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데뷔작인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빼어난 작품 단 한 권으로 깊이 각인되게 한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신간이 나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어딘지 우아한 듯 수려한 필체로 중년의 남자가 홀로 서기하는 일상을 그리고 있는데 사건사고가 있거나 뭔가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입해서 읽게 하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이혼으로 인해 원하지 않던 홀로서기를 하게 된 이 남자 오카다 다다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흔한 이혼남의 모습을 하지 않고 왠지 생활감이 묻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은 그를 우아하다고 평한다.
편리한 시설이 완비된 아파트 같은 건 마다하고 공원이 낀 오래된 주택을 세 얻고는 잘 아는 건축가에게 부탁해 집을 편리하게 리모델링 하며 느긋하게 솔로생활을 하는 것부터 일반적이지 않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도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나름의 고집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이런 점들이 매사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소비하는 전처와 맞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늘 계획한 대로 밀고 나가고 모든 일에 거침이 없었던 전처와의 생활에 익숙했던 다다시는 홀로되면서 모든 일에 서툴고 속도도 느리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솔로 생활에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요즘 말로 아날로그형 인간에 가까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직장 경력이 오래되어 풍족하진 않아도 여유롭게 생활할 정도의 자금력이 있는 것과는 별도로 자신이 사는 곳의 안락함과 적당한 문화생활을 즐기기를 원할뿐 별다른 물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느긋하게 솔로생활을 즐기는 게 가능했던 것인데 이런 여유로움도 잠시, 우연히 들른 곳에서 얼마 전 헤어진 불륜 상대이자 오랜 연인이었던 스가와라 가나와 조우하면서 달라진다.
그녀와의 첫 만남부터 두근거림을 느꼈고 만나는 동안 자신과 너무나 달랐던 아내와의 성향과 달리 자신과 무척이나 비슷한  취향과 성향의 그녀와는 이별조차 자신이 원하던 바가 아닌 오랜 기다림에 지친 그녀가 떠나간 것이어서 어느 정도 미련이 남아있던 상태였기에 그녀와의 우연한 만남이 계속 이어지길 은밀하게 바라지만 그녀는 그런 기미조차 없이 그저 반가운 친구처럼 대할 뿐이었다.
이 남자는 이런 때조차 적극적으로 대시하거나 밀어붙이지 않는다.
그저 그녀의 주변에서 원할 때 도움을 줄 뿐...
모든 것을 대하는 태도 역시 이렇게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관조적인 성향이 강한 이 남자를 주변에서는 우아하다고 평가한다.
스스로도 생각보다 솔로생활이 즐겁기만 한 남자는 옛 연인과 다시 예전의 연애 감정을 되살리면서 하루하루 여유롭게 보내던 생활이 생각보다 만족스러워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포함해서 셋이서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그녀에게 같이 살기를 권유하지만 그녀는 선뜻 승낙하지 않는다.
여자의 몸으로 혼자 아픈 아버지를 간호하며 사는 거보다 자신과 함께하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남자는 의아해진다.
왜 승낙하지 않는 걸까? 그녀는 자신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할 즈음 그녀의 홀로된 아버지와 뜻하지 않은 동거를 하게 되는 상황이 닥치게 되고 타인과 공간을 함께한다는 게 생각보다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떨어져서 가끔 만날 때보다 애틋한 마음이 줄어든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비로소 그녀와의 생활이 생각처럼 쉽지 않을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이미 이 모든 일을 예견했던 걸까?
그때야 비로소 그녀와 함께한다는 건 이 모든 걸 감수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 남자는 불혹이 훨씬 넘은 나이에서야 타인과 생활하는 것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
우아한 생활을 버리고 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함께할 수 있기 위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