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항설백물어 - 상 - 항간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8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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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라고 하니 느낌상 발음상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가만 보면 우리의 전설의 고향류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사람들의 입에서 전해오고  향토 문헌 같은 데에서도 짧게 언급되기도 한 다소 이상하거나 괴이한 사건을 모아놓은 기이한 이야기집이랄까
기담류나 괴담 같은 걸 소재로 현재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과 연결해 그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있을 수 있는 일인지를 요즘 말로 하면 좀 한량 같은 남자들이 서로 정보를 모아서 의견을 나눠보고 문제를 풀어보다 결국엔 좀 더 경험 많고 이런 쪽으로 더 선배인 자칭 잇바쿠 옹이라는 노인에게 자문을 구하면 그가 오래전 자신이 경험했거나 전해 들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식의 전개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런 식이어서 더 할아버지로부터 듣는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이 강하다.
때는 바야흐로 메이지 유신이 있고 일본이 개화한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때라 직업의 변화가 있었고 번이니 가신이니 하는 체제가 사라졌지만 아직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하지 않은 신구가 뒤섞인 시기
그래서일까 신기하거나 이상한 사건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맨 먼저 저주나 원한, 지벌이라는 비과학적이면서 토속적인 신앙 같은 것에 많이 기대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자신들은 신식이고 이성적이라 생각하는 요지로, 겐노신, 소베, 쇼마 일행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이야기를 흥미 삼아 재미 삼아 모아서 그 기담의 뿌리를 연구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을 뿐 아니라 서로 간에 누가 제대로 그 출처를 찾아서 근거를 제시하는지 경쟁하고 있는 관계다.
여기엔 3편의 기이한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우리에게도 도깨비불이라 불리는 신기한 불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하늘 불과 집안의 길흉과 관계있다고 여겨지는 뱀의 상서로운 기운을 담은 상처 입은 뱀 그리고 섬에 모시고 있는 에비스 상의 얼굴이 붉어지면 섬이 멸한다는 무서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붉은 가오리가 있는데 개인적으론 가장 섬뜩하고 기괴하게 느껴진 건 역시 붉은 가오리였다.
하늘 불과 상처 입은 뱀은 우리에게도 다소 익숙한 내용이었고 특히 권선징악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사건의 해결 과정이 다소 과장되고 부풀려져 있어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붉은 가오리에 담긴 내용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섬마을 전체가 한 사람을 모시고 그의 모든 명령에 따를 뿐 아니라 표정조차 없이 온 섬을 다니면서도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나 불만도 없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는 그 사람들을 떠올리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처음에 그 사람들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잇바쿠 옹 즉 모모스케가 느낀 그들에 대한 연민에 공감하다 결정적인 순간 그들이 보인 행태를 본 후에는 아무런 죄의식이나 어떠한 의문도 없는 집단이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대로 행하는 신념의 행동이 폭력이나 다름없음을 보면서 처음에 느꼈던 연민은 사라지고 그들 위에서 군림하며 호의호식한다 여겼던 섬주인에게 오히려 연민을 느끼게 했다.
섬주인이야말로 그들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사육되고 받들어지는 동물이나 다름없었음을... 그래서 그들은 서로에게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있고 그 섬은 지옥에 한없이 가까운 곳임을 깨닫게 되면서 책을 읽고 난 뒤에도 그 여운이 길게 남았다.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섬뜩한 이야기여서 뒤에 나온 기담들 속 사건은 오히려 명쾌하게 느껴졌달까
일견 터무니없는 듯 귀신 장난 같은 사건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인간이 사는 도리, 삼라만상에 관한 모든 것들이 섞여지고 아우러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마치 옛날이야기 그중에서도 특히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적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져 무서운듯하면서도 어딘지 시원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역시 이런 건 긴 밤 지루함을 달래주기엔 딱인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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