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무선)
유진 피터슨 지음, 이종태 옮김 / IVP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처음 읽은 게 아마 대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지금과 표지도 달랐었다(지금이 훨씬 세련되게 변했다). 유진 피터슨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그냥 다윗 이야기를 재미있게 썼구나 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아직 내 리뷰생활이 시작되기도 전이어서(아마 대학 2학년쯤부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 내 감상이 정확히 어땠는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 천 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그 중에는 당연히 유진 피터슨의 책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무엇보다 그가 얼마나 탁월한 이야기꾼인지도 알게 되었다. 아는 게 많아지면, 보이는 것도 많아지는 법, 오랜만에 다시 손에 든 이 책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깊은 통찰로 가득 차 있는 작품이었다.




저자는 다윗의 인생에서 열아홉 개의 주요 장면들을 뽑아내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한다(총 20개 장이지만, 첫 장은 일종의 서론 격이다). 우리가 잘 아는 골리앗과의 대결,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의 우정, 나발과 아비가일 사건, 시글락 공동체와 블레셋에서의 삶, 마침내 왕이 되었지만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과 죽음까지, 다윗이라는 인물의 삶 전체를 차근차근 재구성한다.


이 이야기의 기본은 성경에 나오는 기사들이지만, 그 행간에는 상상력이 들어갈 수많은 틈이 있다. 저자는 매우 능숙하게 이 빈자리를 멋진 이야기들로 채워 넣는다. 마치 책 초반에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가 해 주셨다는 다윗 이야기처럼 말이다. 물론 이 상상력은 전혀 엉뚱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그럼직한, 그러면서도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다.


또, 저자는 시인이었던 다윗의 삶에 걸맞게, 여러 편의 시편을 뽑아 다윗의 인생의 한 장면과 연결시킨다. 물론 이건 아주 새로운 시도는 아니고, 기독교(와 유대교)의 오랜 전통 위에 서 있는 시도다.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건 ‘일상’이다. 책 초반 저자의 흥미로운 발견이 소개된다. 바로 다윗 이야기에는 단 한 번의 기적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기적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기적이란 소위 초자연적인 어떤 사건 같은 걸 말하는 것일 게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그렇다. 다윗은 직접 천사를 만난 적도, 강물을 멈추게 하거나, 죽은 사람을 살리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그의 삶은 철저하게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삶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향해 있었다. 이 말은 그가 살면서 한 번도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거나 도덕군자처럼 살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그는 여러 번 죄를 저지르기도 했고, 청동기 말 살았을 다른 위대한 군장들처럼 오늘날 기준과는 좀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끈질기게 하나님을 붙잡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건 오늘 우리의 삶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우리 또한 매순간 수많은 사건과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는 다양한 일들 속에서 살아간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 예배에 겨우 참여하는 것으로 가느다란 생명줄을 연장하곤 하는 그런 사람들이다(만나는 사람이 대개 같은 교인인 목사들만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 있는 이례적 존재들이다). 일부러 생각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이원론적 삶의 패턴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모범이다. 그는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 속 하나님이 아니라, 현실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할 능력이 바로 이런 능력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 능력은 강의가 아닌 이야기를 통해 전달된다. 유진 피터슨이 성경을 이야기로 풀어냈던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4-03-06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학 때부터 읽어 천 권이요? 노랑가방님 책 많이 읽으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읽어도 아직 천 권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대단하신데요?
이책 저도 읽었나 읽다 말았나 했던 거 같은데 다시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잘 지내시죠?^^

노란가방 2024-03-06 15:12   좋아요 2 | URL
그 때부터 쓴 리뷰를 세어 보니까 1000권은 넘더라고요 ㅎ
뭐 대단까지 할 일은 아닙니다..(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그런)
네, 한 번 쭉 읽어보실 만한 책이네요.
 


새로운 시리즈를 하나 시작해봅니다.

(너무 여러 개를 벌여놓은 것 같긴 하지만...)

얼마나 자주 업로드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 보고 싶은 건 다 해보려는..ㅋ

책을 읽을 때마다 소개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이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 가볍게 생각해고 손에 들었는데, 생각보다 읽기가 어려웠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번역 투의 문체가 참 힘들다. 당장 책의 부제가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이다. 무슨 말인지 뉘앙스는 이해가 되지만, 이게 우리말이 맞긴 한가? 보니 전문번역자가 아니라 박사학위까지 받은 관련 분야 전공자이다. 물론 모든 문장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좀처럼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는 문장들이 자주 보인다.


또 하나는 이 책의 저자가 가지고 있는 집필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 눈에 잘 안 들어온다는 점이다. 앞서의 부제를 보면서 처음에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일종의 대안자본주의를 제시하려는 것인가 싶었다. 물론 그런 내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예컨대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되는 미국 오리건주의 한 산지의 버섯채집인들로 구성된 캠프는 조금은 임금노동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 동남아시아에서 온 여러 사람들로 채워져 있긴 했지만, 그게 이 책의 저자가 찬양하는 어떤 목적이나 목표 같지는 않다. 애초에 이 송이버섯 채집 경제는 너무나 규모가 작아서 무슨 구조를 논할 만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럼 또 송이버섯의 생태와 관련된 다양한 과정들을 추적하는 식물학적 접근이냐, 이 또한 책에서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게 또 중심인가 싶으면 그건 아니다. 환경보호나 생태학적 관점도 담겨 있긴 하지만, 그 역시 메인은 아니고.




책 말미에 붙어있는 해제를 보면, 저자는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어떤 지역에 사는 특정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게 아니라, 송이버섯을 중심에 두고, 그걸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인 듯하다. 연구 주제가 독특하긴 하다. 여기에 포스트인문주의 같은 조금은 어려운 말을 사용해 설명을 하긴 하지만, 뭔가를 그려내고 있다는 정도만 와 닿는다. 애초에 이 맥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들은 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친 다큐 클립을 보는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 경우엔 그런 걸 또 한참 들여다보며 재미를 느끼긴 한다.


우선은 일본에서 송이버섯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해 자세한 서술이 눈에 들어온다. 송이버섯은 대규모로 재배할 수 없고 그저 채집할 수 있을 뿐이기에, 어떤 산업적인 구조라는 게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또 송이의 가치를 높여주는지라, 일본에서 (좋은) 송이는 단순한 금전적 보상과는 다른 차원의 선물로 여겨진다는 것.


한편으로 미국의 송이채집자들의 세계도 흥미롭다.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온 소수민족들이 대거 포진한 이들의 무리는, 저마다의 문화와 풍습을 가지고 있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버섯채집허가증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종종 사유지에도 들어간다)에서 송이를 채집하는 삶을 꾸려간다. 그러면서 이들은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틀에서 벗어난 일종의 자유를 누리는데 그들이 채집한 송이를 판매해서 생계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판매 과정이 일종의 경매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또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송이버섯의 생태 부분과 관련해서, 우리가 흔히 자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즉 인간이 개입을 덜 하고 알아서 각 생물들이 자라도록 하는 게 제일 좋다는 생각 또한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송이는 교란된 숲에서만 자라기 때문이다. 벌목이 이루어지고, 인디언들이 일부러 불을 내 화전을 일구고 떠난 자리, 겉으로만 보면 삼림이 훼손된 것 같은 그런 자리에서만 송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저 잘 ‘보존’된 숲은 ‘방치’된 숲일 수도 있다는, 그래서 오히려 생물의 다양성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지적은 꽤 새롭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결과적으로 이 책은 송이버섯을 둘러싼 수많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태피스트리와 같다는 느낌이다. 다양한 주제들과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 또 그들의 고향을 비롯한 다양한 지리적 내용들이 이리저리 섞여 풀려나온다.(알라딘에서 이 책의 분류는 인류학, 식물학, 생태학, 환경학까지 망라한다 ㅋ)


다만 버섯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경제가 뭔가의 대안이 될 수 있다거나 할 것 같지는 않다. 엄청난 찬사(대개 책의 추천사라는 게 그렇지만)가 오히려 살짝 부담스럽달까. 다만 책에서 묘사되고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어떤 변화를 주는 정도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은 손쉽게 책방에서 사서 돌아가는

우량한 소프트이자 하드웨어이기도 하다.

소설은 제대로 읽으려면 영화처럼 두 시간 만에 끝나지 않는다.

일주일은 자신의 상상력으로 읽으면서 즐기는

가성비 좋은 아이템이다.


야마시타 겐지, 『서점의 일생』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