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삼킨 소년 - 제37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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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삼킨 소년'을 몇번이나 읽고 또 읽어 가며 마지막 장을 넘길때는 소년'쓰바사'와 같이 침묵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랜 침묵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 깊은 한숨을 몰아 내쉬게 되었다.

책을 처음 봤을때 그저 소년범죄물이 섞인 '스릴러' 또는 '사회범죄 소설'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접근했지만 그안에 담긴 길고 긴 끈끈한 감정에 휘말려 몇번이고 덮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볼 수 밖에 없었다.


중학생인 '쓰바사'가 동급생인 '유토'를 살해한 살해 용의자로 등장하고 그가 긴 침묵을 지키면서 그 사건의 진실 속으로 다가가려 애쓰는 아버지 '요시나가' 의 모습을 볼 때만 해도 무언가 '쓰바사'의 긴 침묵에는 사연이 담겨 있겠거니 생각했고, 역시 이혼가정이란 환경에서 자란 '쓰바사'가 흔한 이지메를 견디다 못해 '유토'를 살해 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얘기는 그런 단순한 범죄 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급생을 살해했다고 지목된 '쓰바사'를 두고 자신이 아들은 그럴리 없다고 부인하던 아버지 '요시나가'의 처음 행동과 '쓰바사'의 침묵사이에 남겨진 오래시간의 앙금들과 자식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요시나가'가 사이에는 그만큼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침묵을 삼킨 소년'은 비록 극단적인 소년범죄를 가지고 부모와 자식간의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지만 보면 볼 수록 일반적인 부모의 감정과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 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두 사람의 감정에 나를 대입시키게 만든다.


흔히들 이런류의 범죄소설은 범죄심리 소설처럼 그의 죄의 유무죄를 가리는 진실게임과 그리고 대부분 죄는 용서하되 사람은 용서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끝나게 마련인데 '침묵을 삼킨 소년'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만 따지지 않고 '쓰바사'와 '유토' 그리고 '아버지 요시나가를 비롯하여 유토의 부모에 이르기까지 때론 자식의 입장에서 때론 부모의 입장으로 포기하지 않고 세심하게 천천히 다가가 모습을 보여준다.


덕분에 흔히 놓칠 수 있는 아이다운 입장의 가장 현실적인 감정에 다가가 갈 수 있게 하고 부모로서도 자신의 아이의 진실된 마음과 자칫 잊고 있었던 부모로의 가장 깊숙한 마음까지 보듬어 드러내게 한다.

책을 읽으며 감정이입이 깊이 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바로 '부모'라는 '명제'다.

이제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 있으면서 아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자신 역시 부모가 되기 전에 어느 부모의 자식이었던 때가 있었고 그때에 과연 어떤 감정으로 부모를 대하였는지를 잊고 지금 아이를 대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책은 가장 친밀도가 높다는 부모 자식간이라도 얼마나 서로를 불균형하게 바라볼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그만큼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에서 허우적대는 우리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임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한다.

책 말미에 옮긴이의 글에서 '삶 자체가 연습없는 본무대'라는 말이 크게 다가온다. 우리는 분명 연습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서로에게 서투를 수 밖에 없는 관계였지만 그러기에 좀 더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부모는 '설마 내 자식은 안 그렇겠지' 하며 생각하지만 자신의 기대감을 덧 포장하여 자식을 바라보면 언제나 서로에게 기우뚱 거릴 뿐 아니겠는가?

서툴러도 조금 오래 바라 봐 주어야 본 모습이 보이는 것이 거늘...


'침묵을 삼킨 소년'의 침묵이 깨지면서 터져 나오는 진실은 아프지만 그마져도 안고 가야 하는 것이 부모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아직은 남은 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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