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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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선생님도 you, 친구도 you, 2인칭 대명사를 상대의 지위에 따라 바꾸지 않고 모두 you로 통칭한다는 사실이다. 존대어가 발달한 한글에 비해 영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존대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단순히 언어만 다른 것일까?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를 읽으니 언어 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동서양의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었다.


리처드 니스벳은 미국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 석좌교수로, 사회심리학적 주제의 인간의 사고방식에 관한 연구로 명성을 쌓은 학자다. 인간의 사고와 추론방식에 대한 연구중 중국 출신의 대학원생으로부터 ‘중국인은 전체를 생각하며 사물들과의 관계성을 파악하려 하지만 서양인은 단순하고 기계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인간이라면 문화에 상관없이 보편적인 사고과정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저자는 처음에 그의 말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 실제로 동양(여기서 동양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를 뜻한다)과 서양(주로 유럽문화권)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생생하게 밝혀냈다. 자신과 같은 입장인 심리학자나 인지과학자들의 잘못된 생각-인간의 보편적 사고과정에 대한-을 바로잡는다.


시작은 고대의 중국과 그리스부터다. 그리스인들은 세상의 본질에 관심이 많았다. 변하지 않는 성질이자 가장 핵심적인 특성을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추려낸 속성을 범주화 해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으로 세상을 설명한다. 이러한 특성은 서양에서 과학이 발달할 수 있었던 큰 요인이 된다. 그에 반해 고대 중국에서는 관계를 중요시한다. 조화와 중용이 미덕이며 어떤  한 요소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관련성 속에 공존한다. 책은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이 다른 것을 여러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증명한다. 예를들어 어린이들이 학습할 때, 서양은 명사를 더 빨리 배우는 반면 동양은 동사의 학습속도가 월등히 빠르다는 것이다. 사물 자체의 이름과 특성을 중요시하는 서양의 부모들에 반해 동양의 부모들은 상황속의 맥락을 가르치기 위해 동사로 관계를 표현한다. 언어의 학습에서부터 동서양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저자는 실험에 참여했던 동양계 미국인이 두 문화의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 동서양의 차이가 수렴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책은 세상을 동양과 서양의 두 부류로만 나누고 있다.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것은 간과한 채, 동서양(그것도 중국과 유럽)으로 일반화시켜 주장하는 것은 서양 중심의 시각에 불과하다. 그 결과 서양과 동양이라는 이원적 구조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서양의 시각은 사건사물을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이해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을 갖게 해 주었다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가 있고, 동서양 차이의 정도와 원인을 체계적으로 제공한 것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세상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동양의 정서는 많은 인과관계에 주의를 쏟다보니 검증과 일반화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역할을 해 준다.


책은 우리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돌아보게 한다. 서양인이 있으면 동양인이 있는 법. 두 집단의 차이를 통해 우리의 특질을 좀 더 뚜렷하게 돌아볼수 있다. 인터넷의 확산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접하게 되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문화의 차이를 느끼게 되는 일도 많아진다. 왜 다른지 조금이라도 이해할수 있다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것도 가능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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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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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는 KTX 여승무원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요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대학생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여승무원들의 정규직 전환 투쟁에 대해 ‘날로 정규직이 되려고 하면 안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학생들의 그런 생각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여기 홍세화 선생의 <생각의 좌표>에 그 답이 있다. 


우리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온전히 의지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보면 그것은 비판없는 제도교육과 자본의 논리로 무장한 미디어에 의해 강요되는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에서 온 것들이다. 홍세화선생은 이런 성찰되지 않은 생각들을 경계하며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줄 아는 주체적인 존재가 될 것을 주장한다. 이 책의 부제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이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얼마나 강요당해 왔는가! 학교에서는 암기과목을 통해서, TV에서는 온갖 광고와 드라마를 통해, 이제는 핸드폰을 통해서도 ‘어떤’ 생각들을 주입받는다. 주체가 빠진 일방통행은 더 이상 내 생각이라고 말할수 없다.


홍세화 선생은 ‘내 생각’을 가지기 위해서는 폭넓은 독서, 열린 자세의 토론, 직접 견문, 성찰의 네가지를 제시한다. 독서를 통해 선인을 포함한 타인의 생각을 주체적으로 참조한다. 동시대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소통하고, 다양한 경험과 여행을 통해 직접 보고 겪고 느낀다.  이 세가지를 통한 성찰의 과정에서 비로소 내 생각은 주체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내 생각은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비로소 갈고 다듬어지는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뜨는 만큼 자아의 세계가 확장된다. 학생들에게 인간과 사회에 관해 자기 생각과 논리를 갖게 해야 한다. 학생들은 사물과 현상에 관해 자기생각과 논리를 펼 때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p45)


KTX 여승무원들에게 적의를 보였던 대학생들의 이기적인 생각이 그들만의 탓이라고 이야기할수만은 없는 이유다. 사람에 대한 공부는 하지 못하고 오로지 암기과목으로 줄세움을 당해온 결과일까. ‘인권의식도 연대의식도 기대할 수 없는 학벌경쟁’은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에게 사회적 차별을 받아들이도록 작용한다. 그들은 그런 생각을 가지게끔 강요받아 온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문학이다. 사람에 대한 공부. 내 생각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을 이해하고 사회를 보는 눈 뜨기’가 필요하다. 이것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선생이 말한 네가지 과정-폭넓은 독서, 열린 자세의 토론, 직접 견문, 성찰-을 통해 비로소 온전한 ‘내생각’을 가질수 있다. 이중 가장 먼저 해야만 하는 것은 독서일 것이다.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에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씨의 말이 실려있다.


“공장에 돌아간다 해도 예전과 다른 인간이 되어서 돌아가고 싶어요. 다른 인간이 되어서 살아보고 싶어요. 나 먹고 사는것만 신경쓰고 살면 안돼요. 우린 그렇게 살면 안돼요.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어요.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책좀 읽으면서 세상을 배우고 싶습니다.”


좀 더 많이 갖는 것보다 내 삶에 긍지를 갖기위해,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내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생각의 주인으로 살기위해 한 걸음 나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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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속 고전 -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나무연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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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고 하면 흔히 시대를 초월해 높은 평가를 받는 문학작품을 말한다. 이 경우, 제목을 대면 누구나 알수있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은 드문경우가 많다. 어떤 책을 고전이라고 할 것인가? 출판사의 ‘세계문학시리즈’등으로 보여지는 리스트도 있겠지만 저자 서경식은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책들을 고전이라고 정의했다. 

이 책의 부제는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로 일본에서 수학했다. 1971년, 위의 두 형이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형들의 구명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 경험은 후에 저자의 집필활동의 근간이 된다. 디아스포라의 입장에서 재일조선인 문제, 일본의 우경화, 예술등을 화두로 글을 써 왔다. 이 책은 한겨레신문에서 연재한 칼럼을 묶은 것으로 한국의 젊은 독자에게 읽어보기를 권하는 ‘고전’을 소개한다.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사이드 음악평론>,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등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은 휴머니즘과 예술, 사회에 대한 시선을 담고 있다. 모두 인간에 대한 통찰과 따뜻하지만 냉철하고 비판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내용이다. 책의 선택에서도 그렇지만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서도 저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의 렌즈를 통해 책을 읽는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소수자로서, 같은 민족의 젊은이들에게 책을 추천하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에 신진 연구자들과 저자와의 대담은 그러한 저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대담자 중 한사람이 한 말이 인상적인데, 에세이를 권하지 않는 아카데미의 분위기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 글을 쓸 때 치러야 하는 내면적인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저자는 이에 대해, 개인을 개인으로만 보지 않고 관계의 산물로 인식해, 고통받으면서도 이야기 하지 못하는 다른 공동체의 일원을 대표하여 발언을 이어나간다고 한다. 개인을 드러내면서도 보편성을 갖게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를 하게 될 때의 ‘나’는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아마도 저자는 여기에 실린 책들을 읽으며 ‘나’를 만들어 나갔을 것이다. 팔레스타인계 아랍인이자 미국 국민이었던 에드워드 사이드, 아우슈비츠에서 절망의 시간을 견뎌낸 프리모 레비와 빈곤의 밑바닥을 파헤치려 했던 조지 오웰 등등 여기에 실린 많은 저자들의 책이 결국 저자의 오늘을 있게 했으리라. 자기의 정체성을 통해 자신만의 고전을 만든 저자를 보며 과연 나는 어떤 책을 나의 고전으로 삼을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에 소개된 책 중에서 읽어보고 싶은책이 많은데 그중에 특히 케네스 클라크의 <그림을 본다는 것>을 읽어보고 싶다. ‘순수하게 미적인 감각을 즐길수 있는 시간은 오렌지 향을 즐기는 시간보다 길지 않다’는 대목에서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감탄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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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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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동안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야 한다면 과연 제 정신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 하지만 신영복선생은 그의 글씨체만큼이나 반듯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냈고 그 생각의 궤적은 이 책에서 빛나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서 교관을 하던 전도유망한 젊은이는 1968년 박정희 정부 시절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된 후 사형을 선고받지만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20년을 복역하게 된다. 1970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있을때의 글은 특정 수신인이 없는 글로 자신의 마음을 글로써 풀어낸 내용이 많지만 이후 안양교도소와 대전, 전주교도소에서 쓴 글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때로는 그림도 옆에 그려가면서 보낸 글들은 하나같이 주옥같아 오죽하면 편지를 받은 사람들이 그 편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선생의 입장을 헤아려 보면서 그 속이 과연 어땠을까 상상해보는 것 만으로도 힘들고 괴로운데, 책 중간중간 실려있는 선생의 편지를 찍은 사진들을 보면 얼마나 정갈하고 또박또박 살아있는 글씨인지 전혀 그런 어두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을 가장 밑바닥에 세우는 냉정한 시선과 용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아내의 일 나감’을 걱정하는 젊은 동료를 보며 ‘아내를 세들어’ 살아야 하는 힘든 사람들을 안타까워한다. 

처음에는 아버님과 어머님, 형님, 동생에게 쓰던 편지가 뒤로 갈수록 형수님과 계수님에게 쓰는 편지로 바뀌고, 그 속에 자신의 생활이라던가 생각했던 것,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선생의 글을 읽다보면 어떻게 그런 상황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반듯한 정신을 잃지 않을수 있는지 마음이 숙연해진다. 형수님에게 쓴 여름 징역살이에 대한 글은 자신에 대한 칼날같은 성찰로 쓰여진 글일 것이다. 비좁은 감옥안에서 상대방의 체온을 느끼며 갖게되는 증오를 없이 사는 사람들 생활속의 그것과 비교해보며, 결코 그것이 그들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헤아려야만 한다는 선생의 생각은 책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감과 연대.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p313)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p325)


책을 읽으면서 첫 부분은 신경쓰지 않고 읽었는데, 뒤로 갈수록 글의 마지막 날자를 자꾸 보게된다. 어서 20년이 지나 선생이 자유의 몸이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일까. 2006년 발행된 책이라 저자 소개난의 선생은 아직 성공회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중이시다. 다음 번 책은 바깥세상에서 쓴 선생의 책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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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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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몬드>는 손원평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다. 한국형 영어덜트소설의 탄생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들으며 등장한 이 소설은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속도감으로 끝까지 단숨에 읽힌다. 


주인공 윤재는 일명 ‘아몬드’라고도 불리는 뇌속의 편도체가 작아 감정에 대한 반응을 할수 없다. 윤재의 증상인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표현 불능증은 감정을 인식하고 적절히 표현하는 능력의 부족, 즉 자신과 타인의 감정 모두 느끼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엄마와 할멈(윤재의 표현이다)의 사랑속에서 지내던 윤재는 자신의 열여섯번째 생일날 가족과 함께 시내에 나갔다가 묻지마 살인극에 휘말린다. 할머니는 죽고 엄마는 의식불명상태에 빠지면서 그때까지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은 삶을 살아왔던 윤재는 자의반 타의반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면서 살아가게 된다. 

윤재에게 중요한 타인으로 등장하는 곤이. 13년만에 가족을 찾지만 분노로 가득 차있다. 감정을 느끼는대로 표출해버리는 그는 감정에 휘둘릴 일이 없는 윤재를 부러워한다. 


다른사람의 감정에 반응하지 못하는 윤재였지만,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만큼 감정에 의해 자기자신을 속이는 일 없이 자신이 믿는 것을 관철할 수 있었던 걸까? 엄마와 할머니가 속수무책으로 폭력을 당할 때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슬픔보다는 질문을 품어왔던 윤재는 곤이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주저함없이 행동한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p245)


많은 묻지마 범죄가 횡행하고, 공감능력이 부족한 시대라고 말들을 한다. 작가는 공감에 대한 화두를 묵직하게 던진다. 다른사람의 아픔을 공감한다는 것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걸까. 우리는 수많은 SNS페이지에서 공감버튼을 누르지만, 정작 타인을 위한 행동이 필요해질 때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그 수많은 공감들은 그저 소비되는 감정이었던 것일까. 어떤 것을 공감한다는 것이 그저 같은 것을 느낀다는 사실일뿐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닌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이 많은 거리에서 윤재의 엄마와 할머니는 공격당하지만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소설이지만 더이상 낯선 사건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재라는 캐릭터는 나에게 많은 울림을 남겼다. 윤재를 통해 공감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감정은 비로소 표현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타인과의 관계맺기와 큰 사건을 거치며, 어쩌면 제일 변하기 힘든 사람이었을 윤재는 변하게 된다. 자기의 손을 내밀어 곤이의 손을 잡는 행동을 보여준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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