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
내가 이 병을 앓게 된 것은 벌써 3년이 넘어 버린 것 같았다. 치료할 수 없는 병.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할 병. 의사는 치료가 가능할 거라며 믿어달라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3년이나 지나가 버린 시간은 점점더 내 자신을 야위어 가게 했을 뿐이었다. 이 방법 저 방법 거의 모든 방법을 다 써 가며 병원을 내 집처럼 들락날락했지만, 이 병이 나을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이 병을 가지고서도 일상생활을 영위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죽을 것 같이 아플때는 심장이 멈춘것 같이 아프고 눈물이 계속 쏟아졌지만, 보통은 잠을 자기전에 침대위에 누웠을때만 그렇다는 것. 아니, 때때로 갑작스럽게 병증이 도질때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이 병이라는 놈이 그리도 나를 아프게 만들때는 역시 잠을 자기 직전인 것 같았다.
병을 피하기 위해 잠을 자지 않을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첫 증세가 나타났을 무렵에 잠을 자려고 하면 이 병이 자꾸 도져 베게가 물기 꽉 찬 스펀지 마냥 축축하게 젖어들었다가도 아침이 되면 퉁퉁 부운 눈으로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일을 나가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벌써 3년이나 지났다. 앞으로도 이 병은 낫지 않는 다는 생각만 하면 항상 두려움에 벌벌 떨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하는 병이기에. 그런 그때에 한 여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어디 아파요?"
"예?"
"어디 아프시냐구요."
"아뇨....."
"그런데, 왜 이렇게 길가에 서서 울고 계신건가요?" 하며 손수건을 건네는 그녀. 흰색의 깨끗한 네모반듯하게 접혀있는 그 손수건에는 꽃무늬 자수가 놓여져 있었다. 빙그시 미소를 지으며 "눈물 좀 닦으세요. 다 큰 남자가 왜 울어요?" 라고 말하는 그녀. 그녀는 어째서 나를 발견 한 것일까. 내가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은 외국인가에서 온 닥터 빈 이라는 의사 단 한사람 밖에 모르는 일인데.
"죄송해요. 이 손수건, 더럽혀져 버렸네요."
"아뇨. 괜찮아요. 이제 눈물은 안나시나요?"
"그런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괜찮다니까요."
'그럼, 이 손수건은 어떻게...' 라고 말하자, 그녀는 연락처를 적어주며 "빨아서 연락주세요." 하며 미소지으며 사라졌다. 그 순간 만큼은 병이 사라진듯, 심장이 멈춘것 같은 통증도, 눈물도 나오질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손으로 묻은 눈물을 깨끗하게 빨고, 다림질까지 해서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그녀는 "꽤 빨리 연락하셨네요?" 하면서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그녀의 웃는 목소리를 들을때마다 왜인지 가슴의 통증은 찾아오질 않았고, 나는 혹시나 어쩌면 그녀라면, 내 병을 고쳐주지 않을까 하는 바램에 한시라도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날 바로 약속시간을 정했다.
그녀가 정하여 만나기로 한 커피숍은 여기가 정신병원인지 커피숍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흰색 밖에 없는 공간. 테이블도 의자도 커피 만드는 기구와 커피. 그리고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모를 소녀만 빼 놓고는 전부 하얀 도화지 같은 곳이었다. 거기다 특이한 것은 그 종업원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검은색 일색의 메이드복. 사장 취향이 좀 이상한가?
"제가 좋아하는 커피숍이에요."
"그런가요? 상당히 특이한 곳이네요."
"네. 가끔씩 연필로 글을 쓰는 사람도 오고..."
"네?"
"아뇨. 후훗. 손수건은 잘 빨아 오셨나요?"
"네. 감사합니다. 제가 커피라도 한잔 대접해야겠네요."
하는 말과 동시에 검은색의 메이드는 흰색의 머그컵에 담긴 검은색의 커피를 가져왔다. 옆에 놓인 각설탕 마저 흰색. 그리고는 유유히 자기의 할 일을 하러가는 메이드. 하지만, 그런 메이드 보다는 내 앞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이 여성이 더욱 궁굼했다. 확실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아픔이 사라지는 체험을 했었지만, 역시 그녀의 얼굴을 보니, 병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아무런 느낌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프셔서 울었던 건가요?
그녀가 말했다.
"병이....있어서요."
"그런가요? 어떤 병인데요. 갑자기 운다고 하는 병은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상당히 희귀한 병인가 봐요. 외국에서 왔다는 능력 좋은 의사도 3년째 제 병을 못고치셨으니까요."
"어쩜....그래서 낫지는 않는가요?"
"의사 말로는 나을 수 있다고 하는데.. 모르겠어요. 어쩌면, 평생 안고 살아갈 병인가 보죠. 그래도, 가끔씩 울거나 가슴이 아플때만 빼면 일상생활도 가능하고........"
그렇게 내 병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2년전부터 시작된 병. 그리고 밤마다 잠을 잘때면, 찾아오는 고통. 그녀는 걱정하는 눈빛으로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고, 이해해 주는 것 같았다. 내가 이 병에 대해선 의사 외에는 처음으로 말한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의사 말로는 나을 수 있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다행이네요. 그래도 안 낫는다는 것보다는 좋잖아요."
"저기...."
나는 말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였다. 그녀를 보고 있자면, 아픔은 느껴지지도, 눈물은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면,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 겁이 났다. 입술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고, 아플때 마다 멈추었던 심장과는 달리 이번에는 터질것 같이 쿵쾅 거리는 심장이 온몸을 울렸다.
"아!"
그녀는 박수를 '짝!' 하고 치며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 병이 뭔지 알 것 같아요."
하면서 베시시 웃는 그녀.
"어떤 병인가요?"
"음.. 글쎄요.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치료법은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치료법요? 어떤 병인지도 모르는데, 치료법을 안다고요?"
"음..그리고, 저만이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은 병인데요?"
"네?"
"기억.... 안나시나요?"
"어떤 기억요?"
그녀는 빙그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제 병을 고쳐 주었잖아요. 당신과 똑같은 병을."
"처음 듣는 소리인 것 같은데..."
"당신은 기억 못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단박에 알았는 걸요. 저의 병을 치료해 준 사람. 왜 제가 당신에게 다가 갔을까요. 당신을 예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거에요. 그리고 당신은 절 그 병을 낫게 해 주신 은인이구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고맙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번에는 제가 고쳐드릴 차례인가요?"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내밀어 키스를 하고는
"사랑해요."
그러자 3년동안이나 나를 아프게 했던 병이 언제 그랬냐는 듯 나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