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는 법 - 듣는 형식과 표현하는 언어를 알면 감동이 더욱 커진다 음악의 즐거움 1
오카다 아케오 지음, 홍주영 옮김 / 끌레마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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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모르는 게 있을 때 요새는 쉽게 구글링을 하곤 하지만, 여전히 뭔가 좀 더 진지하게 알고 싶을 땐 책을 찾아 읽는 편이다. 특히나 이번처럼 내가 전혀 모르는 문외의 영역인 경우 더더욱 괜찮은 책을 통해 기초를 닦아야겠단 생각이다. 도서관에서 가서 이 책을 골라 온 이유다. 제목부터가 (수영 할 줄도 모르면서 백과사전을 읽으며 수영에 관해 지식을 쌓은) 딱 나에게 맞아 보였다. “음악을 듣는 법”이라. 이 책을 읽으면 나도 클래식 음악을 좀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가져왔다.


물론 그런 심미안은 한 번에 생기는 게 아니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당장에 뭔가를 알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우선 책 자체가 시대별로 음악사를 훑어가면서 각각의 특징을 적어두는 식의 백과사전식 접근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일이란 무엇인지, 음악에 관해 말하는 건 또 무엇인지 하는 식으로 조금은 철학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수많은 고전 시대 음악가들이 별다른 설명 없이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헤겔과 아도르노 같은 철학자들도 여기에 거들고 나선다. 아, 책 제목은 왠지 나 같은 사람에게도 친절해 보였으나, 저자는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었나 보다. 물론 가끔은 역사적 접근과 시대상황 같은 요소들을 언급해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최소한 음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애호가나 관련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좀 더 잘 어울릴 듯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음악을 듣는 중 음악과 ‘공명’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소위 말해 감동이라든지, 뭔가 찌릿 하고 와 닿는 일들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뭔가 분명 마음을 움직였는데, 그걸 적절한 표현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일만큼 답답한 것도 없다. 어떤 이들은 그냥 음악은 느끼면 된다고 나무랄 지도 모르지만, 사실 저자에 따르면 그런 식의 태도 또한 음악에 대한 하나의 사조/경향일 뿐이다.


저자는 음악을 하는 것과 듣는 것, 그리고 말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하는 것’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하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 일에 참여하는 걸 말하고, ‘듣는 것’은 말 그대로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을 감사하는 걸 말한다. 그리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들은 음악에 관해 나름의 설명이나 해설, 감상을 하는 일을 말한다.


시대에 따라 이 일들은 서서히 분리되어 왔다. 18세기까지의 많은 곡들은 사람들이 직접 연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꼭 잘 사는 집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었고, 가족끼리 함께 연주하는 시간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브람스 이후의 오케스트라 음악은 너무 비대해져서 더 이상 아마추어들이 간단하게 연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는 일과 듣는 일이 분리된 것이다.


그렇게 음악이 전문가들의 일이 되어버리면서 보통의 애호가들은 이제 직접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할 길이 적어져버렸다. 자신의 의견을 말할 기회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일종의 틈새 산업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해주는 중재자, 즉 비평가들이 등장했다. 다시 한 번 음악에서 말하는 것이 떨어져 나온 이유다. 흥미로운 설명이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특히 세 번째 요소인 ‘말하는 일’을 보통의 애호가들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의 구조에 관해 간략한 설명을 하고, 음악에 대한 서로 다른 몇 가지 접근 방식을 제안해 주고, 마지막 장에서는 직접 뭔가 악기를 연습해 보고 말해볼 것을 권유도 한다.




확실히 음악은 우리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내 어린 시절이 그랬듯,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집에서나 어린 시절부터 악기 연주를 배우고 관련 문화를 향유하고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난점(일찌감치 아버지 사업이 망한 우리 집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일단 어린 시절 그런 취향을 갖지 못한 사람은, 나중에도 음악에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뭐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이제라도 관심을 갖고 도전해 볼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클래식 음악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다만 간만에 다시 좀 찾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뭘 몰라도 저자의 말처럼 어느 순간 나와 공명하는 지점을 발견하고, 내가 좋아하는 양식을 찾아내고, 그러면서 조금씩 빠져들게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다만 이 일에는 이 책 말고 좀 다른 책의 도움이 또 필요할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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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들의 로마 (지도 세트)
질 샤이에 지음, 정진국 옮김 / 이미지프레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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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도시에 관한 정보를 찾다가 우연히 만난 책이다. 일단 그 그림체부터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이건 사야겠다 싶은 순간, 책값이 64,000원이나 된다는 걸 알았다. 대형 판형에 전면 컬러 도판에, 작가가 공들여 그린 그림이니 이해가 되면서도 너무 비싼 가격에 주저됐다. 개인 블로그에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온갖 할인과 마일리지 돌려받기를 해도 54,000원이라 너무 비싸 잠시 물러난다는 내용을 썼는데, 30분 만에 익명의 후원자님이 책값을 보내주셨다. 아,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다.


책은 금세 읽힌다. 전체적으로 큼직큼직한 사진과 지도가 중심인 책이기 때문이다. 역시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손으로 직접 그려낸 4세기 로마시의 모습인데, 책과 함께 딸려온 대형 브로마이드에는 이 모든 장면이 한 장에 담겨 있다(지금은 내 방 벽에 붙어 있다). 보는 맛이 있는 책.


이 정도 퀄리티로 로마의 곳곳을 묘사했으면 좀 더 흥미롭게 설명을 더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책은 가공의 한 인물이 황제에게 전하는 속주 총독의 편지를 들고 로마에 들어오는 스토리를 갖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별 재미도 의미도 없었다. 그가 걷는 길을 따라서 보이는 것들을 설명하는 식인데, 빠지는 건 너무 많고, 설명도 좀 부실하다.

고대 로마에 대해 어느 정도 선이해가 없다면, 이게 어디를 말하는지, 무슨 이야기인지 거의 와 닿지 않을 만한 내용(물론 이런 책을 사는 사람치고 고대 로마에 대한 선이해가 없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만)이다. 또, 길을 가면서 보는 모습이라면, 그 본문 옆에 지금 걷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지도의 일부를 넣어두는 센스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건 뭐 글 한 번 보고 지도 한 번 찾아보고 하는 식으로 보게 만들었으니...


하지만 이 모든 불평거리에도 불구하고, 일단 손에 넣고만 있어도 뿌듯해지는 책. 다른 책들을 읽으며 필요할 때마다 찾아 들춰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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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독교 통치하에서 이교도 순교자는 거의 없었다.

기독교가 더 관용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교가 그 당시 목숨을 걸기엔 너무 초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에릭 R. 도즈, 『불안의 시대 이교도와 기독교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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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경계의삶 - 1945~60년대 농촌정착사업으로 본 한국 사회 역비한국학연구총서 42
김아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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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난민”이라고 하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프리카나 중동 어딘가에서 벌어진 내전으로 고향을 떠나 유럽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워낙에 난민 지위 인정에 까다롭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라여서, 이런 사유로 국내에 거주하는 사람을 보는 건 하늘의 별 따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이 땅에도 수없이 많은 난민들이 존재했다고 말한다. 불과 70여년 전만해도 말이다.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지적에 눈이 번쩍 뜨였다.



책은 해방 직후인 1945년부터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군부독재 정권을 유지하고 있던 1960년대까지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다양한 종류의 난민들의 삶을 다룬다. 생각해 보면 이 시대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잃고 떠돌았다. 우선은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이나 만주 지역으로 이주했던 이들이 해방을 맞아 귀국을 했고, 곧이어 터진 전쟁으로 북한 지역 주민들 중 상당수가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이 기간 애초에 남한에 살고 있던 사람들도 집을 떠나 피난민이 되었고.


그뿐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난민은 계속 발생되었다. 제주에서 일어났던 4.3사건과 여수, 순천 등지에서 발생했던 여순사건, 그 이외에 지리산 등지에서 이어진 빨치산 소통작전들 까지, 남한 지역에서 일어났던 좌익 군사활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양민들까지 피해를 입었고, 그중 많은 수가 다시 한 번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상당기간 동안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이제 막 세워진 정부와 공화국으로서의 전통을 전혀 갖지 못한 국민들,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토에 집을 잃고 떠도는 수 백 만이 넘는 사람들까지. 이런 나라가 앞으로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이런 상황을 수습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당시 존재했던 정부는 공화국에 대한 전통이 전혀 없는 2천 만 명의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무엇보다 그 자신들조차 그런 경험이 전혀 없었던 인사들로 구성된 정부였다. 여기에 난민들을 지원할 수 있는 충분한 경제적 여유도 부족한 상황이었고, 선거조작으로 종신집권을 꾀하던 이승만이 하와이로 도망친 후 얼마 못가 군사 반란까지 일어났으니 설상가상이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정부가 시행했던 조치들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실제 난민들의 삶에 충분한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선은 일부 난민들(4.3이나 여순사건, 빨치산 토벌과 관련된)을 발생시킨 요인이 당시 정부이기도 했지만, 사실 전쟁통에 제대로 된 행정경험이 부족했던 정부가 난민들을 모두 보살핀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정부는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피난민들을 주로 농촌에 정착시키고자 했는데, 이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농지를 다시 확보함으로써 생산력을 늘리려는 의도에서였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긴 한데, 문제는 농지라는 게 그냥 아무 땅이나 갈면 되는 것도 아니고, 1년 한 번 수확을 하는 그 때까지 버티기 위해 필요한 것들도 적지 않았다는 것. 당장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보면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너무 당시 정부 탓만 할 건 아니라는 말이다. 심지어 저자는 남한 내 반란세력 토벌 과정에서 이루어진 주민 소개와 공출 등의 부담을 지게 한 것에 대해서도 꽤 비판적으로 서술하지만, 그런 조치는 전쟁 상황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 내전은 적과 아군의 구분 자체가 매우 어려운 상황인지라, 부수적인 피해를 논하는 게 사치일 수도 있고.(저자의 군대에 관한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했다고 보인다) 물론 그 과정에도 좀 더 세심한 주민 위무작전이 시행되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세력은 자신들의 부족한 정통성을 만회하려고 뭔가 성과를 내려고 안달이었다. 그 중 하나가 전국의 부랑아들을 데려다 갱생을 시켜 국가발전의 역군으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는데, 이들 “부랑아”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앞서 말했던 난민들이기도 했다. 애초에 축적된 자본 자체가 없는 사람들은 삶의 환경을 개선하는 게 극히 힘들었을 테니까.


온갖 단체들이 만들어지고, 이들은 바닷가나 산지로 보내져 개간사업에 뛰어든다. 개간이 완료되면 그 땅을 분배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이게 또 생각했던 것만큼 잘 안 됐나 보다. 애초에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에 대한 처우 또한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까스로 수 년 간의 노력 끝에 개간에 성공했다고 해도, 행정착오라든지, 그 땅의 원주인이 따로 있었다든지 하는 이유로 제대로 분배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일부 사건은 2000년대 초반까지 와서야 해결되었다고 한다).


사실 앞에서 봤던 내용들은 누가 오더라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지만, 군사정권에서 이루어진 이 강제 차출/동원에 근거한 개간 운동과 그 안에서 벌어진 다양한 육체적 학대, 합동결혼식(대부분은 서로의 얼굴도 몰랐다) 같은 비윤리적인 조치들은 비판받을 측면이 충분하다. 이 사업을 통해 농지가 늘어나고 수확량이 증가했다는 성과를 인정하더라도 말이다.



과거에 있었던 국내 난민들의 처지를 돌아보면서, 오늘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난민들도 자연히 바라보게 된다. 우선은 다양한 이유로 망명의 문을 두드리는 외국인들에게 여전히 우리는 차가운 반응만 보이고 있고, 여전히 절박한 처지에서 어쩌지 못하고 있는 국내의 여러 소외계층에 관해서도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국가가 나서서 모든 걸 다 해 줄 수는 없는 법이다. 재정적으로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낸 세금을 사용할 대는 충분한 공감대, 혹은 정당성을 획득해야 한다. 하지만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면, 차라리 좀 더 빨리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과거의 실책과 문제를 되돌아보면서 좀 더 나은 정책적 노력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은 저자의 논문을 엮은 거라서 내용이 그리 쉽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다양한 도표와 책 뒤편에 실린 그 당시 행정명령서들, 또 생존자들에 대한 구술 인터뷰 자료 등도 포함됭서, 관련 연구를 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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