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러스트 1 오늘의 일러스트 1
김윤경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빵 몇 개를 사오면서 버스에 앉아 빵봉투의 토끼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밝은 다홍색의 옷에 얌전하고 귀여운 토끼는 보면 볼수록 눈에 익은 모습이다. 이 토끼를 어디서 봤지? 토끼는 시간에 쫓기는 흰토끼도 아니고, 나 역시 앨리스가 아니다. 어디서 본 듯한 토끼의 출처를 굳이 집요하게 따라갈 필요는 없는데 애써 기억을 더듬는다. 그러다가 생각났다. 바로 <오늘의 일러스트>에 실렸던 일러스트레이터 경연미의 토끼다(빙고!).

 

미술학도들이 배우는 교재에는 일러스트레이션(이하 일러스트)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일러스트는 생활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종의 시각예술이다. 일러스트 작품들은 전시회를 통해 접할수도 있고 때론 화집으로 묶여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상업적 디자인과 결합되어 생활 곳곳에 스미게 된다. 어떤 면에서 일러스트는 순수예술을 표방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철저히 상업적이 될 수있다. 춤으로 치면 재즈댄스와 같다고 해야할까? 발레나 현대무용같은 순수예술의 면모를 지니면서도 주로 뮤지컬이나 방송댄스의 일부로 접하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정의나 분류가 어떻든 간에 일러스트는 늘 우리 곁에서 사소한 기쁨과 미적 쾌감을 선사하는 생활의 윤활유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니 일상 중에 눈에 익은 일러스트를 만나면 친구처럼 반가움이 느껴지는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늘의 일러스트>에 실린 작품들을 보면 눈에 익은 그림들이 제법 있다. 대부분 상업적인 일러스트로 잡지광고, 문구류, 패션, 포스터, 책표지 등에서 볼 수 있었던 그림들이다. 이렇게 눈에 익은 작품들이 많다는 것은 일러스트 작가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일러스트의 수요가 많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일러스트를 공부하면 화가와 마찬가지로 막연한 아티스트의 외길을 걸어야 했는데 이제는 어느덧 대중들에게도 주목받고 급격히 활성화되는 분야로 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일러스트 작가는 명품 패션브랜드나 심지어 고급 자동차에까지 자신의 작품을 반영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얻기도 한다. 일러스트가 대중의 예술에서 명품의 예술 영역으로 진입한 것에 대해 분분한 의견이 있겠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많은 그만큼 일러스트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상업적으로 주가를 올리는 일러스트들도 있는 반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위주로 작업하는 작가들도 많다. 이들은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 사회적 이슈에 대한 비판, 환경 보호, 현대인의 자화상에 대한 고발 등 다양한 주제를 우리들에게 소구하고 있는데, 일러스트가 이해하기 쉽고 친근한 그림이라는 점을 잘 활용해 그 가치를 십분 발휘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런 메시지 위주의 작품들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며 상업적 일러스트 못지않게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아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일깨운다.

 

 

 

한편 전형적인 일러스트라고 할 수 있는 화풍을 꾸준히 유지하며 아름답고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 작품들도 더욱 정교하고 세련되어졌다. 이런 류의 작품들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사랑받는 것 같다.

 

 

 

오늘날의 일러스트가 가진 동향 중에서 많이 두드러지는 것은 어린이의 그림과 같은 순진하고 단순한 그림체이다. 이런 그림체는 기성 작가든 대학생이든 너무 많이 활용해서 한편으론 식상하기도 하지만 유독 노석미의 작품은 개성이 뚜렷한 가운데 다른 일러스트와 차별된다. 화가 김점선처럼 담대한 선 놀림과 명랑한 기운이 바로 이 작가의 작품에 눈길이 가는 이유인 것 같다. 다른 동향으로는 망원경으로 바라본 듯 커다란 스케일의 그림을 세밀하고 왁자지껄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인터넷이 발달하고 세계라는 광대한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이 이런 전지적 관점을 주목하게 한 것 같다(개인적 생각이지만). 그리고 섬세한 그로테스크도 돋보인다. 마치 이곤 쉴레의 그림처럼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진 얼굴들, 반항기 가득한 표정, 은밀히 배어있는 악마적인 느낌들은 젊은 층, 특히 20대를 타겟으로 한 상업적 일러스트에서 많이 등장한다.

 

 

 

세상은 넓고 일러스트의 작품은 많지만 그럼에도 콕 찝어 눈에 들어오는 작가가 있다. 모두 개성충만하고 상상력이 난무해서 어지러울지경인 가운데 갑자기 중심을 똑바로 세우고 정신차리게 하는 작품. 바로 일러스트레이터 노준구의 작품들이다. 건축 도면기법 중 하나인 엑소노메트릭과 유사한 방식으로 공간을 표현하는 것도 특이하지만 색감도 상당히 이국적이면서 개성적이고 어느 부류의 화풍에도 분류해 넣기 힘든 독창성이 돋보인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일러스트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 그 느낌이 참 좋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일러스트의 환경 디자인적 활용이다. 특히 명랑하고 친숙한 만화같은 이미지라면 거리의 풍경에 활기를 더하는데 무척 유용할 것 같다. 앞으로 우리 일러스트의 방향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노준구 작가와 같은 개성있는 작가, 그리고 사회와 환경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오늘의 일러스트>는 활발하게 활동중인 일러스트 작가들의 작품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점도 좋았지만 그들이 가진 생각을 꽤 섬세하게 담았다는 점에서도 칭찬할만 하다. 대부분 여러 아티스트들을 모아 작품집을 구성하면 그들이의 약력이 소개되고 의례적으로 인터뷰 내용이나 아티스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 혹은 작품에 대한 내용들이 실리곤 하는데 그림에 비해 훨씬 적은 지면을 할애하는 탓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내용은 그들의 세계를 한껏 보여줄 만큼 충분치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늘의 일러스트>는 얼마 안되는 지면에서도 그들이 가진 예술적 신념, 작업에 대한 열정, 작품에 관한 생각들의 요점을 매우 명확하게 잘 짚어내고 있어 더 흡족스럽다. 그리고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책을 많은 젊은이들이 읽었으면 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모습과 자신의 일에 대해 열정과 사랑을 다하는 모습 속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나갈 힘을 얻게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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