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의 피크닉 스트루가츠키 형제 걸작선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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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르가츠키 형제의 작품으론 《세상이 끝날때까지 아직 10억년》을 가장 먼저 접했다. 《노변의 피크닉》과 《세상이 끝날때까지 아직 10억년》은 각각 타르코프스키와 소쿠로프라는 걸출한 러시아 거장 영화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만큼 스트르가츠키 형제의 작품이 SF적으로도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도

《세상이 끝날때까지 아직 10억년》의 경우 원작을 먼저 접한뒤 영화 「일식의 날」(1988)을 보았고

《노변의 피크닉》은 반대로 「스토커」(1979)를 본 뒤 원작을 보게 되었다.


「일식의 날」을 봤을 때의 황망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상이 끝날때까지 아직 10억년》을 너무 감명깊게 읽어서인지 찌르는 듯한 햇빛과 숨막히는 더위로 가득찬 레닌그라드의 아파트와 등장인물들의 생김새까지 제멋대로 상상하며 두근두근 영화관에 들어섰는데, 웬걸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잘생긴 청년이 총질을 하는 흑백 영화가(...?!) 내 앞에서 상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배경과 등장인물 설정에 변화가 있긴 했지만, 원작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담은 수작이었다. 다만, 원작을 너무 인상깊게 봐서 기대하는 바가 많기도 했고 영화화된 소설을 본 경험이 별로 없다보니, 그 충격의 여파로 이 영화는 여전히 내게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남아있다. 


「스토커」와 《노변의 피크닉》또한 전적으로 같은 내용이 아니고 등장인물도 다르다. 하지만 영화를 본 뒤 소설을 읽었을 때 위와 같은 커다란 괴리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영화에서 느껴지는 색감이나 음울하고 어딘가 축축한 분위기가 소설과 일맥상통했기 때문인 듯 하다. 덕분에 소설을 읽는 데 있어 배경이나 인물을 상상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다만, 영화는 시간제약상 거의 등장인물들이 구역에서 삽질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정적인 느낌이 강한 반면, 원작 소설의 경우 구역 내부 뿐 아니라 구역이 생긴 지역인 허몬트 주의 변화상과 주변 인물들. 식당, 호텔, 연구소 등 다양한 배경과 인간군상이 나오기 때문에 더욱 역동적이며 생생한 느낌을 준다. 


작품속 배경이 되는 어느 도시에 외계인들이 다녀간 "구역"이 생긴다. 정부는 구역을 외부로부터 격리하고 과학자와 군인을 동원하여 구역과 구역에서 발생하는 현상들과 남겨진 물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 하지만 세상사 다 그러하듯 몰래 구역에 잠입해 그곳의 물건들을 빼돌려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그들은 "스토커"라 불린다.


소설은 리처드 누넌이라는 다른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서술된 3번째 챕터를 제외하면, 걸출한 스토커인 레드릭 슈하트의 인생을 배경으로 흘러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23세 독신 / 28세 기혼 / 31세 3개 챕터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레드릭 슈하트, 23세 독신 챕터에서 슈하트는 러시아인 과학자 키릴의 선처로 인해 불법적인 암거래에 손을 떼고 연구소에서 공식적으로 구역의 물건들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키릴과 다른 과학자와 구역에 들어갔다가 키릴이 원인을 알 수 없이 죽고말고 슈하트는 연구소에서 나와 다시 "스토커"로서 살아가게 된다.


레드릭 슈하트, 28세 기혼 챕터에서는 다시 "스토커"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슈하트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랑하는 여인(구타)과 결혼하고 아이를 갖게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구역을 드나들며 물건을 조직에게 팔아넘긴다. 슈하트는 구역의 여파로 가끔씩 시지각에 문제를 일으키며, 구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온몸이 털에 뒤덮인 원숭이 같은 몰골을 하고 있다.


리처드 H. 누넌, 51세 챕터에서는 연구소에서 일하는 리처드 누넌의 시각을 빌어 구역의 영향으로 인해 고통받는 허몬트 주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누넌과 과학자와의 대화를 통해 구역이 생긴 이유와 구역에 대한 인간의 이해 정도(?)를 암시한다.


레드릭 슈하트, 31세 챕터에서 슈하트는 구역의 가장 값진 물건인 금빛구체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마침내 금빛구체와 대면한다.


아무래도 리처드 H. 누넌, 51세 챕터와 레드릭 슈하트, 31세 챕터가 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누넌 챕터에서 우리는 지구와 외계인 그리고 타자와의 근원적 소통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구역에서 가져온 물체들을 연구한 성과로 '바로 그'나 '검은 물방울' 등 인류 생활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물건들을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물체들의 과학적 원리는 인간 경험세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고 그것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다. 과학자는 우리가 현미경으로 못을 박고있는 꼴 일지도 모른다며 자조한다. 또한 우리가 정말 이성적인 존재인지에 대해 의심하며, 외계인들에겐 지구의 방문이 단지 노변에서의 피크닉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제시한다.

레드릭 슈하트, 31세 챕터에서 슈하트는 늙고 교활한 스토커 대머리수리의 아들 아서를 데리고 구역에 간다. 아서를 이용해 금빛구체에 다가가기 위해서이다. 전설에 따르면 금빛구체는 마음 속 깊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하지만 목적대로 금빛구체 앞에 선 슈하트는 흔들린다. 슈하트는 자기 자신이 대체 뭘 원하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이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다. 마지막 대목에서 슈하트는 자신의 실존을 무기로 금빛구체앞에 서서 절규한다.

"나는 짐승이다. 당신이 보다시피, 나는 말을 모르고, 나에게 말을 가르치지 않았고, 나는 생각할 줄 모르고, 더러운 놈들이 나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이 실제로 그렇게 …… 대단하고 전지전능 하다면 …… 해결하란 말이다!  내 영혼을 들여다보라. 거기에는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을 거라는 걸 난 안다. 그래야만 한다. 나는 내 영혼을 그 누구에게도 팔아넘긴 적이 없으니까! 그건 내 것, 한 인간의 것이다! 당신 스스로 내 안에서 내 소원을 꺼내 보라. 내가 나쁜 것을 원할 리는 없지 않은가……! 이 모든 게 아무래도 좋지만, 그 녀석이 했던 말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으니 - 모두에게 행복을 드려요! 공짜로 드려요! 기분 상한 채로 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331p.)"


누넌에서 슈하트로 이어지는 챕터의 흐름이 내겐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불가해한 외계인과 구역에 대한 누넌과 과학자의 대담이후 이어지는 슈하트와 금빛 구체의 대면은, 타자에 대한 이해에 앞서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 반문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슈하트는 금빛구체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대머리수리, 누넌, 키릴, 구타, 몽키, 맥그래블대위 ... 그들을 모두 지우고 자신에 집중하기로, 진정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하려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지워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저 평범하고 헐벗은 땅만 남을 것이다. (330p.)"

상상으로는 뭐든 가능하다. 실제가 상상인 경우는 절대 없고. (259p.)

맙소사. 대체 이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우리에게 침투하기 위해 또 무슨 짓을 할 것인가? 이걸로도 부족하단 말인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수십억 하고도 수십억명은 아무것도 모르며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알게 되더라고 10분쯤 두려움에 떨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리란 걸 그는 알고 있었다. (270-271p.)

"나는 짐승이다. 당신이 보다시피, 나는 말을 모르고, 나에게 말을 가르치지 않았고, 나는 생각할 줄 모르고, 더러운 놈들이 나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이 실제로 그렇게 …… 대단하고 전지전능 하다면 …… 해결하란 말이다! 내 영혼을 들여다보라. 거기에는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을 거라는 걸 난 안다. 그래야만 한다. 나는 내 영혼을 그 누구에게도 팔아넘긴 적이 없으니까! 그건 내 것, 한 인간의 것이다! 당신 스스로 내 안에서 내 소원을 꺼내 보라. 내가 나쁜 것을 원할 리는 없지 않은가……! 이 모든 게 아무래도 좋지만, 그 녀석이 했던 말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으니 - 모두에게 행복을 드려요! 공짜로 드려요! 기분 상한 채로 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3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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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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