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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셔너리 로드 - Revolutionary Roa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결혼생활을 하면서, 이게 소꿉놀이였으면 아, 이게 소꿉놀이였으면, 그러면 이제 그만 엄마한테 갈래 하면서 훌훌 털고 돌아설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도 했고, 아이를 낳고 한참 지나서도 했고,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도 했고, 그 아이가 중학생일 때도 했고 고등학생일 때도 했다. 요즘도 때때로 아침이면 탈출을 꿈꾸고, 저녁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내가 선택한 결혼이고, 내가 낳은 아이여서, 그것에 대한 책임감으로 중무장하고, 하루하루를 견딘다. 그러다가 유독 견디기가 더 힘든 날이면, 꿈꾸던 삶을 살고 있는 나를, 상상하곤 한다. 그게 설혹 공상 망상 환상일지라도, 그게 또 나를 견딜 수 있게 해 준다. 꿈은, 내가 꿈꾸는 삶은 그런 의미에서, 나의 꿈인 동시에, 나의 탈출구이기도 하다.
결혼은 무덤이다, 라는 말. 구체적으로 무엇의 무덤인지는 왜 말 안 했을까? 그 무엇이 무엇인지는 결혼을 해 봐야만 알게 된다는 말일까. 그 무엇은 사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아니 다른 게 당연하다. 달라야 한다.
그러나 백인백색으로 결혼이 무덤인 이유가 다르겠지만, 백인일색으로 같은 이유 또한 분명히 있다. 결혼이 남자에게보다 여자에게 훨씬 불리한 제도라는 것이다. 여자에게 훨씬 더 불리한 이유는 아이의 출산과 양육 때문이다. 전 세계의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출산과 양육으로 인해 자기의 꿈을 포기하고 마는지!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썩 괜찮은 직장(특히 연봉의 측면에서)의 유능한 중간관리자였던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일 학년을 마칠 즈음에 일을 그만두었다. 그 당시, 내 연봉은 남편의 그것의 세 배에 가까웠다. 나의 퇴직으로 우리는 중산층에서 그 밑의 층으로 전락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지극히 정상적인 결정으로 여긴다. 만일,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에 전념하고, 내가 계속 일을 했더라면???? 독신인 내 여자동료 몇 몇은 지금 지점장이 되어 일 주일에 1~2번 골프를 치며 잘(?) 지낸다.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연극배우였던 에이프릴이 결혼 후 이전과 다른 연기력에 대해 고민할 때, 그리고 그 일로 고속도로변에 차를 세워두고 남편과 격렬하게 말다툼할 때, 남편인 프랭크는 말한다. "그게 내 탓은 아냐!" 자기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칼로 무를 잘라내듯 말한다. 정말 그럴까? 아내의 연기력이 남편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까? 한 집에서 살고, 한 침대에서 잠자고, 한솥 밥을 먹으며, 시시콜콜한 것까지 얘기를 나누며 사는데. 정말 남편 탓은 조금도 없는 걸까? 집에서 키우는 화초도 함께 사는 사람과 교감을 주고 받는다는데, 정말 그럴까?
사람이 자기 힘으로 절대 어찌할 수 없는 게 몇 가지 있다. 그 첫 번째가 출생이다. 절대로 부모를 내 맘대로 선택할 수가 없다. 다음이 자식이다. 확률이 50퍼센트나 되긴 하지만, 딸 아들 맘대로 고를 수 없고, 자녀의 성격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자녀를 가질지 말지는 선택할 수가 있다. 적어도 지금의 삶에서는 그렇다. 피임이 가능하므로. 우리 엄마는 피임이 불가능한 시대에 가임기의 여성으로서의 삶을 사셨다. 그래서 우리 형제는 여덟 명이다. 조산원에서 유산을 시킬 수는 있었는데, 유산시킬 돈이 없어서 생기는 대로 낳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 결과, 60년대의 가난한 삶의 터널을 어떻게 하면 자식 새끼들 굶기지 않을까 하는 그 한 가지 생각으로 빠져나왔다고 하셨다. 어쨌든,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면 상당히 어려운 상황 하에서도 우리는 오히려 맘이 편해진다. 운명이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말기 때문이다.
에이프릴은 세 번째 아기를 임신했고, 그 아이를 낳을지 말지로 계속 고민한다. 임신 12주까지 낙태를 하면 산모에게 별 무리가 가지 않는다는, 갈등의 시한이 정해져 있어서 그 갈등은 더욱 뾰족하고 깊고 어둡다. 그런데 프랭크는 그 결정권을 아내에게 넘겨놓고, 계속해서 결정을 물으며 닦달하기만 한다. 그래놓고, 12주가 넘은 어느날, 말다툼을 하면서, 사실은 자기도 아이를 지우길 원했다고 한다. 얼마나 비겁한지! 얼마나 무자비하고 무책임한 남편인지!
그 장면을 보는데, 십여 년 전 회사를 그만 둘 때의 내가 떠올랐다. 꼬박 이십 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었다. 유치원을 다닐 때까지 할머니 집에서 자란 딸아이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다. 아무래도 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게 옳아 보였다. 남편에게 그 일을 의논했더니, 네 일이니 네가 알아서 결정하라고 했다.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입장이 그리 편하지만은 아닌 것인 줄을 알기에 그 말에 수긍을 했다. 그런데, 인사팀에 사표를 내고 난 뒤에서야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온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사표 아직 안 냈지? 안 내는 게 좋을 것 같아. 아이는 좀 더 크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아이의 근원적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이가 오학년 때, 학교에서 성교육 비디오를 보다가, 다섯 살 때 성추행을 당한 일을 기억해 냈다. 그 일로 아이는 길고 혹독한 사춘기를 앓았다.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이는 송곳처럼 날카로웠고, 절벽 위에 선 것처럼 불안정하였다. 정신과 치료와 가족상담 치료까지 받으면서, 아이는 조금씩 나아졌다. (정신과 의사의 말로는, 그 일이 일어난 당시에 엄마가 알고, 그 일을 표면화시켜서 괜찮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아이를 안고 다독거리며 위로해줬으면, 그렇게까지 큰 상처가 되지 않았을 확률이 아주 높다고 했다. 그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에 대해 무지한 아이의 할머니를 탓할 수 있을까? 무지가 죄가 될 수도 있을까? 나는 그 음습하고 무시무시한 동굴을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빠져나오는 중간에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었다. 여자주인공이 사촌오빠에게 당한 성폭행을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잘못으로만 돌리고 덮어버렸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그 소설을 통해서 명징하게 알았다. 그 소설에 감사한다. 글의 힘이다.) 결국은, 엄마로서 아이에 대해 내가 느낀 불안이(나도 남편도 아이도, 그 누구도, 어쩌면 돌봐야 할 사람이 너무 많고 할 일이 너무 많고 가봐야 할 데가 너무도 많은 신조차도 몰랐으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이 스스로도 몰랐을 그 어떤 것.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어쩌면 아이를 처음 낳아 키우는 엄마보다도 더 안전한 울타리라고 여겼던 할머니 품에서 아이는 그 끔찍한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다섯 살밖에 안 된 아이를 왜 혼자 놀러 내보냈느냐고, 그 엄청난 일을 왜 내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더니, 아이의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밥도 안 먹고 아이만 보는 사람이가? 그리고, 아이가 너무 어려서 잊어버릴 줄 알았지."
혼자서 실행한 낙태로 인해 그녀, 에이프릴은 죽는다. 그녀의 생물학적인 죽음은 그때이겠지만, 사실, 그녀는 이미 그 이전에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꿈을 포기한 바로 그 순간. 만약 신이 있어 우리 인간을 만드셨다면, 잘못 만드셨다고, 마구 대들며 항의하고 싶다. 특히 여자의 경우는 더 그렇다. 출산과 양육을 해야 하는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라면, 그게 더 적합한 것이라면, 애초에 여자는 그 이외에는 다른 꿈을 꾸거나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어야 했다. 남자와 똑같이, 어쩌면 남자보다 더 간절히 꿈을 꾸고 그 꿈에 대한 희망으로 부푸는 가슴을 가진 데서, 갈등이 생기고, 우울증을 앓게 된다. 간절한 꿈으로 인해 가슴은 불타오르고 벅차오르는데, 현실은 전혀 그게 아닌 괴리. 그 괴리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우울.
엄마가 가사와 직장 일을 병행했던, 초등학교 일학년을 보내면서, 내 딸아이는 엄청난 곤란을 겪었다. 그때의 일. 학교를 마치면 대학교 부설 어린이집 버스가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그 버스는 어린이집이 마치는 시간(오후 4시)에 아이를 다시 태우고 아파트 상가의 피아노학원 앞에 내려놓는다. (퇴근 시간까지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데가, 아무 데도 없었다.) 아이는 그때부터 엄마가 자기를 데리러 올 때까지 피아노 학원에서 몇 시간이고를 기다려야 했다.(그때 이후로 아이는 피아노 학원을 질색한다. 피아노 학원 뿐만 아니라 그 어떤 학원 문앞에도 아이는 가 본 적이 없다. 지금 아이는 고3인데, 고작 인터넷 강의를 들을 뿐이다.) 1시간이 채 안 되는 피아노 강습 후에, 그곳에서 숙제를 다 하고, 책을 여러 권 봐도 엄마는 쉬 오지를 않았다. 엄마가 야근을 해야 할 때면 아이는 지쳐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엄마가 숨을 색색거리며 피아노 학원의 문을 와락 밀치면, 거의 울상이 되어 있던 아이가, 반짝 환해졌다. 잠깐 환해졌던 아이의 눈에 그렁그렁 설움과 반가움의 눈물이 고이면, 엄마는 별처럼 끝이 뾰족뾰족한 눈물로 제 가슴을 후벼파야 했다. 학원에서 집에까지 오는 그 십여분 동안, 아이는 "엄마 사랑해!" 하는 말을 열 번도 더 넘게 했다. "엄마 사랑해!" 그 말은 엄마에겐 피를 토할 만큼 아픈 말이었다. 얼마나 모자랐으면, 얼마나 간절했으면, 얼마나 서러웠으면.......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야근을 해서 많이 늦었는데, 그래서 당연히 나보다 퇴근이 빠른 남편이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왔으리라 생각하고 그냥 집에 왔는데, 아이는 안 보이고, 남편 혼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배가 무척 고프기도 했으리라. 그런데 그러면 아이는? 모시조개만한 배를 쫄쫄 굶고 있을 아이는? 좁쌀 몇 알로도 채워질 만큼 작은 아이의 배는? 남편은 아이를 데려오는 일이 여자의 몫이라고 여겼던 걸까? 너무 어이가 없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이를 데리러 선 채로 도로 집을 나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나만의 일이기만을 간절히 빈다.
이미 십 여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겠지. 그런데, 과연 얼마나 나아졌을까? 출산을 하면 우윳값을 보태준다는 정부의 정책을 대할 때마다, 나는 쓴 웃음을 혼자서 웃고 만다. 여자들이 왜 독신을 고집하는지, 왜 출산을 기피하는지 정말 그들은 모르는 걸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부인의 지루한 잔소리를 피해 보청기를 빼버리는 그 할아버지처럼, 그들은 일제히 보청기를 빼버린 걸까?
영화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프랭크가 좀 더 진지하게 아내의 말에 귀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아내의 꿈을 이해하고, 아내의 편에서 지지를 보냈다면, 어땠을까? 자기의 승진에 성공에 도취되어서 아내의 꿈을 무시해버린 남편. 에이프릴은 어쩌면 꿈을 접어야 하는 것보다, 남편에 대한 절망에 무너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에서, 정상과 비정상은 교묘한 방식으로 여러 번 마주친다. 그 마주침은 정신병자인 '존'을 통해서다. 존은 에이프릴을 통찰한다. 그녀의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을 나타나게 하는 밑바닥을 본다. 그리고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말한다. 절대로 말을 포장하지 않는다. 존은 그녀의 의중을 꿰뚫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정말 다행인 것은, 내가 그 뱃속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 아, 그리고 그의 말 중에서 의미심장한 것 또 하나. "정신병동의 치료가 정신병은 그대로 두고, 수학 지식을 말살해버렸어." 미쳤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다수의 방향을 거슬러 가는 것? 이미 닦여진 길을 버려두고, 엉뚱한 길을 만드는 것?
이런 점에서 영화의 제목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중의적이다. 에이프릴 부부가 살았던 동네를 지칭하는 이 말은, 단순하게 동네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그래 그렇다. 이것은 혁명(revolution) 이다. (여자가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 '혁명'이라고 해야 할만 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이번에 첨 알았다.) 이번엔 로드. 동네를 구분짓기 위한 행정적인 의미의 이 말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을 함의한다. 우리의 삶은, 나의 삶은 결국, 길 하나 만드는 이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 이미 낡을 대로 낡아버린 길을 피해, 자기만의 길을 가기 위한 에이프릴의 선택은 내가 보기에, 최악이다. 최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만큼 그녀는 그토록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었던 것일 것이다. 빛 한 줄기 들이치는 출구가 달리는 없어 보일 만큼.
어쩌면, 우리 모두에겐, 누구의 말이 듣기 싫으면 보청기를 빼어버릴 자유가, 보청기의 도움을 받아야 할 꼭 그만큼의 장애가 필요한 것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