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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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물론 그를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가 가진 연출력이란 게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그가 노력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보통 사람은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공력을 그는 애초부터 타고났다는 얘기인 것이지요. 그게 아니면, 남들은 죽도록 해야 간신히 이룰 수 있는 지점에 그는 시작부터 서 있었다고나 할까요? 가령, 초딩 김연아가 다른 초딩은 한 달을 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트리플 악셀을 단 삼 일만에 해냈다, 하는 것처럼 말이죠. 남들은 그게 어렵다고 하던데 저는 그렇지 않아서 좀 이상했어요,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 김연아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걸 두고 재능이라고 하는 걸 겁니다. 본래 문화 예술 스포츠 방면은 어쨌거나 그렇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어떤 노력보다 중요한 건 일단 타고난 재능인 거죠. 토끼는 낮잠을 자야 거북이가 이기는데 잠을 안 자는 토끼를 거북이가 이길 수는 없는 거니까요. 

 

      스필버그 감독의 그런 타고난 재능은 그의 데뷔작인 듀얼(duel)을 보시면 간단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걸 보면 그 후에 만들어진 수많은 흥행대작들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처럼 느껴지거든요. 그 영화, 대형 트럭 한 대와 승용차 한 대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주 심플해요. 내용도 그렇습니다. 도로를 달리는 승용차가 무슨 일에선지 문득, 자신의 뒤에 선 대형 트럭이 자신을 살해하기 위해 추격한다고 믿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는 혼자 극도의 공포에 빠져들게 되지요. 영화는 내내 도로를 달리는 두 차에 대한 것 밖에 없었다고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트럭 운전수의 카우보이 부츠.

      기실 이런 정도를 기억하고 있는 것만해도 이 영화가 그만큼 대단했었다는 방증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 영화를 본 지가 30년이 넘었거든요. 집에서 주는 모이나 얌전하게 받아먹고 자라던, 그야말로 털도 안 말랐을 때 본 영화니까요. 티비에서 하는 걸 -그땐 스필버그가 누구인지 당연히 알 리도 없었고- 우연히 지나가듯 보다가 결국, 끝까지 보게 되고 만 경우였습니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이 바로 거기 있어요. 무슨 내용인지도 이해할 수 없는 어린 꼬마가 본능적으로 무언가에 휩쓸리듯 화면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입니다. 영화는 오로지 인간의 내면 심리만을 표현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 긴박감에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스필버그 감독은 방년 25세에 이미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 통찰력만해도 타고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보다 더 큰 재능은 자신이 아는 그것을 표현해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두 가지가 합쳐지니까 놀라운 재능이 된 것이고 그것이 피나는 노력과 경험으로 일군 실력이 아니라는 점에서 천재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듀얼은 스필버그 감독의 데뷔작이니까요.

 

      소설 리뷰에 뭔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얘기만 늘어놓나 싶으시겠지만 이 소설이 앞서 말씀 드린 내용과 같아요. 스필버그의 데뷔 영화는 대형 트럭이고 스콧 스미스의 데뷔 소설은 거액의 공돈이지만, 그 차이점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같습니다. 

      제 생각엔 스콧 스미스도 타고난 사람입니다.   

      타고난 이야기꾼들의 특징은 어떤 톤으로 어느 부분에 힘을 주어 어떻게 말을 해야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들려주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이죠. 그러므로 이들에겐 이야기의 내용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평범한 얘기로도 극도의 긴장감을 뽑아낼 수 있는 능력자들이니까요. 스필버그 감독은 두 대의 차량과 음악만으로 그것을 만들어냅니다. 스콧 스미스는 우연히 발견한 거액의 돈다발만으로 그것을 만들어냅니다. 둘의 공통점은 압도적인 내면 묘사로 강력하게 이야기를 통제하면서 끌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사람 중에도 이런 방식의, 남들은 10분이면 끝날 단순한 소재를 100일 동안도 얘기할 수 있는 거장이 있죠. 떠오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스티븐 킹 선생입니다.

      이들의 특징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능력은 일단 탁월한 묘사력이라는 게 있습니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기억나시겠지만 어느 학교에나 그런 아이들이 한 명씩은 있었잖아요? 1시간 짜리 드라마를 3시간 동안 얘기할 수 있는 능력자들 말입니다. 그들의 공통점 역시 리얼하고 디테일한 묘사력이지요. 하여간 타고난 이야기꾼들의 특징입니다. 그건. 그러니 스콧 스미스 역시 예외가 아니지요. 아주 탁월합니다. 거의 모든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질 정도니까요. 게다가 때론 공감각과 촉각까지 느껴질 정도로 감각적입니다. 문장으로 촉각이 느껴질 정도의 리얼한 묘사는 코맥 매카시옹 이후로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평범하고 담담하게 그려내는데도요, 이상하게 손에 잡힐 듯이 뚜렷하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확실히 노력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경지는 아닌 듯 싶네요.

      다만, 매카시옹이나 킹 선생은 표면적인 행동 묘사나 풍경 묘사만으로 사람의 내면을 표현해낸다는 점에서 조금 레벨이 다르기는 하시지만 어쨌거나 이들은 짬밥이라는 게 있으시니까요.

 

      그래서 그보다는 한 단계 아래로 직접적인 내면 묘사가 있을 터인데 이 작품의 백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주 탁월하거든요.  

      일단 기본적으로 독자든 관객이든 그들이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밀고 당기기가 가능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사람의 심리를 잘 이해해야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이해에서 더 깊이 들어가는 내면 묘사의 영역에서 인간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강력한 공감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당연히 더 깊이 몰입하게 하지요. 이 작품의 백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 소설이 장르쪽보다는 순문학 쪽에 더 가깝다고, 읽는 동안에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사건이나 무대 장치가 화려한 작품이 아니거든요. 서스펜스라는 요소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속도로 승부하지 않습니다. 단지 살인이라는 소재가 다루어졌기 때문에 장르로 구분되었을 뿐, 작품을 지배하는 90% 이상의 힘은 내면 묘사에 있습니다. 마치 이언 매큐언의 <이런 사랑>처럼 말이죠. 굉장한 긴박감을 주지만 그것을 사건의 흐름으로 조정하는 게 아니라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내면 묘사로 조정합니다. 마를렌 하루스호퍼의 <벽>이라는 작품도 떠올랐고, 슈테판 츠바이크의 <연민>도 떠올랐고, 그리스토프 하인의 <나폴레옹 놀이>도 떠올랐어요.

      그러니까 이 작품은 오히려 장르보다는 그런 순문학 작품군에 더 가깝습니다. 제 생각엔 그래요. 사건이란 그저, 어떤 터닝 포인트로만 작용하는 하나의 장치에 불과할 뿐,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인간의 내면 묘사니까요. 그러므로 쫓고 쫓긴다거나, 사건 위주의 스피디한 장르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겐 이 작품이 그리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관점의 차이니까요.

      어쨌거나 제 취향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최고 등급 레벨이었어요. 그러니 그쯤되면 사실 장르니 순문학이니 하는 구별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작품이 어떤 분위기라는 걸 알려드리기 위해서 그리 설명을 하긴 했지만 별로 의미는 없어요. 본래 어떤 분야라도 최고로 분류되는 집단은 어떤 한 경계에 딱 속해 있지 않잖아요? 이 작품도 그런 정도의 수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게 중요한 거죠. 그러니 이 작품이 데뷔작인 작가를 두고 제가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한마디로 명품 소설입니다.  

   

      책을 읽다가 중간에 번개를 맞은 듯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황급히 주문하는 경우가 그리 흔한 일은 아닙니다. 이 작품을 읽다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스콧 선생은 불행히도 이제까지 딱 두 작품 밖에 쓰질 않았더군요. 냉큼 장바구니에 집어넣긴 했는데 살짝 불안한 마음이 없진 않습니다. 저는 종종 아주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나면, 어쩌면 당연하게도 번역자를 굉장히 유심히 보거든요. 번역자 잘못 만나면 그걸로 그 작품 하나를 날려버리는 거나 다름 없으므로 불안하지 않을 도리가 없죠.

      이 작품의 문장은 대단히 좋았습니다. 작품이 이야기로 승부를 하는 부류가 아니고 묘사로 승부를 하는 쪽이기 때문에 번역자의 문장이 대단히 중요한 소설이었는데 이처럼 만족스럽다는 얘기는 기실 번역자의 공이 절반 이상이라고 봐야겠죠. 그리고 이 작가의 타입을 보니 이야기보다는 묘사에 치중하는 경향이던데 장바구니에 넣은 작품의 번역자가 다른 겁니다. 그런데 그 번역자가 아직 제가 신뢰하는 군에 들어있는 분이 아니신지라 과연 이 작품만큼 잘 해냈는지 내심 불안한 면이 없질 않아요. 그나마 하나 남은 작품이라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건데, 뭐, 읽어보면 답이 나오겠죠. 젭라 번역 문장 때문에 뚜껑 날아가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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