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박각시
줄리 에스테브 지음, 이해연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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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거리를 짙은 화장을 하고 짧은 치마를 입은 채 높은 하이힐을 신고 밤 사냥에 나서는 롤라

그녀는 거리의 포식자다.

여자들은 그녀의 모습을 경계하고 남자들은 힐끔거리며 그녀를 보고 욕망한다.

이렇게 거리의 여자처럼 하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남자들과 관계를 맺는 롤라는 평소엔 평범한 모습을 한 직장인이지만 퇴근 후 밤이면 새로 태어난 것처럼 화장과 야한 옷차림으로 무장을 한 채 그녀의 손에 들어올 사냥감을 찾아 나선다.

장소도 상관없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도 않은 채 원하는 걸 취하고 나면 그녀는 그녀의 사냥감들에게서 손톱을 잘라 기념으로 가져와 작은 병에 모으고 그걸 보면서 안도하고 불안감을 잠재운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가질 수 있고 남자들로 하여금 욕망에 떨릴 수 있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롤라는 왜 이런 생활을 하는 건지 그녀의 거친 삶이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녀는 돈을 원해서도 아니고 단순히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도 아니라 그녀의 내면 깊숙이 숨겨져있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남자를 찾아다니고 있다.

그녀에게는 스무 살 어릴 적 깊이 사랑했던 연인이 떠나가는 헤어짐의 고통을 맛봐야 했고 그보다 더 어릴 적 자신에게 깊은 사랑을 주던 엄마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트라우마로 남아있었기에 누구든 깊이 마음을 주고 사랑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누구도 상처를 주는 것을 거절하는 방법으로 일회성의 만남을 하고 자신이 먼저 상대방을 유혹해 원하는 걸 취하고 나면 거침없이 떠나버림으로써 누군가에게 버려질 수도 있는 걸 방지한다.

이제껏 그녀에게 먼저 다가온 유일한 남자인 너에게 버림받았던 기억은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흉터가 되어 더 이상 누군가의 접근은 용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먼저 접근해 유혹을 해 온 남자가 생기면서 사랑에 절대적 강자로 군림했던 롤라는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사랑에 빠진 여느 여자들의 모습처럼 변해간다.

이 사람이 또 떠나면 어떡할까? 하는 두려움은 집착과 광기의 행태로 상태를 구속하고 그녀의 그런 과도한 집착이 상대로 하여금 진저리를 치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어찌할 수 없는 그녀는 사랑에 있어서는 어린아이와도 같았고 그런 천진함에 매혹당했던 남자 도브는 점점 여느 여자들의 모습과 닮아져가는 그녀에게 시들해진다.

어쩌면 롤라는 사랑의 속성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처음의 뜨거운 열정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곧 일상이 되어 처음의 반짝거림도 두근거림도 사라져버리면 누군가는 편안함과 익숙함에 안주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두근거림을 찾아다닌다.

이제껏 롤라가 거리의 포식자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익숙함이 스며들 기회를 주지 않았고 스스로 선택한 사람만을 취했기 때문이 아닐까

롤라는 사랑에 목말라하면서도 사랑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처 받은 영혼이었고 그런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지극히 그녀다웠다.

마치 한편의 예술영화를 본듯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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