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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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할 때 사람들이 많이 취하는 방법들이 있다. 비빔밥 먹기, 단 것 먹기, 음악 듣기, 영화보기, (혼자)술 마시기 그리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게 잠들어 버리기. 대체적으로 이 방법들은 나름대로의 생리학적, 심리학적, 과학적 근거가 있는 유용한 방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일시적인 방편일 뿐 근본적인 상처나 깊은 상처에는 가 닿지 않고 오히려 상황을 회피하는 방어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가장 좋은 방법으로 사람을 만나 어울리고 대화할 것을 권한다. 내 마음을 털어 놓고, 때론 위로 받으면서 다시 개운해질 힘을 얻는 것이다. 만일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을 친구가 없거나 굳이 혼자 해결하고 싶다면 그림을 감상하는 일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이하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을 읽어 보니 가능할 것 같다. 일단 무언가를 먹어서 생리적인 도움을 얻는 것보다는 훨씬 고차원적이고, 음악이나 영화처럼 잠시 머물렀다 떠나지 않는다는 면에서 지속적이고, 때도 아닌데 잠들어 버려 생활리듬을 망가뜨리는 것보다 뒤탈도 없다. 그런데 도대체 그림을 어떻게 바라봐야 치유가 될까? 그림과 소통하며 마음을 달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바로 이 책 <영혼의 미술관>이 말해줄 것이다.

 

보통에 따르면 미술에는 7가지 기능이 있다고 한다. 기억을 보관하는 기능, 희망을 일깨우는 기능, 자기를 이해하고 성장하는 기능 등이 바로 그것이다. 즉, 우리는 미술작품을 통해 나쁜 기억을 교정하고 희망을 조달 받으며 내면의 균형감각을 일깨우고 자기를 이해하고 경험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감각을 일깨운다. 마치 만병통치약 같아 믿기지 않겠지만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 놀라운 일에 대해 조금씩 이해해 나갈 수 있다.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그림의 한 가지 예로 보통은 마티스의 <춤 II>를 내민다. 대체적으로 '마티스'하면 야수파가 등장하고 색채와 간결한 형태 등을 논하지만 치유적 관점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이 그림을 통해 어떻게 희망을 건져 올렸는지 말할 뿐이다.

 

마티스의 그림에서 춤추는 사람들은 이 행성이 고민거리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지만, 우리와 현실의 관계가 불완전하고 껄끄러우며 그런 관계가 일상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태도는 우리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그들은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되는 거절과 굴욕에 대처할 줄 아는 우리 자신의 유쾌하고 무사태평한 능력을 일깨워준다.(p.16)

 

성장에 관한 설명도 재미있다. 여기서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필리페 4세의 가족)>와 파카소의 <라스 메니나스>를 비교해 보여주었는데, 고전풍의 귀족 그림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보통은 잘난척하는 귀족들(오늘날로 치면 탐욕스런 부자쯤이라고 생각해 두자)에 대한 우리들의 거부감을 피카소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말한다. 피카소는 그 그림을 대할 때 유희적인 마음으로 기하학적 생명력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유지하면서도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그려낸 것이다. 성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눈 앞에 거부하고 싶은 어떤 것들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좀 더 성숙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영혼의 미술관>은 미술을 해석하는 관점 중 '치유적 해석'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그리고 이 해석법은 '어떤 예술작품이 좋거나 나쁘다고 말할 때 우리의 깊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개략적으로 보여준'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망각, 존엄의 추구, 사랑에 대한 갈망 등의 약점을 얼마나 보완해 주느냐에 따라 그 예술작품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통이 좋은 작품으로 생각하는 예술작품은 우리의 슬픔에 공명하고 우리의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예전에는 기독교화나 예수를 그린 그림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그림들은 고통의 신비가 작용해 결국 고통을 견디는 힘의 근원이 된다고 한다. 오늘날 이런 그림의 대표적인 예로는 제시카 토드 하퍼의 <부엌에서의 고뇌>를 들고 있다.

 

...우리의 내적 슬픔에 맞춰 예술을 의도적이고  체계적으로 이용하려는 노력이다. 이 노력은 카톨릭교회가 얀 반에이크에게 정해준 신학적 의제 못지 않게,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고 풍부한 심리적 의제와 연결될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하는 본질적인 슬픔을 몇 가지만 생각해 보라. 사랑을 찾지 못하는 상태, 돈을 둘러싼 공포, 불행한 가족 관계, 직장에서의 좌절, 청소년기의 막막함, 중년의 회한, 자신의 죽음과 꺾여버린 꿈 앞에서의 고뇌.(p.79)

 

 

 

본격적으로 우리의 영혼 앞에 가 닿으면 사랑, 자연, 돈, 정치라는 주제가 나타난다. 흔히 '사랑'에 관한 미술이라고 하면 몇 가지 장면들이 연상되는데, 의외로 다양한 이야기와 그림들이 펼쳐진다. 사랑 속의 여러가지 소주제쯤에 해당하는 것들 중 '관능'을 보면 커다란 수영장이 있는 주택 사진이 등장한다. 무엇을 상상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육체적 매력과 관련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격 없이 나눴던 스킨십, 아름다운 촉감의 추억, 이런 것들이 물결에 반영되어 상기될 것이다. '자연'에서는 우리를 둘러싼 대자연을 다루기도 하지만 우리의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늙은 노부부의 초상화를 보며 가을을 연상하고, 잎이 떨어지고 앙상해진 나무를 보며 우리의 죽음을 명상해 보기도 한다.

 

 

 

'돈'이라는 주제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과 향락적인 취향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위풍당당한 건축들과 육중한 동상, 값비싼 미술작품들의 이미지가 행진하는 가운데 갑자기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들이 등장한다. 그 중 하나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십자가 책형의 기본 형상을 위한 세 개의 습작>이다. 여기서 보통은 순간의 통찰 하나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시키기까지 화가가 겪어야 했던 끈기와 인내의 시간들에 대해 말한다. 사악한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란 '어려움이란 정상적이라는 것, 우리는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에게서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화가들로부터 배우라는 뜻이다. '정치'는 개인적인 영역을 다뤘던 앞의 세 가지 주제와는 달리 공적인 영역을 다룬다. 부패한 정치상과 함께 이것을 감싸 안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전한다. 그리고 그림들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이상적인 장면들에 대해서도 보여준다.

 

 

 

이 책의 원제는 Art as Therapy이다. 테라피(therapy)라고 하니 요즘 유행하는 피부 테라피가 떠오른다. 밝고 화사하고 젊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받는 피부 테라피는 우리에게 무슨 행복을 가져다 줄까? 기껏해야 몇 개월 동안 젊어졌다, 예뻐졌다는 소리를 듣는 것뿐이다. 하지만 영혼의 테라피는 남들은 눈치챌 수 없고 남들에게 자랑할 수도 없겠지만 광폭한 세상에서 진정으로 밝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다양한 영혼의 테라피 가운데 미술을 통한 테라피도 있다. 미술을 바라보며 고매한 취향과 심미안을 가꾸는 것은 보통이 제안하는 영혼의 테라피가 아니다. 또한 미술의 목표도 언제나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는 테라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습지만 보통은 (미술을 포함한)'예술'에 대한 진정한 열망은 그 필요성을 줄이는 데 있다'고 말한다. 언제나 같은 실수와 좌절을 반복하며 예술로 위안을 삼지는 말라는 의미이다. 마지막에 이 한 마디를 듣는 순간, 진정 영혼이 맑게 깨이는 것 같았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작품이 조금 덜 필요해지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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