대를 모두 제거해버리다니. 게다가 아물지도 않은 채로 그 부분을 봉합해버리다니. 남편이 필요할 때에는 봉합을 풀고, 남편이 여자 곁을 떠날 때에는 다시 꿰맨다니. 와리스가 울멱이며 UN에서 그 사실을 공표할 때에도, 내가 그 영화를 보며 소름이 돋는 내 몸을 두 팔로 감싸안을 때에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수많은 아이들의 비명이 새들을 불러 모으고 있으리라. 

  와리스의 어머니는 늙은 남자에게 팔려가기 싫어 도망치는 딸을 모른 채 눈감는다. 그리고 그 일로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며 산다. 그녀는 그녀의 딸과는 달리 지금의 남편과 함께 살기 위해 그녀의 가문으로부터 도망을 쳤다. 유목민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그녀의 부모님으로부터 도망친 용기는 딸의 도망을 눈감는 용기를 낳았다. 

  할례를 받다가 죽어나가는 아이들의 숫자가 부지기수인데도 불구하고, 어리디어린 딸들을 할례로 내모는 그 어머니들의 마음이, 나는 궁금하다. 밤이 지나가면 낮이 온다고 믿는 것만틈이나 철떡같이 그 관습을 신봉하는 걸까?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저질러지는 악행. 

  치료받기 위해 은밀한 부분을 내보인 와리스를 질타하던 소말리아 남자. 아프리카를 벗어나 소위 문명국에 살면서도 자기네 전통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할 줄 모르는 완고함은 얼마나 거대한 폭력인가? 

  그 장면에서 내가 아는 한 남자가 생각났다. 

  15년 전쯤, 나는 은행에서 일했다. 금융권에 명예퇴직이라는 말이 막 생겨난 시절이었다. 그때 우리 지점에는 아집으로 똘똘 뭉쳐진 한 남자가 있었다. 대리였던가? 과장이었던가? 하루는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은행장이라면 스무다섯 살 넘은 여자들은 모두 고홈이야." 그는 아들 없이 두 딸을 키우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내가 이렇게 물었다. "두 딸이 그 지경에 처하면, 어쩌시겠어요?" 그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그땐 세상이 달라져 있겠지 뭐."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위의 남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 양육을 위해 내 일을 그만둘 때, 나는 단 한 번도 남편이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리(지금의 과장)였던 당시 내 연봉이 남편의 두 배가 넘었는데도 말이다. 아이 양육을 위해 누군가가 일을 그만둬야 한다면 그건 당연히 엄마여야 한다고, 아니 여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 또한 얼마나 거친 폭력인지! 그때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가 대학생이 되고 난 지금에서야 난 그 또한 고정관념의 폭력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일을 그만둔 몇 년 후 우리는 중산층에서 서민층으로 전락했고, 요즈음은 돈 문제로 자주 다툰다. 나와는 다른 길을 걸었던 내 입행동기들은 지금 지점장이나 본부장이 되었다. 폐경기에 접어든 나는 최근 잘나가는 친구들과는 달리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증상이 조금 경미해진 지금은 다시 일자리를 얻기 위해 국가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나이든 여자가 정규직을 갖는 것이 3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 나는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자리를 지킨 내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큰 박수를 보낸다. 자기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 여성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그 박수는 어쩌면 그들에게 보낸다기보다는 물풀처럼 흔들리는 나를 위로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너무 멀리 갔다. 

  다시 영화 이야기를 해야겠다. 

  같은 날 영화 '시'와 '데저트플라워'를 본 것은 또 무슨 변고인가? 

  영화 '시'의 모티프는 같은 학교 남학생들에게 집단성폭행을 당한 여중생의 자살이다. 가해자인 남학생들의 아버지들이 모여서 나누는 밀담들이 걸작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네 아들들이 이 일로 인해 작은 피해라도 입을까 싶어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돈으로 세상의 입을 막았다. 다만 한 남학생의 외할머니인 미자만이 죽은 여학생과 여학생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아파한다. 여학생이 몸을 던진 그 장소에 가서 오래도록 강물을 내려다보고, 그 강변에 앉아서 장대비를 온몸으로 맞는다. 채찍보다 더 아프게 후려치는 빗줄기를 맞으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는 죽은 여중생, 아네스를 위해 생애 최초의 시를 쓴다. 

  극은 극에 닿아 있다고 했던가? 

  사실 '성'만큼 아름다운 게 있을까? 

  '성'만큼 숭고한 게 또 있을까? 

  나는 내 부모님의 성관계 덕분에 존재한다. 내 아이는 나와 남편의 섹스 덕분에 존재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모든 생명은 '섹스'의 엄연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그런 한편 성은 또 얼마나 지독하며 얼마나 많은 죽음을 불러오는가? 성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숭고하면 숭고할수록, 꼭 그만큼의 고통에 맞닿아 있는 듯하다. 손등과 손바닥처럼, 등과 배처럼 서로를 집어삼킬 듯이 꼭 껴안고 있다. 상대에 의해서만이 비로소 제 존재가 드러나는 빛과 그늘처럼 그 둘은 서로를 욕망한다. 

  여성할례의 근원은 처녀성에 대한 섬뜩하고도 집요한 욕망에 다름아니다. 처녀성을 욕망하는 남자들도 모두 누구의 아버지일 것인데 그 부성을 가뿐히 밟고 일어서는 욕망. 이 욕망의 주체 또한 할례를 당한 여자의 산도를 통해 이 세상에 나왔다는, 허기보다도 더 엄연한 이 사실을 그 남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이 불결하다고 잘라내고 봉합해버렸던 여성의 성기가 그들 존재의 근원이 아니던가 말이다. 그들이 그토록 죄악시하는 여성의 생식기에, 그들이 그토록 신성시하는 자기들의 남근들을 어찌 꽂을까? 한 군데서 태어나는 딸과 아들은 또 왜 그토록 서로 다른 삶을 살아야 할까? 

  와리스 디리는 UN특별대사가 되어 할례추방에 앞장서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아름답고 서러운 용기에 머리를 숙인다. 영화에서 그녀가 하던 말이 새삼스레 생각난다. "소수의 일은 결국 이 세상 모두의 일이다." 할례로 고통받는 지구촌의 여아들을 도울 힘이 내게도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지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이 글을 쓰면서 가슴께가 묵지근하던 영화의 여러 장면들을 되새길 뿐. 

 

  돌아오는 저녁 무렵, 빗줄기는 성기를 사방으로 휘두르며 내지르는 오줌줄기처럼 내리퍼붓고, 도시는 목화솜처럼 푹 젖어 있었다. 

  사막의 꽃들은 이리 막무가내로 젖어본 적 있을까?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마음을 갑갑하게 만드는 이유다. 바다. 아마도. 게다가 모든 것을 물들이는 녹청의 색조. 제주에는 좀 더 강한 감정이 스며 있다. 세계의 끝. 旣知의 것이 끝나는 쪽의 문, 태평양의 무한함과 지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가장 넓게 뻗은 대륙의 받침 그 사이에 서 있다.
   제주 바다에 온 최초의 서양인 헨드릭 하멜이 난파하기 전에 이 섬을 보았을 때 가졌을 느낌을 상상해 본다. 폭풍우에 밀려 번개 사이로 2000m 높이로 솟은 거대한 화산의 실루엣을 보았을 때 그는 지옥의 문 앞에 선 듯한 느낌을 가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네덜란드인이 검은 해변을 지나 싱그러운 숲, 용암의 유황 냄새, 칸나와 야생 선인장의 향기를 발견했을 때 지옥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가졌을 것이다.
   하멜은 10년 동안 포로가 됐다가 섬을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평생 제주에서 맞은 최초의 순간에 대한 향수, 웅장한 화산, 처음 몇 날을 보냈던 어부의 집, 대나무 통속에서 끓인 밥맛, 미역국, 새빨간 김치, 몸을 데우는 소주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제주는 온화함과 가혹함, 슬픔과 기쁨의 혼합이다. 검정과 초록의 혼합, 이 섬의 우수는 섬동쪽 끝 성산일출봉에서 잘 느낄 수 있다. 이 봉은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 보고 선 가파른 검정이다.
   성산일출봉을 보고 있노라면 마다가스카르 동쪽의 화산섬 마우리티우스의 모른 봉이 떠오른다. 똑같은 비극을 담고 있다. 성산일출봉은 제주 4.3사건 때 민병대에 끌려온 성산 마을 주민들이 죽어가면서 봤던 바로 그곳이다. 마우리티우스의 모른봉은 반란 노예들이 인도양으로 솟아오른 봉우리 끝까지 기어올라 허공에 몸을 던진 곳이다.
   오늘날 냉전의 기억은 사라졌다. 아이들은 그 바다에서 멱을 감고 자기 조상의 피를 마신 해변에서 논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성산 마을의 한 여인이 경찰에 남편이 끌려가는 것을 봤다. 남편의 시신을 찾지 못한 채 몇 달이 지나갔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사는 여인의 삶은 고달팠다.
   그러나 운명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경찰 중 한 명이 그와 사랑에 빠져 청혼을 했다. 고통스러웠지만 여인은 받아들였다. 경찰은 그가 처형했던 남자의 아이를 키우고 자기 아이처럼 사랑했다. 이 감동적이면서 잔인한 역사, 슬프면서도 삶의 욕구로 가득 찬 철학이 제주의 영혼이다.
   제주의 신비한 형상 중 가장 친근한 것은 돌하르방이다. 돌의 할아버지. 그는 길이 서로 마주치는 곳이나 마을 입구에, 때로는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그는 높은 모자를 쓰고 있다. 수염을 기른 얼굴은 웃음으로 갈라져 있으나 전구 같은 눈은 감히 자기에게 다가오려는 사람들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마을 입구에 쌓인 검은 돌탑의 꼭대기에는 날개를 펼친 수리의 형상이 보인다. 지구 반대편 멕시코 중부의 푸레페차 인디언의 마을에서도 똑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잡초들 사이에 반원형으로 배치된 堂神 조각상. 시간의 밤으로부터 솟아올라 바람과 비에 일그러져 가면이 돼 버린 돌 조각에서 태평양 마르키즈 제도의 폴 고갱 무덤 앞에 있는 오비리(Oviri)조각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집의 거대한 나무들은 오방색 리본을 한 채 거인의 팔처럼 낮은 가지를 벌리고 있다. 나무 위 리본은 태양빛에 바랬고 거미줄이 쳐져 있다.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현대 세계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자연과의 접촉을 되찾으려는 열망을, 모든 추상을 배격한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숭배의 가능성을 여기서 발견한다.
   제주는 감정의 섬이다. 한국어는 감정적 뉘앙스가 많은 언어다. '정'이나 '한'은 번역이 불가능하다. 효성, 혈연, 원한? 한국 영화는 그런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제주에는 보람이란 감정이 있다. 그것은 고통과 긍지가 섞인 것이다. 이런 감정이 해녀에게 있다. 어릴 적 태평양 섬에서 조개나 진주를 캐기 위해 반쯤 벗은 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여성에 관한 에로틱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진실은 산문적이다. 해녀는 실제로는 고기잡이의 프롤레타리아다. 하늘과 바다의 상황이 어떻건 매일 바다에 뛰어들어 조개를 잡는다. 오늘날 제주 해녀의 대부분은 나이든 여성이다. 그들은 관절염 류머티즘 호흡기장애를 안고 산다. 채취할 수 있는 양은 줄어들고 그들은 점점 더 멀리,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지탱하는 것은 보람, 즉 희생의 정신이다. 그들의 딸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은 다 그들 덕분이다.
   제주 사람은 늘 바다로 향한다. 바다는 고기를 제공하고 뗏목을 제공한다. 외부의 침략이 시작되고 파괴적인 태풍이 오는 것도 역시 바다로부터다.
   바다와 죽음의 이상한 근접. 여행자를 감싸는  우수의 감정이 태어나는 곳이 여기다. 진실하고 충실하고 환상적인 제주, 모든 계절에 그렇다.


출처 : 2009. 3. 7. 동아일보  (프랑스 판 지오(GEO) 3월호 30주년 기념호에 실린 '제주 여행기' )

르클레지오 : 1940 프랑스 니스 출생.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 


 
 
환한먹물 2009-03-17 12:31   댓글달기 | URL
이방인이 바라본 제주. 하여 객관적인 바라봄이 가능한, 그리고 그 바라봄으로 쓴 글. 짧은 글 안에 제주의 온 역사와 온 풍광을 저토록 명징하게 다 담을 수 있다니! 우리가 쓴 수천 편의 글보다, 저 한 편의 글이 가진 힘이 더 클 수 있으리라던, 누군가의 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 Revolutionary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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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생활을 하면서, 이게 소꿉놀이였으면 아, 이게 소꿉놀이였으면, 그러면 이제 그만 엄마한테 갈래 하면서 훌훌 털고 돌아설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도 했고, 아이를 낳고 한참 지나서도 했고,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도 했고, 그 아이가 중학생일 때도 했고 고등학생일 때도 했다. 요즘도 때때로 아침이면 탈출을 꿈꾸고, 저녁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내가 선택한 결혼이고, 내가 낳은 아이여서, 그것에 대한 책임감으로 중무장하고, 하루하루를 견딘다. 그러다가 유독 견디기가 더 힘든 날이면, 꿈꾸던 삶을 살고 있는 나를, 상상하곤 한다. 그게 설혹 공상 망상 환상일지라도, 그게 또 나를 견딜 수 있게 해 준다. 꿈은, 내가 꿈꾸는 삶은 그런 의미에서, 나의 꿈인 동시에, 나의 탈출구이기도 하다.

  결혼은 무덤이다, 라는 말. 구체적으로 무엇의 무덤인지는 왜 말 안 했을까? 그 무엇이 무엇인지는 결혼을 해 봐야만 알게 된다는 말일까. 그 무엇은 사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아니 다른 게 당연하다. 달라야 한다. 

  그러나 백인백색으로 결혼이 무덤인 이유가 다르겠지만, 백인일색으로 같은 이유 또한 분명히 있다. 결혼이 남자에게보다 여자에게 훨씬 불리한 제도라는 것이다. 여자에게 훨씬 더 불리한 이유는 아이의 출산과 양육 때문이다. 전 세계의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출산과 양육으로 인해 자기의 꿈을 포기하고 마는지!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썩 괜찮은 직장(특히 연봉의 측면에서)의 유능한 중간관리자였던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일 학년을 마칠 즈음에 일을 그만두었다. 그 당시, 내 연봉은 남편의 그것의 세 배에 가까웠다. 나의 퇴직으로 우리는 중산층에서 그 밑의 층으로 전락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지극히 정상적인 결정으로 여긴다. 만일,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에 전념하고, 내가 계속 일을 했더라면???? 독신인 내 여자동료 몇 몇은 지금 지점장이 되어 일 주일에 1~2번 골프를 치며 잘(?) 지낸다.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연극배우였던 에이프릴이 결혼 후 이전과 다른 연기력에 대해 고민할 때, 그리고 그 일로 고속도로변에 차를 세워두고 남편과 격렬하게 말다툼할 때, 남편인 프랭크는 말한다. "그게 내 탓은 아냐!" 자기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칼로 무를 잘라내듯 말한다. 정말 그럴까? 아내의 연기력이 남편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까? 한 집에서 살고, 한 침대에서 잠자고, 한솥 밥을 먹으며, 시시콜콜한 것까지 얘기를 나누며 사는데. 정말 남편 탓은 조금도 없는 걸까? 집에서 키우는 화초도 함께 사는 사람과 교감을 주고 받는다는데, 정말 그럴까?  

  사람이 자기 힘으로 절대 어찌할 수 없는 게 몇 가지 있다. 그 첫 번째가 출생이다. 절대로 부모를 내 맘대로 선택할 수가 없다. 다음이 자식이다. 확률이 50퍼센트나 되긴 하지만, 딸 아들 맘대로 고를 수 없고, 자녀의 성격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자녀를 가질지 말지는 선택할 수가 있다. 적어도 지금의 삶에서는 그렇다. 피임이 가능하므로. 우리 엄마는 피임이 불가능한 시대에 가임기의 여성으로서의 삶을 사셨다. 그래서 우리 형제는 여덟 명이다. 조산원에서 유산을 시킬 수는 있었는데, 유산시킬 돈이 없어서 생기는 대로 낳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 결과, 60년대의 가난한 삶의 터널을 어떻게 하면 자식 새끼들 굶기지 않을까 하는 그 한 가지 생각으로 빠져나왔다고 하셨다. 어쨌든,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면 상당히 어려운 상황 하에서도 우리는 오히려 맘이 편해진다. 운명이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말기 때문이다.  

  에이프릴은 세 번째 아기를 임신했고, 그 아이를 낳을지 말지로 계속 고민한다. 임신 12주까지 낙태를 하면 산모에게 별 무리가 가지 않는다는, 갈등의 시한이 정해져 있어서 그 갈등은 더욱 뾰족하고 깊고 어둡다. 그런데 프랭크는 그 결정권을 아내에게 넘겨놓고, 계속해서 결정을 물으며 닦달하기만 한다. 그래놓고, 12주가 넘은 어느날, 말다툼을 하면서, 사실은 자기도 아이를 지우길 원했다고 한다. 얼마나 비겁한지! 얼마나 무자비하고 무책임한 남편인지!  

  그 장면을 보는데, 십여 년 전 회사를 그만 둘 때의 내가 떠올랐다. 꼬박 이십 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었다. 유치원을 다닐 때까지 할머니 집에서 자란 딸아이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다. 아무래도 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게 옳아 보였다. 남편에게 그 일을 의논했더니, 네 일이니 네가 알아서 결정하라고 했다.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입장이 그리 편하지만은 아닌 것인 줄을 알기에 그 말에 수긍을 했다. 그런데, 인사팀에 사표를 내고 난 뒤에서야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온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사표 아직 안 냈지? 안 내는 게 좋을 것 같아. 아이는 좀 더 크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아이의 근원적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이가 오학년 때, 학교에서 성교육 비디오를 보다가, 다섯 살 때 성추행을 당한 일을 기억해 냈다. 그 일로 아이는 길고 혹독한 사춘기를 앓았다.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이는 송곳처럼 날카로웠고, 절벽 위에 선 것처럼 불안정하였다. 정신과 치료와 가족상담 치료까지 받으면서, 아이는 조금씩 나아졌다. (정신과 의사의 말로는, 그 일이 일어난 당시에 엄마가 알고, 그 일을 표면화시켜서 괜찮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아이를 안고 다독거리며 위로해줬으면, 그렇게까지 큰 상처가 되지 않았을 확률이 아주 높다고 했다. 그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에 대해 무지한 아이의 할머니를 탓할 수 있을까? 무지가 죄가 될 수도 있을까? 나는 그 음습하고 무시무시한 동굴을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빠져나오는 중간에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었다. 여자주인공이 사촌오빠에게 당한 성폭행을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잘못으로만 돌리고 덮어버렸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그 소설을 통해서 명징하게 알았다. 그 소설에 감사한다. 글의 힘이다.) 결국은, 엄마로서 아이에 대해 내가 느낀 불안이(나도 남편도 아이도, 그 누구도, 어쩌면 돌봐야 할 사람이 너무 많고 할 일이 너무 많고 가봐야 할 데가 너무도 많은 신조차도 몰랐으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이 스스로도 몰랐을 그 어떤 것.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어쩌면 아이를 처음 낳아 키우는 엄마보다도 더 안전한 울타리라고 여겼던 할머니 품에서 아이는 그 끔찍한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다섯 살밖에 안 된 아이를 왜 혼자 놀러 내보냈느냐고, 그 엄청난 일을 왜 내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더니, 아이의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밥도 안 먹고 아이만 보는 사람이가? 그리고, 아이가 너무 어려서 잊어버릴 줄 알았지." 

  혼자서 실행한  낙태로 인해 그녀, 에이프릴은 죽는다. 그녀의 생물학적인 죽음은 그때이겠지만, 사실, 그녀는 이미 그 이전에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꿈을 포기한 바로 그 순간. 만약 신이 있어 우리 인간을 만드셨다면, 잘못 만드셨다고, 마구 대들며 항의하고 싶다. 특히 여자의 경우는 더 그렇다. 출산과 양육을 해야 하는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라면, 그게 더 적합한 것이라면, 애초에 여자는 그 이외에는 다른 꿈을 꾸거나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어야 했다. 남자와 똑같이, 어쩌면 남자보다 더 간절히 꿈을 꾸고 그 꿈에 대한 희망으로 부푸는 가슴을 가진 데서, 갈등이 생기고, 우울증을 앓게 된다. 간절한 꿈으로 인해 가슴은 불타오르고 벅차오르는데, 현실은 전혀 그게 아닌 괴리. 그 괴리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우울.

  엄마가 가사와 직장 일을 병행했던, 초등학교 일학년을 보내면서, 내 딸아이는 엄청난 곤란을 겪었다. 그때의 일. 학교를 마치면 대학교 부설 어린이집 버스가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그 버스는 어린이집이 마치는 시간(오후 4시)에 아이를 다시 태우고 아파트 상가의 피아노학원 앞에 내려놓는다. (퇴근 시간까지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데가, 아무 데도 없었다.) 아이는 그때부터 엄마가 자기를 데리러 올 때까지 피아노 학원에서 몇 시간이고를 기다려야 했다.(그때 이후로 아이는 피아노 학원을 질색한다. 피아노 학원 뿐만 아니라 그 어떤 학원 문앞에도 아이는 가 본 적이 없다. 지금 아이는 고3인데, 고작 인터넷 강의를 들을 뿐이다.) 1시간이 채 안 되는 피아노 강습 후에, 그곳에서 숙제를 다 하고, 책을 여러 권 봐도 엄마는 쉬 오지를 않았다. 엄마가 야근을 해야 할 때면 아이는 지쳐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엄마가 숨을 색색거리며 피아노 학원의 문을 와락 밀치면, 거의 울상이 되어 있던 아이가, 반짝 환해졌다. 잠깐 환해졌던 아이의 눈에 그렁그렁 설움과 반가움의 눈물이 고이면, 엄마는 별처럼 끝이 뾰족뾰족한 눈물로 제 가슴을 후벼파야 했다. 학원에서 집에까지 오는 그 십여분 동안, 아이는 "엄마 사랑해!" 하는 말을 열 번도 더 넘게 했다. "엄마 사랑해!" 그 말은 엄마에겐 피를 토할 만큼 아픈 말이었다. 얼마나 모자랐으면, 얼마나 간절했으면, 얼마나 서러웠으면.......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야근을 해서 많이 늦었는데, 그래서 당연히 나보다 퇴근이 빠른 남편이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왔으리라 생각하고 그냥 집에 왔는데, 아이는 안 보이고, 남편 혼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배가 무척 고프기도 했으리라. 그런데 그러면 아이는? 모시조개만한 배를 쫄쫄 굶고 있을 아이는? 좁쌀 몇 알로도 채워질 만큼 작은  아이의 배는? 남편은 아이를 데려오는 일이 여자의 몫이라고 여겼던 걸까? 너무 어이가 없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이를 데리러 선 채로 도로 집을 나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나만의 일이기만을 간절히 빈다.

  이미 십 여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겠지. 그런데, 과연 얼마나 나아졌을까? 출산을 하면 우윳값을 보태준다는 정부의 정책을 대할 때마다, 나는 쓴 웃음을 혼자서 웃고 만다. 여자들이 왜 독신을 고집하는지, 왜 출산을 기피하는지 정말 그들은 모르는 걸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부인의 지루한 잔소리를 피해 보청기를 빼버리는 그 할아버지처럼, 그들은 일제히 보청기를 빼버린 걸까?  

  영화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프랭크가 좀 더 진지하게 아내의 말에 귀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아내의 꿈을 이해하고, 아내의 편에서 지지를 보냈다면, 어땠을까? 자기의 승진에 성공에 도취되어서 아내의 꿈을 무시해버린 남편. 에이프릴은 어쩌면 꿈을 접어야 하는 것보다, 남편에 대한 절망에 무너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에서, 정상과 비정상은 교묘한 방식으로 여러 번 마주친다.  그 마주침은 정신병자인 '존'을 통해서다. 존은 에이프릴을 통찰한다. 그녀의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을 나타나게 하는 밑바닥을 본다. 그리고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말한다. 절대로 말을 포장하지 않는다. 존은 그녀의 의중을 꿰뚫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정말 다행인 것은, 내가 그 뱃속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  아, 그리고 그의 말 중에서 의미심장한 것 또 하나. "정신병동의 치료가 정신병은 그대로 두고, 수학 지식을 말살해버렸어." 미쳤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다수의 방향을 거슬러 가는 것? 이미 닦여진 길을 버려두고, 엉뚱한 길을 만드는 것?  

  이런 점에서 영화의 제목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중의적이다. 에이프릴 부부가 살았던 동네를 지칭하는 이 말은, 단순하게 동네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그래 그렇다. 이것은 혁명(revolution)  이다. (여자가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 '혁명'이라고 해야 할만 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이번에 첨 알았다.)  이번엔 로드. 동네를 구분짓기 위한 행정적인 의미의 이 말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을 함의한다. 우리의 삶은, 나의 삶은 결국, 길 하나 만드는 이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   이미 낡을 대로 낡아버린 길을 피해, 자기만의 길을 가기 위한 에이프릴의 선택은 내가 보기에, 최악이다. 최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만큼 그녀는 그토록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었던 것일 것이다.  빛 한 줄기 들이치는 출구가 달리는 없어 보일 만큼.

  어쩌면, 우리 모두에겐, 누구의 말이 듣기 싫으면 보청기를 빼어버릴 자유가, 보청기의 도움을 받아야 할 꼭 그만큼의 장애가 필요한 것이 아닐런지.   




 
 
2009-03-06 11:24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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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6 14: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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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7 16: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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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6 12:24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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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6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15 12:59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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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5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내 이름은 빨강. 

  이 책의 제목을 맨 처음 봤을 때 나는 빨강이 주인공의 이름인 줄 알았다. 빨강을 머리속으로 떠올리면서 동시에 파랑과 노랑도 떠올렸다. 연이어 동화 <빨간모자의 고민>에 나오는 빨간모자를 떠올렸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막연하게 판타지 류일 거라고 함부로 추측했던 것은. 

  물론 빨강도 이 책의 주인공 중의 하나다. 그런데 그렇게 치자면 이 책의 주인공은 너무 많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서술이 1인칭으로 되어 있는 데다가 모든 등장 인물이 화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주인공이면서 또한 주인공이 아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인 나조차도 소설의 일부분이며 나 또한 주인공이라는 착각이 들었던 것은.

  제목에 나오는 빨강은 빨강색이다. 빨강색이면서 빨강색의 재료이기도 하고 빨강색의 재료가 되는 글쎄 원료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빨간색 벌레의 색이기도 하다. 본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전설적인 거인을 멋진 검으로 두 동강 냈을 때는 거인의 낭자한 피 속에, 뤼스템이 머물던 궁전에서 아름다운 공주와 사랑을 나누며 밤을 보낼 때는 그들이 덮었던 이불의 구김살 사이에 있었다. 나는 어디에나 있었고 지금도 어디에나 있다.-소설의 처음이 <나는 죽은 몸>으로 시작되면서 이 빨강은 소설 전체에 낭자하게 혹은 점점이 제각각 농담을 달리 하며 흩뿌려져 있다. 소설에서 한번도 빨간색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빨강의 느낌을 어떻게 설명하겠느냐는 물음에 화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손가락 끝으로 만져보면 그 느낌이 철과 동의 중간쯤 되지.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뜨거울 테고. 손으로 쥐어보면 소금기가 아직 남아 있는 물고기처럼 느껴지겠지. 입에 넣으면 입 안이 꽉 찰 테고. 냄새를 맡으면 말 냄새가 나겠지. 꽃의 향기로 치면 붉은 장미보다는 국화 향기와 비슷할 걸세.-   그래서였을 것이다. 피가 낭자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어디서인가 옅은 국화 향기가 났던 것은. 먼지 섞인 새벽이슬 냄새 같기도 하고 금방 낚아올린 물고기의 비늘 냄새 같기도 한 국화 향기. 

   살인 사건으로 말문을 연 소설은 내내 추리 소설의 성격을 지닌다. '나를 살인자라고 부를 것이다'라는 소제목을 이마에 내걸고 말을 하는 화자조차도 그가 진정 누구인지 독자들은 모른다.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된다. 혐의자들 중에서 과연 누가 살인자일까 궁금해하며 추측해보며 글을 읽었다. 때로는 혐의자들 외에, 전혀 엉뚱한 사람이 범인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읽었다. 결국 내 상상은 망상으로 끝이 났다. 내 망상 속에서는 카라가 살인을 사주한 사람이기도 했고, 장인 오스만이 살인을 사주한 사람이기도 했다. 결국 올리버가 확고부동한 범인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명확하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 누구라도 범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자칫 지루하고 고리타분해지기 쉬운 '예술을 소재로 한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했던 것은. 

  이 소설은 일종의 추리 소설이면서 사랑 소설이기도 하다. 세밀화가들 사이의 사랑. 화원장과 세밀화가들 그리고 화원장과 도제들 그리고 세밀화가들과 도제들 사이의 사랑. 아버지 에니시테와 그의 딸 세큐레의 사랑. 세큐레와 그의 남편과의 사랑. 세큐레와 그의 시동생인 하산과의 사랑. 그리고 카라와 세큐레의 사랑. 참으로 가지가지의 사랑이 나온다. 그리고 그 가지가지의 사랑의 색깔과 향기는 그 숫자의 몇 배 만큼 다양하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겠는 사랑까지. 세큐레는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카라를 결혼 후에는 정작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 자신도 이 점에 대해 놀란다. 그런데 이 점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면 그럼직한 심리가 작용한 탓이다. 세큐레는 카라와 하산 사이에서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던 거다. 팽팽한 줄 위에서는 카라 쪽으로 기울었던 마음이 카라가 남편이 되고 나자 정작 마음이 하산에게로 더 기운 것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진리. 이처럼 소설 곳곳에서는 등장인물의 것이면서 또한 동시에 독자의 것일 수도 있는, 인류 보편의 심리가 나온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지구 저편의 작가가 쓴 지구 저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주 알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문화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내가 이야기 속에 담뿍 함몰될 수 있었던 것은.  

  일종의 추리 소설이자 사랑 소설인 이 소설의 정체성을 단 한 마디로 말하라면, 뭐니뭐니해도 예술 소설이다. 술탄의 통치를 받던 시절, 이스탄불의 세밀화가들의 이야기. 신의 눈으로 그림을 그리는 세밀화가들의 전통을 지키려는 마음들. 그리고 원근법에 의거한 유럽의 화풍에 눈을 뜬 화가들의 마음. 코란에 거역하는 것이라 마음에 꺼려하고 내색은 하지 못하지만 속으로는 자기의 초상화를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들. 자기가 신봉하고 추앙하는 예술을 위해 결국 사람을 죽이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전통 화법을 고수하고 추앙하는 자들은 인간의 눈이 본 것이 아니라 신이 본 것을 그린다고 하였다. 신이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것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때때로 신이 있다는 가정을 해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제각각의 마음 안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강아지 풀 속에도 있고, 몽돌 속에도 있고, 아카시아 향기 속에도 있고, 물길질하는 오리의 물갈퀴 속에도 있고, 헉헉대는 내 날숨 속에도 있고. 그래서였을 것이다. 책을 읽다 말고 내가 자주 책을 덮고 책표지를 어루만지며 나무 속에 있던 신은 어디로 갔을까 하고 생각에 잠겼던 것은. 

  카라와 세큐레 입장에서 보면, 일견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다. 카라가 살인자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목부분이 불구가 되긴 했지만, 몽매에도 그리워하던 세큐레와 이십 년도 훨씬 더 넘는 세월을 함께 살았으므로. 세큐레 또한 부분 부분 지나칠 정도로 이기적인 사랑을 하긴 하지만, 사랑하는 카라와 더불어 늙어갔으므로. 나는 카라가 칼을 맞을 때 그냥 죽으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다. 나도 어쩌지 못하는, 사랑하는 연인을 함께 엮어주고 싶어하는, 한 여자인 것만은 이로써 확실해졌다.  

  자기의 자존심과 화풍을 지키기 위해 바늘로 스스로 자기 눈을 찔러 장님이 되는 화가들에게 경외의 박수를 보낸다. 자기 눈을 스스로 찔러 장님이 되면서까지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신의 영역이었다.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 신과 인간의 대립은 결국 의미와 형식의 대립 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 자기의 화풍(스타일)을 감추기 위해 극구 서명을 하지 않았던 그들. 화풍이 있다는 말을 모욕과 불경으로 여겼던 그들. 의미와 형식의 불화는 또 무엇일까? 신의 영역인 의미. 인간의 영역인 형식.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지만, 그 신은 누가 만들었을까? 신의 신은 누구일까? 신의 신이 인간이라 하면......?  혹, 신이 인간을 멸망시키면, 그래도 여전히 신은 신일 수 있을까? 그때의 신은 누구의 신일까? 죽은 자들의 신? 영혼의 신? '주인과 노예'의 논리와 '신과 인간'의 논리는 어떻게 다를까? 

   눈앞에 빨강을 떠올려본다. 어디에나 있었고 지금도 어디에나 있는 것. 국화 향기 같은 것. 

 

     

   -읽으며 밑줄 그었던 문장들-  

* 베르자흐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보이고 공간의 경계도 없다. 그러나 삶이 꽉 끼는 셔츠와 같다는 것은 오직 시간과 공간의 감옥에서 벗어나야만 깨달을 수 있다. 

* 비흐자드가 그린 이 아름다운 손에는 너무나 멋진 뭔가가 있으므로 이것이 어떤 시인의 초상이라는 게 확실해지지. 왜냐하면 우리 세계의 그림은 의미가 형식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라네. 술탄이 죽은 자네의 에네시테에게 주문한 책처럼 유럽인과 베네치아인 화가들을 모방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의미의 세계가 끝나고 형식의 세계가 시작될 걸세. 

* "세밀화가는 자신이 본 것이 아니라. 신이 본 것을 그리네."   "그렇지. 하지만 숭고한 신께서도 우리가 보는 것을 보네."   "신은 물론 우리가 보는 것을 보지. 하지만 신은 우리가 보는 방식으로 지각하지 않는다네. 우리가 어리둥절해하며 바라보는 복잡한 전쟁 장면을 전지전능한 신은 서로 가까이 마주보고 대치하고 있는 두 군대로 지각하지." 

* 가련한 나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기예가 뛰어나고, 자신감 있고, 뒤가 든든하다 하더라도, 그리고 남을 증오하고 질투한다 하더라도, 서로에게 기대는 모든 세밀화가들처럼 실은 지옥에 가는 것을, 이 세상에 홀로 남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 장인 오스만은 옛 장인들의 걸작들을 보면서 내게 자네의 화풍에 대해 가르쳐주었네. 화풍은 세밀화가가 원해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세밀화가의 과거가, 잊었던 기억이 비밀스러운 결점을 드러내는 거라고 가르쳐주었지. 한때는 대단히 부끄러워하면서 우리를 옛 장인들과 구분되지 않도록 숨겼던 비밀스러운 결점과 약점이 유럽의 화풍이 전 세계에 퍼지면서 이제는 '개성'이니 '스타일'이니 하며 찬미될 거라고 말했지. 앞으로 결점을 자랑하는 바보들 때문에 세상은 더 다채로워지겠지만 더 바보 같아질 것이며, 물론 더 결점이 많아지겠지. 

* 사랑하는 나비의 16살 때의 사랑스러웠던 모습도 떠올랐다. 어느 여름날,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드러난 벌꿀 색 팔에 닿을 때 그는 손에 든 조개껍질을 빠르게 문질러 종이에 광택을 내고 있었다. 그는 무심코 이 일을 하다가 문득 멈춘 뒤, 종이에 눈을 가까이 대고 흠이 있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그 흠집 위에 조개껍질을 한두 번 다른 방법으로 문지른 다음, 다시 이전 방식으로 돌아가 빠르게 손을 앞뒤로 왕복하고는 뭔가를 상상하는 눈빛으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그가 창문 밖을 보기 전, 아주 짧은 순간 그의 시선이 내 눈에 고정되었던 걸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훗날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행동이다. 그 슬픈 시선에는 모든 도제들이 아는, 오직  한 가지 의미가 있다. 즉 환상을 꿈꾸지 않으면 시간은 결코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 초상화는 가장 큰 죄이며, 초상화 때문에 이슬람의 그림이 쇠락하리라는 것을 믿고 있었어. 

* 이유야 어떻든 카라는 늘 우울했습니다. 저는 그의 슬픔이 대부분 어깨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의 영혼의 은밀한 구석에 가장 행복한 정사의 순간조차 그를 우울하게 만드는 어떤 슬픔의 정령이 있다고 믿었습니다.그는 그 정령을 잠재우기 위해 때로는 포도주를 마시고, 때로는 책의 그림들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옮긴 이의 말'까지 다 읽고 난 다음, 나는 바로 컴퓨터를 켜고 오르한 파묵의 사진을 찾아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내가 왜 그랬는지 까닭은 알 수가 없다. 그냥 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인터넷에는 그의 사진으로 컴퓨터 화면을 몇 번이고 도배를 해도 될 만큼 그의 사진이 많았다. 그 많은 사진 중에서, 진지한 얼굴보다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힌 채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 사진 위에 오래 내 눈길이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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