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의 책을 연달아 달리고 있다. <굿바이, 카뮈>, <명랑철학>, <사물의 언어>, <미의 기원>이 바로 그들이다.
<굿바이, 카뮈>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올릴 예정이라 패스. <명랑철학>은 좀 급하게 훑어본 책이라 니체의 철학을 명랑과 잘 접목시켰는지 파악하진 못했지만 전반적으로 '인생을 위한 니체의 아홉 가지 키워드' 같은 느낌이었다. <사물의 언어>는 소비주의와 물질만능 시대의 디자인을 되돌아보게 한다. 추천사 중 "...그런데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하도 웃는 바람에 자꾸만 읽던 자리를 놓쳐서."라는 문구가 있는데, 나는 읽던 자리를 놓칠만큼 웃지는 않았지만 능청스런 저자의 유머가 나름대로 즐거웠다.

 

밀라노 디자인 박람회에서 이목을 끈 디자이너들은 표면적으로 봐서는 전혀 디자인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물건들을 창조하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쓸모없고 수효가 적으면 가격은 어마어마한 물건들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중략)...그들의 작업은, 16세기에 밀라노의 한 공방에 섬세하게 금으로 무늬를 새겨넣고 소용돌이무늬와 곡선들로 정교하게 장식한 갑옷 한 벌을 주문했으나 화가 났을 때 그 갑옷을 입을 계획은 전혀 없었던 용병 대장이라면 잘 이해할 만한 의미에서, 상당히 디자인답다.(p.262)

 

 

뿐만아니라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하는 부분들(더불어 독자를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어 매우 흡족하다.

 

이 모든 이야기는 원형들(archetypes)만이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원형들의 기능적 속성들은 여전히 유동적이므로, 앞으로도 원형이 만들어질 여지가 있는 여러 다른 물건들의 범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그렇게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형식인 이유는 바로 끊임없이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하고 잡다할 정도로 갖가지 기능들을 추가하기 때문이다.(p.123)


우리 시대의 호사에서는, 점점 더 소비자들에게 돈을 쓰도록 설득하는 디테일들이 중심을 차지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호사에 대한, 원래 의미에 더 가까운 또 다른 정의가 점점 더 적절한 것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그 정의에 따르면 호사란 위협적으로 우리를 압도하는 소유물들의 가차 없는 유입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쉴 수 있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p.190)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는 '원형'과 '사치'에 관한 부분이 가장 맘에 들었다. 디자인이 가진 언어, 예술과 디자인 사이의 미묘한 경계, 소비시대의 디자인을 논하는 책은 많지만 이런 부분(원형과 사치)을 상세히 접할 수 있는 책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 계급론>을 종종 인용하고 있어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나머지 자세한 것은 리뷰에서...


마지막으로 <미의 기원>은 현재 1/3쯤 읽은 책이다. 이름도 생소한 각종 새들(오리나 공작같은 친숙한 새들도 있지만)과 사슴류가 난무하는 가운데 그들의 짝짓기 방식과 몸무게, 깃털의 성분까지 머릿속에 집어넣으려니 아주 죽을 맛이다. 다윈도 몰랐던 진실에 도전한다기에 분석에서 결말부분을 학수고대하는 중이지만 좀처럼 새와 사슴 얘기는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흘깃 보니 책의 절반 이후 드디어 2부, '미의 해석'이 등장한다. 그때까지만 좀 더 참고 읽어보자궁..ㅠ.ㅠ

 

 

 

달리기는 책 읽기에서 뿐만 아니라 책 고르기에서도 진행되었다. 어제와 그제, 양일에 걸쳐 그간 둘러보지 못했던 두 달 반치 신간들을 쭉 살펴봤더니 거의 계주를 마친 느낌. 그러다보니 온갖 책들을 마구 쓸어넣어 정리가(그리고 자제도) 필요할 듯하다.

 

수많은 책들 중에서 '정말 대단하구나'하는 책이 하나 눈에 띈다. 사진집인데 제목은 <한국의 장터>이다. 사진가는 스물 아홉, 신춘문예에 낙선하면서 사람공부가 부족했다 싶어 장터에 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각 지방의 장터 찍기만 수십년, 그 사진들을 모아 무려 480페이지에 달하는 한 권의 사진집으로 묶어냈다. 사진 작가중에 발품팔아 작품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을까만(연출과 스튜디오작업을 위주로 하는 작가 빼고), 이번 경우는 참 특별하고 귀하다. 처음 의도야 어찌됐든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사람들의 온기를 전해줄 것 같다. 물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뭍어나겠지만.

 

 

나물 곁에 모여앉으신 할머니들의 표정이 재밌다. 쪼르르 한 줄로 앉아있는 것이 아이들 같기도 하고. 이 사진은 저자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이라 책 속에 실려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정말 무슨무슨 대도록보다 훨씬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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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2-09-19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라져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는 참 귀한 것 같아요. 이런 모습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릴 때 다니던 시장의 참맛이 마트에 의해 잠식되고, 동네슈퍼도 편의점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별로라서요.

탄하 2012-09-19 23:06   좋아요 0 | URL
저도 어릴적 엄마 손잡고 갔던 시장이 그리워요. 아직 그 시장이 남아있긴 하지만 좀 더 시장의 활기를 더해주는 생선가게며, 양계장(이건 제가 무서워했던..^^;)이 사라지고, 정육점대신 목우촌이 들어서고, 유기농가게가 생기면서 반쯤 그 모습을 잃었거든요. 혹시 이 사진작가님, 우리동네 시장 사진 안 찍어 주시려나..안되면 저라도 찍어놔야 하나..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