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룸
김의경 지음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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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혹시 아이 낳고 싶어? 아까 아기 침대를 유심히 보길래."
남편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단호히 말했다.
"아니, 예전엔 낳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나랑 닮은 아이가 나랑 비슷하게 사는 거 상상만 해도 싫어."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그의 팔을 좀 더 힘주어 잡았다. ─ 「세븐 어 클락」 중

 

 

 

 

 

미진도, 사라도 그리고 나도 기어이 끝을 보고 무너져 내려야만 이 시간을 지나갈 수 있는 건가. 끝이 보일 때까지 견뎌 낼 수 있을까. 끝이란 게 있긴 한 걸까. 아니, 어딘가에 발을 담그긴 한 걸까. 간절히 하고 싶은 일도, 진실한 사랑도 찾지 못했다. 나의 청춘은 지루하고 애매하기만 했다. 특별히 일어난 일도 없는데 나는 때때로 아프고 지겨웠다. 이럴 바엔 자고 일어나면 스무 살쯤 늙어 버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 「이케아 소파 바꾸기」 중

 

 

슬픔의 재료로 사용해 평생 우울하게 살 것인가, 더 큰 열정의 조미료로 사용할 것인가는 내 마음이었다. 이제 죽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영순의 머리가 호두 껍데기가 깨지는 것처럼 단번에 열리는 느낌이었다.  ─ 「계약 동거」 중 

 


 

 

 

김의경 작가는 『쇼룸』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20대 청년부터 50대의 노년까지 '이케아' 혹은 '다이소'라는 특정 공간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모양의 '지금'을 보여준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이케아'에 들어선 수많은 사람들 중 무작위로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본다면 아마 이 책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쇼룸』이라는 소설집에는 8개의 단편 소설이 담겨있고, 그들은 모두 '이케아'라는 공간, 그 중에서도 60개의 쇼룸이라는 공간을 통해 서로 교차해 스쳐지나간다. 그것은 이케아나 다이소라는 비교적 '저렴한' 물건을 소비하는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아주 평범하고 특별하지 않은 당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20-30대가 직면한 현실은 스스로는 '집'을 구할 수 없고(빈집),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소위 재산을 물려받을 것이 있는 혜택받은 자들의 권리(세븐 어 클락)이며, 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로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쇼케이스) 세대이다. 한 때 유행처럼 번지던 삼포 세대, 육포 세대라는 자조적인 말은 이제 너무 익숙한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소비는 무척 현실적이다. 연애, 결혼, 출산, 생활비, 월세 등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급급하여 미래나 노후는 준비할 생각조차 할 수 없고, 그래서 아들에게 물려줄 집은 커녕 자신이 살 곳조차 없어(빈집) 서글플 뿐이다. 그런 우리가 어떠한 '소비'를 한다는 것은 기껏해야 이케아의 조립식 물건으로 조명이나 가장 저렴한 90,000원짜리 '크로바로프 소파'를 구매(이케아 소파 바꾸기)하거나, 다이소에서 화초키우기나 애완동물의 옷을 사며 소소한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정도의 소비도 수월하지 않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 정도의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자 하지만, 사실 그 행위 자체가 점점 더 스스로를 고단하게 만든다.

 

우리는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배웠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사실 '돈'이 대부분인 삶을 살고 있다. 안그러고 싶지만 눈 앞에 닥친 학자금 대출에, 생활비에, 월세에 메여서 여유있게 자신의 미래를 그릴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사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고를 수 있는 보기 중에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이다. 열정으로 청춘으로 도전하고 모험해보는 것은 이제 사치일 뿐이다. 당장 '노동'으로 먹고 살아야하는 현실이 놓여있다.(심지어 이것도 여의치 않다)

 

특히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회에서 소위 하위층이라 불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용감하게 뛰어든 사업이 부도를 맞은 부부, 대기업 계약직으로 일하지만 그나마 재계약을 하지 못하거나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 가진 것이 없어 연인과 헤어지는 사람들. 이제 '소비'는 바로 능력과 지위로 직결된다. 당장 백화점에서 가방을 사는 사람과 다이소에서 물건을 사는 계급으로 나뉘며, 이 계급은 세습되었고 세습되어질 것이다. 그런 인물들이 원하는 것은 '집' 또는 '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케아에 예쁘게 꾸며진 쇼룸을 보면서 가지고 싶은 욕망을 느끼고, 그 욕망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좌절하고 불안해한다. 그래서 『쇼룸』에서 '방'이라는 공간, 이케아의 쇼룸이라는 공간은 그들의 욕망이자 좌절의 공간이 된다. 

 

『쇼룸』의 대부분의 작품에는 '아이'문제가 등장한다. 수 년을 동거한 연인에게도, 7년을 함께 산 부부에게도 '아이'를 낳는 것은 당연한 행위가 아니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고, 키우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다. 지금 현실에서는 '나'하나를 먹이는 것도 쉽지 않아 누군가를 책임질 여력이 없는 것이다. 나도 친구들과 '이 고통은 우리 대에서 끝내자'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이 고단한 삶을 물려주기에 지금은 너무 고단하고 희망없지 않은가.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이라는 말처럼 그나마 주인공들은 현실 가능한 범위에서 자신의 삶에 윤활제가 될 수 있는 소비를 택하여 작은 만족을 얻는다. 다이소를 통해, 이케아를 통해.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방을 보며 위안하고, 조금 더 늘어난 물건들을 통해 존재를 확인할 뿐이다.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이 이야기가 낯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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