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가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거의 절반만 믿는다. 물론 대개의 경우는 시간이 다가오며 지워지거나 흐려지거나 잊혀지거나 잊은 척 하고 살 수 있게 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으니까. 어떤 것들은 시간을 통과해도 여전히 선뜩하고, 심지어 시간의 앞에 굴복하며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아마 이것은 후자겠지.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려도 없어지지도 없던 일로 할 수도 없는 척 할 수도 없겠군. 말로 하는 순간 엄청난 무게감에 휘청거린다. 언제나 이렇듯 진실을 알아버린 후에는 달의 이면을 몰래 들여다 본 사람처럼 외로워진다. 손잡이 없는 문 앞에 서서 하릴없이 손톱을 세우며 문을 미는 것처럼, 절박해진다. 

 

 

누군가를 많이 좋아한다는 건 더 이상 담을 곳이 없을만큼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싫어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상대를 이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겨놓고도 기쁘지 않은 것, 그러니까 약점이 된다는 게 아닐까.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챙겨본 것은 이번에 S본부에서 하고 있는 뿐이고 그 외 <위대한 탄생>이니 <슈퍼스타>등은 지나치다 몇 번 봤을 뿐이지만). 심사위원으로 나오는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심사곡의 원작자(가수)를 따라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만의 스타일로 해석하라고. 어떻게? 창조의 기본은 모방이 아닌가. 특별한 재능을 지닌 몇몇을 제외하고 '자기 스타일'을 아는 참가자가 얼마나 될까. 가수처럼 부르면 아마추어의 풋풋함이 사라졌다고 하고, 아마추어처럼 부르면 프로페셔널함이 부족하다고 한다. 당연하다. 그들은 프로가 아니니까. 그러니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아닌가. 가수를 찾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가수가 될 수 있는 원석을 찾는 거니까. 성대를 조이지 말고 열린 음을 내고 뒤통수에서부터 소리를 끌어내야 한다...... 무슨 말인가. 나만 못 알아듣는건가. 나보다 훨씬 어린 참가자들, 아마추어들은 이런 설명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은 가능성을 보겠다고 말하지만 실은 가수에 가까운 이를 찾는 게 아닐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가장 의아한 건 진심과 감동을 제창하고 테크닉과 발성과 성량을 강조하면서. 그들 자신은 혹은 그들이 키워낸 가수들은 얼마나 가사를 곱씹으며 진심을 노래하면서도 프로다운지,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가수들이 그것을 지키면서 자격있는 '가수'인지 가끔 TV를 보며 묻고 싶다.

 

 

 

책을 읽고 싶다. 잡고 있는 것만으로는 읽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책. 참을 수 없어 만원버스에서도 읽어버리게 되는 책. 길을 걸으며 읽다가 약속장소를 지나치고 가로수에 이마를 박게 되는 책. 읽다 보니 추위도 더위도 생각나지 않고 시간은 해의 각도를 조정하기 위해 자세를 바꿀 때 인식하고, 정신을 차리니 이미 새벽도 반쯤 지나가버릴 수 있게 만드는 책.

 

그 중에서도. 『테레즈 라캥』처럼 차갑게 끓거나 슈테판 츠바이크의 『연민』처럼 거의 핥듯이 노려보듯이 심리묘사를 하거나『금각사』처럼 데일 것처럼 날카롭거나 포크너의『팔월의 빛』처럼 마음을 쑥 밀고 들어오거나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처럼 등골이 오싹해지거나 이사카 고타로의『골든 슬럼버』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잡게 되는 책. 

 

책이 나를 각성하게 하는 것과 나를 각성하게 하기 위해 책을 찾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인데. 허무와 권태는 불성실의 다른 말일 뿐임을 아는데. 실은 어떤 책을 읽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뭘 해도 멍한 이 상태가 문제란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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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나는 사람들, 특히 어른들은 예쁘다고 하지만(살면서 족히 백 번은 들어보지 않았을까) 전학을 자주 다녀도 아이들이 쉽게 기억하던, 새학기가 되면 출석부를 쭈욱 훑으며 선생님이 가장 먼저 부르던 이름 중 하나인, 병원 같은데선 늘 주목받게 되던 내 이름. 지금은 더 특이한 이름도 많지만, 어릴 땐 이조차 싫었다. 언니와 동생은 평범한 이름인데! 라고 생각한 적도 여러번.

 

어른이 되서 여전히 이름에 얽매여있다고 말하긴 그렇지만 지금도 누군가의 이름을 듣고 "이름이 예쁘네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 걸 보면 지금도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책의 고골처럼, 고골리와는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싫어한다는- 같은 이유로 개명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학교에서 남자애들이 놀린다고 집에 와서 한참 씩씩대고 있으니(울먹이기보다는 씩씩대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 그렇게 싫으면 이름을 바꿔도 된다고 하셨다(그전에는 늘 안된다고만 하셨는데 이런 일이 잦으니까 그러셨던 것이 아닐까). 아직 어리니까, 다 커서 바꾸는 것보다 지금이 차라리 나을 거라고. 생각해보라고.

 

당연히 신이 났다. 그날부터 틈이 날 때마다 이 이름, 저 이름을 비교해보며 상상했다. 지나치게 여성스럽거나 어린 느낌만 나는 건 싫고 예쁜 글씨를 가진 이름, 누군가 나를 부를 때 풀잎같은 느낌이 드는 이름, 성(姓)에 어울리는 이름. 세상에 그렇게나 많은 이름이 있다는 것에 한 번, 예쁜 이름이 많다는 것도 한 번, 그 중에 내 이름은 없었다는 생각에 또 한 번. 그렇게 놀랐다.

 

그래서 어떤 이름으로 바꿨냐면 -예상할 수 있듯- 바꾸지 않았다. 바꿨다면 아마 이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겠지.

 

세상에는 수많은 이름이 있고, 수많은 예쁜 이름이 있고, 수많은 예쁘고 갖고 싶은 이름이 있지만 그 중에 내 것은 없었다. 어떤 이름도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어떤 이름도 나를 부르는 것 같지 않았으며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풀잎같지 않았다. 어리다고는 해도 이미 그 이름으로 몇 년이나 살았기 때문이야, 라고 분해도 별 수 없었다. 지금도 가끔씩 저런 이름이었다면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내 이름을 저 이름으로 바꾸고 싶다, 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몇 년을 그 이름으로 살아왔기에 그 이름에 걸맞는 인격과 외모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얼굴이 사람을 만들듯 이름도 (대개) 사람을 다듬는다. 이름 예쁘다는 말보다는 이제는 가끔 이름이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는다. 내 이름이니까 당연한 거 아냐? 싶다가도 만족스러운 고양이처럼 눈가를 살며시 접고 쑥스럽게 웃는다. 이름이 나를 방패처럼 지키고 칼처럼 다듬었구나. 이제 그 이름이 내가 되었다는 생각에, 꽤 좋은 말이구나.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의 고골리가 언제나 고골리였다면. 그의 삶은 달랐을까. 그가 이민2세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튀는 외모를 갖고 그 외모마저 어울리지 않는 제3의 것과 같은 이름을 가졌기에. 그의 삶은 니킬과 고골리의 중간에 머무르고 말았을까. 니킬로 만난 여자와 고골리로 만난 여자. 그에겐 얼마만큼 어떻게 달랐을까. 예컨대 실명으로 불리는 나와 온라인의 닉네임으로 부르는 나는 어떤가. 둘 사이의 간극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차이일까. 접촉한 공간의 차이일까. 아니면 이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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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 문태준, 가재미

 

지난 달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죽음은 이렇게나 찰나인데 삶은 얼마나 버거운지. 죽음을 이르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두렵고, 죽음보다 삶이 훨씬 더 긴 백겁의 비단처럼 느껴진다.

 

37kg까지 빠져버린 안으면 바스러질 것 같은 몸은 마치 누군가가 호스를 연결 해 조금씩 숨을 빼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피도 질량도 심지어 공기안에 밀도조차 사라져가는 흐린 안개같은 존재감. 인지도 인식도 잊은 채 허공을 응시하는 눈빛, 세월을 깎아새기기라도 한 듯 피부에 지표를 만들어낸 주름, 핏줄이 터진 손등, 앙상하고 메마른 손가락, 신기하게도 따뜻했던 손과 부드러운 발바닥, 바닥을 적시던 뜨거워보이던 검붉은 피. 그런 것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나지 않을까. 삼베 옷이 입혀지고 재가 되어 나오길 기다리던 그 기다림도 정말 잊혀지는걸까. 홀로 병실의 침묵 속에 앉아 이 詩를 떠올리고 찰나도, 잊게 될까.

 

 

 

 

 

 

 



 
 
2012-02-09 07:52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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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9 1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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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9 19: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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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9 2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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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진 2012-02-09 01:21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샤이닝님!
그동안 무언가 허전하다 했더니 바로 샤이닝님의 프로필사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였군요.
언제 읽어도 샤이닝님의 잡담글은 편안해요.
글씨체부터 문단 나눔까지 하나하나 제 날들숨과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어떤 책에서는 이렇게 읽히는 것이 자신의 문체와 맞는다는 증거라던데 샤이닝님의 문체는 저와는 달리 너무 고급스러워서 이 작가의 말은 믿지 않으렵니다 ㅎㅎ
아무리 주위에서 힘든일이 일어나도 샤이닝님은 언제나 꿋꿋히 힘내십시오!
그럼, 안녕히 주무셔요 :)

Shining 2012-02-09 10:30   URL
어휴, 소이진님은 정말 앞날이 창창한, 그래서 기대되면서도 무서운 기대주인거 아세요?
예쁜 마음씨부터 넉넉한 칭찬과 배려까지. 절로 쓰다듬해주고 싶어져요(후훗, 누나 마음).

고급스럽다니; 과한 칭찬이어요; 앗, 그 작가의 말을 믿으세요~ 그렇다면 저와 소이진님의 문체가 맞는다는거니까 전 굉장히 기쁜걸요^^

이렇게 응원해주시는데 당연히 힘내야죠. 소이진님, 좋은 하루 보내요 :-)

2012-02-12 21:02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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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3 1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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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5 2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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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6 1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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