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꽤 뜸했다.
<미의 기원>을 다 읽으면 다른 책들도 내리 읽고 한꺼번에 글 쓴다고 벼르다가 그만 감기에 걸리고 만 것이다.

 

감기를 앓은지가 얼마나 됐더라?
보통 감기는 빠르면 1년 반, 대체적으로 2년 주기로 한번쯤 걸리는데
이번에는 3년 전 신종플루를 앓고 난 이후 처음이다.
(흑, 아직도 생생하다. 온 몸이 뻣뻣해지고 고열이 나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기억.
그리고 식구들과 격리돼 내 방에서 작은 상을 펴 놓고 혼자 밥먹었던 기억.
것두, 크리스마스에...ㅠ.ㅠ)


감기가 온다 싶을 땐 냉큼 오렌지 쥬스를 한 병을 마신다.
물론, 여기서 한 병이란 200ml가 아니고 1.5리터다.ㅡ.ㅡ;
예전에 이렇게 해서 감기를 초기에 잡은 이후 무슨 비법처럼 꼭 이렇게 한다.
헌데 이번에는 별로 소용도 없고, 결국 닷새동안 매일 1병, 총 5병을 마신 기록만 남겼다.

 

 

 

 

 

 

 

 

 

 

 

 

 

 

이번엔 5권의 책 이야기를 하자. 그동안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미의 기원>이다. 처음에는 새들의 짝짓기 방식과 몸무게, 깃털의 성분까지 등장해 이 이야기가 대체 어디까지 갈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후반부의 '미의 해석'이후부터는 점점 내용이 흥미로워지더니 마지막에는 개체의 존엄성,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변형의 의미까지 이어지면서 과학적 분석을 인문학적 사유로 확장해 매우 훌륭한 마무리를 보여주었다. 그 다음에 읽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해외 입양아의 이야기를 한 치의 진부함도 없이, '심연'과 '날개'로 풀어나갔다. 다만 읽는 내내 인칭의 변화가 좀 불편했는데, 이건 1인칭의 '나'가 교체됨으로 인한 혼동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가 너무 명확해서, 너무 환해서 그랬다. 좀 더 은근하거나 모호하거나 독자가 예측하지 못한 변화가 있었다면 더 큰 감동을 받았을 듯하다. 그리고 요즘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도 이전작인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었으므로 후속이 궁금해 펼쳤는데, '위로와 격려'를 표방하는 책들이 넘쳐나는 것이 문제지 딱히 이 책이 별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누구의 책이든 인생의 조언을 담고 있는 책들은 결과적으로 마찬가지 아닐까? 다 각자에게 맞는 조언이 있고, 실천과 어떻게 이어지는가의 문제이지 조언 자체가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주는 절대 정답은 아닐 것이다.

 

감기가 들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읽었다. 특히 이 중에서 <고독을 읽어버린 시간>은 감기가 가장 극성을 부릴 때 읽은 책인데, 곧 죽어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 아니라 침대에 누워 할 수 있는 것이 책 읽는 것 밖에 없어 그랬다. 그런데 이 두 권의 책 모두 (주제는 다르지만)느낌이 비슷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야기인데 학문적으로 분석했다고 해야하나? 도덕이 마비된 시장경제(<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나 SNS를 포함, 유행과 외형에 몰두하는 신세대(<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모두 현상에 대한 서술과 비판은 있는데 특별한 결론이 없다. 물론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읽다가 지루해져서 중간에 덮은 책이라 섣불리 '결론'이란 말하기 곤란하지만 각 편지마다 구체적인 매듭이 없어 보이니 그렇게 느껴진다. 감기약땜에 땀을 뻘뻘 흘리며 몽롱한 상태에서 읽어 그럴 수도 있으니까 일단 나중에 다 읽을 때까지 보류.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소개된 내용들은 무척 충격적이었고,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현상을 거대한 이론의 틀 안에서 해석하는 바우만의 지성은 놀라웠다.

 

 

 


 

 

 

 

 

 

 

 

 

 

바우만의 책을 중간에 덮으면서 다른 책을 뒤적여 봤다.
뭘 먼저 읽을까 고민하다가 세 권을 훑어 보았는데, 이런...다 맘에 든다.
정말 뭘 먼저 읽어야할지 본격적으로 고민되네.

 

먼저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은 푸른 하늘 한 조각과 구름을 만드는 내용에서부터 내 맘을 쏙 빼앗아 갔다. 그냥 '하늘은 왜 파랄까?'에 대해 간단히 과학적으로 답해도 다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인데, 이렇게 훌륭한 아이디어로 과학을 실제 경험하도록 해주니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시범 가운데 하나는 교실에서 한 조각의 '파란 하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등을 모두 끄고 칠판 가까운 천장에서 아주 밝은 백열등 하나만 비추도록 한다. 이 빛은 너무 넓게 퍼지지 않도록 잘 차단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 빛 속에서 담배 몇 개비를 피운다. 담배 연기 입자들은 레일리산란을 일으킬 정도로 미세하며 따라서 파란 빛이 가장 많이 산란되므로 학생들은 파란 연기를 보게 된다. 이어서 나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이하략)...(p.21)

한 단계 더 나아가면 하얀 구름을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어째서 같은 연기가 하얀 구름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해 준다.
결국, 푸른하늘과 흰 구름의 과학적 설명은 이 두 실험의 대조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힌트, 입담배와 속담배)

 

장 그르니에가 카뮈에게 권했다는 소설 <고통>은 분량이 길지 않아 빨리 읽어볼까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앞부분을 읽다보니 몇 군데 문장에서 매료되며 책 고르기에 갈등만 더해준다. 물론, 상을 당하고 아들밖에 남지 않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책은 그동안 참 궁금했던 <너무 다른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정서 유형을 6가지로 나누고 이것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분석하며, 테스트도 있고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내용도 있다. 게다가 저자가 오랫동안 연구했던 주제이니만큼 내용이 상당히 충실하다. 그런데 이 책과 관련해 몇 가지 더 욕심나는 책이 생겼다. 오늘 이 글을 쓰기 전 잠시 새 책들을 둘러봤더니 스티븐 핑커 등 16명의 석학들이 공저한 <마음의 과학>, 인간에 대해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마이클 가자니가의 <뇌로부터의 자유>가 눈에 띄고 만 것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당연히, 북카트로...


휴, 그나저나 어떤 책 부터 먼저 읽을지 아직까지 고민이다.
아...모르겠다. 오늘 밤에 그냥 손에 잡히는 것이 1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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