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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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으며 많은 부분에서 뜨끔했다. 그가 실수라고 먼저 밝히는 '결정 장애'라는 말로부터 시작해서 누군가를 웃기기 위해 행했던 행동과 순간이 부끄럽게 느껴진 것이다. '결정 장애'는 이것도 저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자신을 지칭할 때 흔히 쓰던 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이고 장애라는 말에는 '부족함, 열등함'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한 개인은 다양하게 정의 내릴 수 있다. 그것을 특정 성별로 단순하게 구분 짓거나 직업적인 분류로 나눌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쉽게 얘기하곤 했던 여자는 이래야 한다든가 남자는 저래야 한다는 이분법의 시각을 버려야 한다. 여성이면서 학생일 수 있고 주권을 가진 국민일 수 있는 것이다. 사회가 합의하는 평등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함을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말한다. 처음부터 우리는 평등할 수 없다. 평등하다고 믿는 자신이 있을 뿐이다. 평등하지 않다고 여기게 되는 순간 맞게 될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속한 사회는 정의롭다고 믿는 것이다.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권을 공부하고 차별을 연구하는 저자조차도 그 말이 차별의 언어인지 모른 채 썼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곳곳에서 만난다"라는 말로 차별의 문제를 밝혀 나간다. 흑인 분장을 하고 흑인을 비하하는 개그를 할 때 누가 웃는가가 아닌 누가 웃지 않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개그를 할 때 누군가를 웃길 생각만 했지 누가 웃지 않고 슬퍼할지를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나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불편한 시선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편견을 가지고 현상을 들여다보려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별을 당했다는 기억이 있었지 차별을 했다는 순간을 떠올리지 못하고 살았다.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로의 이행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쌓일 때 우리는 차별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외모와 성별로. 출신 지역과 학교로. 부모의 존재 여부로.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나의 피해 망상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었다. 아니었다. 이 부분을 읽고 나서였다.

어빙 고프먼은 부정적인 고정관념인 낙인이 내면화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한 결과, 사회가 부여한 낙인을 자신 안에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개인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굳이 타인들이 노골적으로 차별하지 않아도 본인들이 소극적으로 행동하면서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게 차별적인 구조가 유지된다. 차별을 받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부족하고 열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저항을 하지도 않는다.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中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차별을 받았던 자신이 절대 예민한 것이 아니었음을 오랫동안 견고하게 지켜져 왔던 차별의 역사를 열거하면서 위로해 준다. 국가와 사회, 집단이 행했던 고정관념이 우리를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만들었다. 최근의 시사 문제를 끌어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오랫동안 차별과 인권을 연구해온 학자답게 보편적인 상식을 풀어 놓는다. 누구라도 이해하고 호응할만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

약자끼리는 연대가 가능하다? 그런 줄 알았다. 약자라고 스스로를 여기던 그들은 다른 지위를 가진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밝힌다. 우리를 열등하게 만드는 것과 열등함을 낙인처럼 받아들이며 살게 하는 것은 자신들은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우리였다. 우리가 우리를 차별주의자로 만들었다. 내가 스스로를 평등과 정의의 세계에서 멀어지게 한 것이다. 누가 웃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면 된다. 누가 웃지 않고 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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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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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둘 이상 모이는 곳이라면 잘 가지 않으려고 한다. 일할 때는 어쩔 수 없으니까. 꿋꿋이 나가서 버티다가 돌아온다. 다른 사적 모임을 만들지 않고 가입하지 않고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지 않는다. 일상을 견고하게 다지는 편은 아니지만 어쩐지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갔다가 돌아오면 보이지 않던 일상이 훌쩍 나타나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기억나는 혹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한 기억이 잔존하는 모종의 일들이 있었다. 선의는 악의로. 친밀함은 영악함으로. 의도하지 않은 다른 마음이 끼어들었다.

임솔아의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는 그런 마음이 있다. 둘 이상의 사람이 모였을 때 생기는 변질된 마음이. 오해하고 왜곡하는 타인의 말이 이 삶을 이토록 쓸쓸하게 만든다. 임솔아가 펼쳐 보이는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대체 이 사회는 왜 이렇게 못되고 심술 맞을까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가는 아이가 일하는 곳에서 사고를 내서 책임을 져야 할 때 어른의 목소리는 없었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정신 질환이 있음을 입증해야 하는 가혹함이 있을 뿐이다(「병원」).

자신을 보러 오다가 죽은 친구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어른들은 친절하게 먼저 일러준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는 어리둥절하기만 하다(「줄 게 있어」). 원룸텔에서 둘만의 보금자리를 꾸미는 것은 무리한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다시 하자고」). 문단 내 성폭력의 목소리가 나올 때 쓰인 「추앙」은 무참한 시간의 기록이다. 같잖은 것들이 시를 쓴다고 문학을 한다고 선생질을 한다. 시적인 것의 허용이라고 말하며 성추행을 하고 고발을 하자 오히려 피해자인 척 굴었다. 문학 안에 문학이 있단 말인가.

임솔아의 세계에는 해결되지 못한 빚과 병원비가 쌓여 있다. 여행지에서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생을 돌보며 돈의 계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계이고(「신체 적출물」) 애플망고를 들었다 놓았다 하자 그냥 먹으라고 말하는 일상의 여유가 사라지지 않은 세계이다(「눈과 사람과 눈사람」). 그들이 처한 처지를 소외라고 단정 지으며 말하면 좋을까. 그들은 분명 소외되어 있다. 가족과 친구와 다정한 목소리로부터.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 담긴 여덟 편의 소설의 결말은 대부분은 내일이 없는 상태로 끝난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임솔아는 묻는다. 『눈과 사람과 눈사람』은 정상도 비정상도 이 세계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여권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만료 기한이 지나 어디로도 출국할 수 없는 상태의 여권. 기한을 늘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에는 돈이 없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딜 나이에 병원비를 내기 위해 정신 질환이 있음을 입증받는 아이에게 내일은 도착해 있을 리 만무하다. 사람이 두려운 시대. 그들이 내는 목소리가 피해의 증언을 가로막는 시대.

소설과 소설가를 거리두기하며 냉철한 눈으로 이야기를 읽어내야 하지만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그가 거쳐온 시간이 이곳에 담겨 있다. 몸에서 떨어져 나온 발가락처럼 부풀고 혈관이 튀어나온 끔찍한 상태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가 겪었던 곳에서 나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어서? 다행인 삶은 없다. 최선을 살지만 소외의 삶으로 기억되는 삶이 있다. 사람이 싫었을 수도 있지만 임솔아의 인물들은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닌 다름을 긍정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내일이 없다고 해도 그들은 없는 내일을 꿋꿋하게 찾아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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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하는 마음 일하는 마음 2
김필균 지음 / 제철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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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일어나 뉴스 보기 겁난다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은 또 어떤 일들로 나의 하루가 무너지려나 하는 마음 때문에. 하루를 살아갈 힘 정도는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나누었다. 어떤 세계에서는 시위가 연일 일어나고 사실은 왜곡된다. 진실을 밝혀 달라는 호소는 묻히고 폭력은 광기로 물들었다.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시간을 살고 있다. 새롭게 알아야 할 것이 늘어난다. 사실이라고 알려오는 현상에 다른 의도는 없는지도 알아채야 한다.

효율을 따지자면 문학을 읽는다는 행위는 사실 비효율과 지식의 지연이라는 용어로 밖에 설명이 안된다. 소설을 읽지 않는다는 어느 저자의 말은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랫동안 문학을 읽고 문학을 사랑하는 나도 그러한 마음인데 다른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그럼에도 그 저자의 생각까지는 용인할 수 없었다. 김필균의 『문학하는 마음』의 서문에 나오는 '그놈의 문학병'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해온 김필균은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선다. 문학판에서 알음알음 알아온 문학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문학하는 마음』에서는 그도 나도 앓아온 문학병의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림 작가, 소설가, 시인, 평론가, 웹 소설 작가, 편집자, 극작가, 청소년 작가, 에세이스트, 서평가, 문학 기자인 열한 명의 문학하는 마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인터뷰 기사 읽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평생 만나볼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말의 윤색을 거쳐 나온 기사이지만 그 안에는 그가 살아온 시절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기대가 있다. 한국 문학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서 『문학하는 마음』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새로웠다.

김필균은 문학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 즉 먹고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를 궁금해한다. 모두 그렇지 않을까. 고등학교에서 문창과를 간다고 하면 말리고 그래서 교직 이수를 할 수 있는 과로 가고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겠다고 대학원에 다니는 행동을 주변인이 말리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이유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학하는 마음』에서 문학하는 이들이 말하는 조언은 굉장히 현실적이다.

시를 쓰기 위해 투잡을 하라는 것. 책이 팔리고 인세가 들어오면서 마음이 너그러워졌다는 것. 그도 안 되면 강연을 다니면서 수입을 마련한다는 것. 문학을 하기 위해 문학이 아닌 일을 한다. 어떻게든 문학 주변부에 자신을 놓아두고 싶어서 문학 비슷한 일을 한다. 모두 문학하는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리라. 신형철 평론가와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김필균은 평론이 늦은 신형철에 험담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솔직하게 밝힌다. 책을 내려는 작가가 신형철의 글을 받고자 한다면 먼저 이렇게 말한단다. 책이 상당히 늦어질 수 있다.

신형철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자신이 쓰는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평론을 쓸 때의 일차적인 기준은…이것도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건데요, 내가 이 텍스트와 더불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는가의 문제예요. 그러니까 그 작품을 위해서 뭘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고, 나를 위해서 쓰는 거죠. 나를 위해서 좋은 글을 쓰는 게 결국엔 그 작품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요."
(김필균, 『문학하는 마음』中에서)

평론은 다른 사람이 쓴 저작을 해석하고 숨은 의미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쓰는 글인 줄 알았는데. 신형철이 말하는 평론의 의미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나의 글쓰기에 대한 변명이 되는 말 같아서 좋아졌다. 김필균이 앓고 있다는 '문학병'을 나 역시 수십 년 앓고 있다. 자신만의 글을 써보려 했다는 김필균은 세상만사 일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음을 깨닫고 편집자로 길로 들어선다. 책을 읽는다. 쓸 말이 떠오르면 서평의 형식을 가장한 나의 이야기를 실컷 한다. 그것이 내가 문학병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하는 것으로 '문학하는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써야 한다는 윤이수의 말대로 뭐라도 하얀 화면에 글자를 채워본다. 『문학하는 마음』에 담긴 열한 개의 문학하는 마음이 있어 세계의 부조리가 주는 고통을 잊는 것이 아닌 그것을 하루를 사는 힘으로 바꿔 본다. 우리의 하루는 살아가는 것으로 힘이 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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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문구 - 나는 작은 문구들의 힘을 믿는다 아무튼 시리즈 22
김규림 지음 / 위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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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 문구한다.
보라, 저 많은 펜과 연필과 형광펜을. 저것도 많이 줄인 거다. 눈이 아프지 않은 형광펜이 있다고 해서 똑같은 색을 두 개씩 세 개씩 샀었다. 가볍게 살기를 접한 뒤로 아는 사람에게 나눠 줘서 많이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쿨럭. 사진을 찍어 놓고 보니 많다. 티도 안 난다. 하나를 줄이면 다시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들어온다. 팔로미노 연필이 좋다고 해서 한 다스를 사고. 책을 사면 하루키 연필을 준다고 해서 책을 사고. 그러다 서랍 하나가 필기도구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지구에서 우리뿐.
김규림의 『아무튼, 문구』를 읽었다. 아무튼 시리즈가 나온다고 하는 건 알고 있었다. 아무튼, 뭐 좋다는 소리겠지. 강렬한 제목이다. 『아무튼, 문구』는.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이름을 찾다가 '문구인'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아무튼, 문구』의 저자 김규림은 '문구인'이 되었다. 문구를 사랑하고 일요일 저녁이면 문방구에 가서 한 주를 마감하는 문구인의 삶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쓰던 공책을 어른이 되어 찾아낸다. 소비 생활을 좋아한다니. 작은 문구의 힘을 믿는다고 한다. 정말 힘이 난다. 나 역시 그러했으니까. 책 읽기란 신비한 경험을 가져다준다. 문방구를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서 작은 공책 하나라도 사서 나오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니. 지구에서 나 혼자가 아닌 우리라서 다행이다.

악필이에요, 펜이 많으면 뭐 하나.
문구인 김규림도 좋아하는 문구가 있으면 두 개씩 산단다. 두 개 혹은 세 개, 여러 개. 몇 개는 보관용이고 몇 개는 쓰려고. 나도 그랬다. 표지가 예쁜 공책이 있으면 여러 개를 샀다. 책꽂이에 꽂아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흡족해졌다. 문구인 김규림은 원하는 판형으로 공책을 천 권 정도 만들었단다. 사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제작까지. 존경의 박수. 짝짝짝. 비어 있는 종이에 무언가를 쓰려는 상상만으로 소비의 행위는 가치가 있다. 문구점에서 많은 돈을 써 봐야 만 원의 행복 정도이다. 과소비를 했다는 느낌보다 작고 귀여운 애들을 데리고 왔다는 기분에 설레기까지 한다. 신상 펜으로 시를 옮겨 적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한다. 써 놓고 보니 내 글씨는 왜 이런담. 손글씨 잘 쓰는 사람들이 올려놓은 사진을 보면 내 글씨는 정말 안습이다.

애플 펜슬도 문구라니.
『아무튼, 문구』의 문구인 김규림은 수첩과 공책, 펜, 마스킹 테이프, 연필, 스티커를 사랑하는 감성에 신문물 아이패드를 사서 애플 펜슬로 그림을 그리는 놀라운 포용력을 보여준다. 아이패드 사서 쓰는 게 포용력 운운하는 일이라니 웬 오버인가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그동안 지속했던 생활 습관을 바꾸려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 애플 펜슬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새로운 문구라고 주장해서 꽤나 열린 사람이구나, 같은 문구인으로서 꼭 안아주고 싶다.

취미랄 게 딱히.
없다. 그저 책 읽고 책 읽는. 대형 서점에 가면 한편에 있는 문구가 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카카오 프렌즈에서 밀고 있는 귀염둥이 캐릭터 라이언을 좋아하는 취미. 라이언이 있으면 산다. 스티커는 두 장씩. 캐릭터 제품이라 가격이 조금 나가기도 하는데 귀여움을 담당하며 나를 웃게 해주니까. 문구인 김규림도 문방구가 취미라고 취향이라고 밝힌다. 『아무튼, 문구』의 세계에서는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 우리의 시간을 다채롭게 만들어 준다. 읽고 쓰고 그린다. 공책이 있어서 펜이 있어서 쓰고 그리다 보니 『아무튼, 문구』까지 내게 되었단다. 일기장을 샀으니 일기를 써서 책을 내기도 하고. 문구는 우리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 준다. 연필로 우주라고 적었더니 우주를 날고 있었다. 어디서 사기 치지 말라는 소리가 들리지만. 한 번 해보시라. 이상하게 좋은 기분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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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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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과 분노와 고독을 누가 알까. 나라는 사람의 과거를 누가 알고 싶어 할까.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기는 할까. 모든 의문과 가정을 말하자면 긴 시간,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묻고 질문하고 다시 묻는 행위를 거듭해야 한다. 아침에는 우울했다가 조금 누워 있으면 힘이 나서 움직인다. 많이 움직인 것 같은 낮을 보내고 밤이 되면 침울해진다. 할 말이 없을 땐 시간 참 빨리 가네요,라고 말해보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맞는 말이어서 다시 할 말이 없게 만든다.

그럴 때면 좋아하는 것과 일을 떠올린다. 노란색, 순살 치킨, 밤에 듣는 음악, 새로 산 필기도구 그리고 소설. 소설을 읽어야지. 답이 없는 질문을 하고 싶을 땐 소설을 읽는다. 우울하고 침울하고. 불안이 찾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들면. 김금희를 읽으면 괜찮아진다. 김금희가 써 내는 소설. 그래서 김금희 같은 소설을. 내 마음과 네 마음이 사라질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올 때. 안녕한 하루 대신 안녕할 내일을 갖고 싶을 때.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 실린 소설을 읽으며 세계가 내게 건네는 쓸쓸함을 받아들인다.

김금희의 문장은 위태롭게 이어지는 듯하다가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심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간결함을 버리고 복잡함을 선택한 그의 문장에서 인물이 느끼는 외로운 처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지구 끝까지 이어질 것 같은 문장을 읽으며 허구의 세계에 고독하게 갇힌 인물과 이곳의 나를 동일시해본다. 같구나. 우리의 처지는 왜 이렇게 비슷할까. 그가 소설의 배경으로 가져온 시대는 멀지 않아서 가깝고 가까워서 먼 것처럼 느껴진다.

대학에서 만난 선배의 기이한 행태를 마음 아파하고 냉정한 고용주와 친해지고 싶어 사랑을 파는 주인공.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삶의 비루함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가난이라고 하는 배경색을 너무 잘 알아 쉽게 다음 장을 넘길 수 없는 머뭇거림.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에서 택시비를 받은 은수가 택시는 타지 않고 그 돈을 아끼려고 지하철을 타는 장면.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가 챙겨 놓은 과일을 몰래 가지고 나가야 하는 「쇼퍼, 미스터리, 픽션」의 '나'가 느껴야 하는 불안.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서 유독 마음이 쓰인 장면들은 그런 것이었다. 돈이 전부가 아님에도 돈이 전부인 것처럼 구는 세상에서 살아나가기 위한 안간힘. 「레이디」는 그 시절 누구나 느꼈을 친구와의 우정을 넘은 애정의 주변을 더듬는다. 우린 전부 어렸고 미숙했고 나약한 시절을 가지고 있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김금희의 소설은 괜한 문학적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추상보다는 구체의 단어로 문장을 쓰면서 낯선 이야기가 아닌 누구라도 한 번은 살았을 시절을 쓴다.

아홉 편의 소설에 담긴 마음에 대해 생각하느라 하루치의 우울을 잠시 숨겨 둘 수 있었다. 세상은 너무 시끄럽고 고독하다. 소심해서 누구에게도 화를 낼 수 없는 겨우 억울한 마음을 눌러가며 사는 사람들이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는 있다. 처음 만나자마자 반말로 이야기하는 저자. 소설을 읽지 않으면서도 소설을 쓰겠다고 하는 습작생. 택시비가 얼마인지를 끝끝내 따져 묻는 선배, 그러고서는 주지 않는. 대리 기사에게 팁 대신 목사님이나 할 것 같은 거룩한 말씀을 남기는 시집 식구.

김금희는 쩨쩨하고 뒤끝이 작렬인 누가 봐도 관종인 것 같은 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들을 바라보는 화자는 대체로 착하고 소심하고 약간은 깐깐하다. 품위를 잃지 않는 선에서 세상에게 선의의 복수를 할 줄도 아는. 영리한 것 같은데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은 빠져 있다. 유머가 세상을 구원하면서 나도 구원하게 만든다는 것도 안다. 나의 마음이 이토록 우울해서 내일이라는 미래 시제가 쓰이지 않을 것 같은데도 김금희를 읽으면 내일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조금 더 힘을 내자. 힘이라는 게 낸다고 해서 나는 건 아니지만 힘을 내자고 말하면 혹시 없던 힘도 생길 것 같으니까 그런 말을 해보라고 말하는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돈보다는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아서 좋은 소설.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돈이 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묻는 소설. 『오직 한 사람의 차지』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면서 미래라는 시간의 가능성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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