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1961 도쿄 하우스
마리 유키코 지음, 김현화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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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책태기의 끝에는 책 읽는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알랑가 몰라. 자의든 타의든(요즘엔 내 뜻이 아니라 순전히 남의 뜻과 의지로 책을 읽지 못하는 것 같다는)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고 다시 힘을 내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스트레스는 사람을 모나게 한다. 환경이 그렇게 만든다. 그냥 하는 말에도 날이 섰고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시니컬한 말을 돌려주고야 말았다. (체력이 바닥났어요 하는 말에 바닥날 체력이라도 있었나요 하는 식으로 위로와 공감을 주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 힘들어라고 상대가 말할 때 너만 힘드냐 나는 힘들어 뒤질 것 같다는 마음의 소리를 약간 순화해서 내뱉고 마는 것이다. 근로소득으로 살기 참 힘들다. 마리 유키코의 신작 장편 소설 『1961 도쿄하우스』에는 관찰 예능에 출연하면 500만 엔을 준다는 소식에 마음과 영혼을 빼앗긴 두 가족이 등장한다. 읽으면 기분이 나쁘고 불쾌하다는 장르의 이야미스의 여왕 마리 유키코는 시간을 가뿐하게 넘나들면서 현대 사회의 문제를 건드린다. 


1961년의 시절을 텔레비전에 출연해 체험하는 조건으로 500만 엔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얼굴과 신상이 공개되는 걸 상관하지 않고 지원할까. 그래도 방송에 나오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 망설일까. 돈이 곤궁하고 지금 일하는 걸로는 몇 십 년 남은 대출을 갚기란 요원하다면 지원서를 내 볼 수도 있겠지. 


『1961 도쿄하우스』는 방송국에서 기획한 예전 시대를 체험해 보는 관찰 예능 안에 미스터리를 숨기고 있다. 과거를 재현한 세트장에서 두 가족의 적응기를 보여주리라 생각했지만 마리 유키코는 미스터리 안에 미스터리를 설계해 놓았다. 그저 호기심과 재미로 봤던 관찰 예능은 철저하게 기획되고 시나리오가 있었다. 서류 전형과 면접으로 선발된 두 가족은 과거를 체험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만 막상 슛이 들어가고 카메라가 돌자 전혀 다른 상황으로 들어간다. 


리얼리티라고 하지만 대본에 의해 캐릭터가 부여되고 시청자의 재미를 위해서 기괴한 설정까지 추가되는 것이다. 1961년을 복원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두 가족은 무서운 사건에 휘말린다. 중단하면 500만 엔은 받지 못한다. 텔레비전에만 나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은 안일했던 것이다. 이 쇼의 주인은 누구이며 숨겨진 이야기의 진실을 무엇일까. 『1961 도쿄하우스』는 마지막 장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주중에 조금씩 읽고 주말에 몰아서 읽었다. 그럼에도 흐름은 끊어지지 않았다. 책을 읽어갈수록 인물과 상황이 주는 불쾌함을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 눌러 버린다. 현실에서 상대에게 느끼는 분함을 소설에서 만나는 인물들에게 투사해버리고 나면 막말 장전의 상태를 일시 대기로 바꿀 수 있다. 아닥할 수 있는 것이다. 너의 그런 말에 나는 아가리 닥치고 책이나 읽을래. 너보다 더한 인간을 책에서 만나 무람없이 욕할 수 있거든. 『1961 도쿄하우스』에는 마음껏 욕을 퍼부을 인간들이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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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살인자의 쇼핑목록 네오픽션 ON시리즈 2
강지영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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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의 소설집 『살인자의 쇼핑목록』에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바쁜 현대 사회를 사는 이들에게 일곱 편의 소설은 읽기 힘들 수도 있겠다. 집중력을 도둑맞은 시대에 일곱 편이 웬 말이냐고 또 할 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시대를 탓하는 건 아니고 집중력은 예나 지금이나 도둑을 맞았든지 빼앗겼든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양도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산만함과 어수선함을 긍정하기로 했다. 


영상의 길이가 3분이 넘어가면 스크롤을 내리는 도파민 중독 시대에(무조건 시대 탓으로 돌리는 거 은근 재밌다는) 『살인자의 쇼핑목록』은 작가가 집중력을 주입해 주면서 소설을 읽게 만든다. 잠깐 멈춰 놓은 유튜브 영상 봐야지 하는 생각을 잊을 수 있다. 마트 캐셔로서 사람들의 쇼핑 목록의 관심을 갖게 되는 이야기부터 사라진 제자의 행방을 찾아 나서는 교수, 길에서 살다 구조된 길고양이, 게임에 빠지게 된 사람들까지 소설은 다양한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다. 


지루한 설명이나 묘사 없이 상황을 전개하고 끌고 간다. 짧은 분량 안에 다채로운 사건이 펼쳐져 지루할 틈이 없다. 찾아보니 표제작 「살인자의 쇼핑목록」은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또 나만 모르고 있었지. 이 재미난걸. 뒤늦게 알아서 좋은 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서 한 권씩 읽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작품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전작을 읽는 쏠쏠한 재미. 


전생이란 존재할까. 「용서」는 전생의 기억을 안고 다시 태어난 아기가 화자로 등장한다. 갓난아기 일 때의 기억이 없다는 걸 소재로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전생을 떠올리면서 현생을 새롭게 살 준비를 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에 실린 「각시」는 코로나19를 겪은 우리들의 트라우마를 일깨운다. 증조할머니가 병상에서 들려준 작은아버지의 이야기는 과학과 상식으로 설명 하기 힘든 전염병의 진원을 토속의 의미로 해석해낸다. 


매 순간과 일상이 즐거울 수만은 없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지루하고 힘들고 슬프고 아프다. 최근에 메일로 온 우시사(문학동네에서 메일로 보내주는 우리는 시를 사랑해)의 첫 문장(무려 배우 박정민이 써서 보내준) '그간 별일 많으셨죠? 모쪼록 조금만 아프셨길 바랍니다. '를 읽으며 가슴이 뻐근했다. 사람들이 아프고 힘들게 살고 있으리라는 걸 기본값으로 염두에 두고 쓴 문장이라서 말이다. 


아프지만 모쪼록 조금만 아프셨길 바란다니.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자만이 받아낼 수 있는 위로이다. 강지영이라는 페이지 터너를 알게 되어 낮의 분노를 밤의 읽기로 상계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읽을 것도 볼 것도 많아서 일하는 고통을 조금은 잊을 수 있다는 게 최근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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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살인자의 쇼핑몰 2 새소설 13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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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랜 책태기의 늪에서 구해준 강지영 소설가에게 박수와 존경을! 이로써 저는 다시 독서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람쥐.  『살인자의 쇼핑몰 2』의 작가 후기에는 배우 이동욱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가는 그의 오디션에 참관한 적이 있더랬다. 멀리서 지켜보았지만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소설가가 되어 원작자와 배우로 다시 만났다. 


현실의 이동욱은 『살인자의 쇼핑몰 2』의 주인공 정진만과는 이미지가 동떨어진다. 소설에서 정진만은 머리숱이 얼마 없는 배 나온 중년 아저씨이다. 영상으로 만나는 정진만은 무려 이동욱. 또 한 번 감사합니다람쥐. 매주 두 편씩 디즈니 플러스에서 수요일에 정진만을 연기하는 이동욱이 나오는 《킬러들의 쇼핑몰》을 만날 수 있다는 누구나 아는 TMI를 방출한다. 


소설 속의 정진만과 드라마 속의 정진만의 이미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몰입이 깨지지 않는다. 소설 속 정진만은 다른 버전으로 독자를 매혹한다. 『살인자의 쇼핑몰 2』는 전작을 압도할 정도로 빠른 전개와 재미를 자랑한다. 소설은 전작처럼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지안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 다나가 죽었다. 지안의 침대에서 새벽 4시 7분에. 그 후로 지안은 새벽 4시마다 악몽을 꾸며 잠에서 깨어난다.


창고지기 브라더와 삼촌 정진만이 보고 있을 텐데. 지안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그들의 위로가 필요하다.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자 삼촌의 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 채. 아니 『살인자의 쇼핑몰 2』는 반전 더하기 반전의 역습으로 독자를 정신 못 차리게 한다. 가족임에도 서로 속고 속이는 활극을 펼친다. 1편에 등장한 바빌론은 더욱 진화했고 진만과 지안은 그들의 행태를 마냥 지켜볼 수 없다. 


머더헬프의 존속이 달린 문제이기도 죽고 사느냐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도 한 바빌론과의 한 판 승부를 피할 수 없으니 움직여야 한다. 단 아무도 모르게 나 자신마저 속이면서. 『살인자의 쇼핑몰 2』를 읽으면서 기분 좋았던 건 강지영이 구축한 킬러들의 세계관이 통합되는 순간을 만났기 때문이다. 내가 애정 하는 캐릭터 『심여사는 킬러』의 주인공 심은옥 여사가 『살인자의 쇼핑몰 2』에 등장한다. 


이사카 코타로의 방식처럼 소설 속의 인물들이 서로 다른 작품 속에 자유롭게 침범해 들어가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 놓는다. 지안은 바빌론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심은옥 여사를 만나 칼 쓰는 비법을 전수받는다. 은옥의 안부가 궁금했다. 애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도. 아픈 은옥이지만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작가 후기에서 『살인자의 쇼핑몰 3』권도 집필 중이라고 하니 은옥의 팬으로서 다시 한번 과부 킬러의 다음 시간을 만나고 싶다. 


『살인자의 쇼핑몰 2』의 마지막을 믿고 싶지 않다. 시리즈물의 종특으로 떡밥을 슬쩍 던진 느낌이기에. 뭔가 더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엉망진창 이판사판 난장판에서도 인류애를 잃지 않으려 애를 쓰는 허구의 인물들에게서 현실을 살아갈 묘책을 얻는다. 그 누구도 믿지 말 것. 순간순간 슬퍼지면 나의 과거를 떠올리며 살아갈 것. 정답은 과거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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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살인자의 쇼핑몰 - 강지영 장편소설 새소설 5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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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새해부터는 책 많이 읽고 매일 글쓰기, 영어와 한자 공부를 할 거라는 마음에 춘식이 갓생 타이머 주문해놓고 새 공책도 책상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갓생을 살지 못하는 건 아직 춘식이 타이머가 오지 않은 탓이니 빨리 와라 와라 해놓고 정작 물건이 왔지만 또 책상에 놓아두기만 한 채 1월을 흘려보내고 있다. 갓생 대신 걍생으로.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라지만 어째 나만 바쁜 거 같고 일은 해내도 쳐내도 계속 쌓인다. 책을 읽지 못한지 오래라 이런 적은 없었는데 하면서도 몸이 피곤하니 집에 돌아와 기절하듯 잠을 잤다. 다시 힘을 내어 책을 읽었다. 책읽기도 힘이 든다는 걸 근래에 깨달았다. 책은 그저 읽고 싶을 때 읽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숨쉬듯 책을 읽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숨을 쉬는 것에도 감사할 지경으로 체력이 바닥났다.


다양한 장르에 책을 읽어보겠다고 책을 사 놓았지만 역시 내가 한달음에 읽고 몰입할 수 있는 건 소설이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방영되는 《킬러들의 쇼핑몰》의 원작 살인자의 쇼핑몰을 앉은 자리 아니 누운 자리에서 해치워버렸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자세도 안 바꾸고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완독의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꼈다. 


강지영의 『살인자의 쇼핑몰』은 '돌이켜보니 삼촌은 이상한 사람이었다'라는 흥미로운 문장으로 시작한다. 머뭇거리거나 망설임 없이 이야기로 직진하는 소설을 좋아한다. 첫 문장부터 끌렸다. 돌이켜보니라는 과거형으로 시작한다면 현재 삼촌의 안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리라. 삼촌 정진만은 노안이고 일찍이 도박을 배우러 다녔다. 고등학교 진학을 한 달 앞둔 날 집을 떠나 2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전적이 있다. 


정지안은 정진만과의 어떤 하루를 회상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날 둘은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집에 남아 잘 기억해, 잘 들어로 시작하는 삼촌의 이야기들. 무는 개, 검은 개들의 나열 방심하다간 식탐, 거짓말, 도둑질과 같은 이름의 개들에게 잡아먹힌다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죽었지만 슬퍼하는 대신 검은 개가 가장 아끼는 걸 빼앗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삼촌의 말은 오늘로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지안은 삼촌의 부고를 듣는다. 삼촌이 자신의 집 욕조에서 자살을 한 채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날부터 지안의 삶은 이상하고 무섭고 잔인하게 흘러간다. 『살인자의 쇼핑몰』은 비교적 짧은 분량의 소설이다.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이렇게라는 건 감정 과잉의 대사, 사연팔이, 이야기를 에둘러가려는 휴식 같은 호흡 없이라는 것이다. 독자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니까 질질 끌지 말고 상황 설명과 배후를 밝혀야 한다. 


부모 대신이었던 삼촌이 자살로 생을 마감할 줄 꿈에도 몰랐던 지안은 삼촌이 남긴 유산의 비밀을 알아간다. 그럴수록 지안의 안전은 위협받는다. 누구를 믿을 것인가. 잘 들어, 정지안으로 시작했던 살아생전 삼촌이 했던 말들을 떠올리면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다. 『살인자의 쇼핑몰』은 무의미한 의미 찾기를 하는 것보다 읽는 재미로 독자를 압도한다. 설마와 진짜 사이에서 준비한 반전은 묘한 안심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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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엔딩 1
벤 윈터스 지음, 곽성혜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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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해를 맞이하여 읽은 책은 지구 종말을 다룬 벤. H. 윈터스의 『모두의 엔딩 1』이다. 2023년 12월 31일에 본 영화는 지구 종말을 그린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이다.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겠다는 각오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내일 혹은 몇 달 후에 세상이 망한다면의 가정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버텨보겠다는 약한 마음의 의지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지구 종말에 꽂힌 이유는. 


벤. H. 윈터스의  『모두의 엔딩 1』의 설정 역시 여느 종말물과 다르지 않다. 소행성 마이아는 6개월 후에 지구에 충돌할 예정이다. 과학자들은 75년 만에 발견한 마이아의 항로를 예측하느라 분주했고 결국 충돌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자살자들이 속출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떠나거나 약에 취한 채 살아가는 세계를 그린다. 


 『모두의 엔딩 1』 속 종말의 세계는 느리고 고요하다. 행정은 완전히 멈춰 있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 어중간한 상태에 놓여 있다. 화폐 가치는 떨어졌지만 그래도 돈의 위력은 여전하다. 지구가 망한다고 해도 자본주의는 건재하다. 주인공 헨리 팔라스 형사는 이제 막 순경에서 경장이 된 인물이다.  『모두의 엔딩 1』이 시작되자마자 팔라스 형사는 사건과 마주한다. 


맥도날드를 흉내 낸 매장 화장실에서 보험 회사 직원인 피터 젤이 죽어 있다. 벨트로 목이 매달린 채. 자살자의 형태이지만 팔라스는 타살로 의심한다. 눈가에 멍이 들어 있고 다른 소지품은 그대로 있지만 휴대전화만이 사라져 있다. 지구 종말의 시대가 그러하듯 모두들 젤이 자살을 했다고 생각하고 사건을 덮으려 한다. 팔라스만이 텅 빈 거리를 질주하며 사건을 쫓는다. 


전임자들이 모두 떠난 상태에서 급하게 진급이 이루어져 팔라스는 경장이 된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뛰어난 수사력을 가지지도 화려한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죽은 아버지가 남긴 노트에 쉴 새 없이 메모를 하는 모범생의 면모를 가진 형사는 사건의 배후를 알아가기 위해 분주한 노력을 한다. 사건의 진상을 찾는 듯싶다가도 헛다리를 짚기도 한다. 


의문을 놓지 않는 집요한 성격이 팔라스를 살게 한다. 어차피 6개월 후에 다 죽을 텐데 살인범을 잡아서 무얼 하겠는가. 팔라스는 그런 고민 따위는 하지 않는다. 망해가는 세계 안에서도 인간의 존엄은 유지되어야 한다. 살인범은 잡혀야 하고 그에 맞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모두의 엔딩 1』의 결말을 알고 나면 쓸쓸해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은 끊기고 전화는 통신 두절 상태에 내내 놓였다가 가끔씩만 연결되는 상황에서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곧 사라질 지구가 아니라 인간이 문제임을 그래서 파괴되는 것이 정당하구나 수긍하는 것이다. 팔라스 형사는 추리 소설에서 만나기 힘든 성실 그 잡채의 인물이다. 착하고 예의 바르며 모든 것을 알아도 모른 척한다. 이상한 루머를 맹신하는 여동생을 혼내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꼬여 있거나 비틀어진 내면을 가진 형사가 아니라니. 부디 그만이 살아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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