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엔딩 1
벤 윈터스 지음, 곽성혜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새해를 맞이하여 읽은 책은 지구 종말을 다룬 벤. H. 윈터스의 『모두의 엔딩 1』이다. 2023년 12월 31일에 본 영화는 지구 종말을 그린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이다.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겠다는 각오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내일 혹은 몇 달 후에 세상이 망한다면의 가정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버텨보겠다는 약한 마음의 의지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지구 종말에 꽂힌 이유는. 


벤. H. 윈터스의  『모두의 엔딩 1』의 설정 역시 여느 종말물과 다르지 않다. 소행성 마이아는 6개월 후에 지구에 충돌할 예정이다. 과학자들은 75년 만에 발견한 마이아의 항로를 예측하느라 분주했고 결국 충돌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자살자들이 속출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떠나거나 약에 취한 채 살아가는 세계를 그린다. 


 『모두의 엔딩 1』 속 종말의 세계는 느리고 고요하다. 행정은 완전히 멈춰 있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 어중간한 상태에 놓여 있다. 화폐 가치는 떨어졌지만 그래도 돈의 위력은 여전하다. 지구가 망한다고 해도 자본주의는 건재하다. 주인공 헨리 팔라스 형사는 이제 막 순경에서 경장이 된 인물이다.  『모두의 엔딩 1』이 시작되자마자 팔라스 형사는 사건과 마주한다. 


맥도날드를 흉내 낸 매장 화장실에서 보험 회사 직원인 피터 젤이 죽어 있다. 벨트로 목이 매달린 채. 자살자의 형태이지만 팔라스는 타살로 의심한다. 눈가에 멍이 들어 있고 다른 소지품은 그대로 있지만 휴대전화만이 사라져 있다. 지구 종말의 시대가 그러하듯 모두들 젤이 자살을 했다고 생각하고 사건을 덮으려 한다. 팔라스만이 텅 빈 거리를 질주하며 사건을 쫓는다. 


전임자들이 모두 떠난 상태에서 급하게 진급이 이루어져 팔라스는 경장이 된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뛰어난 수사력을 가지지도 화려한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죽은 아버지가 남긴 노트에 쉴 새 없이 메모를 하는 모범생의 면모를 가진 형사는 사건의 배후를 알아가기 위해 분주한 노력을 한다. 사건의 진상을 찾는 듯싶다가도 헛다리를 짚기도 한다. 


의문을 놓지 않는 집요한 성격이 팔라스를 살게 한다. 어차피 6개월 후에 다 죽을 텐데 살인범을 잡아서 무얼 하겠는가. 팔라스는 그런 고민 따위는 하지 않는다. 망해가는 세계 안에서도 인간의 존엄은 유지되어야 한다. 살인범은 잡혀야 하고 그에 맞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모두의 엔딩 1』의 결말을 알고 나면 쓸쓸해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은 끊기고 전화는 통신 두절 상태에 내내 놓였다가 가끔씩만 연결되는 상황에서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곧 사라질 지구가 아니라 인간이 문제임을 그래서 파괴되는 것이 정당하구나 수긍하는 것이다. 팔라스 형사는 추리 소설에서 만나기 힘든 성실 그 잡채의 인물이다. 착하고 예의 바르며 모든 것을 알아도 모른 척한다. 이상한 루머를 맹신하는 여동생을 혼내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꼬여 있거나 비틀어진 내면을 가진 형사가 아니라니. 부디 그만이 살아남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U 케어 보험
이희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3년에 읽은 마지막 책은 이희영의 『BU 케어 보험』이다. 이희영의 작가의 전작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를 뜻깊게 읽었기에 신작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는 부지런하게 책을 세상에 내놓았고 기다림에 찬 독자는 기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책을 펼쳐도 모험과 흥미의 세계로 데리고 간다, 이희영 작가의 작품은. 


다들 보험 하나씩은 들었을 것이다. 먼 훗날 어떤 날에 닥칠지 모를 불행에 대비하자는 마음으로. 보험이란 게 불행을 담보로 하는지라 거부감이 있었다. 아프면 그냥 죽자는 마음에. 수익자를 누구로 해 놓아야 할지 난감한 마음 더불어. 몇 번 들었다가 해약하기도 했다. 지금은 단 두 개만 남겨 두었다.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보험이라 지금은 그 같은 보장을 들 수 없다고 하기에 자동이체를 걸어 두고 통신비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언젠가의 내가. 제가 지금 아프니 서류를 첨부합니다. 전화를 걸 수 있는 용도로 말이다. 안전 이별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별 앞에 안전을 붙이게 된 세상이라니. 정말 지구 대종말이 멀지 않았나 보다.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회자정리라는 성어를 집 안 곳곳에 걸어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 이별은 공포가 되어 버렸다. 헤어지자고 말했더니 대낮에 염산, 칼부림, 집 앞에서 기다리기 같은 행위로 돌아오고 있다. 


이희영은 『BU 케어 보험』이라는 다소 독특하고 낯선 방식으로 우리를 위로하고 있다. 조리원에서 만난 네 명의 엄마는 보험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험 상품 설명만 들어도 커피 쿠폰을 준다는 말에 이끌려서. 직원이 설명하는 보험의 형태는 이렇다. 먼 훗날 성장한 자녀에게 이별 상황이 닥치면 자료를 토대로 케어 서비스를 해준다는 것이다. 


암 보험, 실비 보험, 치아 보험은 들어 봤어도 이별 보험이라니. 몸이 아닌 마음에 병이 났을 때 케어 서비스를 해준단다. 시간이 흐르고 네 명의 엄마가 낳은 자녀들은 어른이 된다. 그들 자녀는 각자의 사정으로 사랑 후 이별을 경험한다. BUC라고 하는 브레이크 업 컨설턴트, 이별 전문 상담가가 찾아간다. 말이 좋아 환승 연애지 내리지도 않고 다음 역으로 건너가버리는 얌체족부터 스토킹을 하면서 사랑이라고 울부짖는 인간을 상대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다양한 보험을 들 것이다. 그중에 안전한 이별을 위한 보험도 있으면 어떨까 하는 기발한 상상으로 『BU 케어 보험』은 쓰였다. 이별 후의 마음을 살펴주는 보험이라니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소설의 세계로 들어와 현실이 된다.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아 방치해놓기 쉽다. 시간이 흘렀으니 나았겠지. 안심해버리곤 한다. 어느 날 마음은 무너진다. 마음이라는 게 없어진다. 


보이지 않는다고 그곳에 없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음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커피 두 잔도 안 되는 비용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면. 만기 환급은 되지 않지만 만기 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따로 있다고 하니 가입서 얼른 주세요. 이별 전문 상담가를 만나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이런 보험의 혜택이 있다는 걸 알기만 해도 이별이 무섭지 않을 수 있잖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피스 괴담 안전가옥 FIC-PICK 8
범유진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게 맞는 건가. 쉬면서도 회사물을 읽고 있는 내가. 안전가옥에서 기획한 시리즈 『오피스 괴담』을 읽으면서 등에는 식은땀이 심장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푹 쉬어도 될 것을. 왜 나는 미련하게 두고 온 그곳을 떠올리면서 혼자 호러 영화를 찍고 있는 걸까. 완전 사노비가 되어버린 것이었다는 걸 것이었다는 걸. 답이 없는 노답 인간인지라 그런지도. 『오피스 괴담』은 무섭고 소름 돋았다. 


첫 번째 이야기 범유진의 「오버타임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을 들려주었다. 오랜 취업 준비 끝에 들어간 회사에서 설거지, 간식 준비에 지친 주인공이 기획서를 쓴다. 저장할 수 있는 곳에 심지어 USB에도 저장을 하고 잠깐 화장실에 갔다. 그곳에서 여자의 음성을 들었고 혼비백산해서 사무실에 돌아왔지만 저장한 기획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USB는 아작이 나 있었다. 


나 너무 섬뜩하고 소름 끼쳐서 죽을 뻔했는데 이야기를 들은 이는 코믹이야 물었다. 아. 경험의 차이에서 오는 다르게 받아들이기가 이런 것이구나. 느리게 문서 작업을 하고 간밤에 컴퓨터가 폭파될까 봐 메일에도 보내고 카카오톡 나에게도 보내는 나는 한 달 넘게 작업한 기획서 파일이 사라진 장면에서 섬뜩함과 함께 공포를 느꼈는데. 멀리서 보면 웃길 수도 있다니. 「오버타임 크리스마스」는 인간이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보여준다. 


「명주고택」은 더한 공포와 슬픔의 무게를 독자에게 쥐여준다. 경쟁사를 제치고 입찰 건을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회사의 대표 이야기는 사는 건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다시 알려준다. 세 번째 소설 「행복을 드립니다」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윤미의 마지막 행동은 정당화할 수 있을까. 상황을 주고 차곡차곡 당위를 쌓아갔지만 당하는 그이 역시 어쩔 수 없는 회사 인간임을. 소설은 인물이 처한 현실을 다각도로 곱씹게 만들었다. 


김혜영의 「오피스 파파」는 알레고리적인 기법을 보여줌으로써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회사 인간의 의미를 찾는 소설이다. 고졸 출신으로 힘겹게 들어간 회사에서 갑질을 당하는 민정은 쓰레기통 하나를 얻는다.  쓰레기로 인식하여 버리면 소실된다는 쓰레기통 이야기를 읽으며 스스로를 쓰레기로 여기지 않게 조심히. 마지막 소설 「컨베이어 리바이어던」은 코로나를 거치면서 무너진 가족의 풍경을 딜리원이라는 쇼핑몰의 물류센터로 가져온다. 잃어버린 아이패드를 사기 위해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는 소민은 윤주를 만나 기이하고 참담한 일을 겪는다. 


『오피스 괴담』을 읽으면서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는 자, 가 있을까. 괴담이라고 제목에 붙여 놓고 무섭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했지만 『오피스 괴담』은 너무너무 공포스럽고 숨이 턱턱 막혔다. 알죠. 현실은 소설 보다 더하다는걸. 악당이라고 칭하기에도 민망한 악당 대마왕들이 보통 사람인척 설치고 다닌다는걸.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느덧 악의로 가득한 촉수를 가지게 되었다. 


그저 일을 하고 싶어 일을 하는 것일 뿐인데. 그저 일을 해야 해서 일을 하는 것일 뿐인데. 일상물이 아닌 공포 호러 서스펜스 스릴러물의 장르로 살고 있는 건지. 오피스라는 말 뒤에 괴담을 붙이고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소비하고 있는 건지. 모를 일이다고 쓰고 싶지만 명백히 알고 있다. 평범한 일상은 꿈에서나 가질 수 있는 공포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3-12-25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 무서워서 새벽 늦게까지 혼자서 야근할 수 있겠어요.ㅠㅠ
 
세상 끝의 살인 첩혈쌍녀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구 종말, 그 와중에 일어난 살인 사건, 을 해결하는 여성 듀오. 책의 소개를 읽고는 읽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 되었다. 역대 최연소,  초신성의 등장,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이라는 수식어 보다 줄거리에 압도 당했다. 피곤한 밤이었고 이대로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좋겠다 싶은 그런 밤이었으니까. 아라키 아카네의 『세상 끝의 살인』을 주문했다. 놀랍게도 책은 다음날 도착했고 지구는 그런대로 굴러갔고 책을 읽으리라는 마음만 책상에 던져 놓은 채 일을 다녔다. 


본격적으로 『세상 끝의 살인』을 읽기 시작한 건 주말 아침이었다. 곧바로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두 달 뒤 지구는 망한다. 소행성은 일본 대륙을 겨냥해 떨어진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일본을 탈출해 유럽이나 남미로 떠나는 무리가 있고 사는 곳에 남는 무리가 있다. 주인공 하루는 남는 쪽을 선택한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떠났고 며칠 전 아버지는 목을 매 자살을 했다. 남동생은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곳에서 하루는 운전면허 학원에 간다. 운전을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학원에는 이시가와라는 강사가 홀로 있었다. 그때부터 하루와 이시가와는 운전 연수를 한다. 텅 빈 거리와 산속을 달린다. 산속에서 오지를 찾아 자살을 한 자살자들의 시체와 마주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온 하루는 방 안에서 나오지 않은 동생을 위해 컵라면을 놓아두고 아버지의 시체를 치운다. 날이 밝자 운전학원에 간다. 연수를 위해 차를 고르고 곧 그 안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는다. 하루와 이시가와는 차 트렁크에서 참혹하게 죽은 여자를 발견한다. 


그야말로 의문이다. 이 망해가는 세상에서 도대체 왜 살인을 한단 말인가. 안 그래도 두 달 후에는 모두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텐데. 설령 살인을 했더라도 수고스럽게 시체를 왜 차 트렁크에 숨겼을까. 이시가와는 죽은 여자가 남긴 흔적을 찾아내고 수사에 착수한다. 운전 강사에서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수사관으로 이사가와의 모습이 바뀐다. 『세상 끝의 살인』은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을 보여준다. 평범하지 않은 인물을 만들어 내는 솜씨 또한 훌륭하다. 


지구 멸망의 소재는 흔하디흔해서 이제는 그래 어떻게 망해가는 이야기를 보여줄 건데 팔짱 끼고 건방진 자세를 취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소행성 충돌 설정은 더 그렇다. 그런데도 이제 첫 소설을 발표한 신인 아라키 아카네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인물에 그렇지 않은 사건을 가져와 속도감 있는 전개를 펼친다. 방심하고 읽었다가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 뒤통수를 맞게 된다. 종말의 순간을 사실적으로 그려 진짜 지구 멸망이 다가올 때 『세상 끝의 살인』을 교본으로 삼아 버틸 수 있을 것도 같다. 


하루와 이시가와는 곧바로 경찰서로 달려가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린다. 두 달 후에 모두 죽을 것이라 경찰서는 폐쇄 직전의 상태이지만 아직 남아 있는 경찰관이 있었다. 민간인 신분이지만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정의감과 슬픔으로 사건을 직접 해결하기로 한다. 인류 멸망 직전에 살인범을 잡는 게 무슨 소용인가. 따위의 의문은 접어둔 채.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말하지 않아도 곧 지구는 어떻게 되리라 예감이 들지만 배울 건 배우고 납부할 건 납부하는 성실 시민의 자세로 살아도 나쁘지 않으리라. 『세상 끝의 살인』은 이상한 감동의 결말을 남겨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인정의 『고통 구경하는 사회』의 어느 한 부분을 읽다가 깜짝 놀라고 슬펐다. 글의 대부분은 어느 장면의 묘사로 시작된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사건, 사고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혹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면서. 깜짝 놀라고 슬펐던 장면은 기자 김인정의 과거 회상 장면이었다. 기억 하나라면서 들려주는 그 이야기는 오래전 나의 한 시절이었다. 


출석만을 목표로 나중에는 그것도 신경 쓰지 않고 학교를 다녔다. 학교 정문 앞에서 돌아 나왔던 적도 많았다. 가도 엎드려 자거나 책을 읽거나였다. 그래도 듣긴 들었다.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그들은 말했다. 여기는 안 된다고. 꼭 위로 서울로 올라가라고. 나는 그곳에서 겨우 한 시간의 거리를 이동했을 뿐이다. 이것도 올라온 거 맞겠지. 


대학에서 만난 이는 자신은 졸업을 하고 꼭 서울에서 취업을 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서울의 감성이 좋다고. 나는 대체 이 애가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나는 또한 겨우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 더 이상의 전진은 없이. 김인정은 가족 중에 처음으로 서울로 대학을 갔더랬다. 새내기 시절 고향에서 올라온 언니와 친구들이 자리에 모였다. 언니의 사투리를 듣고 친구들은 웃고 자신은 창피했다는 회상. 


나는 사투리를 쓴다. 근래 들어 자주 서울 사람들과 통화할 일이 많은데 그들의 사근사근하고 나긋한 어조를 듣고 있자니 내 말투가 신경 쓰였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억양. 서울이 특별한가. 특별하지. 그래서 서울특별시.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읽어갈수록 내가 느끼는 소외감은 나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닌 언론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뉴스를 본다. 뉴스를 본다고 썼지만 뉴스를 보는 게 맞는 걸까. 뉴스에 주입되고 있는 건 아닐까. 보여주는 대로 보는 건 보는 게 아니다. 감염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 입맛에 맞게 우민화를 넘어 식민지화되고 있는 것. 『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말한다. 중앙 언론이 자행하고 있는 짓. 지역을 배제하고 소회하는 짓. 지방에 태풍이 불어도 서울이 고요하면 뉴스 또한 고요하다. 


알 권리는 대체 누구를 위한 알 권리인가. 『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묻는다. 알 권리를 위해 어디까지 뉴스에 타인의 고통을 보여줘야 하는지. 선을 넘기 시작한 요즘의 뉴스 행태를 비판한다. 우리는 어쩌다 고통을 목격하는 게 아닌 구경꾼의 자세로 살아가게 되었는지. 우리의 문제가 아닌 언론과 미디어의 잘못임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며 고통에 둔감하다 못해 고통에 기대어 위로를 받는 오늘의 나를 반성하게 한다. 


여기에도 사람이 산다. 작은 일에 울고 화를 내면서. 이것만 알아도 뉴스는 공평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