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부트 시에나 1~4 세트 - 전4권 블랙 라벨 클럽 31
윤지은 지음 / 디앤씨북스(D&CBooks)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으며 살고 싶었을 뿐인데 정신 차려보니 자신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칼 날을 겨누고 그의 자리를 빼앗는 반란에 동참했을 뿐 아니라 자신으로 인해 모두가 불행해졌음을 깨닫고 절규하며 죽어간 여자 시에나
눈을 떠보니 5년 전 자신이 처음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카를이 아직 황제로 제위하기 전인 자신의 성인식 직전이다.다시 한번 새로 인생을 살 기회를 얻은 시에나
자신이 본 광경이 너무나 처참했기에 더 이상 같은 불행의 길을 갈수 없다 결심하지만 운명은 당연하게도 시에나의 의지와 다르게 그녀가 미리 본 그 길로 이끌어간다.
요 몇 년간 판타지 로맨스의 대세는 최악의 모습으로 죽거나 혹은 죽음 직전에 리부트 혹은 리세팅된 인생을 살게 되는 여자의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미리 본 자신의 운명에 맞서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나가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과정에 당연하게도 전생에서와 달리 남주인공의 사랑을 얻는 건 조미료처럼 첨가되는 것이고...
긴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 후회해보거나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조금은 지질하거나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받는 여주인공이 다시 한번 인생을 살아갈 기회를 얻어서 사랑에도 성공하고 인생도 잘못된 걸 바로잡는다는 설정은 현실에선 불가능하지만 소설이기에 가능할 뿐 아니라 충분히 매력적으로 어필할만한 소재임엔 틀림없다.
그렇지만 너무 많은 판타지 로맨스에서 이런 소재를 다뤘기에 조금은 식상한 면도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번엔 또 어떤 성격의 주인공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한 것도 사실인데 많은 작가들이 다룬 소재인 만큼 책을 읽는 독자들의 눈도 한 단계 높아졌고 그만큼 작품을 보는 눈도 까다로워졌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역시 리부트 되어 다시 인생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시에나의 길은 조금 험난할 수밖에 없겠다.
미리 본 인생에서 자신이 사랑한 카를과 함께하는 앞길이 너무나 처절했기에 더 이상 그와 함께 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운명은 그녀를 내버려 두지 않고 이번 생에서도 여지없이 카를과 혼인하게 되는 시에나는 물러설 수 없으면 맞설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자신이 봤던 운명과 달라진다.
전생에선 자신의 곁에서 자신에게 길을 안내해주던 아리아 황태후지만 알고 보면 그녀는 카를의 숙적이자 권력을 앞에 두고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던 라이벌이었다는 걸 뻔히 보면서도 그저 카를이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고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자기 연민에 빠져 그 점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던 시에나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아리아와 맞설 뿐 아니라 카를의 사랑에 목매달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맞수인 아리아 역시 만만치 않은 인물이다.
밑바닥에서 자신의 힘으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선 그녀는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서라면 무서울 것도 겁날 것도 없는 진정한 악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가장 독립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의 처절했던 인생에서 남자들이란 그저 그녀에게 해를 끼치고 폭력을 가하며 자신에게서 단물만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존재나 다름없기에 사랑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을 뿐 아니라 권좌를 두고 진검승부를 펼친 후 패배를 완벽하게 인정하는 모습에서는 진정한 왕의 모습을 닮아있기도 하다.
시에나가 리부트 된 후 가장 큰 피해자는 전생에선 카를에게 아낌없이 사랑받았던 블루벨이 아닐지...
각성한 후 모든 것이 달라진 시에나를 대신해 자신의 사랑만 소중하고 자신의 감정에만 몰두해서 주변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징징대기 바쁜 블루벨은 전생의 시에나의 모습과 닮아있고 그런 블루벨을 보면서 죄책감을 가지는 시에나의 심정은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생을 기억한 채 리부트 된 주인공들의 특징은 연약하고 그저 남자의 사랑만을 바라던 모습에서 환골탈퇴해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하고 남자의 사랑에 목숨을 걸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치에 나서서 권력을 쟁취하는 걸 크러시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반해 남자 주인공들의 역할은 미미하기 그지없는 게 늘 안타까웠다면 이 책에선 그 점이 좀 줄어들었다.
그저 서포트해주는 남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동반자적인 모습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두 사람이 작전을 짜면서 서로에게 빠져드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로맨스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도 리부트 시에나의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왕좌를 앞에 두고 치열한 정치 다툼을 보는 것도... 그 속에서 서로에게 마음이 있음에도  확신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던 리부트 시에나
진부한 소재의 한계를 넘어서진 못했지만 나름의 매력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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