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
니코스 카잔자키스 지음, 유재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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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조르바를 읽었다. 마침 그리스어 직역이 나왔다기에 바로 구입해서 1월 초에 읽었다.

'자유인'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인 조르바.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조르바라는 인물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또 조르바와 화자인 '나'의 대화를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지가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닌가 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분신이자 소설 속 화자인 '나'는 35세의 젊은 책벌레이자 지식인이다.

책 속에서 진리를 찾으며 육체적 쾌락을 경멸하고 '갈탄광이 잘되면 모두가 형제처럼 함께 일하고 모든 것을 나누며, 함께 똑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옷을 입는 공동체를 조직해보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나'가 크레타 섬으로 가는 항구에서 우연히 조르바를 만나고 '나'는 '자유로운 외침이자 가장 열린 영혼과 튼튼한 육체를 지닌, 대식가이자 술고래이고 일벌레이며, 바람둥이 방랑자인' 조르바와 함께하며 큰 깨달음을 얻는다.

 

내 삶은 실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펀지 하나를 들고서 그동안 읽은 모든 것을,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조르바의 학교에 다시 들어가 위대하고 진정한 알파벳을 배울 수만 있다면!(p.138)

 

조르바는 65세의 마케도니아 출신 노인이다. 물레질을 하다가 자꾸 방해가 되는 손가락은 가차없이 잘라 버리는 절대적인 자유를 좇는 사람이다. 동시에 두가지 일은 할 수 없고 지금 이순간에 집중하는, 어린 아이처럼 매일매일이 새롭고 신기해 지루한 삶이란 있을 수 없는 사람이다. 뭔가를 간절히 바라면 그것이 질려 구역질이 날 때까지 함으로써 대상의 노예가 되지않고 정복해서 거기에서 벗어난다.

 

술도 담배도 자신이 바라기만 하면 언제든지 끊을 수 있지만 조르바가 끊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여자다. 그에게 있어 여자는 '끝나지 않는 주제'이다.

다른 건 신물이 나도록 실컷 하다보면 언젠가는 질려 비로소 거기에서 자유로워 지는데 여자는 65세가 되어도 질리질 않으니 조르바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여자가 침대에서 기다리는데 안가는 놈, 거세된 놈은 모두 지옥에 간다고 큰소리로 말한다. 모든 여자에게 감춰져 있는 '아프로디테'를 끄집어 내고 여자도 자신을 그런 존재로 여기게끔 만들어 주는 능력을 가진 조르바이기에 가능한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여자를 대하는 그의 시선에는 불편한 부분이 있다. 여자를 불쌍하고 연약한 존재로 여기는 것까지는 좋으나 어쩔 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함부로 말하는 점이다. 여자를 '요물', '약해빠진 존재', '잡년', '계집', '불평꾼' 등으로 부르며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만 대한다. '늙은 닭은 국물도 좋다'느니, '훔친 고기만이 맛있다'는 무슨 3류 에로영화같은 말도 서슴치 않는다.

당시 시대 상황과 발칸반도에 위치한 그리스라는 국가의 특수성을 생각했을 때 여자, 특히 과부는 사람 취급도 못 받았겠다고 추측은 할 수 있겠으나 그래도 자유의 상징으로 많은이들에게 닮고 싶은 인물인 조르바가 이런 말들을 했다니 책을 읽고 처음 알았고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 책 속에서 여자는 약해빠져서 법도 필요없고 자유를 바라지 않으며 그저 위로나 바라는 그런 존재로만 그려진다.

 

"여자들이란 약한 존재들이라 자기들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데다, 일단 한 번 그년들 젖꼭지를 움켜쥐면, 바로 그 순간에 모든 문이 열리고 그냥 모든 걸 내준다고요."(p.394)

 

이 문장을 읽을 때는 여자로서 모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여성주의 관점에 매몰되어 조르바라는 인물을 감시하듯이 읽고 싶지는 않았기에, '워낙 날 것의 대지의 탯줄이 끊기지 않은 인간이기에 말도 이렇게 하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며 읽었다.

 

내가 생각하는 조르바의 가장 멋지고도 닮고 싶은 점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영원한 처녀성을 부여하는 순진무구함' 이다. 조르바는 '매일같이 모든 것을 처음 보는 듯' 본다. 굴러가는 돌을 보고도 신기해하고 흔해빠지 노새를 보면서도 "어떻게 이 세상에 노새 같은 게 존재할 수 있는 거죠?" 묻는다. 조르바에게는 모든 것이 다 기적이고 놀라움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기적과 만나는 삶이란, 얼마나 빛나고 설레이는 삶일까.

 

이런 조르바와 대조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마을의 유지 아나그노스티스 영감이다.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부인도 있고 자식, 손주들도 잘 자랐고  2층 집에 올리브밭, 포도밭도 있는 먹고 살 걱정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삶을 지루하게 생각하며 "복에 겨운 인생도 지겹긴 마찬가지라고. 에이, 빌어먹을 인생!"(p.290) 이라고 말한다. 부족한게 없지만 그의 무료한 인생은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한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나도 가끔은 이렇게 살지 않았나...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또 앞으로도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하니 순간 끔찍했다. 조르바와 확연히 대조되는 어떤 삶의 의지도 열정도 없는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끔찍해 보였던 것이다.

 

조르바는 웃기는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은 겪어 보지 못했을 수많은 일들을 겪었기에 자신만의 철학이 분명하다. 때로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기가 막히기도 하지만 나름의 논리정연함과 상상력에 나도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가장 웃었던 부분은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에 대한 그의 이야기이다. 바람둥이 대명사인 제우스를 조르바는 '모든 여자들의 욕망을 다 알고 그녀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불쌍한 신이라고 말한다. 절대 성욕에 사로잡혀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여자들의 고통과 욕망에 봉사를 하기 위해 자신의 정력을 다 소진시켜 가면서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엔 허리가 끊어져 죽었고 그의 후계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옛신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금욕적인 삶을 강조, "여자들을 조심하라!" 했다는 것이다!  케케묵지 않은 얼마나 조르바다운 해석인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조르바가 위대한 이유는 자기 자신을 극복한 인간이라는 점이다.

과거의 조르바는 살인과 강간, 약탈을 조국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한 인물이었다. 단지 그들이 불가리아, 터키 인이라는 이유로.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이 죽인 불가리아 신부의 자식들이 길거리에서 울며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는 조르바는 자신의 삶을 구속하는 조국으로부터, 신부들로부터, 돈으로부터도 벗어나게 도망친다.

 

"불가리아인인가 그리스인인가 하는 게 문젭니까? 이제 내게는 다 똑같아요. 이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인가 아닌가만 묻죠. 그리고 정말이지 나이를 먹을수록, 밥을 더 많이 먹을수록, 난 점점 더 아무것도 묻지 않게 됩니다. 보세요, 좋은 놈, 나쁜 놈이란 구분도 잘 맞질 않아요. 난 모든 사람이 불쌍할 뿐이에요."(p.394)

 

조르바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그리스에서 조국을 위한 싸움이라는 명분 아래 전쟁에 나갔지만 애국심이라는 가치에 가려진 전쟁의 비극과 참상을 겪은 후 깊은 회의에 빠진다. 그리고 회의에만 빠져 힘들어 하는 대신 바로 행동으로 실천한다.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이념, 가치, 제도, 종교,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도망치고 도망치고...지금도 도망치는 중이라고.

 

화자인 '나'는 이런 조르바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자신은 자유로워졌다고 조르바와 가까워 졌다고 느끼는 '나'에게 조르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뇨, 대장! 대장은 자유롭지 않수다. 대장이 매여 있는 줄은 다른 사람들 것보다 조금 더 길기는 하지만 그뿐이오. 대장, 대장은 조금 긴 끈을 갖고 있어 왔다 갔다 하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 끈을 잘라내지는 못했수다." (p.520)

 

"아주 어려워요. 그러려면 미쳐야 하는데, 듣고 있수? 미쳐야 한단 말요. 모든 걸 걸어야 해요! 하지만 대장, 당신은 머리가 있어 그게 대장을 갉아먹고 있죠. 정신이란 식품점 주인 같은 거요. 장부를 팔에 끼고서는 얼마 들어왔고 얼마 나갔고, 이건 이득이고 저건 손해고, 일일이 기입하죠. 정신은 알뜰한 주부 같아서 모든 걸 포기하지 못해요."(p.521)

 

조르바의 이 말은 우리에게도 하는 말이다. 우리는 절대 이렇게 살지 못한다. 이렇게 산다는게 불가능한 세상이다. 그래서 화자인 '나'도 아무말 못하고 '울음을 터뜨릴 뻔'한다. 왜냐하면 조르바의 말이 모두 맞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조르바가 말하는 자유가 무엇인지, 그런 자유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등을 생각해보았다.

말이 자유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자유가 뭔지 난 아직도 확실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나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이순간'에 집중하는 삶을 사는 것, 늘 습관적으로 보고 접하는 것들을 조르바처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마지막으로 그 무엇을 하든 그 순간을 조르바처럼 "신나게 즐겨라!"

 

왜냐하면 '인생을 허접스러운 일로 낭비해서는' 안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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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1-19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유명한 책이 저하고는 정말
연이 안 닿는 모양입니다.

읽다 말다를 도대체 몇 번을 하는
건지. 지난 가을에 다시 도전했다
가 어디선가 멈춰서 버렸네요.

다시 읽어야 하나 어쩌나 싶네요.

coolcat329 2020-01-19 23:21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이 안 읽은 책도 있네요.😅 워낙 유명한 책은 그런 경우가 있는거 같아요. 저는 그리스어 번역이 나왔다는 얘기듣고 갑자기 읽고 싶어져서 읽었네요. ^^
 
숨겨진 삶
실비 제르맹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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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듣는 작가인 실비 제르맹의 책을 아무 고민 없이 바로 구입했다. 좋은 리뷰를 읽은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밝고 강렬한 표지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새해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강둑길을 걷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첫 문장부터 호기심과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자아내고 그런 상황에서 등장하는 한 남자의 목소리.

"웃지 마요.!", "웃지 마세요......"

너무 생뚱맞은 이 대사는 마지막에 가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는데, 다시 앞으로 돌아와 읽게 만드는 첫 번째 포인트이다.

 

제목이 숨겨진 삶이니 만큼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까 한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나 비밀이 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드러나지 않은 그야말로 '숨겨진 삶'을 신비로운 문체로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 다 나름의 '숨겨진 삶'이 있지만 베랭스 家에 '용의주도한 결심보다 우연의 판결'의 결과로 나타난 피에르의 '숨겨진 삶'이 가장 인상적이다.

소설의 뒤에 가서야 드러나는 피에르의 '숨겨진' 이야기는 왜 그동안 피에르가 자신에 대해 그토록 함구했으며 살아남는 일 자체가 그에겐 노동이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이런 피에르가 자신의 '숨겨진 삶'으로부터 해방되는, 과거의 허물을 벗고 다시 새 인생을 시작하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자신의 삶이 시작된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 자신을 평생 옭아맨 '난해한 유희'를 뒤집어 엎음으로써 더이상 죽은 자들에게 얽매이지 않고 '산 자가 죽은 자들을 끌어안고 그들의 짐과 고통을 내려놓게' 되는 경지에 오르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p.267

그는 원점에서 재출발한다. 그러나 이 원점은 밑 빠진 독이 아니며, 허무도 비참한 상태도 아니다. 시간의 물 속에 잠겨 있는, 이제라도 피어나 너부죽 벌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아름다운 원이요, 가뿐히 들어올릴 수 있는 불타는 공이다. 피에르는 구원받았다.

 

 

죽은 자들과도 화해한 그가 살아있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피에르는 자신의 '해방을 자축'하기 위하여 한 때 자신이 정착해서 함께 지내던 베랭스 家가 있는 우르푀빌로 향하고 그곳에서 지평선까지 내려간 거대한 해와 만난다. 자신의 방에 걸려있던 로스코의 그림과 같은 하늘을 노란 오렌지색 물결로 물들인 해를 바라보며 존재의 욕망을 느낀다.

 

 

p.283

피에르는 이 작열하는 눈부신 하늘 앞에 서 있다. 그 광채와 숨결과 공간을 들이마신다. 그는 그것들 안에 존재한다. 안에 존재 한다는 것, "그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라고 로스코는 말했다. 그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결정되는 무엇이다. 사랑과 자명성에 힘입어 다져지는 의지,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무르익어 갑작스레 이루어지는 결의다.

 

 

피에르의 이야기만 했지만 그와 얽힌 베랭스 家 인물들의 삶도 매우 인상적이란 점 말하고 싶다.

사소한 한 사건이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는 삶의 잔인함 속에서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과 그들이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상처들, 그것들과의 대면, 화해가 '숨겨진 삶'과 같은 비밀스러운 문장으로 그려진다.

 

이 책은 적어도 두 번은 읽어봐야 그 맛을 좀 더 깊게 알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조만간 다시 한번 더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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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1-19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마그누스>가 제일
멋진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coolcat329 2020-01-20 07:58   좋아요 0 | URL
2005년 고등학생이 수여하는 공쿠르상을 받은 작품이네요. 꼭 읽어 보겠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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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소설, 일명 퀴어 소설이라고도 하는 작품을 거의 읽어보지 못했다. 작년에 2018년 풀리처상 수상작인 <레스>가 내가 읽은 유일한 성소수자 소설인 듯 싶다. 그 외에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싱글맨>은 작년에 사두긴 했는데 아직 읽지 않았고, 우연히 작년 말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 책이 두번 째 퀴어 소설이자 2019년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되었다. 당시 난 실비 제르맹의 <숨겨진 삶>을 읽고 있었는데, 이 책을 도서관에 서서 읽다가 그만 빌려와서 다 읽고 말았다. 책 뒷표지에 수필가 김하나의 작품평 중 '당신이 결코 할 수 없을 한가지는 이 이야기들을 읽다 마는 것'이라는 말이 적중한 셈이다.

 

이 책은 4편의 중단편을 모은 연작 소설집으로 이 중 <우럭 한점 우주의 맛>으로 작가는 2019년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4편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1인칭 시점으로 화자는 작가이자 게이이다. 성도 박씨이고 이름도 '영'인데, 박상영 작가과 겹쳐지면서 더욱 사실적인 느낌을 준다. 심각한 상황인데 어쩌면 이리도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성'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에 불편하다가도 대도시 하늘에서 홀로 외롭게 반짝이는 별과 같은 그런 문장과 만날 때면 누군가는 잔잔한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이야기 <재희>는 게이인 '나'와 '정조 관념이 희박'한 재희와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20대 '모든 아름다움이라고 명명되는 시절'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일으키는 두 사람을 보며 웃지만, 재희의 결혼으로 '영원할 줄 알았던 재희와 나의 시절'이 끝났음을 깨닫는 마지막 '나'의 모습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은 암투병 중인 엄마를 간병하는 화자에게 5년 전 사귀었던 '형'으로부터 편지가 오면서 시작된다. 띠동갑이었던 형이 보여줬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과 위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의 모든 것을 투신해버릴 정도로 좋아했'던, "사랑, 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죠?" 라는 잔인한 말과 함께 떠난 '형'의 편지는 현실의 나를 온통 흔들어 놓는다.  '나'는 실연의 고통에 농약을 마시고 자살기도를 한 후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는 가운데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p.169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가?

내게 있어서 사랑은 한껏 달아올라 제어할 수 없이 사로잡혔다가 비로소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추악하게 변질되어버리고야 마는 찰나의 상태에 불과했다.

 

또한 동성애는 정신병이라며 '나'를 정신병원에 가뒀던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런 엄마에게 사과받고 싶고 또 용서하고도 싶지만 화해를 향해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나'의 감정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P.179

단 한번이라도 내게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 때 내 마음을 짓밟은 것에 대해서. 나를 이런 형태로 낳아놓고, 이런 방식으로 길러놓고, 그런 나를 밀어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에, 무지의 세계에 놔두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 제발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받아들여지길 바라지만 끝내 아무말도 할 수 없는 나는 엄마도 어쩌면 나와 비슷한 마음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이란게 나의 뜻과는 정반대로 갈 수도 있음을, 피가 섞여 누구보다 잘 알거라 믿었던 존재가 어쩌면 가장 '미지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저 바라보고 결국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녀가 죽기를 기다리는 일 뿐임을...

 

표제작 <대도시의 사랑법>과 <늦은 우기의 바캉스>는 '나'와 규호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의 '나'는 한 동안 만나던 파트너의 부주의로 HIV에 감염되지만 자신의 병에 '카일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내가 나이며 동시에 카일리' 라며 HIV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런 '나'에게 먼저 사귀자고 하는 규호와 사실대로 말하는 '나'. 그리고 결국엔 사귀게 되는 '나'와 규호.

나중에 '나'는 규호에게 묻는다. 카일리가 있는데 왜 선뜻 나와 사귀기로 했냐고.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카일리를 갖고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규호의 이 한 마디는 그동안 사랑의 쓰고 달콤함을 두루 겪은 나에게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늦은 우기의 바캉스>는 규호와 헤어진 내가 홀로 지내다 방콕에 가는 이야기이다. 규호와 방콕에서 함께한 추억들을 떠올리며 '나'는 상실감과 외로움에 눈물을 흘린다. '나'와 규호의 사이엔 '순도 백 퍼센트'의 어떤 특별함이 있었다고  글로 증명하고 싶어 계속 쓰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소설 속 규호와 현실의 규호는 점점 멀어짐을 느낀다.

'공허하고 의미 없는 낱말들이 다 흩어져 오직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만이 남는 그 공허함 속에서 그래도 나는 멈출 수 없음을, 대도시에서 사는 '나'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이 소설집은 주인공 '나'가 대도시라는 크지만 그만큼 개인의 존재는 미미한 공간에서 성소수자로서 겪는 삶, 사랑과 이별, 가족과의 갈등 등을 경쾌하고도 유머러스하게 그린 작품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성'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와 스토리의 막장스러움에 놀라기도 하고 살짝 엿본 게이 문화가 낯설기도 했지만 이런 나의 반응이 이제는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세상임을 안다. 

요즘 워낙 핫한 작가라 호기심에 읽어봤는데, 가벼우면서 강렬했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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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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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3

"사람들은 행복하고,원하는 바를 얻으며, 얻지 못할 대상은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잘살고 , 안전하고, 전혀 병을 앓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늙는다는 것과 욕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때문에 시달리지도 않고, 아내나 아이들이나 연인 따위의 강한 감정을 느낄 대상도 없고, 마땅히 따르도록 길이 든 방법 이외에는 사실상 다른 행동은 하나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리고 혹시 무엇이 잘못되는 경우에는 소마가 기다립니다."

 

 

누구나 잘살고 행복하며 질병과 노화가 없는 세상이라니...정말 멋진 세상아닌가!

그러나 워낙 유명한 소설이기에 이 제목이 반어적으로 쓰여졌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피스트>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거기에서도 반어적으로 쓰였다고 하니까.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과학 기술이 최고도로 발달한 문명 세계이다. 사회의 안정을 위해 인간을 시험관에서 대량 생산하고 그렇게 생산된 인간들은 철저한 계급에 따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수면학습과 세뇌로 자신에게 부여된 삶을 살아간다. 계급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5계급으로 나뉘는데, 하위 계급으로 갈수록 산소공급을 적게하여 최하위 계급인 엡실론같은 경우엔 인간의 지능에 훨씬 못미치게 만든다. 평생 단순노동일을 하게 되는 엡실론들은 끊임없는 습성훈련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일을 좋아하게 되고 오히려 머리쓰는 일을 하는 알파계급이 아님을 다행으로까지 생각한다. 다시말해 자신의 삶에 매우 만족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들은 늙지도 아프지도 않고 정신적인 고통도 소마라는 약을 먹음으로써 피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을 공유'함으로써 성관계도 자유롭다 못해 문란하고 한사람과 '오래 질질 끄는 관계'는 강력하게 규제된다. 따라서 가정도 없고 연인 사이의 사랑의 감정, 도덕적 책임같은 것도 없는 어딜가나 만족과 안정만이 있는 세상이다.

 

그러던 어느날 신세계와 격리된 야만인 보호 구역에 사는 존이 이 문명세계에 초대받아 오게된다. 처음엔 놀라운 과학 문명에 감탄하지만 개인의 자유로운 진짜 삶이 없는 거짓된 행복에 도취된 문명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급기야 소마를 배급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다음과 같이 격노하며 소리친다.

"여러분은 자유롭고 인간다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인간성과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합니까?"

"자유를, 자유를 찾아요!"

 

불행없는 행복은 가능한가. 만들어진 행복과 안정 속에서 과연 인간은 인간일 수 있는가? 아무리 행복해도 내가 스스로 원해서 얻은 행복이 아니라면...?

이 작품은 마지막에 가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p.362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멋진 신세계를 거부하는 야만인 존이 무스타파 몬드 통제관에게 마지막에 하는 말이다. 이런 권리에 더하여 늙고 매독과 암 같은 질병에 걸릴 권리와 내일이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할 권리, 온갖 종류의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까지도 요구한다.

 

이러한 고통을 수반하는 권리까지 요구하는 그 밑바탕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은 오직 사회의 안정을 위해 수단화된다. 안정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인간을 생산하고 그 인간을 또 세뇌시켜 스스로 생각할 자유를 박탈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곤 전혀 없는 세상이다. 거짓 행복인 줄도 모르는 껍데기뿐인 인간들로 가득찬 겉만 번지르르한 세계.

 

존은 불행해지고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더라도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길 바란다.

이는 그 어떤 안정되고 이상적인 사회라도 개인의 자유가 없는, 인간의 행복마저도 생산, 통제되는 사회는 결코 멋진 신세계가 아님을 헉슬리는 경고하는 것이리라.

 

불행해 봐야 행복함을 알고 아파 봐야 건강함에 감사할 수 있으며, 배고파 봐야 배부른 포만감에 느긋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나같은 경우는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한 요즘인데, 만약 멋진 신세계처럼 평생을 젊고 팽팽한 모습으로 살다 60쯤 되어 그냥 나도 모르게 죽어버린다면 삶의 소중함은 커녕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과 무엇이 다르겠는가...생각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세계이다.

 

조지 오웰의 <1984>와 비교해 보고 싶어 읽었는데 전체주의가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시키는지 매우 다른 시각으로 보여준 점이 흥미롭다.

낯설지만 낯설지않은 세계라는 점이 서늘하게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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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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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에 읽은 책이다. 입소문을 통해 알게 된 작품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독특한 제목과 감성을 자극하는 연한 하늘빛의 표지가 매력적이었다.

 

10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비슷하다. 현재의 '나'가 과거를 회상하는 10개의 이야기. 잊히지 않는 사건과 시절, 그로 인한 상처와 죄책감, 외로움, 상실 등을 책 뒷 면의 메릴린 로빈슨의 평처럼 '한결같은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표제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 물리학 교수 로버트가 시험으로 낸 단 한 명도 풀지 못한 방정식 문제처럼 이해할 수도 풀 수도 없는 삶이라는 방정식 앞에서 그래도 끊임없이 스스로 물어보고 반추하며 결국엔 차분한 어조로 말해나가는 10명의 화자들이 무척 인상이었다.

 

"헤더는 풀이를 제출한 유일한 학생이었어요."(p.93)

 

삶의 아프고 어두운 면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방정식의 답은 구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깨달음은 얻을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런 인간에게서 배어 나오는 품위가 이 작품 속엔 가득하다.

10개의 작품 속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그 어떤 정서가 이 소설집을 완벽하게 받쳐주는 힘이라 생각한다.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표제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아술>, <강가의 개>. <외출> 이었다. 특히 선의로 무심코 한 행동이, 잘해보려고 한 행동이 끔찍한 결말로 이어지는 <아술>은 플래너리 오코너의 작품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강도는 훨씬 약하지만 말이다.

아름답고 우아하며 섬세한 소설을 만나고 싶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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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1-02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21세기북스 버전으로 소장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예전 표지가 더 마음에 들더라
구요.

어쨌든 절판되었다가 다시 나오니 반갑더
군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읽었답니다.

coolcat329 2020-01-02 19:42   좋아요 0 | URL
네~~레삭님 리뷰 읽어서 알고 있네요. 저는 이번 표지가 더 좋은데, 아쉬운 점은 예전 책에는 옮긴이인지 작품해설이 있는거 같던데 요 책에는 없더라구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