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밤나무 한 그루가 올봄 들어 고사(枯死)했다주위의 다른 나무들은 녹색 잎들을 내면서 새봄을 만끽하는데 이 밤나무는 전혀 그런 모습 없이 침묵에 쌓여있다.

사람으로 치면멀쩡한 청년이 하루밤새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된 것 같다.

까닭이 뭘까?’

밤나무에만 도는 병에 감염된 걸까하지만 병사한 것으로 보기에는 줄기가 너무 굵고 단단하다그냥 두자니 보기 흉해서 톱으로 베어버리려 했지만 굵고 단단해서 그만뒀다톱날이 망가질 듯싶었다.

병사한 게 아니라면 하필 밤나무를 심은 땅 속에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가 있는 게 아닐까워낙 돌이 많은 춘심산촌이라 그럴 개연성이 크다밤나무의 연한 뿌리가 그 바위를 만나게 되자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고사했으리라.

까닭이 짐작된다 한들 고사해버린 나무라 희망이 없다매해 가을탐스런 밤송이들이 달리던 밤나무의 죽음본디 나무는 말 못하는 생명이지만왠지 이 밤나무는 깔깔대고 잘 웃기까지 하다가 갑자기 웃음도 잃고 허무의 정적(靜寂)에 든 것 같다.

 

하긴 밤나무만 죽는 게 아니었다어느 몹시 가물던 여름에는 새끼 뱀 한 마리가 밭 한가운데 놓은 스프링클러 아래에서 아가리를 벌린 채 죽은 모습으로 발견된 적도 있다목이 타서 물을 찾아다니다가 땡볕에 그런 모습으로 죽은 것이다.

두더지도 농로에서 잠자듯 주검으로 발견됐다.

더 자세히 살피면 지렁이곤충들… 숱한 주검들이 있었다.

태어났으므로 죽는 것이다.

춘심산촌 농장 또한 피할 길 없는 자연의 섭리 속에 푸르른 신록을 구가(謳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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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시 남면 박암리 162-2 우나멜로



우나멜로 사과밭




강원도 춘천시 남면 박암리 162-2 우나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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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를 심은 밭에 울타리를 두르기로 했다. 아무래도 멧돼지로 인한 피해가 염려돼서다.

울타리라고 해야 비닐 망으로 두르는 거다. 틈틈이 이틀 걸러 일단 울타리를 둘렀는데 문제는()’이다. 집에 다는 것 같은 번듯한 문은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돈이 많이 들어서 애당초 고려 대상이 아니다. 비닐 망 울타리에 맞게 가벼우면서 돈이 별로 안 드는 문이란결국 4년 전처럼 비닐 망을 잘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비닐 망을 사람이 드나들게 자른 뒤, 휘장처럼 위쪽을 매달아놓고 출입하는 형태다. 사람은 쉽게 쳐들어 올리며 들락거릴 수 있지만 멧돼지는 그럴 수 없다.

문을 만들어 달자 비로소 울타리가 마무리됐다.

그러자 산에 있는 멧돼지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물론 내 상상(想像)이다.



https://blog.naver.com/ilovehills/22131761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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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파트로 이사 온 뒤, 엘리베이터에서 서너 살 되는 어린이들을 자주 본다. 먼젓번 단독주택 동네에 살 때는 영 보이지 않더니 웬일인가 싶다. 새 아파트가 젊은 부부들의 주거(住居)로 자리 잡은 때문이 아닐까.

어린이들도 어른들처럼 마스크를 썼다.

어른들의 마스크가 크듯이 어린이들의 마스크는 그만큼 작다. 작은 마스크를 쓰고 천진난만한 눈동자로 엘리베이터의 움직임을 느끼는 어린이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 아빠 손을 쥔 채.

나는우리나라의 미래를 본다.

수 십 년 후 우리나라의 행로(行路)를 전담할 주인공들.

그 사실을 깨달을 정도로 비로소 철들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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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이다. 나는 농막 안에 엎드려서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은 농막의 문을 열어놓고서 지낼 만한 날씨다.

작은 멧새 한 마리가 땅바닥의 무슨 먹이를 쪼아 먹고 있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멧새는 먹이를 쪼아 먹으면서 연실 주위를 살핀다. 잠시도 편하게 먹는 모습이 못 된다. 저리 먹다가 음식에 목이 메일까봐 걱정이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모든 짐승들은 먹이를 먹는 순간 주위를 살피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럴 만했다. 먹이를 먹는 순간이 아주 위험한 순간이었다.

사나운 상위(上位) 짐승이 한 발 한 발 숨죽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순간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먹이 자체가 자신을 포획하는 미끼일 수도 있다.

땅바닥의 작은 벌레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에는 멧새의 처지는 너무 불안정했다.

 

우리 인간도 그렇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잠시라도 마음 편할 수 있을까? 음식이 혀를 델 만큼 뜨겁지 않은지 살펴야 하고, 음식을 먹다가 지인(知人)이 나타나면 인사하는 일을 놓쳐서도 안된다. 옆 자리의 손님이 뭐라고 외치면 귀 기울여야 한다. “여기 부탄가스가 새요!”하고 외치는 수도 있으니.

그렇다. 농막 앞의 작은 멧새나 농막 안에 엎드려서 쉬는 나나 음식을 먹을 때 온 신경을 음식에 기울이기 어려웠다. 멧새는 목숨을 거는 일이고 나는 그 정도는 아닌 수준의 차이만 있었다.

그 수준을 우리 인간은 문명(文明)’이라 이름붙인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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