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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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현기증과 함께 현재 1976년에서 느닷없이 과거 1815년으로 타임슬립한 흑인여성의 이야기

옥타비아 버틀러의 장편소설 `킨`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게 설명할수 있겠다.

물론 여기서 요점은 그녀가 흑인여성이라는 것!

sf판타지장르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타임슬립이란 장치를 이용해 과거로 돌아간 다나가 그곳에서 만난건 자신의 조상인 루퍼스였고 그는 놀랍게도 자신과 피부색이 다른 백인아이였다.

지금 현재에도 세계 곳곳에선 인종차별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녀가 간 그곳은 노예를 사고파는 물건취급하고 짐승같은 취급을 당연시하던 1815년이었고 역사나 고증을 통해서 과거 흑인들이 노예로서 살아가는 삶이 어떠했는지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다나가 그곳에서 직접 흑인이자 노예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알고 있다 생각했던것이 얼마나 충분치 않은것인지를 직접 피부로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예의 삶을 다룬 소설도 많고 노예제도가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소설도 있지만 대부분이 백인이 쓴 소설이거나 백인이 주인공이자 화자로 등장한 경우,혹은 흑인이라도 남자로서 노예의 삶을 그린소설이 많은데 반해 이 책에서는 작가 본인이 흑인이자 여성이면서 소설속에서지만 직접 노예로서의 삶을 살아본 경험치를 그리고 있다.

노예의 삶이 남녀 누구에게나 가혹한건 마찬가지지만 특히 여성노예는 백인이든 흑인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한 성폭행에 시달리고 아이를 출산해도 마치 가축을 늘린것처럼 재산증식으로 인식해 눈앞에서 팔려가기도 하는등 이루말할수 없는 고단한 삶이어서 다나가 같은 여성으로서 느꼈을 분노가 절실히 공감된다.

처음 과거로 회귀했을때에는 왜 그런일이 발생했는지 의아했던 다나는 자신이 구한 백인아이의 이름이 루퍼스임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과거로 회귀하게 된 이유를 어느정도 짐작할수 있게 되고 몇번이나 그의 목숨을 구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새 루퍼스와의 사이에 미워할래야 미워할수 없는 애증이 싹트게 된다.그가 아무리 비겁하고 야비하게 굴어도...

노예들을 재산으로 인식해 서로 사고파는게 당연한 시대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눈앞에서 비인간적으로 부모와 자식을 떼어내 팔아버리고 도망친 노예나 말을 안듣는 노예에게 채칙질을 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져 절망하던 다나의 심경이 몇번의 회귀끝에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루퍼스부자를 비롯해 백인 남성들의 폭력을 두려워하게 되고 그들이 내리는 처벌을 피하기위해서 스스로 무릎을 꿇고 복종하게 된 자신을 깨닫는 과정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일상의 폭력앞에서 나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26년을 살면서 스스로를 흑인이라는 규정이 아닌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지성인이라 생각했던 다나가 두려움과 폭력앞에서 완전히 굴복하고 무너져 내리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몇달...

그녀의 사고가 변해가고 폭력앞에 무릎끓는 과정을 보면서 누구라도 노예로 길들여질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녀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두 남자와의 이야기도 흥미롭게 진행된다.

남편인 케빈과 루퍼스...케빈은 그녀에게 애정의 대상이자 신뢰의 대상임과 동시에 반드시 현재로 돌아가야만할 원인이고 루퍼스는 그녀 다나에게 있어 그 시대의 평범한 사고와 인식을 가진 남자이자 원망스럽고 증오스럽지만 미워할수 없는 애증의 대상이며 과거에서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대이다.

그렇게 현재와 과거에서 서로 그녀의 발목을 잡는 그들과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그녀의 모습,그리고 그런 그들로 인해 왜곡되고 비틀어진 관계가 마침내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 `킨`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지만 뒤틀리고 비틀어진 사랑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무거울수 있는 소재를 무겁지않고 가독성있게 그려낸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은 확실히 매력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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