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병 - 인생은 내 맘대로 안 됐지만 투병은 내 맘대로
윤지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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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병> 인스타툰을 본 적이 없어서 책 정보를 전혀 몰랐다. 책을 보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책등이 없는 '누드 사철 제본'이라 좋았고 예쁜 핑크색 책 표지에 귀여운 그림과 <사기병> 이라는 독특한 제목에 궁금해하며 시작한 이 책은 저자의 위암 4기 투병기였다.

군것질을 좋아하고 무뚝뚝한 남편의 아내, 두 돌 아들이 있는 38세의 동화작가인 저자는 병원에서 위암 4기를 선고 받는다. 매일 아들과 집안일 걱정만 하던 그녀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 슬퍼할 겨를도 없이 수술대에 올라 항암 치료, 독한 약과 싸우면서도 자신의 소중한 하루 하루를 그림으로 그렸다. 오늘 하루를 살아냈음이 기뻐서, 자신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

잠깐 읽고 자야겠다. 생각하면서 시작한 이 책은 마지막까지 멈출 수 없었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새벽에 혼자 울어버렸다.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아픔으로 하루를 보낸 사람들이 있으니 평범하고 무탈한 하루에 감사해야지.' 라는 생각을 막연하게만 했었다.

한 입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초콜렛을 여러번 나눠 먹어야 하고, 허리를 펴고 걸을 수 있음에 기뻐하고, 물 한모금 넘기는 게 어려워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마시는 게 소원인 저자.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소원하며 지내는 저자의 일상에 무의미했던 나의 하루가 참 미안했다.

생존율 7% 병 앞에서도 당차고 꿋꿋하게 투병을 해온 그녀는 발병 1년 6개월 만에 난소로 암이 전이된다. 글로 읽기만 한 나도 마음이 무너져 내렸는데 저자는 1년을 살아왔음을 감사하고 재발 확률 80%를 지나 왔듯 앞으로도 마음 먹은 대로 확률과의 싸움을 해보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의 아들이 계속 엄마가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그녀의 꿈인 '할머니가 되는 것'이 꼭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평범한 하루를 평범하게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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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세 시대가 온다 - 실리콘밸리의 사상 초유 인체 혁명 프로젝트
토마스 슐츠 지음, 강영옥 옮김 / 리더스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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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치료법이 적용되기까지 10년이 걸리든 15년이 걸리든 최초로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 기업이 모더나든 다른 기업이든 상관없다. 다만 질병 치료에 일대 혁명이 일어날 것만은 확실하다. 방셀은 말한다. "현재 의학계에서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에 비할 만한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워크맨에서 아이팟으로의 도약에 견줄만한 사건입니다." p.71

먼저 나는 15분 동안 플라스틱관에 침을 뱉었고, 이것을 실리콘밸리의 실험실로 보냈다. 그리고 앱을 하나 다운받았다. 이 앱을 통해 3주 동안 84가지 유전정보를 상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유전적 혈통과 관련해 다섯 가지, 생물학적 특징과 관련해 22가지, 유전적 건강 문제와 관련해 일곱 가지, 보편적인 유전적 특성과 관련해 42가지, '웰니스'와 관련해 여덟 가지였다. 이 모든 정보를 얻는 데 199달러가 들었고, 서비스는 온라인이나 약국에서 이용할 수 있었다. p.289

현재 의학은 기하급수적 속도와 수준으로 발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계층 간의 격차도 그만큼 벌어지고 있다. 경제적 여건이 되는 사보험 가입자들은 건강 센서를 착용하고 정기적으로 마이크로비옴 분석과 줄기세포 검사를 받는다. 그래서 이들은 병에 잘 걸리지 않고 암에 걸려도 유전자 치료로 생명을 유지할 것이다. 반면 데이터 의학의 혜택을 누리거나 사보험에 가입할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 환자는 구시대의 의료 서비스만 받을 수 있다. 디지털 의학의 발달에 따른 계층 양분화 현상에 대한 논의는 점점 격렬한 양상을 띨 것이다. 가난하면 일찍 죽는다는 극단적 주장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p.326

얼마 전 "언니는 몇 살까지 살고 싶어요?" 라는 회사 동생의 질문에 나는 "70세!" 라고 대답했다. 동생은 놀라면서 "이렇게 맛있는 것도 많고 재밌는 것도 많은 세상을 왜 70세까지만 살아요? 언니 저는 109살까지 사는게 꿈이에요." 라고 말했다. 맛있는 것도 재밌는 것도 많은 세상이고 점점 더 많아질 세상인 걸 알고 있지만 정년까지 일하는 것도 힘들어지는 고용불안의 걱정은 차치하더라도 건강한 상태로 100살까지 살 수 있을까? 오래 사는 게 과연 행복한 것일까?

인류 탄생 최고의 숙제에 도전장을 내민 실리콘밸리. 세계 최고의 두뇌와 천문학적인 돈이 모인 실리콘밸리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건강에 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정확하고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구글의 미래>의 저자 토마스 슐츠는 10년간 실리콘밸리를 취재하면서 실리콘밸리의 풍경, 빅데이터, 인공지능, 유전자 조작 등을 결합해 질병을 극복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연구의 현장을 보여준다.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스타일의 책이라 어렵지는 않을지 시작하면서 조금 부담스러웠다. 평소 자주 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쉽게 읽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솔직히 너무나 끌리는 제목이기도 했고 그동안 접하지 못한 정보들을 읽을 때마다 놀라웠다. '200세'에 놀랐는데 '500세'까지도 살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과 그걸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연구들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리고 놀라움과 함께 씁쓸했다. '가난하면 일찍 죽는다는 극단적 주장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는 문장은 이미 우리의 현실이지 않은가? 아직 암을 100% 치료할 수는 없지만 부유한 사람들은 매 년 몇 백만원에서 몇 천만원까지의 건강검진으로 암을 비롯한 질병을 초기 발견할 수 있고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초기에 발견하면 완치율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금전적 부담으로 건강검진을 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이루어지는 엄청난 연구들이 성공적인 결과물로 세상에 나왔을 때 그 혜택을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을까?

건강하고 오래사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이 행복한 일들이 특정 계급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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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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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선행이란 조금의 사심도 없는 행위지요. 보상을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겁니다. 그 특성상, 진정한 선행에는 사실 보답이란 걸 할 수 없습니다. p.133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고요."
"인생은 복잡할 수 있지. 우리가 그렇게 선택한다면 말이야.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p.378

인생에서 삭제하고 싶은 단 한 사람의 이름.
그 사람을 감쪽같이 사라지게 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의 선택은?

대학 시간강사인 세라는 상사인 러브록 교수에게 매일같이 각종 괴롭힘과 협박에 시달린다. 저명한 학자에 방송 출연까지 하는 러브록 교수는 세라의 승진을 빌미로 자신과의 잠자리를 요구하고 자신의 거절의사는 가뿐히 무시하며 끊임없이 괴롭히는 러브록. 게다가 학교는 그녀의 말을 믿지도 믿어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유명한 러브록을 놓치고 싶지 않아할 뿐. 거듭되는 러브록에 악행에 한계에 다다른 세라에게 떨어진 달콤한 제안. 조금의 사심없이 행한 세라의 선행에 보답하고 싶다는 한 남자의 제안.

"내게 이름 하나만 주시오. 감쪽같이 사라지게 해주지, 이 세상 영원히."

세라는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한 사람의 떠오르는데.

<리얼 라이즈>의 T. M. 로건의 신작 <29초>

우리는 살면서 '저 인간만 없었으면....' 하는 상상을 한 번쯤은 한다. 그 상상이 진짜 현실이 된다면? 세라가 처한 현실은 너무나 답답하고 화가나며 러브록의 악행은 읽으면 읽을수록 욕들이 업데이트되지만 세라의 통쾌한 복수는 십년묵은 체증은 커녕 이 세상 모든 체증을 사라지게 만든다.
전작 <리얼 라이즈>에서 주인공 조셉의 수동적인 모습이 조금 답답했었는데 맞서 싸우는 것을 선택하고 성공한 세라는 멋있었다.

477페이지의 이야기를 '29초' 만에 읽은 것 같은 엄청난 페이지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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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 지나친 열정과 생각으로 사서 고생하는 당신을 위한 번아웃 방지 가이드
진민영 지음 / 문학테라피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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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구분 짓지 않는다. 파랗기 때문에 친구가 될 수 없지 않고 노랗기 때문에 모든 것을 수용해 줄 거란 기대 또한 없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신기해하고 달리 취급하는 것은 내가 충분히 파랗지 못하거나 부족한 노란색이어서가 아닌, 내가 초록색이기 때문이다. 초록색이라는 사실은 이제 또 다른 자신감의 원천이 된다. p.21

다르다는 이유는 대화와 만남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방해가 된다면 당신은 분명 '다름'을 무기로 모든 것을 이해받으려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p.23

사랑해 마지않는 일을 하며 살아야만 행복한 건 아니다. 열정을 직업화하지 않는 당신은 죄인이 아니다. 일하는 매 순간이 의미로 가득 차지 않아도 당신의 삶은 이와 별개로 충분히 가치 있다. p.25

금은보화보다 죽기 전 값지게 다가올 건 스스로 평가하는 자기 자신이다. 지난 80년 참 좋았다, 호젓하게 말할 수 있다면 적어도 '의미'를 놓고 고민하지는 않을 것이다. p.141

개인적으로 버티기 힘들었던 9월을 보냈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는 건 불가능한 현실, 새벽까지 고민하다 잠도 못자고 뻑뻑한 눈을 비비면서 집에서 나올 때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꾸역꾸역 출근을 하는 걸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과 같은 제목의 책을 만났다. 모든 직장인들은 매일 아침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 출근을 한다더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진짜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반가웠던 마음.

매일 피곤한 일상, 매일이 너덜너덜의 연속인 사람들을 위해 저자가 말하는 작은 쉼표. 지나친 열정과 생각으로 사서 고생하는 당신을 위한 번아웃 방지 가이드.

단지 내 마음과 같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하게 위로가 가득한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따끔한 충고도 가득해서 초반에는 좀 당황했었다.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경험을 통해 단단해진 저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크게 와 닿았고 불안하기만 한 현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문장들이 가득했다.

위로와 충고로 가득했던 이 책은 올 해 내가 읽은 책 중에서 플래그를 가장 많이 붙인 책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리뷰를 쓰고난 후 페이지에 붙인 플래그를 다 떼어내는데 이 책에서 좋았던 문장들은 북다트로 다시 체크하고 책꽂이에 꽂아 놓았다. 언젠가 다시 불안하고 흔들릴 때 이 책을 꺼내 따뜻한 위로와 단단한 조언들과 다시 만나기 위해.

저자 소개를 읽으며 저자가 내향인이라는 사실에 동지를 만난 것 같은 기분에 또 반가웠고 저자가 쓴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다. 미니멀리스트를 꿈꾸기만 할 뿐 정반대의 삶을 사는 나는 내향인이면서 미니멀리스트인 저자가 쓴 책들을 읽으며 버릴 것들은 버리고 필요한 것들로만 채우며 조금은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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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김종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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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당시의 고단함을 이겼던 힘은, 가지지 못한 그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지지 못한 위로야말로 때로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으로 둔갑하곤 하니까. p.64

다만 후회하며 엉망진창으로 살든, 고민하며 살든, 우리는 어제가 만들어낸 길들을 밟고 오늘이라는 길 위를 걷는다는 걸 생각한다. p.175

<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 등의 영화로 유명한 김종관 감독님의 신간 에세이.
감독님의 영화 <더 테이블>과 <밤을 걷다>를 보았고 그 중 <밤을 걷다>는 짧은 분량임에도 밤이 주는 고독함과 알수없는 외로움을 보는 내내 느끼며 본 작품이었다. 특히 <더 테이블>에서 정유미 배우의 찌질한 전남친을 연기한 정준원 배우님이 우는 장면은 보면서 같이 울었었다.

<더 테이블>이 시나리오로 구성된 책이라면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된 에세이이다. 자신이 경험했던 이야기들, 그리고 싶은 이야기들, 영화를 보며 느낀 감상들이 시간의 순서인 듯 하면서도 그저 저자가 말하고 싶은 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리고 한 페이지의 이야기들이 단편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 가득하다.

가만가만 써내려간 이야기들과 중간중간 무심한 듯 시선을 뗄 수 없는 직접 찍은 사진들이 참 좋았다. 마지막 6부 시나리오에서 내가 보지 못한 <하코다테에서 안녕>을 읽을 수 있어 좋았고 영상으로 먼저 만난 <밤을 걷다>를 글로 다시 만나 반갑고행복했다. 김종관 감독님의 감성을 천천히 느끼며 걸었던 시간들.

우리는 여기에 있는데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 다 사라지고 밤뿐이네. <밤을 걷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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