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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꼬불꼬불한 일방통행로였다. ‘행복 생태학교를 산속 깊은 곳에 세우며 진입로를 열악하게 닦아놓은 것이다. 교장이 사비 들여 닦은 게 아닐까?

이 길로 들어오기 전에는 다니기 편한 이차선 지방도였다. 그 도로로 차를 되돌리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후진해야 하는데, 잘못했다가는 차가 숲에 빠지거나 나무그루들에 뒤 범퍼를 부딪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앞으로 가야만 했다.

행복 생태학교는 산속 분지에 있다고 자료에 소개돼있었다. 혹시 깊은 골짜기를 분지라고 둘러댄 건 아닐까? 차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길을 에워싼 숲이 점점 더 울창해지는 게, 골짜기로 내려가는 것 같아서다.

어서 빨리 행복 생태학교라는 데에 도착해야 차를 돌리든지 할 텐데, 곳곳이 웅덩이진 길이라 속도도 낼 수 없었다. ‘행복 생태학교 약 2KM’란 팻말이 선 어귀부터 지금까지 그가 차를 일단 기어로만 몰고 온 건 그 까닭이었다.

이러다가 다른 차와 만나면 어떡하지?’

벼락같이 떠오른 걱정이었다. 수소들이 뿔을 대듯 앞 범퍼를 맞대고 싸울 수도 없고 천생 어느 한 쪽의 차가비켜설 공간이 있는 곳까지 후진해 줘야 해결되지 않을까? 비좁은데다가 꼬불꼬불하기까지 한 길에서 과연 어느 쪽의 차가 선선히 후진해줄까?

급격히 불안해진 마음에 그는 차를 세웠다. 시동까지 껐다.

차창을 조금 열어, 혹시 다른 차의 엔진 음이 들려오나 귀 기울였다. 부근 숲에서 무언가, 산짐승 같은 게 푸다닥 나뭇잎들을 떨어뜨리며 달아났다. 다른 차의 엔진 음은 들리지 않았다.

그는 다시 차의 시동을 걸어 앞으로 나아갔다. 어서 부지런히 가는 게 최선이었다. 더워도 차창들을 꼭 닫은 것은, 길 옆 무성한 풀줄기들이 차 안으로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지만 적막한 산속 분위기가 두려운 까닭도 있었다. 여태 행인 하나 만나지 못했는데…… 정작 행인을 만난다면 그 행인이 더 무서울 것 같은 적막함.

내가 이 킬로미터 중 얼마나 들어왔을까?’

차 안이 못 견디게 더워졌다. 그는 에어컨을 틀었다. 잠시 시원해졌지만 다시 꺼야 했다. 에어컨 작동 부담에 엔진 음이 요란해져, 다른 차의 소리를 못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다가는 비좁은 산길에서 차끼리 충돌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찜통처럼 변해가는 차 안이지만 참고 갈 수밖에 없었다.

목덜미와 겨드랑이에 땀이 축축하게 배더니 이마에서도 땀방울이 흘러내려 시야를 가렸다. 운전하랴 눈가의 땀을 훔쳐내랴, 그는 혼자서 여간 바쁘지 않았다.

앞의 모퉁이를 돌자, 뱀 같은 게 길바닥에 있었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잘 살펴보니 검게 썩은 마른 나뭇가지였다. 식은땀이, 더워서 흘린 땀과 뒤범벅될 것 같았다.

아파트에서 편히 잘 지내던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어젯밤, 아내가 그에게 제의했다.

여보. 내가 내일 하루, 먼 데 출장가야 하는데 운전해줄 수 있어요?”

머뭇대는 그에게 눈치 빠른 아내가 단서를 달았다.

당신이 하는 일에 지장이 없다면 말이죠.”

그제야 그는 고개를 끄덕여 제의를 받아들였다. 사실, 그는 한가했다. 아내의 직장 출퇴근 시간에 맞춰 거실 컴퓨터를 켰다 껐다 하는 게 그가 하는 일의 전부라면 지나친 말일까? 물론 세 달 전 시작하다 만 장편소설의 첫머리가 컴퓨터에 한글 파일로 내장돼 있긴 했다.

종일 직장에 나가있는 아내로서는 당연히 그가 아파트에 틀어박혀 컴퓨터로 소설을 쓰며 지내리라,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소파에 앉아 졸며 종일을 보낼 때 켜놓은 컴퓨터의 바탕화면도 껌껌해진 꼴로 주인을 따라 함께 존다는 사실이다. 절전기능 때문이었다. 아내가 귀가했음을 알리는, 현관문이 찰칵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는 부리나케 컴퓨터의 자판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려 껌껌하게 졸던 화면을 생생하게 깨워 놓았다.

거리의 끝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휴지와 라면 봉지와 빈 캔과 짝 잃은 양말 한 쪽까지 훑으며, 사내가 멈춰 서 있는 데까지 끌고 오고 있었다.’

두 줄 나가다 만 장편소설의 첫머리가, 환하게 깨어난 컴퓨터 화면에서 커서 불빛까지 깜빡이며 세 달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현관으로 들어와 하이힐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면 그는 늘 한 마디 물었다.

별 일 없었어?”

그러면 아내는 거실 구석에서 커서를 반짝이는 컴퓨터 화면을 힐끗 보며 말했다.

별 일 없었어요. 당신, 소설은 잘 되요?”

잘 되다 말다 하지, .”

사실, 그가 아내한테 거짓 광경을 연출할 필요는 없었다. 컴퓨터를 꺼 놓고 텔레비전이나 종일 보는 모습이라 해도 뭐라 그럴 아내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무위도식하지 않는다.’는 자존심 때문에 그는 단 하루도 아내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컴퓨터를 켜고 끄는 짓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 쑥스런 짓을 내일 하루 안 해도 되었다.

아내는 길눈이 어두웠다. 출장지인 모 관광호텔이 이백 리쯤 되는 먼 지방에 있자, 그에게 운전을 부탁한 것이다. 당신 혼자 이른 새벽에 일어나 시외버스라도 타고 가면 될 일인데 굳이 자가용 운전을 부탁한 것은 답답한 아파트에 틀어박혀 소설 쓰느라 고생 많은 남편이라 여겨 바깥바람 한 번 쐬어주기 위함일 수 있었다.

그는 소풍 가기 전 날 밤의 초등학생처럼 마음이 들떴다.

인터넷으로, 아내가 출장 가는 지방에 대한 갖가지 정보부터 검색했다. 그 지방은 태백산맥이 가까운, 인구 삼 만이 조금 넘는 시골 군이었다. 지방자치제의 성과인 듯 홈페이지까지 마련해, ‘우리 고장의 음식’‘우리 고장의 역사’‘우리 고장이 낳은 위인’ ‘우리 고장의 자연등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 고장의 명소에 주목했다. 참나무 숯 공장, 삼국시대의 산성 유적, 향토박물관, 행복 생태학교 순으로 나열된 자료를 프린트로 뽑았다.

아내의 출장은, 그 지방에 있는 모 관광호텔 컨벤션홀에서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받는 업무 관련 교육 때문이었다. 아내가 교육을 받는 동안 그는 호텔 밖에서 혼자 여섯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는 그 시간 동안 차를 몰고 우리 고장의 명소를 들러보거나, 이웃한 대관령을 넘어 동해 바닷가에서 회라도 한 접시 먹고 돌아오거나, 둘 중 하나를 내일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선택에 따라, 다르게 전개될 내일 하루다!’

아내는 벌써 안방에서 잠들었는데 그는 괜히 들떠 혼자 거실을 서성이다가 늦게 잠들었다.

다행이었다. 늦게 잠들었어도 오늘 아침 여섯 시, 그는 새벽같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일곱 시 반에 아내를 자가용 뒷좌석에 태운 뒤 그는 시동을 걸었다.

천천히 아파트 주차장을 떠났다. 휴일만 되면 장거리 운전여행을 즐기던, 어느 한 때의 추억도 있는 그였으므로 오늘 가는 지방이 낯선 곳은 아니었다.

정확히 아홉 시 오십 분에 목적지인 관광호텔 정문 앞에 도착했다. 아내가 차에서 내리며 그에게 말했다.

그럼, 혼자 시간을 잘 보내세요. 나하고 오후 네 시경에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는 거, 잊지 않겠죠?”

정문 안으로 부지런히 들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차를 돌렸다. 마침내 혼자, 먼 타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우리 고장의 명소들을 들러보거나, 이웃한 대관령을 넘어 동해 바닷가에서 회라도 한 접시 먹고 돌아오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계획했었는데…… 그는 갑자기 의욕이 사라지며 어느 선택도 내키지 않았다.

편견일 수 있지만 군 단위 지역에 있는 명소들이 오죽하겠는가. 인구도 삼 만밖에 안 되는데우리 고장의 명소라니?

대관령을 넘어 동해 바닷가에서 회라도 한 접시 먹고 돌아오는 일도 그렇다. 왕복하는 데만 네 시간이 걸릴 텐데 그러면 종일 차만 몰고 다니다 만단 말인가?

소풍 가기 전 날 밤의 아이처럼 들떴었던 그가 이제는오후 네 시 전까지 이 시골구석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걱정까지 하며 운전석에 무력하게 앉아 있었다.

궁여지책으로, 다시 우리 고장의 명소자료를 보았다. 그 중 굳이 한 곳을 고른다면행복 생태학교였다. 학교 이름이 재미나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가라앉은 기분을 전환시키고자 일부러 소리 내어 자료를 읽었다.

행복 생태학교는 해발 오백 미터에 자리 잡고 있으나 낮은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분지라 높아도 춥지 않기 때문에 새나 곤충 등 생물이 살기에 아주 적합한, 행복한 곳이다. 지난 천구백구십년 유월에 김용석님이 사재를 털어 자연과 생명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문을 열었다. 다양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나무 나라’, 수서 곤충과 양서류를 볼 수 있는 연못 나라’, 나비들을 한데 모은나비 나라’, 잠자리의 일생을 볼 수 있는 잠자리 나라’, 풍뎅이 모양을 한 교육 센터 등이 만여 평 공간에 흩어져 있다.”

만여 평이라니, 삼십 평 아파트에서 사는 그에게 상상도 되지 않는 넓이였다. 김용석이란 사람이 산속에 과천 대공원 비슷한 것을 만들어 놓았다는 얘기일까?

그는 이 지방의 약도까지 조수석에 펼쳐놓았다. 약도 속의행복 생태학교, 조금 전 아내와 헤어진 관광호텔에서 오 킬로미터쯤 되는 거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근처에 와 있었다.

시동을 걸어 일 킬로미터쯤 운행하자 과연, 초록색 페인트 글씨로행복 생태학교 약 2KM’라 쓴 나무 팻말이 나타났다. 이차선 지방도에서 곁가지처럼 난, 비좁은 일방통행로를 그 팻말이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귀부터 비포장 흙길이었다.

여기 말고 다른 데로 갈까?’

고민했으나, 이런 식으로 오락가락했다가는 하루 종일 아무 데도 들러보지 못할 것 같았다. 오후 네 시 전까지는 아내를 태우러 관광호텔 앞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사실, 오가다 보면 여유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괜한 헛기침까지 한 번 한 뒤 행복 생태학교 진입로로 운전대를 돌렸다. 비포장 길일망정 평탄하게 닦여 있어서 쉬 목적지에 닿을 듯싶었다.

나중에 발견했지만, 어귀에서 십여 미터까지만 평탄하게 닦인 길이었다. 행복 생태학교 교장이 외부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해 잔머리를 쓴 걸까? 어쨌든 그가 차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은 일이었다.

 

이 킬로미터 중 반은 넘게 오지 않았을까?’

현재 시각이 열 시 반이다. 열 시쯤 진입했었으니 삼십 분쯤 운행한 듯싶었다. 이차선 지방도였다면 백 리는 갔을 시간이었다. 기가 막혔다.

엔진이 바람 앞 촛불처럼 푸득거리기 시작했다. 계속 일단 기어로 오자 엔진에 무리가 온 듯싶었다. 촛불을 살리듯 가속페달을 살살 밟으며 가는데 뭐에그윽!’ 긁히는 소리가 차 밑바닥에서 나더니 엔진까지 꺼졌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문이 쉬 열리지 않았다. 길옆 무성한 수풀더미 탓이었다. 갑자기 힘주어 열면 문이 우그러질지도 몰랐다. 그는 두 손으로 천천히 힘주어 차 문을 열어, 생긴 틈으로 간신히 비집고 내렸다.

차체 밑을 살폈다. 길바닥의 웅덩이진 데서 솟은 큰 돌에 차의 밑바닥이 걸려있었다.

젠장!”

애당초 차대가 높은 지프차가 아니라면 들어올 길이 아니었다.

다시 차를 탄 뒤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엔진이 부릉!’ 하고 되살아났다. 천천히 후진시킨 뒤 기어를 다시 일단으로 바꿨다. 길옆 숲으로 앞바퀴 한쪽을 밀어 넣듯 조금 나아간 뒤, 아슬아슬하게 그 돌 옆으로 지나갔다. 숲으로 들어갔던 차 옆면이 싸리나무가지들에 우두두둑!’긁혔다.

돌에 밑이 찢기고 싸리나무가지들에 옆이 긁히기까지.

나중에 차를 살펴보겠지만 수리비가 만만치 않게 들 것이다.

이건 행복 생태학교가 아니라 생지옥 가는 길이구먼!”

그는 푸념까지 하며 다시 앞으로 운전해 가는데 길의 웅덩이들이 잦아져, 수시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놓았다 하느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브레이크가 과열될 듯싶어 다시 차를 세웠다.

아파트가 그리워졌다. 거실 소파에 앉아 보내던, 무료한 생활이 그리워졌다. 오늘 운전 일을 맡지 않았더라면 이 시간쯤 혼자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졸지 않았을까? 무료하긴 해도 이렇게 고생하는 시간은 아닐 것이다.

 

아내가 출근하면 혼자 남는 아파트라, 아무도 그의 집필활동을 방해할 수 없었다. 절간처럼 고요해진 아파트 안에, 그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밖에 다른 소리는 존재할 수 없었다. 직장에 나갈 일 없이 집필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자, 작품이 쓰이지 않았다.

거리의 끝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휴지와 라면 봉지와 빈 캔과 짝 잃은 양말 한 쪽까지 훑으며, 사내가 멈춰 서 있는 데까지 끌고 오고 있었다.’

처음 두 줄 이상 나가지 못했다. 그는 당황했다. 완벽한 집필 환경이 갖춰진 순간, 문장이 더 이상 나가지 않다니.

당황하면 당황할수록, 두 줄 이상의 문장은 떠오르지 않았다.

장편소설 집필에 대한 강박증일까?

한 번 바깥바람이라도 쐬어야 할 것 같았다. 한 달째, 그는 아파트 문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옷장에서 연푸른색 춘추 양복을 꺼내어 입고 거울 앞에 섰다. 헝클어진 머리도 빗으로 다듬고 외출할 채비를 마쳤다. 그 때 띵똥하고 비디오폰이 울었다.

문밖에 누가 온 것이다. 쉬 문을 열어주기에는 세상이 험했다. 그는 문 앞 장면이 나타나는 비디오폰의 화면 스위치를 누르며 말했다.

누구십니까?”

대답이 없었다. 화면에도 나타나는 이 없이, 화사한 봄 햇살만 보였다.

그의 아파트는 십층인데 문 앞으로 복도가 있었다. 그 복도의 외부 창으로 봄 햇살 한 무더기가 들어와 빛나고 있었다.

동네 장난꾸러기 아이가 비디오폰의 바깥스위치를 누르고 달아난 걸까?

그는 비디오폰 화면으로 봄 햇살을 지켜보다가…… 양복을 다시 벗어 옷장 안에 넣었다. 명퇴자가 화창한 대낮에 외출할 용무는 딱히 없었다. 소파에 맥없이 앉아 텔레비전의 리모컨을 찾았다.

그 날부터 그는 아내의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컴퓨터를 켜고 끄는 짓을 연출하며 낮 시간을 보냈다.

성가시게 여겨지는 햇살이었다. 창가에 블라인드까지 친 뒤 어둑한 거실에서 유령처럼 지냈다. 바깥바람을 쐬고 싶을 때에는 밤에 외출하여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다 들어왔다.

 

길바닥에 떨어진 햇빛도 몇 점 되지 않았다. 울창하게 높이 자란 나무들에 하늘 대부분이 가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차 옆에 서서, 고개 쳐들고 하늘 쪽을 보았다. 햇빛의 투과 정도에 따라 나뭇잎들이 연초록부터 청록색에 이르는 다양한 색들로 촘촘한 그물망을 이루고 있었다.

햇빛 그물망이구먼.”

정말 오랜만의 햇빛이었다. 오늘 아침에 관광호텔까지 운전해오는 동안에는, 이른 시간인데다가 안개 낀 산간지역이 많아서 햇빛을 볼 수 없었다.

이런 날은 오후 네 시 전까지 이 시골구석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쓸데없는 걱정하며 전전긍긍할 게 아니었다. 아무 데나, 햇빛이 환하게 쏟아지는 장소에 차를 세워놓고 일광욕을 했어야 했다. 그는 뒤늦게 후회했다.

그 때 웬 엔진 음이 들려왔다

아연 긴장한 그는 두 귀를 기울였다. 두 귀가, 동물의 귀처럼 각기 소리의 방향을 찾아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전방에서 들려오는 엔진 음이었다.

, , ……

경운기이거나 낡은 화물트럭일 것 같았다.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닥쳤다. 꼬부라진 길모퉁이 저편이라 정체는 안 보이는 채 , , 커지는 소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메아리까지 만들어내며.

비좁은 길에서 충돌할 사태였다. 그는 차에 탄 뒤 경적을 눌렀다.

빠바방 빠바방……

, , 엔진 음과 그 메아리도 그쳤다. 상대편이 그의 존재를 알아챈 것이다.

그가 조심스레 차를 몰고 모퉁이를 돌자, 눈앞 오 미터쯤 되는 거리에 경운기가 있었다. 새마을 모자를 쓴 노인이 양 팔로 경운기 핸들을 벌려 잡고 멈춰 선 모습이, 마치 사마귀가 앞의 두 다리를 벌리고 선 듯 괴기스러웠다.

경운기라도 교차될 길이 아니었다. 그가 난감한 표정으로 운전대만 잡고 있자 노인이 경운기를 후진하기 시작했다. 꼬부라진 길에, 적재함까지 달렸는데도 간간이 뒤돌아보며 후진해 가는 능숙한 솜씨였다. 그의 차도 조금씩 전진해 갔다. 십 미터쯤 갔을까, 갑자기 넓은 터가 훤하게 나타났다.

경운기가 그 터에 들어가 멈추자, 그는 편하게 따라 들어가 주차했다. 버스도 주차할 수 있는 넓은 터였다. ‘어떻게 이런 넓은 터가 산속에 있었을까?’ 놀라 주위를 살핀 그는 어이가 없었다. 한 쪽에 이런 나무 팻말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 생태학교 주차장

얼결에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주차장 주위의 나무그루들과 같은 색이어서 미처 몰랐었는데 통나무들로 만들어진 행복 생태학교정문이 코앞에 있었다.

그가 놀라고 있을 때 노인의 경운기가, , ’, 후진했던 그 길로 사라져버렸다. 고맙다고 인사드릴 기회를 그는 놓쳤다.

행복 생태학교

어제 밤에는 인터넷 정보로 만났고, 오늘은 오전 열 시 경부터 방금 전까지 내내 원망스러웠던 존재가 눈앞에 있다니…….

감개무량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정문이 안쪽으로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하필 쉬는 날인가?’

목덜미의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며 정문 안쪽을 살폈다. 통나무들 틈새로 보이는 안쪽에도 사람 하나 없이, 보도라든가 온실 같은 구조물만 언뜻 보였다.

그는 조수석에 둔 행복 생태학교관련 자료를 다시 보았다. 끝 부분에 작은 글씨로 주의사항이 있었다.

방문 전 예약을 하셔야 좋은 학습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온 라인 예약도 가능합니다. (033)×××-×××’

그가 어제 밤에 이 문장을 못 봤을 리 없었다. ‘직접 방문하셔도 좋지만이란 전제가 생략된 문장이라고 여겼던 게 아닐까? 지금 보니 그런 전제가 아니라반드시란 부사가 생략된 듯싶었다.

반드시 방문 전 예약을 하셔야 좋은 학습을 하실 수 있습니다.’

비로소 이 사태가 납득되었다. 예약 없이 찾아온 그는 곤경에 처했다.

이제라도 통화해보기로 결심했다. 휴대폰을 꺼내어 그 번호를 누르자 통화불능지역이라는 신호가 액정화면에 떴다. 하긴, ‘033’으로 시작된 번호는 유선전화의 번호였다. 이곳은 무선전파마저 닿을 수 없는 깊은 산속이었다.

어떡해야 하나?’

돌아가기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 , 경운기 소리가 아직도 들리니 삼십여 분은 지나야 길이 비워질 것 같았다. 생각다 못해 그는 정문을 부여잡고 흔들어 봤다. 육중한 정문은 꿈적도 않았다.

안쪽에 대고 소리라도 질러야 하나?’

망설이다가, 정문 한 구석의 작은 쪽문을 발견했다. 정문처럼 통나무로 만들어져 미처 몰랐었다.

쪽문도 잠겨 있었다. 찬찬히 살폈다. 나무 빗장이 느슨하게 걸려 있었다. 그는 틈새로 손을 넣어 빗장을 뺐다.

마침내 안으로 들어섰다. 큰 나무들이 명패를 달고 줄지어 늘어선 사이로, 넓적한 돌을 듬성듬성 깔아 만든 보도가 나 있었다. 그는 사열이라도 하듯,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나무들의 명패를 읽었다. 잣나무 주목나무 구상나무 젖나무 자엽자두 느티나무 은행나무 엄나무 산수유나무 왕벚나무 겹벚나무 매실나무 라일락나무 산딸나무…….

나무들의 사열이 끝나자 따가운 초여름햇빛이 폭포수처럼 그를 덮쳤다.

초입만 나무그늘 길이었을 뿐, 이제부터는 스타디움으로 들어선 듯 광활한 공간이었다. 띄엄띄엄 들어선 건물들 사이로 잔디와 화초류가 가득했다.

그는 현기증까지 났는데 엄청난 햇빛 때문이었다. 몇 달 간 못 봤던 햇빛들이 한꺼번에 뭉쳐 떨어지는 착각마저 일었다. 휴대폰의 전파조차 날지 못하는 청정한 공간에 햇빛들이 범람했다.

그는 오른손을 이마에 대 모자의 챙처럼 만든 뒤 천천히 둘러보았다. 가까운 화초들부터 보았다. 나무들처럼, 화초마다 명패가 꽂혀 있었다. 과꽃 꽈리 나팔꽃 능소화 만병초 매리골드 미모사 봉선화 분꽃 붓꽃 비비추 매발톱꽃 불두화 수국 달개비 접시꽃 채송화 천일홍 카네이션 패랭이꽃…….

화초들의 사열이 끝났다.

둥근 온실 같은 구조물 차례였다. ‘나비 나라라는 팻말이 구조물 위에 붙어 있었다. 유리로 만들어져 안이 내비치는데 언뜻 보기에 수풀더미 같았다. 그는 입구를 찾아냈다. 입구는 호리병의 주둥이처럼 앞으로 튀어나온 형태로, 미닫이문이 달려 있었다.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바깥보다 더울 거라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천장에 해당될 윗부분에 하얀색 판을 넓게 깔아 햇빛을 차단했고, 벽에 해당될 옆면의 유리들 사이로 촘촘한 방충망을 시설해 놓아 바람의 소통도 잘 되는 때문이었다.

몇 걸음 내디디자, 수풀이나 바위에 붙어 있던 나비들이 일제히 날아 색종이조각들처럼 반짝거렸다. 단순한 수풀더미가 아니었다. 탱자나무, 화초, 나팔꽃덩굴이 바위들과 어우러진 가운데 쟁반만한 작은 습지들 또한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습지에는 화초들만큼이나 다양한 색깔의 나비들이 앉아있거나 맴돌았다.

나비 외에도, 시커멓거나 파란 애벌레들이 풀잎이나 나뭇가지에서 기어가고 있었다. 풍경은 요란한 듯싶지만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 나비 나라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 소리를 죽였다.

나비 나라를 사분지 일쯤 봤을 때, 기분 나쁜 이상한 소리가 나지막하게 그의 귀에 들렸다.

누렁개가 허연 이빨을 드러낸 채나비 나라밖에서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입구 쪽을 보았다. 다행히 미닫이문이 닫혀 있었다. 누렁개가 침까지 질질 흘리며 신음하듯 으르렁거렸다.

이거, 어떡해야 하나!’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누렁개도 밖에서 따라 움직였다. 나비 나라 구조물이 둥근 유리통 같은 형태라, 서로를 보며 빙빙 도는 꼴이었다. 누렁개 목에는 이 미터 남짓한 줄이 달려 있었다. 어딘가에 매여 있다가 줄이 끊기며 이곳으로 달려온 게 아닐까?

바깥, 오십여 미터 전방에 조립식 주택이 하나 있었다. 여기 행복 생태학교 교장의 사택으로 여겨지는 그 주택의, 개집에 줄로 매여 있었던 개일 듯싶었다. 그는 주택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무도 그 주택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가 정문 옆 쪽문을 통해 들어올 때부터 자신의 발걸음 외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행복 생태학교 교장이 가족과 함께 읍내로 일 보러 나간 것일까? 최소한의 보안을 위해 누렁개 한 마리 남겨 놓고서.

그래서, 방문 전 예약해 달라고 홈페이지에 밝혀 놓았던 걸까? 젠장! 그러려면 그 문장 앞에 반드시라는 부사를 적었어야지!’

누렁개와 그는 유리를 사이에 두고 눈길이 마주쳤다. 파란빛으로 적의에 불타는 누렁개 눈깔. 그를 도둑으로 여기는, 터무니없는 오해라니…….

행복 생태학교 약 2KM’란 팻말을 보고 어귀로 들어섰을 때부터 터무니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무엇 하나 마음 편하게 그를 맞아주질 않았다. 그는 아악!’외마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갈증을 느꼈다.

바깥으로 십여 미터 전방에 펌프가 있었다. 누렁개가 변함없이 시퍼런 적의로 주위를 맴돌고 있으니, 시원한 지하수를 제공할 그 펌프도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그는 갈색 나비들이 새까맣게 앉아있는 습지 가에 몸을 엎드려 목을 축였다. 땅바닥을 얕게 파고 이끼류를 심어놓은 그곳엔 물기가 축축했다. 흙가루 같은 게 이빨 새로 걸려 꺼림칙한 물이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습지에 있던 갈색 나비들이 시커멓게 떠오르며 난리였다.

갈증은 달랬으나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그는 갈매나무의 가지 하나를 길게 잡아 꺾었다. 갈매나무에 붙어있던 노랑나비들이 떠올라 주위가 부산해졌다. 갈매나무가지를 한 손에 단단히 쥐고 입구 쪽으로 갔다. 누렁개도 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미닫이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나뭇가지로 누렁개를 공격하며 피신할 작전이었다. 악마처럼 허연 이빨을 있는 대로 다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누렁개를 코앞에서 보자, 그는 전의가 꺾였다.

그나마, 그가 나비 나라로 들어온 뒤 개 줄이 풀렸기 천만다행이었다. 진돗개 잡종으로 보이는 저 놈과 밖에서 마주쳤더라면 어찌 됐을까.

그는 탈출을 단념하였다. 누군가 나타날 때까지 바위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덩달아 날아오르던 나비들이 이제는 그의 어깨나 머리 위에 날아와 앉았다.

몇 달 간 지내던 거실 소파가 이다지도 그리울 수가 없었다.

사실, 무엇 하나 불편함이 없는 아파트였다. 냉장고에는 아내가 만들어놓은 반찬들이 가득했고, 컴퓨터의 인터넷으로 들어가면 세상 돌아가는 정보들이 널려 있었다. 텔레비전은 유선방송에 가입되어 있어서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골라볼 수 있었다. 그러다 졸음이 쏟아지면 소파에 등기대고 앉아 낮잠을 잤다.

두 줄까지 나가다 만 장편소설이 문제였을 뿐이다. 사실, 그가 글을 쓰지 않고 텔레비전이나 보며 시간을 보내도 뭐라 할 아내가 아니니까 그 또한 별 문제는 아니었다. 단지, 직장을 다니며 생활비를 버는 아내에 대한 예의(?)로써 그는 늘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이면 됐었다.

거리의 끝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휴지와 라면 봉지와 빈 캔과 짝 잃은 양말 한 쪽까지 훑으며, 사내가 멈춰 서 있는 데까지 끌고 오고 있었다.’

혹시 글 속의사내가 그를 대신해 거리로 외출한 게 아니었을까? 스토리가 나아가지 못하는 이상 사내는 항상 거리에 외출해 있었다.

그가 아파트 밖으로 외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편한 생활이 무료한 날들이었다고 느낀 것은 복에 겨운 짓이었다.

그는 오늘의 외출을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지겹도록, 초여름햇빛이 나비 나라 안으로 들이치고 있었다.

 

아내는 관광호텔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오후 네 시 반이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몇 번 휴대폰을 걸었으나 통화가 되지 않습니다.’ 라는 자동안내만 반복됐을 뿐이다.

이 이가 동해안에서 넘어오는 중이 아닐까? 운전하느라 휴대폰을 받기 힘들겠지.’

좋게 해석하지만 왠지 불길한 생각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손가방에서 거울을 꺼내어 얼굴화장을 다듬는다. 산속에 자리 잡은 관광호텔 지역이라 지나가는 차나 사람도 별로 없다.

남편은다섯 명의 직장 동기 중 네 명이 승진하는 인사발령에서 탈락된 뒤 근무의욕을 잃고 밤잠까지 못 이루기 시작했었다. 그녀는 폐인처럼 되어가는 남편에게 명퇴신청을 권했다. 맞벌이도 좋지만 자칫했다가는 남편을 잃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남편이 젊었을 적에 문학했던 소양을 되살려서 한 번 대작에 도전해 보겠다.’며 명퇴 후 생활을 잘 보내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남편의대작은 기대도 않는다. 어떻게 이십 대에 했던 문학을 나이 오십이 다 되어 되살린단 말인가.

장편소설을 쓰거나 말거나, 더 이상 폐인이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동료끼리 경쟁해야 하는 직장생활은 유순한 성격의 남편에게 무리였었다. 남편 같은 사내는 여럿이 모인 직장생활보다는 혼자 하는 직업을 가졌어야 했다.

몇 달째, 혼자 아파트에서 잘 지내는 것만 봐도 입증된 사실이다.

그런데 이 이가 너무 늦네. 다섯 시가 되어 가는데…….’

그녀는 다시 얼굴화장을 다듬었다. 그 시간, 산 너머 행복 생태학교의나비 나라안에서 남편이 목이 다 쉬어 외치고 있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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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관광호텔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오후 네 시 반이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몇 번 휴대폰을 걸었으나 통화가 되지 않습니다.’ 라는 자동안내만 반복됐을 뿐이다.

이 이가 동해안에서 넘어오는 중이 아닐까? 운전하느라 휴대폰을 받기 힘들겠지.’

좋게 해석하지만 왠지 불길한 생각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손가방에서 거울을 꺼내어 얼굴화장을 다듬는다. 산속에 자리 잡은 관광호텔 지역이라 지나가는 차나 사람도 별로 없다.

남편은다섯 명의 직장 동기 중 네 명이 승진하는 인사발령에서 탈락된 뒤 근무의욕을 잃고 밤잠까지 못 이루기 시작했었다. 그녀는 폐인처럼 되어가는 남편에게 명퇴신청을 권했다. 맞벌이도 좋지만 자칫했다가는 남편을 잃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남편이 젊었을 적에 문학했던 소양을 되살려서 한 번 대작에 도전해 보겠다.’며 명퇴 후 생활을 잘 보내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남편의대작은 기대도 않는다. 어떻게 이십 대에 했던 문학을 나이 오십이 다 되어 되살린단 말인가.

장편소설을 쓰거나 말거나, 더 이상 폐인이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동료끼리 경쟁해야 하는 직장생활은 유순한 성격의 남편에게 무리였었다. 남편 같은 사내는 여럿이 모인 직장생활보다는 혼자 하는 직업을 가졌어야 했다.

몇 달째, 혼자 아파트에서 잘 지내는 것만 봐도 입증된 사실이다.

그런데 이 이가 너무 늦네. 다섯 시가 되어 가는데…….’

그녀는 다시 얼굴화장을 다듬었다. 그 시간, 산 너머 행복 생태학교의나비 나라안에서 남편이 목이 다 쉬어 외치고 있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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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갈매나무의 가지 하나를 길게 잡아 꺾었다. 갈매나무에 붙어있던 노랑나비들이 떠올라 주위가 부산해졌다. 갈매나무가지를 한 손에 단단히 쥐고 입구 쪽으로 갔다. 누렁개도 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미닫이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나뭇가지로 누렁개를 공격하며 피신할 작전이었다. 악마처럼 허연 이빨을 있는 대로 다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누렁개를 코앞에서 보자, 그는 전의가 꺾였다.

그나마, 그가 나비 나라로 들어온 뒤 개 줄이 풀렸기 천만다행이었다. 진돗개 잡종으로 보이는 저 놈과 밖에서 마주쳤더라면 어찌 됐을까.

그는 탈출을 단념하였다. 누군가 나타날 때까지 바위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덩달아 날아오르던 나비들이 이제는 그의 어깨나 머리 위에 날아와 앉았다.

몇 달 간 지내던 거실 소파가 이다지도 그리울 수가 없었다.

사실, 무엇 하나 불편함이 없는 아파트였다. 냉장고에는 아내가 만들어놓은 반찬들이 가득했고, 컴퓨터의 인터넷으로 들어가면 세상 돌아가는 정보들이 널려 있었다. 텔레비전은 유선방송에 가입되어 있어서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골라볼 수 있었다. 그러다 졸음이 쏟아지면 소파에 등기대고 앉아 낮잠을 잤다.

두 줄까지 나가다 만 장편소설이 문제였을 뿐이다. 사실, 그가 글을 쓰지 않고 텔레비전이나 보며 시간을 보내도 뭐라 할 아내가 아니니까 그 또한 별 문제는 아니었다. 단지, 직장을 다니며 생활비를 버는 아내에 대한 예의(?)로써 그는 늘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이면 됐었다.

거리의 끝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휴지와 라면 봉지와 빈 캔과 짝 잃은 양말 한 쪽까지 훑으며, 사내가 멈춰 서 있는 데까지 끌고 오고 있었다.’

혹시 글 속의사내가 그를 대신해 거리로 외출한 게 아니었을까? 스토리가 나아가지 못하는 이상 사내는 항상 거리에 외출해 있었다.

그가 아파트 밖으로 외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편한 생활이 무료한 날들이었다고 느낀 것은 복에 겨운 짓이었다.

그는 오늘의 외출을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지겹도록, 초여름햇빛이 나비 나라 안으로 들이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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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바깥보다 더울 거라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천장에 해당될 윗부분에 하얀색 판을 넓게 깔아 햇빛을 차단했고, 벽에 해당될 옆면의 유리들 사이로 촘촘한 방충망을 시설해 놓아 바람의 소통도 잘 되는 때문이었다.

몇 걸음 내디디자, 수풀이나 바위에 붙어 있던 나비들이 일제히 날아 색종이조각들처럼 반짝거렸다. 단순한 수풀더미가 아니었다. 탱자나무, 화초, 나팔꽃덩굴이 바위들과 어우러진 가운데 쟁반만한 작은 습지들 또한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습지에는 화초들만큼이나 다양한 색깔의 나비들이 앉아있거나 맴돌았다.

나비 외에도, 시커멓거나 파란 애벌레들이 풀잎이나 나뭇가지에서 기어가고 있었다. 풍경은 요란한 듯싶지만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 나비 나라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 소리를 죽였다.

나비 나라를 사분지 일쯤 봤을 때, 기분 나쁜 이상한 소리가 나지막하게 그의 귀에 들렸다.

누렁개가 허연 이빨을 드러낸 채나비 나라밖에서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입구 쪽을 보았다. 다행히 미닫이문이 닫혀 있었다. 누렁개가 침까지 질질 흘리며 신음하듯 으르렁거렸다.

이거, 어떡해야 하나!’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누렁개도 밖에서 따라 움직였다. 나비 나라 구조물이 둥근 유리통 같은 형태라, 서로를 보며 빙빙 도는 꼴이었다. 누렁개 목에는 이 미터 남짓한 줄이 달려 있었다. 어딘가에 매여 있다가 줄이 끊기며 이곳으로 달려온 게 아닐까?

바깥, 오십여 미터 전방에 조립식 주택이 하나 있었다. 여기 행복 생태학교 교장의 사택으로 여겨지는 그 주택의, 개집에 줄로 매여 있었던 개일 듯싶었다. 그는 주택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무도 그 주택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가 정문 옆 쪽문을 통해 들어올 때부터 자신의 발걸음 외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행복 생태학교 교장이 가족과 함께 읍내로 일 보러 나간 것일까? 최소한의 보안을 위해 누렁개 한 마리 남겨 놓고서.

그래서, 방문 전 예약해 달라고 홈페이지에 밝혀 놓았던 걸까? 젠장! 그러려면 그 문장 앞에 반드시라는 부사를 적었어야지!’

누렁개와 그는 유리를 사이에 두고 눈길이 마주쳤다. 파란빛으로 적의에 불타는 누렁개 눈깔. 그를 도둑으로 여기는, 터무니없는 오해라니…….

행복 생태학교 약 2KM’란 팻말을 보고 어귀로 들어섰을 때부터 터무니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무엇 하나 마음 편하게 그를 맞아주질 않았다. 그는 아악!’외마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갈증을 느꼈다.

바깥으로 십여 미터 전방에 펌프가 있었다. 누렁개가 변함없이 시퍼런 적의로 주위를 맴돌고 있으니, 시원한 지하수를 제공할 그 펌프도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그는 갈색 나비들이 새까맣게 앉아있는 습지 가에 몸을 엎드려 목을 축였다. 땅바닥을 얕게 파고 이끼류를 심어놓은 그곳엔 물기가 축축했다. 흙가루 같은 게 이빨 새로 걸려 꺼림칙한 물이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습지에 있던 갈색 나비들이 시커멓게 떠오르며 난리였다.

갈증은 달랬으나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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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쉬는 날인가?’

목덜미의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며 정문 안쪽을 살폈다. 통나무들 틈새로 보이는 안쪽에도 사람 하나 없이, 보도라든가 온실 같은 구조물만 언뜻 보였다.

그는 조수석에 둔 행복 생태학교관련 자료를 다시 보았다. 끝 부분에 작은 글씨로 주의사항이 있었다.

방문 전 예약을 하셔야 좋은 학습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온 라인 예약도 가능합니다. (033)×××-×××’

그가 어제 밤에 이 문장을 못 봤을 리 없었다. ‘직접 방문하셔도 좋지만이란 전제가 생략된 문장이라고 여겼던 게 아닐까? 지금 보니 그런 전제가 아니라반드시란 부사가 생략된 듯싶었다.

반드시 방문 전 예약을 하셔야 좋은 학습을 하실 수 있습니다.’

비로소 이 사태가 납득되었다. 예약 없이 찾아온 그는 곤경에 처했다.

이제라도 통화해보기로 결심했다. 휴대폰을 꺼내어 그 번호를 누르자 통화불능지역이라는 신호가 액정화면에 떴다. 하긴, ‘033’으로 시작된 번호는 유선전화의 번호였다. 이곳은 무선전파마저 닿을 수 없는 깊은 산속이었다.

어떡해야 하나?’

돌아가기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 , 경운기 소리가 아직도 들리니 삼십여 분은 지나야 길이 비워질 것 같았다. 생각다 못해 그는 정문을 부여잡고 흔들어 봤다. 육중한 정문은 꿈적도 않았다.

안쪽에 대고 소리라도 질러야 하나?’

망설이다가, 정문 한 구석의 작은 쪽문을 발견했다. 정문처럼 통나무로 만들어져 미처 몰랐었다.

쪽문도 잠겨 있었다. 찬찬히 살폈다. 나무 빗장이 느슨하게 걸려 있었다. 그는 틈새로 손을 넣어 빗장을 뺐다.

마침내 안으로 들어섰다. 큰 나무들이 명패를 달고 줄지어 늘어선 사이로, 넓적한 돌을 듬성듬성 깔아 만든 보도가 나 있었다. 그는 사열이라도 하듯,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나무들의 명패를 읽었다. 잣나무 주목나무 구상나무 젖나무 자엽자두 느티나무 은행나무 엄나무 산수유나무 왕벚나무 겹벚나무 매실나무 라일락나무 산딸나무…….

나무들의 사열이 끝나자 따가운 초여름햇빛이 폭포수처럼 그를 덮쳤다.

초입만 나무그늘 길이었을 뿐, 이제부터는 스타디움으로 들어선 듯 광활한 공간이었다. 띄엄띄엄 들어선 건물들 사이로 잔디와 화초류가 가득했다.

그는 현기증까지 났는데 엄청난 햇빛 때문이었다. 몇 달 간 못 봤던 햇빛들이 한꺼번에 뭉쳐 떨어지는 착각마저 일었다. 휴대폰의 전파조차 날지 못하는 청정한 공간에 햇빛들이 범람했다.

그는 오른손을 이마에 대 모자의 챙처럼 만든 뒤 천천히 둘러보았다. 가까운 화초들부터 보았다. 나무들처럼, 화초마다 명패가 꽂혀 있었다. 과꽃 꽈리 나팔꽃 능소화 만병초 매리골드 미모사 봉선화 분꽃 붓꽃 비비추 매발톱꽃 불두화 수국 달개비 접시꽃 채송화 천일홍 카네이션 패랭이꽃…….

화초들의 사열이 끝났다.

둥근 온실 같은 구조물 차례였다. ‘나비 나라라는 팻말이 구조물 위에 붙어 있었다. 유리로 만들어져 안이 내비치는데 언뜻 보기에 수풀더미 같았다. 그는 입구를 찾아냈다. 입구는 호리병의 주둥이처럼 앞으로 튀어나온 형태로, 미닫이문이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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