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여긴 어디죠?"

 "쉼터에요, 윌.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별 생각 없이 떠드는 곳이랄까요. 아무튼 반가워요. 전 테사라고 해요. 당신 이야기는 익히 들었어요." 

 그녀가 윌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본 윌이 코웃음을 쳤다.

 "저에 대해 많이 들었다더니, 한참 모르시네요. 전 사지마비 환자에요. 남들이 흔히 하는 악수나 포옹, 키스, 이런 것들을 저는 할 수 없단 말이에요. 제가 먼저 손을 내민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아니에요, 윌. 당신은 자유로워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요."

 "이해가 안 되나 본데, 난 휠체어에 묶여......." 

 윌 트레이너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서 있었다. 그는 손발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쉼터 주변을 마음껏 뛰어다녔다. 그리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다 윌은 쓸쓸한 눈빛을 하고 있는 테사와 눈이 마주쳤고, 급격히 침울해진 얼굴로 그 자리에 섰다. 

 "죽어서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니, 참 웃기네." 

 "말 놓는 건가요?"

 "상관 없어. 죽은 사람들끼리 예의를 차리다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사실 사지마비 환자 판정을 받는 순간, 난 내가 속해 있던 세상에서 완전히 추방됐어." 

 "그 기분 알아.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 얼마 안 가 사람들은 내가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는 것조차 잊게 된다는 사실,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절망과 분노로 온 몸이 뒤틀리는 순간을 말이야." 

 "테사라고 했던가? 넌 어떤 삶을 살았지?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난 남들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던 평범한 소녀였어. 내 몸에 병이 나기 전까진. 암 판정을 받는 순간, 내 삶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리기 시작했고, 남아 있던 의지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쓸려 나갔어." 

 "나와 마찬가지였구나." 

 테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 기적처럼 한 남자가 찾아왔어. 그 이의 이름은 아담. 옆집에 새로 이사 온 남자였어. 아담은 나를 위해 모든 걸 해줬고, 나는 모든 시간을 그와 함께 보냈어. 나의 이름을 세상에 남겨 주었고, 내가 겪을 수 없었던 삶을 선물해 줬지. 난 떠나면서 아담과의 추억을 계속 간직하려고."


 now is good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모든 순간이 끝을 향한 여정이다. 내버려 두면 된다. 그냥 놔두면 된다." -테사


 "내 얘기는 이미 들었는데 다시 해도 괜찮아?"

 "당연하지. 본인한테 듣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딨어." 

 두 사람은 동시에 미소를 머금었다.

 "너의 아름다운 이별에 비하면 나와 루의 만남은 엉망진창이네. 우린 처음에 어울리지 못하고 계속 싸웠어. 그리고 비로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 내가 그녀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어. 이별 직전에 루이자가 다시 찾아왔지만 나는 또 다시 비겁한 변명을 했어. 솔직히 마음이 아직도 불안해. 남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후회돼?" 

 "조금은. 아니, 어쩌면 그 마음이 너무 커서, 그동안 세상을 앉아서 내려다보던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걸지도 몰라."

 윌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는 손으로 얼른 눈물을 감췄다.

 "우리는 같은 처지였지만 참 달랐구나. 나는 더 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너는 더 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 하지만 우리를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결국 결과를 떠맡는 건 우리니까. 그 누구도 너의 삶을, 그리고 나의 죽음을 대신해 줄 수 없으니까."

 "그래. 넌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 거의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했잖아. 그게 조금 잘못된 일이라도 직접 해 냈어. 난 그 점이 부러워. 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죽음뿐이었어. 다른 어떤 것도 직접 할 수 없었다고. 아니, 삶을 그만두겠다는 의지가 곧 나였어. 불치병이 예고없이 찾아오듯, 교통사고도 내가 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현듯 닥친 거야. 그때 이미 윌 트레이너는 죽었어. 루이자는 그저 6개월 뒤 사라지겠다는 의지와 사랑에 빠졌던 거야." 

 "윌." 

 윌 트레이너는 털썩 주저앉아 흐느꼈다. 테사는 어떤 말로도 그의 마음을 달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가 울음을 멈추길 계속 기다렸다. 어느 순간 윌은 마음이 가라앉았음을 느끼고 벌떡 일어섰다. 테사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윌, 너는 과거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괴로워 하고 있어. 그게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을게. 이것만 알아 둬. 멀쩡한 몸으로 뜨거운 삶을 살았던 너도, 불구의 몸으로 절망 속에 빠져있던 너도, 모두 너 자신이었어. 넌 항상 너의 주인이었어. 모든 건 네가 선택헀고, 너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변화된 거야. 네가 어떤 상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네가 주체가 되었던 그 순간들이 의미 있는 거야. 모든 지금이었던 시절을 소중히 여겨. 지금이 좋다고 생각하면 너의 삶은 좋게 기억될 거야. 너뿐만 아니라 네이선, 부모님, 다른 사람들, 그리고 루이자에게도."

 "넌 만족해?"

 테사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윌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 좋았어. 또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사람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지금도 날아갈 것 같이 기뻐."

 "넌 정말 밝은 영혼이야. 함께 하니 꽤 위안이 됐어. 고마워, 테사." 

 그녀는 손을 모았다 풀고 윌을 바라보았다.

 "가 볼게."

 "먼저 가. 이제 보니 넌 오랫동안 기다렸구나. 너와 같은 상처를 지닌 사람이 올 때까지 말이야. 서로 이야기하면서 치유됐길 바라. 나처럼." 

 테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윌 트레이너는 잠시 그를 둘러 싼 적막을 즐겼다. 그는 숨을 크게 내쉰 뒤 천천히 앞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 앞에 그녀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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