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무라세 다케시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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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5월 한달간에만 죽음과 상실에 대한 소설을 3권째 읽다보니, 심적으로 우울함이나 무기력함이 더해지는 것 같다. 감동을 선사해야 할 소설에서 너무 슬픔에 이입했나보다. 다음 6월달부터는 뭔가 동기부여가 되고, 긍정적이고 활기찬 기운을 주는 것들을 많이 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소설은 왠지 흑백이 잘 어울렸다. 푸른 빛의 어스름 달빛의 은하수가 보이는 니시유이가마역의 플랫폼의 여자와 열차. 표지가 내용을 모두 표현해 준다.

읽자마자 일본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던, JR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가 떠올랐다. 당시 건물을 들이 받고 뭉개져버린 열차사고를 두고 책에서와 매우 비슷한 이야기를 닮고 있어서 번뜩 떠올랐던 것 같다. 기관사의 잘못으로 돌렸던 회사의 입장이라던지 죽은 사람들의 뒷 이야기들. 그렇게 큰 사건들은 개인들의 사정사정을 들여다보면 모두 안타깝고 애달픈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너무나도 현실적이지만, 거기에 판타지를 더해 뭔가 기적적이고 희망적인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책이 프롤로그에 열차 사고의 전말과 사건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역인 니시유이가마역에서 '유키호'라는 유령이 사고가 난 당시의 열차에 탑승할 수 있다고 하는 소문과 함께 4가지 꼭 지켜야만 하는 것들을 알려준다. 이건 아마 주변인이라면 흘려들었을, 무서운 이야기쯤으로 들리겠지만 절망적이고 상실감에 어찌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한가지 작은 희망의 끈 같은 것이었으리라.

총 4가지의 장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1화 연인에게, 2화 아버지에게, 3화 당신에게,4화 남편에게.

이렇게만 두고 보면 너무 진부하지만, 이 승객들과 그 가족들에게 펼쳐질 이야기들은 그리 진부하지 않다. 슬픈고 안타까운 것은 매 한가지이지만 거기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을 가볍게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2화는 힘든 시기를 겪는 청춘들에게 소원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일본과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져서 좋았고, 특히 4화 남편에게는 피해자들의 소재가 아닌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지목이 되어버린 기관사와 아내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그렇게 다들 아프고 힘든 시기에도 가족으로 사랑하는 연인으로 남아서 마지막까지 상실감을 이겨내고 삶을 끝까지 살아주길 바라는 죽은자들의 바램이 그들을 결국 살아가게 한다.

●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자신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 "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지만, 아버지의 분신인 넌 살아 있잖아. 그러니까 네가 기뻐하면 아버지도 분명 기뻐하실 거야. 너의 행복이 고스란히 아버지의 행복이 될테니까. 핏줄이란 그런 거잖아. 그러니까 넌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돼. 항상 웃으면서 살면 된다고."

● 우리 가족은 살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굴러떨어지던 돌도 때가 되면 멈추듯이, 이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빛나는 미래를 선사합니다.

인생이란, 참으로 얄궂지요. 언젠가 당신의 미래에 눈부신 빛이 비치기를 기원하고. 믿고. 확신하며.

● "그 애가 사람을 좀 더 믿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요. 또 만났더라면 좋았을 거예요. 악의와 반대되는, 그 모든 걸 덮을 수 있는 사람의 양심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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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세이카 료겐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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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정말 날 것의 <죽고 싶어하는 소녀의 자살을 방해하고,놀러 다니는 이야기>. 번역서의 제목이 훨씬 내용의 궁금함을 자아낸다.

오랫만에 읽어보는 일본소설, 거기에 타임슬립을 살짝 버무린 로맨스 소설이라고 해야할 듯 싶다. 묵직하고 하드보일드한 일본 소설을 많이 접했던 기억 때문에 적잖이 부담스러운 시작이 되었었지만, 인터넷소설 대상이라는 부분에서 부담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학과 필수과목으로 항상 일본문학을 번역해보고 내용을 파악해보는 그 악몽같은 시간들이 떠올라서 아마도 짐작컨데 일본소설을 멀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벌써 이 책을 받자마자 주인공들의 한자 이름을 해석하려고 난리부르스를 쳤던 부분부터가 잘못되어 있었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깜빡 하고 있었던 것이다.

<디어 프렌즈>와 같은 한창 귀요니 소설이 일본에도 번성하던 시기. 그때만큼은 자유롭게 세로 읽기가 아닌 가로읽기로 즐기면서 일본소설들을 가볍게 즐길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는 걸 감사하게 여기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본의 사신들은 뭔가 문제가 많은 듯 하다. 이래저래 소설에 등장하는 사신들은 허당끼가 있어. 이 소설은 제목에서도 암시되듯 자살을 하려고 마음 먹은 12월 25일 눈오는 다리 위에서 아이바 준은 사신(자꾸 데스노트의 사신 이미지가 망상을 망친다)을 만난다. 은색 시계 위에 각인된 뱀모양의 '우로보로스 은시계'를 주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대신 3년 이후의 목숨을 내놓기로 한다. 자포자기 심정이었던 아이바는 사신과 거래한다. 비슷한 시기 자신이 죽기 마음을 먹었었던 그 다리에서 죽게 된 소녀인 이치노세 쓰키미를 살리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을 되돌리며, 그녀의 자살을 방해하며 막으려 한다. 원제처럼 정말 계속 그 생각을 막기 위해서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등 그녀에게서 자살을 포기하게 끔 만들려고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작은 선행이라도 하고자 함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둘은 밀고 당기듯하다 어쩔 수 없이 서로 끌어당기게 되고 남은 시한부인생의 반년동안의 애틋함을 아이바는 끊어내고자 노력하는데...

역시 내 연애세포는 다 죽어버린 듯 하다. 이래서 <스물 다섯, 스물 하나>를 열정적으로 몰입해 보지 못했나보다. 청춘들의 꽁냥꽁냥한 사랑이야기가 뻔하다고 느껴지면서도 마지막으로 흘러가는 결말이 새드엔딩이길 바라는 못된 심보가 슬슬 발동한다. 그러나 내가 가볍고 만만하게 봤던 이 소설은 352페이지의 아쿠아리움이라는 단어에서 뒷통수를 크게 후드려 맞은 듯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설마 진짜 그랬다고?

설렘 가득한 청춘 로맨스와 타임슬립 거기에 살짝 반전을 버무린 소설을 원한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일본소설이 다 무겁지만은 않다는 것.

굉장히 세련되거나 엄청난 의미를 부여한 진부한 글귀들은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의 매력은 뒷장의 "작가의 말"에 다 담겨 있었다. 세이카 료겐이 어떤 사람인지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이 글을 써준 것 자체만으로도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어떤 힘이 느껴졌다. 소설을 다 읽고 꼭 "작가의 말"을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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