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패배자 -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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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나는 역사 공부에 몰두했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설명 중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든 알아내려고 애썼고 교재뿐만 아니라 관련된 역사책을 찾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 수능 공부 때문이 아니라 한국사 자체에 흥미를 가졌기에 그런 노력이 재미있고 뜻깊은 기억으로 남은 것 같다. 시간이 좀 지나니 외웠던 연도도 기억나지 않고 역사적 인물의 업적도 희미해졌고 대신 한 가지 인상만이 분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함석헌이 말했듯, 우리나라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였다는 것.

 

 『위대한 패배자』를 읽고 난 뒤 다시 한 번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고난이란 곧 패배의 결과 혹은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언급된 영광스러운 패배자나 치욕스러운 패자의 개인적인 삶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비운의 문학 천재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신기했을 뿐이다. 저자 자신도 인정한다. 개인의 역사는 승리하든 패배하든 위대해질 수 있지만 우리의 역사는 패배가 흉터로 남는다는 점을 말이다. 

 

 사람들은 패자에 열광한다. 희극보다는 비극이 인상 깊게 남고, 패자의 명예에 따라 때로는 승자가 영광을 잃기도 한다. 당대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작가보다 사후에 주목을 받은 화가나 철학자가 후세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준다.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가 추락한 인물의 이야기는 마치 전래동화처럼 대대로 타산지석이 된다. 또한 비극적 운명을 맞은 이들의 삶을 신화처럼 칭송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코 그들과 같은 삶을 살기를 원치 않는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모든 사람들이 '나는 결국 패배할 거야'라는 생각을 갖고 자신이 꿈꾸었던 목표나 사업을 포기한다면 세상은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다. 승리를 향한 치열한 경쟁이 없다면 수많은 청춘들이 목숨을 걸고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패자를 승자보다 느긋하고 선한 사람으로 묘사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죽을 듯이 노력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승리한 자들만 기억되고, 패자는 영광을 얻지 못한 채 잊혀진다. 지금도 지하실과 도서관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인간들이 있다. 그들에게 어떻게 "당신은 실패할 겁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몇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패배자다"라는 볼프 슈나이더의 외침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패배자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죄를 짓지 않고 실패를 겪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또한 한민족의 역사를 볼 때 우리는 이미 커다란 패배를 여러 차례 겪었다. 일제강점으로 온 민족이 수탈당했고 이념 전쟁으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었으며 지도자의 개인적인 욕심과 무지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모든 사람에겐 이 두 가지 상처가 마음속에 깊이 박혀있다. 우리는 상처를 잊으려고 애쓰는 대신 그 패배를 인정하고 진정한 승리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즉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까지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추악한 승자들보다 위대한 패자가 낫다. 그들은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지만 패자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패배자였다. 그래서 나는 도전할 수 있다.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실패한 사람들만의 특권이다.

 

 실패는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준다. 그것도 좀 더 영리하게 출발할 기회를. -헨리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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