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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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떨어져 본 사람은 안다. 거대한 문이 내 앞에서 닫히는 듯 한 느낌을. 거부되었다는 당혹감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일원이 되지 못함에서 오는 좌절감을. 장강명 작가의 <당선, 합격, 계급>을 읽고 나니 그 느낌은 그저 개인적인 감상뿐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겪게 되는 부정적인 감정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문학공모전과 공채제도의 시스템이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지 상세히 취재한다. 공모전이 운영되는 시스템과 그를 받치고 있는 문학계의 상황, 등단의 시스템, 삼성직무적성검사와 수능, 사법고시 등으로 대표되는 공채 문화의 현실을 수치와 통계 등의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그 시스템 안에서 작동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는 날것 그 자체다. 공모전을 만든 사람부터 심사위원, 등단작가, 미등단작가, 공모전 지망생 등등 많은 부분 실명으로 등장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의 이면을 보여준다. 거기에 작가가 직접 심사를 하는 입장에서 겪어보았던 경험까지. 그야말로 장강명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프로젝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내부자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장강명 작가는 삼성그룹 입사시험에 합격해 건설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후 동아일보 기자로 11년간 일하며 이달의 기자상, 관훈언론상, 씨티대한민국언론인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문학공모전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겨레문학상, 수림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 오늘의작가상, 문학동네작가상 등을 받았다. 이쯤 되면 수상 머신이라고 할 수 있을 듯. 


문학공모전을 분석하기 위해 영화판의 구조, 사법시험과 로스쿨을 둘러싼 공방, 노동시장에서의 공채제도를 함께 다루면서 우리사회에서 ‘간판’으로 작동되는 것들이 가지는 힘에 대해 고찰한다. 그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힘’이다. 우리는 사람을 간판으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겉으로 말하지만 그 간판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그 정답을 따르는 이는 많지 않다. 한국인 절대 다수는, 마음속으로는 간판에 휘둘린다고 나는 본다. 우리 대부분은 그 간판들의 위상 변화에 극히 예민하다. 자신이 달고 있는 간판의 가치가 어느 정도나 나가는지에 신경 쓴다. 다들 그렇게 음흉해지고 위선자가 되어 가는 듯 하다”(p.294)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방법은 과연 뭘까? 저자는 간판의 본질적인 힘을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판의 힘은 정보부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모험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지도를 그려 제공’하자는 작가의 제안은 어찌 보면 우리 사회 전체의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을 할 것이다. 데이터가 모이기 위해 공동체는 필수적이다. 이렇게 모인 다수의 노력은 문예운동, 나아가 공동체 운동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작가의 주장은 과연 유효할까. 조선시대 과거제도 때부터 공고히 다져진 공채라는 시스템, 그리고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간판. 한번 획득한 그 신비로운 권위는 반영구적으로 유지되지 않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이런 상황이 당연하다고 여겨왔다.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강명 작가는 그 높은 성의 문을 안에서 밖으로 열어 보여준다. 변화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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