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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 잠자리 베개 맡엔 Miconos 항구의 그림이

언제나 열려 있다.

 

술 취한 밤이면 Miconos

붉은 반란을 내다보고

술 깬 아침이면 滿船을 펼치는 갈매기들……

 

나의 갈매기들이여

너희는 얼마큼 나는가

태양이 빠진 Miconos 바다 위로

얼마나 날아가는가.

    

 

         2

 

주민등록증을 받고 돌아오는 저녁

이마 위로 떨어진 갈매기 한 마리

 

돌아올 수 없는 나의 船舶을 통지해 주었다

 

아아

빗장을 걸고 얼굴을 잡으려 했으나

거울엔 鍍金만이 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없었다

 

재발급 받은 것은 기억이었다 빗장 걸린 현주소

구겨진 항구, 本籍이여

 

닷새를 술에 적신 날

나는 Miconos 항구로 기어나갔다

 

캄캄한 밤이

碇泊해 있었다

 

*작가의 말

 

 

 이 시는 대학 4학년 때인 19736월경에 썼다.   

 

문학회 회원들 중 시를 쓰는 후배들이, 춘천 시내 한복판에 있는남강이란 지하 다방에서 시화전을 계획했는데 그 때 내게 형님, 시 한 편만 써 봐요.’부탁하여…… 밤새워 나온 작품이다. 소설 숨죽이는 갈대밭이나 승냥이처럼 하룻밤에 쓰인 것이다. 지금은 체력이 달려 엄두조차 못 내지만 대학시절만 해도 그런 일이 가능했다.

이 시를 쓸 때 내 방 한 쪽 벽에 붙어있는 그리스 Miconos 의 사진을 보며 시작(始作)했다. ‘아아같은 탄식이 등장하는 등 어설픈 면모가 역력하지만 당시의 쓸쓸하고 참담한 심정이 나름대로 잘 표현됐다고 믿고 싶다.

 

시화전 첫날 국어과유병석교수님도 다녀갔다. 그분은 문학 평론가였는데 다방 벽에 걸린 시들을 쭉 보다가 걸음을 멈추더니 한 마디 했다.

이 시가 제일 좋다.”

바로 내 시‘Miconos 이었다. 사실 그분은 개인적으로는 나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다. 강의를 성실하게 듣는 모범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버릇없는 학생이었는지 그분이 있는 회식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여하튼 (나한테) 학점 안 좋게 주는 교수들은 각오해야 할 거야. 그냥 두지 않을 테니까!”

술기운을 빌려 한 말이었지만 얼마나 버릇없는 학생이었을까. 그런데 그분 역시 만만치 않았다. 떠들썩한 술자리니 못 들은 척 넘어갈 수도 있었건만 이렇게 답했다.

그래? 그것도 참! 조심해야겠네.(쓴웃음)”

내 젊은 시절의 만용에 대해 후회가 많다. 유병석 교수님에 대한 얘기만으로도, 나는 소설 한 편을 쓸 수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쓸 것이다. 물론 그분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

43년 만에, 먼지 덮인 박스 안에서 이 시 ‘Miconos 을 찾아내곤 지금 관점에서는 미흡해 보이지만 여하튼 햇빛을 받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Miconos 항은 세계적인 관광국(觀光國) 그리스의 아름다운 항구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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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어느 겨울에 생맥주 잔을 비우면서 늘어놓던 결혼얘기가 선하게 살아나더군. 그 얘기의 골목 풍경이 눈앞에 생생한 거야. 여자가 내가 골목을 가다가도 느낌이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면 이이가 멀찍이 거리를 두고 멈춰서 바라보는 거 있죠?’ 할 때의 골목이지.

 


내가 예전에 시골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었기에 그런 골목 풍경은 아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거든. 봄이 되면 개나리, 진달래들이 화사하게 피어서 꽃길을 이루는 골목이지. 좁아도 햇살들이 넘쳐나고 벌 나비들이 가득한 그 골목길을 천진난만한 여학생이 걷다가 문득 뒤돌아보네. 그러자 멀리 골목 끝에 숫기 없는 남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거야. 여학생이 혼잣말로 그러지. ‘왜 날 따라오지? 정말 이상하네. 나는 하나도 안 이쁜데……

그렇게 둘이 꽃길 골목의 양끝에 서 있네.

 

< 무심 이병욱의 단편소설 '꽃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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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을 알게 됐다.

그 중 한 젊은이인 J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생각이 너무 많은 젊은이다. 멀쩡히 다니던 대학을 굳이 다녀야 할 의미가 없다며 자퇴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문제는 J가 대학 자퇴 후에 의미 있게 사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데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좋으나 싫으나 우리 사회는 아직은 학력사회라 고졸 학력으로는 번듯한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탓이다. 그래서 J는 전단지 돌리기 같은, 몸으로 하는 힘든 일을 하며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 결과 현실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던 것 같다.

 

J한테 친한 친구 K가 있다. K는 한 때의 방황을 극복하고 이제는 회사를 다니며 열심히 살고 있는 젊은이다. 둘이 만나 술이라도 한 잔 하다보면 그 때마다 J나는 외국으로 갈 거다!’고 외쳤단다. 현실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현한 게 아닐까? 그런 외침도 한두 번이지 매번 만날 때마다 그러니 어느 순간 K가 짜증이 났단다.

그래, 외국으로 나가! 말만 하지 말고.”

몇 번 그랬더니 놀랍게도 J가 정말 외국으로 나갔단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도 아니다. 비행기로 열 시간 넘게 타고 가야 하는 먼 외국으로 갔단다. 더 놀랄 일이 벌어졌다. J가 이런 전화를 K한테 했다니.

외국에 오기는 왔는데 이제 어떡해야 하니?”

어이가 없어 K가 되물었다.

그럼, 거기 왜 간 거야?”

그냥 온 거야.”

통화가 끝나고 K가 나한테 와 전후사정을 말하고는 좋은 의견을 구했다. 멘토라 할 나도 사실 무심한 데가 많아 지인이 호를 무심이라 붙여줄 정도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번 J의 경우는 무심을 넘어 한심한 게 아닐까. 나는 K한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

그 녀석한테 말해. 좋은 경험 했다 치고 그냥 귀국하라고. 귀국한 다음에 다시 한 번 제대로 살아보라고 해.”

글쎄, 이번 일이 어떻게 귀결될지 모르겠다.

 

사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순진한 경우가 아닐까?

몇 달 전부터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박근혜 사건을 보자. 두 사람의 국정 농단의 내용들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대통령 당선 뒤 청와대에 들어간 뒤 웬만하면 사람들을 대면하는 일 없이 관저에서 지내기를 즐겼다는 사실도 그렇고…… 공황장애란 단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공항장애라고 쓰는 최순실이란 여자가 대통령 연설문을 다듬고 심지어는 국정 인사까지 개입했다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아는 젊은이의 어처구니없음은, 최순실박근혜의 어처구니없는 국정농단에 비해 얼마나 순진한가. 나는 J가 지난해의 목적 없는 외국여행을 좋은 경험 삼아, 새해에는 아주 열심히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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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한 짝이 남았다. 사실 양말 값은 얼마 안 된다. 짝 잃은 양말 한 짝을 내버리고 새 양말 한 켤레를 가게에 가 돈 주고 사면 된다.

문제는 새로 산다 하여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달아난 다른 양말 한 짝이 일으킬지 모를 사건이 문제인 거다.

 

남은 양말 한 짝은, 아내가 빨래거리들을 세탁기로 돌린 뒤 말리려고 건조대에 하나하나 너는데 등장했다. 다른 양말들은 다 짝을 지었는데 오직 그 양말만 한 짝뿐이라니 갑자기 근심이 생겼다. 세탁기 안을 살피고 세탁기가 놓인 다용도실을 살피고…… 심지어는 혹시 처음부터, 그 양말의 다른 한 짝을 방구석에 방치한 채 세탁기를 돌린 게 아닌가?’싶어 방마다 뒤지기까지 했으나 영 찾을 수가 없었다.

하잘 것 없는 양말 한 짝의 실종에 근심을 떨치지 못하는 까닭이 있다. 혹시 그 양말의 다른 한 짝이 물 빠지는 좁은 관 어느 곳에 걸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함 때문이다. 그런 관이 뭐에 걸려 막히면 해결이 쉽지 않다. 왜냐면 관이 아주 좁은 데다가, 똑바로만 나가는 게 아니라 가끔씩 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도 관이 막혔었다. 파리채니 긴 나뭇가지니 하는 것들로 관을 막은 무엇을 끄집어내려고 무진 애를 쓰다가, 결국은 기술자를 불러 돈 주고 해결했다. 그는 긴 쇠줄 같은 거로 관 속을 쑤셔 보다가 여의치 않자 독한 황산을 갖다가 부음으로써 그 무엇을 아예 녹여 버렸다. 그 무엇은 정체도 드러내 보이지 않고 저 세상(?)으로 가 버린 것이다.

어쨌든 그 날 관이 뚫렸기 망정이지 만일 실패했다면 다용도실 바닥을 뜯는 대 공사를 각오해야 했다.

 

현재 남은 양말 한 짝을 거실 한 구석에 따로 보관해 놓았다. 아직은 관이 막히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봐, 관이 아닌 다른 곳에 그 짝이 방치됐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시간이 나면 가구들도 옮겨 그 자리도 살피고 방마다 다시 뒤져볼 생각이다.

 

살다보면 피할 수 없는 자질구레한 일들이 적지 않다. 세탁 후 덩그러니 남은 양말 한 짝, 그 자질구레한 일들의 상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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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는 사람만등장하지 않는다. 자연현상도등장하여 사람 이상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라는 영화가 바로 그렇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말로야 스네이크를 나는뱀 구름이라고 우리말 화()하고 싶다. 물론뱀의 구름이란 뜻이 아니고뱀 같은 구름이라는 뜻이다.‘웅장한 알프스의 계곡 사이로 거대한 뱀 한 마리처럼, 긴 구름이 스르륵 지나가는 자연현상이 과연 이 영화에서 맡은 역은 무엇일까?

 

 

 

 

  나는 이뱀 구름갈등 많은 인간사와 대조되는 묵묵한 자연 현상으로서 한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화려한 젊은 시절이 지나간 늙은 여배우, 그녀를 옆에선 돕는 매우 까칠한 여비서, 그런가 하면 늙은 여배우와 비교되는현재 잘 나가는 젊은 여배우……이렇게 세 사람의 숨 쉴 틈 없는 갈등 전개가 아무 말 없이 예나 제나 한결 같은 모습의 뱀 구름 현상과 비교 및 대조되었다는 분석이다. 이는 우리 옛 시조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상략)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하략)’

 

 

 

  잘 나가는 젊은 여배우와 비교되는 자신의 초라한 처지에 몹시 갈등하지만, 결국은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늙은 여배우의 쇠락(衰落).

    이 영화의 감독이 마지막 장면에서 마리아의 표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도 언젠가는 늙어서 시들어 버린다. 그와 달리 여전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대 자연의 풍광…….  그렇기에주인공 마리아가 결국은, 뱀 구름을 닮아가는 표정으로 이 영화가 막을 내린다는 영화평론가의 말씀에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격한 갈등에서 출발해 체념 및 순응이라는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주인공 마리아와 달리 뱀 구름은 그런 일 없이, 한결 같은 존재의 모습으로 이 영화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긴, 인간은 자연과 동격이 아니라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스토리 전개상 9부 능선쯤에 다다랐을 때다. 늙은 여배우 마리아가 함께 공연하는 젊은 여배우 조앤한테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를 몇 초간 보다가 퇴장하는 것으로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지만당신은 그럴 만큼 중요한 역이 못 된다.’는 냉랭한 대답이나 듣고 마는데…… 두 여자의 내밀한 갈등이 일방적인 자존심 추락으로 순식간에 종결됨을 보여주는 백미 장면이다.

 

 

 

  그 후 마리아는 조잡하기 짝이 없는 SF영화의 주인공 역까지 받아들이는 인물로 전락한다. 삶을 관조하거나 달관하는 표정이 아닌, 단지 쇠락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하긴, 흐르는 세월 앞에서 그 누가 장사이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말로야 스네이크’를 나는 ‘뱀 구름’이라고 우리말 화(化)하고 싶다. 물론 ‘뱀의 구름’이란 뜻이 아니고 ‘뱀 같은 구름’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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