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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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이거 대단히 재미있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놀라운 걸 하나 발견했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셜혹 홈즈의 소설을 단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헐.

       뭐냐고. 그런데 제가 어떻게 홈즈와 왓슨 박사를 알았던 걸까요? 그렇습니다. 저는 그냥 이름만 알았던 것입니다. 지나가는 새와 동네 슈퍼 개와 이웃 마을 김코뚜레와 그의 친구 민식이와 예삐 공주까지 모두 모두 알만큼 유명한 인물들이었던 지라 저역시 모르기가 더 어려웠던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이게 뭐랄까, 기억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지만 설마 그래도 읽었을 거야, 하도 오래되서 기억이 안나는 걸꺼야, 하는 식으로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셜록 홈즈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어요. 오 마이 미소지나. 셜록 홈즈를 단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으면서 추리탐정물은 별로 라고 얘기했던 당신, 맙쏘사.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아마 후줄근한 일본 추리 소설에 데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나 하고 저패니즈들을 걸고 넘어지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모두 그지 같은 추리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고 독일과 달리 사과나 반성 따위는 할 줄 모르는 이상한 민족이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동양이고 어느 면에선 비슷한 핏줄도 지닌 민족이라 그 나름의 애잔한 페이소스가 있는 탐정물도 꽤 많거든요. 하지만 그만큼 개떡같은 소설도 많은 형편이라 나는 일본 소설은 진짜 싫더라, 하고 말씀 하시는 분들이 뭘 두고 얘기하는지 짐작이 정확히 가는 것입니다. 그다지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저임에도 일단 추리물에 관해서만은 상당히 지루하다는 선입견이 생겼을만큼 일본 추리 소설들은 짜증나는 애들이 좀 많아요. 제가 왜 콕 찝어 일본 추리물이 그렇다고 얘길하느냐면 생각해보니까 외국 추리물은 제대로 읽은 게 별로 없더란 말이죠.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은 한 두 권 읽었는데 에드거 앨런 포우나 기타 대단한 명성을 지닌 양반들의 작품을 제대로 본 게 없습니다. 그런던 차에 대실 해밋의 작품을 읽었고 어? 추리 탐정물이 재미있네? 라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가 오호라, 요즘 영화며 비비씨 드라마며 셜록 홈즈가 엄청 재조명 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작품을 들었는데 아우, 진짜 조으다.  

 

       물론 이 작품은 셜록 홈즈의 원저자 아서 고난 도일 경의 작품은 아닙니다. 코난 도일 경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무슨 재단이 있나보던데요, (대체로 불친절한 영국인들의 이런 점은 참 부럽습니다. 역사를 좀 중요시한달까. 자기네 문화의 품격을 잘 지킨달까. 셰익스피어도 그렇고) 그 재단에서 항상 홈즈의 부활을 꿈꾸며 발표하는 후배 작가들의 수많은 작품들을 예의 주시하나봐요. 그러나 딱히 홈즈의 명성에 누가 안 가도록 인정할 만한 수준의 작품이 없어 당장 집어치우지 못해? 라고 고함만 주로 지르다가 이번에 최초로 인정하게 된 작품이 바로 앤터니 호로비츠의 실크하우스의 비밀이라고 하네요. 피아노 치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말고. 여하튼 그런 내용이 책소개에 자세히 나오는데 난 이상하게 그런 건 자세히 읽기 싫더라.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찾아서 보셈.   

 

       해서 이 작품은 호로비츠의 손에서 재탄생한 홈즈와 왓슨의 이야기입니다. 설정이 아주 재미있어요. 이미 홈즈가 죽고 난 후 홀로 남은 왓슨이 아우, 대박 사건이 있는데 그게 워낙 죄질이 악독해서 이제껏 공개하지 못하다가 어렵게 쓰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봤을 때 아직도 발표하기엔 무지막지한 내용이라 이 원고는 개인 금고에 넣어놨다가 100년후에 발표하도록 조치하겠다. 왜냐하면 그때의 너희들은 더 무지막지한 사건들을 숱하게 겪을 후세들이니까 그때서는 이 더러운 사건들을 어느 정도 토하지 않고 읽을 수 있지 않겠니? 하는 친절한 왓슨 씨. 그러니까 니들은 100년 후에나 보게되는 거야, 라는 설정입니다. 그러므로 무대는 역시 그 오래 전 홈즈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참으로 클라식한 무대가 아니 아니 아닐 수 없소.

 

       영국판 도가니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이거 스포일러 아니다) 두 개의 사건이 맛물려 꼬마 여자 애 머릴 땋듯이 꼬여가며 올라갑니다. 어우, 그런데 대단히 흥미진진하다니까. 그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서서히 더 속도가 빨라진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매력이 발산됩니다.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슬슬슬 출발해서는 서서히 속도를 높이고 올라갔다 내렸다가 후반부는 제대로 오빠 달려, 주십니다. 구성이 아주 좋고 이야기의 짜임새도 상당히 괜찮아요. 후반부에 드러나는 이야기의 전말들은 크, 역시 홈즈를 한 번도 안 읽어본 제가 봐도 이 정도면 홈즈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디테일하고 잘 짜인 구조. 게다가 개인적인 취향으로 봐서 문장도 좋았습니다. 곳곳에 드러나는 묘사가 아주 운치있는 것도 좋았고 클라식한 표현도 좋았고 추리 탐정 장르물이니까 이야기만 중요하지 문장은 무얼, 그렇지 않아서 더 좋았습니다. 세련된 묘사들이 종종 등장해서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저에게 안겨주었죠. 이는 아마도 역자의 공도 클텐데 장르 소설의 문장은 대강 번역기 수준의 문장이어도 내용만 재미있으면 괜찮지 않아? 라고 말하는 것 같은 후진 문장들이 아니어서 고마웠고 전반적으로 싼 티 나지 않는 문장들이라 더 좋았습니다. 장르물의 문장도 품격이 좀 올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여하튼 조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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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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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 이거 대단히 재미집니다. 제가 딱 좋아하는 타입의 소설이었습니다. 작렬하는 묘사랄까. 생생한 현장감이 거의 출발 비디오 여행 수준이었다니까요. 작가는 쥬라기 공원의 원작자 마이클 크라이튼이고요, 이 작품 또한 쥬라기 공원처럼 과학 지식을 토대로 쓴 소설이고 그 과학의 골자는 유전 공학입니다. 현대 사회가 유전자 연구를 어떻게 오용하고 있는가를 고발하는 이 작품은 마치 전문 과학서적에 버금가는 신지식의 활로를 활짝 열어주심에도 불구하고 아우, 쉬워. 너무 쉬워서 앵무새도 이해해. 

 

       일단 말씀드린대로 묘사가 대단히 뛰어난 작품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시종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을 하는 원숭이 데이브와 역시 말을 하는 앵무새 제라르가 등장하고부터는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정도로 이들의 행동과 상황 묘사가 예술적으로 그려집니다. 흡사 스티븐 킹을 연상케하는 디테일한 묘사와 생생한 현장감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읽고 싶을 정도로 사람을 빠져들게 합니다. 개나 고양이도 읽으면 빠져들지 몰라. 어찌나 그 상황들이 생생한지 엄청나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함에도 그들이 누구인지 전혀 헷갈리지 않고 착착 기억이 날 정도예요. 그러니까 어떤 설명 속에서 거론되었던 인물들이 아니라 무슨 상황속에서 벌어진 현상을 묘사하던 과정 중에 소개되는 방식인지라 소위 말하자면 스스로 연상 기억학습법에 의해 이야기와 인물이 저절로 암기되어지는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아무리 억삼이, 억마디 하면 그중 세 마디만 사실이랄 정도로 뻥이 심한 사람이라고는 해도 이건 진짜라고요. 책 읽은지 며칠 됐는데도 전, 지금도 여기 나오는 애들 이름 다 기억해. 물어보면 다 대답할 수 있어. (하나 정도는 모를 수도 있겠다) 그 정도로 상황묘사가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단순히 재미만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점에서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유전자가 특허가 되는 줄을 전혀 몰랐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우와, 그거 좀 곤란하든데? 일례로 십수년 전에 유행했던 사스가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을 때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 병의 유전자 특허 문제 때문에 섣불리 연구를 진행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질병 유전자를 개인이 소유하고 있었던 관계로, 혹은 그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연구를 진행했다가 소송이라도 붙으면 그 금액이 천문학적인 숫자이기 때문에 누구도 아무렇게나 질병 유전자 연구를 쉽게 하지 못한다고 하네요. 실제로 질병 유전자를 개인 혹은 한 기업이 소유하고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경우가 꽤 있어, 어떤 병이나 기타 고칠 수 있는 기술력은 충분히 됨에도 불구하고 그 특허 사용료가 엄청나서 손을 대지 못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랄 수 있는데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위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발견한 A 회사가 그 유전자에 특허를 내버리면 아무도 위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연구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당연히 치료법 연구도 못하는 거죠. 현재에도 그런 종류의 질병 유전자가 일개 개인 혹은 단체에게 묶여있는 경우가 꽤 되나 보던데. 오빠 금발 머리 유전자 사주세욤. 네? 

 

       그러고보니 언젠가 다국적 기업 제약회사들의 음모론을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그들이 이미 완치율 100%의 신약을 개발하고도 시중에 풀지 않는 여러가지 이유들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생각은 나질 않네요. 아무튼 그게 아마 그런 기업의 비인간적인 행태를 참지 못해 나온 직원이 양심 선언하면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유전자 특허 또한 그런 형태의 잘못된 권익이 상당한가 봅니다. 읽다보면 이 유전자라는 거, 상당히 무시무시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극화된 이 소설의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습니다. 이 작품의 소재를 옮긴이의 글에서 한 단락을 발췌하여 말씀드려보자면,

       <오늘 우리집 앵무새가 미적분 숙제를 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다. 짜증이 심했던 엄마는 얼마 전에 받은 유전자 대체 요법을 받고 상냥한 아줌마가 되었다. 아참, 며칠 전에 아버지가 교통 사고로 돌아가셨다. 별로 슬프지는 않다. 그간 정기적으로 모아둔 유전자 샘플을 가지고 다시 복제하면 되니까>

       십수년 전 배아줄기세포가 세간에 화두가 되었던 시절에 우린 그런 얘기를 했었더랬습니다. 저게 성공하면 이제 약국이나 병원 같은데 가서 아우, 요즘 왼쪽 눈 시력이 좀 떨어져서 그런데 새걸로 바꿔 껴주세요, 하는 시대가 도래할 거라고. 상기에 나온 역자의 가설이 이 소설의 줄거리와 매우 유사합니다. 말하는 앵무새와 침팬지, 그냥 말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 유전자와 결합되어 거의 인간과 유사한 행동을 하고, 마약 중독이나 푹력성이 심한 사람에게도 성숙 유전자를 주입하여 그 성격 자체를 바꾸는 사례들이 소개되는 데요, 우와, 놀라울 따름이지요. 정말 쇼킹 했던 건 생물 들의 유전자를 변형해서 그들의 몸 한 부분을 광고판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도로를 지나가는 버스에 붙은 광고판처럼 날아가는 새나 바다 속 물고기의 등판에도 기업 광고 로고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얘기인거거든요. 유전자 조작으로. 띠딩띵띵, 우와. 실으다. 대박 실으다.

 

       얼마 전에 에단 호크와 우마 서먼이 주연으로 나오는 <카타카>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 작품도 유전자가 발달한 미래 사회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못보신 분들 보세요. 아주 재미있고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도 그 영화와 맥을 같이 합니다. 그리고 그런 유전자 특허 시대가 향후 어떻게 인류를 위협하게 될지도 콕콕 집어 주시는 마이클 씨, 요즘은 대체 뭘 하고 지내시나? 끝으로 번역도 아주 좋습니다. 번역 문장, 묘사가 아주 감칠나게 입에 착착 감길 정도로 좋고요, 문장 호흡, 리듬감도 좋고 무엇보다 그 어려운 전문 용어들을 쉽게 풀어내느라 고생 좀 하셨을 거로 여겨집니다. 칭찬받아 마땅한 노력이 담긴 번역이었다고 생각해요.   



 
 
 
몰타의 매 대실 해밋 전집 3 
대실 해밋 지음, 김우열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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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그 유명한 소설 <몰타의 매>를 읽었는데 저런, 저는 개인적으로 대실의 데뷔작인 <붉은 수확>이 더 좋았습니다. 콘티넨탈 탐정 사무소에 소속되어 있는 이름 없는 '나' 님 말이죠. 그 양반이 일단 저에게는 훨씬 매력적인 탐정이었거든요. 그럼 이 작품엔 그 양반이 등장하지 않느냐고 하면 바로 그렇습니다. 그 양반은 <데인 가의 저주>에서 상당히 뺑뺑이를 도시더만 뭔가 맞지 않았는지 작가에게 사표를 내버리고 <몰타의 매>에서는 스페이드라는 이름의 새로운 탐정이 스카웃되어 등장합니다. 작가의 묘사로 봐선 살짝 드라큘라 백작을 닮은 듯 싶은 이 탐정 선생은 이런, 천하의 바람둥이 같으니라구. 능글능글한 말투로 아무 여자한테나 자기야, 라고 부르는 이 뤼팽 타입의 멀쩡한 탐정 선생은 헐. 나도 좀 친해지면 남녀소 구분없이 자기야, 라고 부르는데. 하지만 이 얼핏 잘 생기고 신체 조건도 아주 이상적이며 나름 깡다구도 있어주는 스페이드 씨보다는 배불뚝이에 다소 무모한 터프 가이 '나'님이 제 취향에는 더 맞네요. 

 

       <붉은 수확>과 <데인 가의 저주>는 화자가 '나', 그러니까 일인칭으로 서술되었었는데요, 이 작품에서는 삼인칭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주인공은 당연히 저 반들반들한 탐정 스페이드 씨가 되시겠구요. 이 작품 또한 <데인 가의 저주>처럼 전통적인 추리 탐정 소설쪽에 가깝습니다. 기본적인 소재와 구성 또한 아주 익숙한데 그런 느낌의 원조가 사실 이 작품인 건지 이 작품 이전에도 그런 소재와 구성이 있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이야기는 간단히 말해서 '몰타의 매'라는 보물을 둘러 싼 한바탕의 소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페이드 씨의 캐릭터가 모리스 르블랑의 뤼팽을 상당히 닮아 있어서 그런지 이야기 또한 살짝 뤼팽 타입인 것 같다고 여겨졌습니다. 약간의 액션이 있긴 하지만 무식한 미국 건맨 스타일의 액션이 아니고 깔끔하고 신사적인 유럽 식의, 이를테면 결투 느낌의 액션이 대부분이었고 보물을 둘러싸고 벌이는 각축전 또한 뤼팽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는데 둘 중 누가 더 오래된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둘 다 워낙 오래되신 양반들이고 시대도 비슷하시다니까.  

 

       작품의 구성면으로만 보자면 솔직히 <붉은 수확>보다는 훨씬 잘 다듬어진 느낌입니다. <붉은 수확>은 사실 일단 막가고 봐, 하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물론 저는 그래서 더 좋아하지만- 그러나 이 작품은 설계도 잘 되었고 등장 인물들의 각 역할도 알맞게 배분되어 어느 정도 적확하다는 느낌, 그러므로 정말 탐정소설 같은 분위기가 훨씬 더 물씬입니다. 하지만 스피디하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과 정말 하드보일드한 느낌이 나는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는 역시 <붉은 수확>만 못합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읽은 대실 씨 세 권 중에서 진정 하드보일드한 느낌이 나는 작품은 <붉은 수확> 뿐이었어요. 나머진 그냥 잘 짜인 탐정 추리소설 같은 느낌. 미국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유럽적인 느낌이 강한, 뭐 그런 겁니다. 그러므로 일견 뤼팽이나 홈즈를 그리워하시는 독자 분들에게는 꽤나 매력적인 인물일 것으로 여겨지는 샘 스페이드 씨입니다. 하지만 평소 탐정물을 즐기시는 분이시라면 이미 읽으셨을 확률이 높겠네요.

 

       대실 해밋 작품의 공통적인 장점은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의 전개라고 할 수 있겠네요. 혼자 추리를 한답시고 방바닥을 싸돌아댕긴다거나 복선을 깔기 위해 쓸데없이 길바닥에 서서 껌자국이나 바라본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쉴 새 없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계속해서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지요. 정체 구간이 일단 없어요. 다만 임팩트가 좀 약했달까? 잘 짜인 구성과 흠 없는 캐릭터들의 역할, 그리고 늘어지지 않는 이야기의 전개 등 그다지 큰 흠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한 방이 없는 아쉬움이 좀 있습니다. 계속 엎치락뒷치락 하느라 지루할 틈은 없었지만 너무 비슷한 방식으로 계속 반복되니 임팩트가 약했던 것이지요. 이종 격투기로 비유해 드리자면 기술 좋은 두 선수가 라운드 내내 고급 기술을 선보이며 호각을 다투지만, 어쩐지 뻥 터지는 카운터 펀치의 수는 현저히 적은 느낌 같은 것이지요. 하지만 총평으로 보자면 좋았습니다. 추리탐정물을 그리 즐기지 않는 제가 재미있게 읽은 편이라면 좋아하는 양반들은 더 재미있겠지.

 

       그런데 세 편 정도 읽고 나서 느낀 점인데 이 시리즈가 묘한 중독성이 있네요. 현재는 마이클 클라이튼의 작품을 읽는 중인데 움찔움찔 대실의 네 번째 작품인 <유리 열쇠>가 보고 싶어진단 말씀이지요. 이게 대실 해밋의 작품 때문에 그런 건지, 아니면 추리탐정물을 오랜만에 봐서 그런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렇다는 거니까.       



 
 
 
데인 가의 저주 대실 해밋 전집 2 
대실 해밋 지음, 구세희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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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금요일에 이어 대실 해밋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좀 해 볼 생각입니다. 정말이지 그럴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그러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 소설은 그의 전집 두 번째 작품입니다. 진집이라봐야 꼴랑 다섯 권의 단란한 가족이기는 해도 모아놓으면 간디가 좀 산다. 이번 이야기는 전편 붉은 수확하고는 스타일이 좀 다르네요. 씬시티의 느낌이 물씬 풍겼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그야말로 추리소설 분위기가 확실하게 납니다. 그러니까 액션 활극의 장면이 대폭 줄고 간장 공장 미스터리 측면이 훨씬 부각되어 뭔가 탐정 같은 면모가 조금 더 살아있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이야기는 여하튼 그런 타입입니다. 

 

       가브리엘이란 이름을 가진 데인 가의 한 처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되는데 말 그대로 저주 받은 가문이라는 설정입니다. 그 저주가 왠 저주인지를 콘티넨털 탐정 사무소 소속의 '나' 님께서 밝혀나가는 스토리라고 보심되는데요, 뭔가 유령도 등장하고 이상한 종교도 등장하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이런 비슷한 내용이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뤼팽에서였나 코난 도일의 셜혹 홈즈에서였나 아무튼 둘 중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몇십년 된 기억이라 내용이 생각날 리는 당연히 만무하나 그런 오묘한 분위기를 가진 추리물을 읽은 기억이 분명히 있다. 크리스티 여사였나? 아무튼 네네, 추리 탐정 매니아 분이 혹시 여기 들리시면 콕 찍어 그게 뭘 껄? 하고 말씀해주시면 일단 감사. 사례는 부황떠서 피 빼 드립니다.

 

       구성 또한 전작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되어있는데요, 전작은 챕터 구분없이 사건이 뒤죽박죽 엉켜 돌아가는 타입이었다면 이 작품은 조금 정리정돈하면서 이야기를 꾸려나갑니다. 엄마한테 욕 좀 드셨나. 그러니까 하나의 사건이 의뢰가 들어와서 그걸 해결하고 1부 마감, 또 한 사건이 의뢰가 들어와서 열나게 해결하고 다시 2부 마감, 이렇게 3부까지 세 가지의 사건이 벌어지고 해결하는 형태거든요. 그러니까 각 사건마다 야무지게 끝맺음을 하고 가는 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 데인 가에 관한 이야기라는 게 이 작품의 포인트랄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그 놈의 집안에서 계속 말썽이 일어나서 이 탐정을 뺑뺑이 돌리고 있는 셈인데요, 다만 해결한 줄 알았던 사건이 아니거든? 하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형식은 아닙니다. 같은 집안의 인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다른 사건과 엮여가는 거예요. 그래서 뭐, 저주 받은 집안이니 그런 설정이 만들어진 거라죠. 당신은 날 사랑해선 안 돼! 날 사랑하면 자는 모두 피박에 광도 못 팔았어. 뭐 그런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탐정 추리물만큼은 복잡한 두뇌 플레이보다 정말 하드보일드한 타입을 선호하는 지라 전작이 더 제 취향에는 맞았지만 읽다보니 이 작품도 묘한 흡인력이 있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마초 탐정 '나'님의 터프한 매력이 대폭 줄고 뭔가 정통 탐정 추리물 같은 모양새가 더 많이 가미 된 형태라서 글쎄요, 1부까지는 정말이지 글쎄요, 하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몸보다 머리를 많이 쓰셨달까. 아, 우린 몸이 좋아. 전작에서처럼 총도 막 갈기고 유리창도 깨져나가고 건물 폭삭 주저앉으면서 벌어지는 별다방 미스리가 마음에 들었던 지라 아마도 다소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2부가 지나가면서 서서히 또 그 나름의 매력에 사부작 사부작 빠져들기 시작하더만요. 워낙 이야기 자체가 쉬지 않고 이어지는 타입이라 뭔가 점점 빠져드는 느낌이었달까, 여하튼 그랬습니다. 푹풍 흡인되는 이야기들은 아니었습니다만 딱히 지루하지도 않았다고 하는 게 어느 정도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싶소. 개인적으로는 전작에서 느꼈던 개척 시대의 미국적 분위기가 대폭 줄고 유럽식의 추리물 같은 분위기가 나는 것이 좀 아쉬웠습니다만, 정통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독자 분들에게는 오히려 더 괜찮을 수도 있겠네요.



 
 
 
붉은 수확 대실 해밋 전집 1 
대실 해밋 지음, 김우열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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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대실 해밋의 <붉은 수확>이란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좀 해 볼 생각입니다. 추리 탐정 소설의 팬이 아니라면 일단 대실 해밋이란 이름이 익숙치 않으시겠죠. 그래도 방을 잘 빌려서 대실이냐고 물으시면 곤란합니다. 그는 미국인이거든요. 게다가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에 바삐 돌아가신 관계로 지구 종말을 불과 11개월 남겨둔 우리가 그를 알기란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실 해밋이란 이름이 친숙치 않은 분이라 해도 <몰타의 매>라는 작품에 관해서는 한번쯤 들어보지 않으셨을까요? 보진 못했다 해도 들어는 봤을 법도 한데 아님 맙시다. 아무튼 이 분이 그 유명한 <몰타의 매>의 저자이신 거니까요. 쉽게 말해 영미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의 거장이라 그 말인 겁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만.

 

       표지 보이시지요? 개인적으로 아주 제 취향입니다. 이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 중에 센스가 좀 대박이신 분들은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제가 영화 대부의 좀 광적인 매니아입니다. 여느 팬들처럼 백 번쯤 봤어, 로 끝나지 않고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이니 붙어 볼 만한 거죠. 오죽하면 메모란에 오디오를 편집해놓을 정도겠냐구.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건 대부가 가진 이야기 뿐만이 아니고요, 아주 종합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그중 하나가 그 시절 그들의 복장이네요. 스트라이프 무늬 양복 혹은 셔츠, 멜빵, 산뜻한 행커칩과 중절모와 세련된 구두. 그게 아니면 <원스 업온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등장하는 꼬맹이들의 바지와 셔츠와 멜빵과 헌팅 캡 같은 소품들. 

       사랑한다고. 

       당연히 그 시대가 배경이 된 영화는 거의 다 좋아합니다. 개인적인 패션 취향도 그쪽에 좀 가깝고요. 그러니 일단 제가 이 작품에 흠뻑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연을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이 배경인 작품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재미도 없는데 무조건 그 시절의 무대라고 해서 좋아라하는 십덕후는 제가 아닌 관계로 좀 더 자세한 작품 얘길 해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마치 영화 <씬 시티>를 연상시킵니다. 씬 시티 좋아하십니까? 그럼 이 작품 마음에 드실 겁니다. 범죄 도시에서 범죄를 소탕하는 스펙타클한 추리 탐정물인 이 작품은 고전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클래식한 자동차들의 도로 질주 신은 물론이요, 그 와중에 갈겨대는 기관총과 날아가는 중절모, 그레고릭 펙이라든가 험브리 보가트 같은 인물들의 중후한 목소리가 대사를 읊고 비비안 리 혹은 마릴린 몬로 같은 여배우가 붉은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유혹하는 듯한 풍경이, 아우 죽입니다. 고전미가 아주 예술이야.  

       

       앞서 말씀드렸듯 탐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탐정 추리물이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반적인 탐정물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러니까 뭔가 미스터리한 일을 계속 꼬아가며 꽈배기를 만들다가 막판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을 모아놓고 한껏 잘난 척을 한 다음 네가 범인이지? 하는 식의 지능형 말이죠. 오히려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와 비슷한 분위기인데 굳이 표현하자면 액션 탐정이랄 수 있겠네요. 머리만 쓰는 게 아니라 몸도 마이 씁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고요, 활극스러운 분위기가 잔뜩입니다. 추리 또한 막판 뒤집기 한 판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중간 중간 해결하고 가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식으로 엮여 있어서 저는 좋았습니다. 소설의 목적이 오로지 추리를 위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말이죠. 추리는 이 소설의 여러 재미 중의 하나일 뿐 그게 다가 아니지, 하는 것처럼 여러가지 요소들이 잘 버무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전개가 아주 시원시원하게 쭉쭉 뻗어나갑니다. 다만 그러다보니 조금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은 또, 이 작품의 최대 강점으로 충분히 커버가 되고도 남습니다. 그게 뭐냐면 바로 유쾌함. 시원시원하면서 웃긴 장면이 많아 기분이 유쾌해진다는 게 이 작품이 가진 최대의 미덕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말그대로 하드보일드 탐정 문학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군더더기 없이 사실적인 풍광만을 깔끔하게 서술해나가는데요, 웃깁니다. 탐정 추리물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이 웃어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요? 웃긴 게 웃길라고 해서 웃긴게 아니라 거 뭐랄까, 상황이 너무 뻔뻔해서 웃기달까? 개가 미친듯이 짖으니 그냥 발로 뻥차고 지나갔다는 식의 유머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사람이 총을 맞아 뻥뻥 쓰러지는 와중에도, 그 옆에서 태연하게 햄버거를 씹으며 이거 빵이 좀 오래 된거 아냐? 하고 말할 때 관중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어처구니 없음에서 일어나는 코미디 같은 겁니다. 보는 사람은 엄청 웃긴데 정작 그 주인공들은 너무 태연해서 황당한 그런 류라고 할 수 있죠. 하여간 읽어보면 안다.

 

       후반부에 모 등장인물이 당구대를 들고 휘두른다는 서술이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거기서도 빵 터졌습니다. 당구대가 아니라 당구 큐대를 휘둘렀던 거겠죠. 그런데 문득, 당구대를 휘두르는 장면이 연상되어 빵 터졌어요. 오역일텐데 이런 오역은 귀엽다니까요. 그건 말하자면 이 소설을 그렇게 연상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전반적인 뻔뻠함이 작품 전체에 배어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지적질을 하자면 캐내디언 클럽은 캐내디언 위스키의 한 브랜드입니다. 그걸 캐나다인 클럽으로 번역하는 것은 임페리얼 위스키를 황제의 위스키라고 번역하는 거나 마찬가지인거죠. 어쩐지 조지오웰의 빅브라더를 대형으로 번역했다던 일화가 떠올랐는데 여하튼 깜찍한 오역과 다소 정리되지 않은 문장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유쾌했던 작품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그게 그리 문제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끝으로 표지 디자인 굿.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고요, 책 값 9천원입니다. 대박. 요즘에는 상가 수첩 같은 책을 만들어 놓고도 만 몇 천원 씩 받아 잡수시는 추세인데 요렇게 깔끔한 디자인의 350쪽 가량의 문고판이 9천원인 것은 아주 인상적이지 아니 아니 아니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저는 대실 해밋에 꽂혀버린 겁니다. 그래서 전집을 달려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