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기원 - 다윈의 딜레마
요제프 H. 라이히홀프 지음, 박종대 옮김 / 플래닛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수컷 공작이 부채같은 꼬리깃을 한껏 펼치고 녹색 바탕에 군청색과 하늘색, 갈색 그리고 옅은 연둣빛이 어우러진 신비스런 무늬를 자랑할 때 우리는 탄성을 지르고 옆 사람의 어깨를 치며 즐거워한다. 모든 자연이 그러하듯 공작의 꼬리깃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윈만큼은 이 꼬리깃을 바라보는 눈길이 석연치 않다. 몸을 가릴 만큼 크지만 위장술의 기능도 못하는 것이 비행할 때 사용하는 것도 아니면서 달릴 땐 오히려 버겁기까지 하니, 도대체 수컷 공작은 이런 무용지물의 사치품을 가지고도 어떻게 생태계의 적자(適者)로 살아남았단 말인가! 이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자연선택설'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이론의 완성도에도 흠집을 내는 골치덩어리 난제였다. 수컷 사슴의 뿔처럼 우아하고 버겁더라도 싸움에 도움이 된다면야 눈감아 줄 만 하지만 공작의 꼬리깃은 도대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다윈은 고심 끝에 '성선택'이라는 이론을 내놓았다. 비록 생존에 불리한 형질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형질이 번식에 유리할 경우 살아남고 개체수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등장한 성선택은 자연선택과 하나의 체제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후대 생물학자들(예를 들면 '사회선택'을 주장하는 메리 웨스트에버하드)이 있어 딜레마에 빠진 다윈을 위로해주기도 하지만 정작 다윈 자신은 딜레마를 끌어안은 채 두 이론을 별개의 체제로 보았다. 아마도 다윈에게 있어 성선택은 자연선택을 보완해 주는데 여전히 불충분한 이론이었나 보다.

 

이후 생물학자들은 다윈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한 연구와 논쟁을 거듭해왔다. 런어웨이 가설, 유전자모델,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핸디캡 이론' 등이 이에 해당되며 <미의 기원> 역시 같은 맥을 이어가는 성과물이다. 저자는 다윈이 한참 동안 바라다봤을 공작의 무리들을 보다 면밀히 관찰하며 쓸모없이 아름답기만 한 것들의 존재의 이유를 파헤쳐간다. 그리고 공작을 필두로 암컷과 수컷의 깃털이 모두 수수한 조류, 암컷은 수수하지만 수컷은 화려한 조류, 소리가 아름다운 조류, 뿔 달린 사슴, 춤추는 초파리 등 다양한 동물들의 구애 및 양육, 생활 습성을 대조하고 먹이, 열량소비, 배설물, 털갈이, 깃털의 성분까지 분석하면서 현대 과학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결과 수컷 공작의 아름다운 꼬리깃은 그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으며 수컷의 대사작용에도 꼭 필요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이 밝여졌다. 또한 공작들은 밀림의 주변부에 서식하기에 맹수들을 만날 기회가 극히 드물며, 혹여 만난다 해도 그들에겐 힘센 발톱이 있고, 버거운 꼬리는 여차하면 도마뱀처럼 떼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공작이 자연선택에 의해 생태계의 적자(適者)로 살아있음은 그리 특이한 예외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저자의 연구와 주장은 핸디캡을 가지고도 살아남았기에 능력과 건강이 증명된 우월한 개체라는 핸디캡 이론보다 훨씬 더 정교하며 타당한 설명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비록 공작을 비롯, 동물세계의 아름다움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인간세계에 동일하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인간이 가진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은 여타 동물들과는 분명 다르다. 비록 인간과 가장 유사한 눈(시각)을 가진 것이 조류라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근육 형태나 피부의 윤기, 얼굴의 좌우 대칭에 전적으로 연연하지 않으며 누군가가 홀딱 반한 이성이 내게도 같은 마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에 빠져들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는 매우 주관적인 관점으로 외모에 매혹되고, 동시에 외모 이외의 다른 요소가 작용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름다움과 직결된 성관계에 있어서도 동물들처럼 번식만이 유일한 목적이 아니다. 만일 건강한 배우자를 골라 적자(適者)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면 생리적인 효율을 위해 필요할 때만 성욕이 생기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영장류의 연구를 통해 설명해 낸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침팬지를 보면 성관계는 종족번식의 수단만이 아니라 암수간의 화목과 친밀감 유지를 위해 활용되며 이것이 집단의 단결과 안정에 기여한다. 즉, 짝짓기의 계절처럼 특정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인간의 성욕은 자손의 번식 외에 남녀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 미(美)는 예술에서의 그것을 제외한다 해도 다른 영장류를 포함한 동물들 이상으로 복잡하며, 이 복잡성은 놀랍게도 '환경에의 적응'으로부터가 아니라 '환경에서의 독립'으로부터 획득된다.

 

여기서 저자는 진화론을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는 수동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는 동시에 환경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능동적인 개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美)는 환경에 적응할 '필요'와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사이의 '여지'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도중에 생성되며,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그 귀한 것도 이렇게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힘과 자유의 바탕에서 성립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는 환경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는데, 이 중에서 인간이 가진 몫이 가장 크다. 그리고 인간은 커다란 자유를 활용해 복잡하고 다양한 형질들을 꾸준히 생성해 간다. 사실 우리가 외모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실상 '중간치(호감과 익숙함을 느끼는 비례의 범위)'에 어느 정도 가까우냐에 불과할 뿐, 수많은 형질들을 대표하는 미(美)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만일 진화상에서의 미(美)도 이렇게 하나의 이상적인 형질을 향해 수렴된다면 인간은 유전적 다양성이 제한되고, 면역 체계의 효력이 약화되어 파멸하고 말 것이다. 이처럼 자연인으로서의 미(美)가 치열한 생존의 부산물이지 결코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은 오늘날처럼 극도로 외모에 집착하는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작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간에 이르기까지 미(美)가 존재하는 이유를 밝힌 <미의 기원>은 자연선택과 성선택 간의 모순점을 해결해 주었으며 다윈의 진화론을 자유와 변화라는 능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도 제안했다. 또한 동물들에 대한 방대하고 치밀한 연구분석과 그것을 너머서는 의미의 해석 역시 사려깊고 탁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개성이라는 것이 단일한 미적 기준에서 이탈하여 건강히 살아남고자 하는 생명의 자유이자 의지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감동적이기도 했다. 그동안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약육강식이나 환경적응과 같은 단어만을 떠올렸다면 이제는 자유, 독립, 개성과 같은 단어들을 떠올려 보자. 환경과의 공백을 두고 그 공백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며 다양한 개성을 만들어가는 세상. 이것은 지금까지 진화론을 통해 그려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의 밑그림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의 유전자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을 경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으며 생명의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으므로, 그리고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도 철새에서 텃새로, 숲속 동물에서 도시 동물로 변화하며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미(美)를 탄생시킬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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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11-3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제가 좋아할 그런 책이네요!!!
일단 보관함에,,,저 아직도 레미제라블 읽고 있거든요,,ㅠㅠ

탄하 2012-11-30 20:34   좋아요 0 | URL
후후, 나비님(아니, 나비점장님^^)은 관심분야가 참 다양하셔서 좋아요.
대체적으로 과학분야는 별로 관심갖는 분이 드문 편인데...
이 책, 정말 괜찮더라구요. 첨엔 왜 이런 분석까지하나, 짜증내다가ㅡ.ㅡ;
중반 이후에 완전 감동했죠.

이번에 나온 레미제라블은 6권짜리던가..그렇더군요.
저는 아주 오래전 2권짜리로 봤는데, 그럼 원본으로 본 게 아닌가봐요.
에..고민되네요. 원본으로 다시 볼만큼 명작이잖아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