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다산책방

 


 


==== 2019년 가을, 열독 응원 프로젝트와 함께

 올 가을 책과 함께 나만의 시간을 갖고자 신청했던 <다산북스 열독 응원 프로젝트 매3>. 이 프로젝트는 매주 1권씩 3권의 에세이를 읽자는 취지와 목적으로 3주간 진행되고 있다. 책을 좋아하지만 편식이 좀 많고, 갈등과 서사 구조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복잡한 것은 싫고, 독서량의 대부분은 일과 관련한 책과 집에서 아이와 함께 읽는 그림책과 육아, 독서 부분으로 채우고 있는 독서편식자인 내게, 이 프로젝트는 나의 시선과 반경을 벗어나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어서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인 세 번째 에세이를 마주하고 있다. 도착한 책은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이다. 이 책은 장르로 치면 미술 에세이로, 소설가인 줄리언 반스의 시선에서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표지를 보면서부터 느낌적인 느낌이 확 왔다.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책장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말이다. 반면 미술 에세이에 담긴 새롭고 생소한 내용과 구성방식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들여다보기

 이 책은 줄리언 반스가 1989년부터 2013년에 걸쳐 영국의 미술 전문잡지 현대 화가를 비롯한 여러 유명 잡지에 실었던 에세이들을 모아 펴낸 것이다.

 

==========작가


 작품 목록, 수상 내역을 보면서 작가의 화려한 이력을 살필 수 있었다.



==========차례

 



 이 책은 열 일곱 작가를 중심으로 작품 이야기와 작가 이야기를 조명하고 있다. ‘세잔, 마그리트등의 들어본 적이 있는 화가도 있었고 제리코, 들라크루아등등 생소한 화가가 더 많았다. 미술과 예술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확인 할 수 있는 서문’,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도 이 책의 구성과 방향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부분이다.

 

---우리가 명화 한 편을 감상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10초나 30? 아니면 꼬박 2? 중요한 화가의 전시회에는 300점을 거는 것이 표준이 되어 있는데, 그러면 그런 곳에서는 좋은 그림 한 점을 감상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일까? 그림 한 점에 2분을 쓴다면 300점을 모두 보기까지 열 시간이 걸린다.(중략) 마티스나 마그리트나 드가의 전시회에 가서 열 시간 동안 그림을 본 사람 있으면 손 들어 보세요. 나는 그런 적이 없다. 물론 우리는 골라 섞는다.눈이 먼저 관심을 끄는 것(또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가려낸다.(116)

 

---나는 사람들이 어떤 화가들(가령 라파엘전파)로부터는 졸업하고, 어떤 화가들(샤르댕)에게는 입문하고, 어떤 화가들(그뢰즈)에 대해서는 평생 한숨을 동반하는 무관심을 느끼는가 하면, 어떤 화가들(리오타르, 하메르스회이, 카사트, 발로통)은 다년간 의식하지도 못하다가 별안간 의식하게 되고, 어떤 화가들(루벤스)은 단연 위대하지만 언제나 그들에게 좀 무관심하고, 어떤 화가들(피에로, 렘브란트, 드가)에게는 우리가 몇 살을 먹든 각자에게 지속적이고 꿋꿋이 위대한 지위를 내어준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13)

 

 이 책이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미술과 작품에 대한 출발선을 돌아보게 했던 위의 문장들이었다. 날카로운 질문으로 느껴졌고 미술을 바라보는 나의,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미술관에 가서 어떻게 감상을 했는지, 책 등을 통해 미술 작품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아주 선명하게 환기시켰다. 미술을 1도 모른다는 확실한 깨달음을 얻었다. 10초 또는 30초의 그 짧은 시간마저 제대로 감상한 적이 없다.

 큰 수확이라면 잘 몰랐던 관심이 많지 않았던 미술작품을, 미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했다는 점이다. 미술을 1도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래서 더 줄리언 반스의 이야기가 기대가 된다.



=======캔버스 뒤에 숨은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일에 대해

 

---이 글들은 소설가의 관점에서 쓴 것이라는 점부터 여타 평론과 다르다. 사실을 수집하고 구성하면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사실을 입체적으로 드러나게 하고, 사실과 사실 사이의 공백을 매끈하게 채우는 건 역사를 소재로 글을 쓰는 소설가의 본령일 것이다. 그런 만큼 정교한 공예 같은 문장과 다양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에세이들이 어떤 독자들에게는 지식을 뽐내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선입견은 미술을 향한 반스의 순수한 애정에서 우러나온 헌신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면 금방 사라질 것이다.(403)

 

 소설마다 색다른 주제와 기법을 차용하는 소설가답게 줄리언 반스는 미술 에세이에도 화가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역자는 서술 형식에 대해 역사 소설 형식, 단상 형식, 사적인 감상 등의 방법 등 다양하다고 보았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장이기도 했고, 여러 번 책을 뒤돌아 살펴보았던 <1. 제리코 : 재난을 미술로>가 인상적이었다. 챕터은 세네갈 탐험대의 네 척의 배 중 프리깃함과 관련된 내용이다. 배가 좌초를 하자 뗏목을 만들어 탈출하는 극적인 내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한 편의 소설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챕터 는 그러한 재난이 어떻게 예술로 표현되고 승화될 수 있는지를 작가의 시선에서 다각도로 보여주어 아주 흥미로웠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 화가의 시선으로 취사선택하여 작품을 구성한 것, 일반인들이 <난파 장면> 작품을 보고 구성하는 시선, 또 화가 제리코가 8개월을 작업실에서 작품을 완성해가는 작가의 유추 과정, <난파 장면>에 대한 비평가, 들라크루아, 제리코의 입장을 담고 있어 <메두사의 뗏목> 작품을 입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하였다.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메두사의 뗏목>은 침몰 직전의 아슬아슬한 희망과 절망 사이의 한 장면으로 기억했을 것이다. 작품 너머, 작품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들은 <메두사의 뗏목>을 전경처럼 볼 수 있게 했고, 퍼즐의 많은 조각을 꿰맞춘 것처럼 넓고 견고하게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시선은 다양한 작품 속에서 작품과 화가의 생애, 방대한 배경지식, 비평적 관점, 사적인 시선들로 촘촘히 채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당대 최고 화가들의 그림 구석구석과 공명하며 캔버스 뒤에 숨은 그림자를 들여다본 집요하고도 흥미진진한 기록이란 평을 몸소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줄리언 반스의 이런 시선은 화가 마네의 이야기에서도 참 흥미있었다. 작품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은 보스턴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 만하임 미술관에 소장된 세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작가는 1993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를 보고 가장 좋았던 전시회로 기억한다. 마네의 사후 그가 그렸던 세 가지의 다른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을 한데 모았던 특별한 전시회. 1861년 멕시코의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 큰 빚을 지며, 스페인, 프랑스, 영국이 몰려든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작가의 시선은 한 갤러리에 전시된 세 작품을 찬찬히 비교하고 분석하고 음미하며 작품을 향해 있다. 세 작품의 구성, 총살 당하는 희생자 주변의 효과, 공간적 배경의 변화, 군인들의 발 자세, 손의 크기 등 아주 자세한 부분의 변화에 대해그 의미를 포착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 작품 역시도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화가가 세 작품을 통해 무엇을 선택하고 배제하였는지, 그 변화 과정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바를 작가의 시선과 함께 따라가다 보니 그림 한 장면이 아닌 그림 한 장면이 나오기까지의 큰 이야기들이 묶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화가 쿠르베의 작품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서적이나 전시회에서 봤다면 일차적인 감상에 그쳤을 것이다. 작가는 쿠르베의 작품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오르낭의 매장>, <화실> 등을 통해 쿠르베란 인물의 이면을 조명한다. 인물의 시선처리, 표정, 구도, 행위 안에서 화가 쿠르베가 그림으로 지향했던 바는 물론 어떤 성품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어 흥미로웠다.

 

 한 작품 앞에 서서 ~~~~~!’ 정도였던 아니 더 솔직히 5G급이었던 나의 시선은 덕분에, 작품 구석구석 눈을 돌려보게 되고, 작품 이면의 이야기들에 살을 붙여보게 되고 그 많은 이야기들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

 이 책의 힘은 단언코 예술과 미술 문외한이었던 나의 시선을 상당히 고급지게 확대하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문학책을 읽으며 작가의 시선과 포인트를 느끼듯이, 음악을 들으며 음악을 통해 지향하려는 바를 생각하듯이, 미술 작품에도 작가의 지향이 있다는 점을 눈 뜨게 되었다. 도무지 무엇을 표현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미술 작품이 이제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구석구석 또는 캔버스 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그림과 작품이 말하는 바를 아니면 색다른 시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발견, 감탄으로도 연결된다. 나는 이제 미술작품 5G감상자가 아닌 두리번두리번 의미 탐색자가 되었다.


---예술이 주는 지속적인 즐거움 가운 데 하나는 의외의 각도에서 접근하여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힘이다.(347)

 

 이렇게 <다산북스 열독 응원 프로젝트 매3> 프로젝트를 마친다. 맨 처음 독서력, 문해력의 향상이란 안내 문구를 보면서 오늘 이 시점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에세이집을 읽으며 바쁜 하루 마치고 책읽는 저녁을 실현하고자 했던 나는 마지막 책에서 충격을 좀 받았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던 기존의 책들과 달리 쉬이 넘기지 못했던 힘겹던 독서의 속도는 어느덧 가속이 붙었다. 방대한 작품을 꼼꼼하고도 차분히 읽어내는 줄리언 반스의 시선과 문장력에 탄복했다. 덕분에 나의 독서근육이 한겹 단단해진 느낌이다. 참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예술이 주는 지속적인 즐거움 가운 데 하나는 의외의 각도에서 접근하여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힘이다.(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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