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더디 세계문학 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혜영 옮김 / 더디(더디퍼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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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학창 시절 읽었던 것 같은데,

전혀 기억이 안난다. 아니면, 읽다가 포기했을지도 모르고^^;;

 

1913년에 태어난 프랑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알베르 카뮈는

두 번의 세계 대전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혼란한 시대를 살았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허무주의' '실존주의' 문학을 쓰게 된 게 아닐까?

 

요양원에서 모친 사망 전보를 받은 주인공.

슬픔의 눈물이나 꺼이꺼이 우는 모습이 없다.

 

사장에게 휴가 달라고 얘기하는 것과

가는 길의 어려움 등을 걱정할 뿐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단골 식당 주인 셀레스트처럼

한 분뿐인 어머니를 잃었으니 몹시 슬퍼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소설속 주인공은, 감정은 최대한 배제한 채 객관적인 말투이다.

 

 

사랑하지 않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웃 (레몽, 살라마노 영감 등)과 친구가 되겠다고 하는

그의 인생을 보면, 왠지 관심있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자기 경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일부러 거리를 유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본인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친구와 엮인 아랍인을 총으로 죽이고

형무소에 갇힌 주인공에게... 살인에 대한

거창한 이유는 없었고,  태양 때문이라 대답한다.

 

한편으로 억울하지 않을까 생각도 드는데,

어쩌면 모든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그의 삶의 태도가 이끌어낸 결과 같기도 하다.

 

 


다행히도(?) 그는 감옥에서 정당한 처벌을 받고 있다.

한번도 바라지 않았으나, 빼앗기고 나니

본인에게 자유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거든.

 

 

사형의 구형된 뒤, 항소도 포기했다.

새벽(사형이 집행되는 시간이 주로 새벽)을

기다리며 그는 생각을 했다, 아주 많은 생각들을.

 


그리고, 오랜만에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왜 삶의 끝에서 '피앙세'를 가졌는지,

왜 새로운 삶을 꾸리려고 했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죽음 가까운 곳에서 엄마는 자유를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를 했던 게 확실하다.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죽음에 이르러서야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걸까?

주인공의 건조한 말투와 달리, 삶에 대한 바람이 남들보다 더욱 강해서

억지로 자제하려고 그랬던 건 아닐까?라고 생각해보면서,

나는 허무주의 끝이 아니라, 지금 삶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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