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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교로웠다. 내가 명퇴하고 얼마 안 되어 부동산 경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우리 집 경제력의 한 축이었던 아내의 복부인 짓도 덩달아 마감되었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내게 매달 얼마씩 공무원연금이 나오니까. 게다가, 딸애는 시집갔고 아들애는 객지에서 직장을 다니니 자식 뒷바라지도 끝났고…… 단지 외식 같은 불필요한 지출이나 줄이면 되는데, 나는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기를 즐기는 성격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내는 나와 달라서, ‘도시농업센터라는 데를 일주일에 이틀 꼴로 다녔다. 복부인 하다가 농사 가르치는 데를 다닌다니, 그 변신이 영 납득이 안 갔다.

해가 바뀐 올해 이월 어느 날, 아내가 내게 제의했다.

여보. 날씨가 풀리는 대로 우리 농사지읍시다.”

나는 놀라서, 보던 텔레비전도 끄고 물었다.

갑자기 무슨 농사를 짓자는 거야?”

당신 퇴직금으로 산 팔백 평 밭 있잖아요. 거기가 우리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다니기도 좋고, 게다가 당신이 고혈압 환자잖아요. 농사일은 건강관리 차원에서도 좋대요.”

그 밭은 당신이 그 동네 사람한테 부쳐 먹으라 했다 하지 않았어?”

그 사람이 들깨나 심고 그러는 게 영 내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봄에 한 번 씨 뿌리고 가을에 추수하는 게 들깨 농사의 전부라니 그건 밭을 놀리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내가 얼마 전에 그 사람한테 통지했죠, 올봄부터는 우리가 직접 밭을 부칠 테니까 그리 알라고.”

도시농업센터를 다닌다더니 내게 농사 제의를 할 줄이야. 그래도 그렇지, 내가 환갑이 코앞인데 그런 육체노동이 가당하기나 할까? 하는 생각에 아내한테 반문했다.

우리가 식량이 부족한 형편도 아닌데, 그냥 그 밭을 내버려두면 안 되나? 그냥 놀리자고. 힘들게 뭐 하러 농사를 져?”

아내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도 참! 밭을 놀리면 벌금도 나오고 경우에 따라서는 환수 될 수 있는 줄도 모르시는구먼. 농지법이 있어서, 매년 면사무소의 담당 공무원이 관내를 다니면서 그런 농지가 있는지 살펴본다니까.”

그런 법이 있다고?”

당신 같은 한량도 없을 거야. 하긴, 그 좋은 교직도 정년을 칠 년이나 놔두고 명퇴했으니.”

알았어, 농사지을 게. 그만 얘기 해.”

 

당장 그 밭에 간 것은 아니었다. 한 달이 지난, 햇빛 화사한 삼월 말이 되어서야아내를 따라서그 밭을 가게 되었다. 내 명의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구매부터 등기까지 모든 절차를 아내가 알아서 했기 때문에 정작 나는 밭의 위치도 몰랐었다.

아내가 가리키는 대로, 차를 몰고 외곽 도로를 오 분 남짓 달리다가 비포장 자갈길로 들어섰다. 물 흐르지 않는 하천 바닥을 지나 언덕진 데를 이삼 분 정도 오르자, 널따란 땅이 야트막한 두 산자락 사이로 나타났다. 맑은 봄 햇살을 가득 받고 있는, 십오 도 가량 비탈진 그 땅이 우리 팔백 평 밭이었다. 아내가 말했다.

내가 이 동네 사람한테 일당을 줘서, 밭도 다 갈아놓았어요.”

과연 질서정연하게 이랑들이 일궈져 있어서 바로 파종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내가 차 트렁크에서 웬 폭넓은 검정비닐 두루마리부터 꺼내놓고 설명했다.

여보. 우선 이랑의 개념부터 잘 알아야 해요. 이랑이란 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아우르는 말이에요. 이랑의 두둑에 파종하면서 밭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전에 우선 이 검정비닐로 두둑을 씌워야 돼요. 그래야 두둑에 잡초가 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대요. 이런 방법을 비닐멀칭농법이라 하는데…….”

밭이랑이 정확히 오십 개나 된다는데 그 이랑의 두둑들마다 검정비닐을 씌워야 한다니, 나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입을 떡하니 벌렸지만 아내가 그 두루마리를 덥석 내게 떠안기며 자기가 앞장서니 어쩔 수 없었다. 뒤따라 밭으로 들어가서 시키는 대로 비닐멀칭이란 걸 시작했는데, 세상에,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었다.

이랑의 길이가 평균 이십 미터이고 이랑 두둑의 폭은 대략 팔십 센티였다. 두둑의 폭보다 이십 센티 정도 더 넓은 검정두루마리 비닐의 한 끝자락을 아내가 두 손으로 펼쳐 잡고 밭머리에 서면 그 때부터 내 고생이 시작되었다. 내가 그 두루마리를 안고 두둑에 비닐을 풀어 깔면서 반대편 밭머리까지, 이십 미터 가량을 단숨에 뛰어가는 것이다.

작업이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곡괭이를 들고서 고랑을 부리나케 다니면서두둑에 깔린 검정비닐의 양 가장자리를 고랑의 흙으로 덮어줘야 했다. 이 마무리 작업이 부실하면 수시로 부는 봄바람에 검정비닐이 휙 벗겨져서 공중으로 날아갔다. 까마귀 떼처럼 훨훨 날아가는 비닐을 잡는다고 비탈진 밭을그것도 수많은 이랑들로 울퉁불퉁한 밭을 갈팡질팡 달리는 나를 멀리서 누가 봤더라면 미친놈인 줄 알았을 테다.

게다가, 비닐멀칭은 기본적으로 허리를 숙인 채 하는 작업이었다. 요 몇 년 간 거실 소파에 편히 등 기대고 앉아 텔레비전 시청으로 소일하던 내 허리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전에는 가까스로 견뎠으나 오후 들어서는 자주 쉴 수밖에 없었다. 날이 저물어서 작업을 중단하고 세어 봤더니 고작 스무 두둑을 멀칭 했을 뿐이었다. 나머지 서른 두둑은 내일 하기로 미뤘다.

귀가하자마자, 아내는 주방에서 저녁밥을 짓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사이를 못 기다리고 거실 소파에 등기대고 앉은 채로 곤하게 잠들어 버렸다.

 

다음 날도 아침부터 비닐멀칭이 반복됐다. 오후에 들어서 나는 밭고랑에 털썩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아이고 허리야, 나 죽겠네!”

맞은편에서 비닐자락을 붙잡고 있던 아내도 덩달아 풀썩 주저앉으면서 비닐 씌우기가 중단되었다. 결국 오십 두둑 중 아래쪽 열 두둑은 맨땅으로 내버려둔 채 비닐멀칭을 마감했다. 다음 날 하루는 집에서 쉬기로 했다. 잡초를 잡으려다가 우리 부부를 잡을 것 같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되는 거야? 정작 농사는 안 짓고 날마다 뭐하는 짓이냐고!”

하루를 쉬고 밭으로 가면서, 차 안에서 나는 울화를 터뜨렸다.

여보. 도시농업센터에서 그러는데 처음부터 잡초를 잡아놔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 수확도 없다는 거야. 그러니 힘들어도 며칠간은 어쩔 수 없어. 농사 한 번 제대로 지으려고 이십 미터 깊이 관정까지 돈 들여 파 놓았는데…… 참아야지. 안 그래?”

아내가 지하수 개발업자를 구해서 우리 밭 한 가운데에 파 놓은 관정. 한 달 전 거실에서 나한테 여보. 우리 농사지읍시다.’라고 제의를 할 때, 그 지하수 개발업자와 이미 관정 파는 계약이 되어 있었다. 어처구니없지 않은가. 내가 만일 농사짓자는 제의를 거부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요즈음 세상에 어디 어느 늙은 남편이 아내의 제의를 거부할 수 있을까. 그랬다가는 잠자리는 물론이고 밥도 못 얻어먹을 텐데. 어차피 나는 죽으나 사나 산비탈 밭에서 아내의 지도를 받으면서 농사를 지어야 되는 팔자였다.

그렇다면 힘들어도 올 일 년은 아내가 하자는 대로 따르고 내년 봄에 가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나가자빠지자. 예전처럼 이 동네에서 사람 하나 구해서 밭 부쳐 먹도록 하는 대안을 제시해 보고, 그래도 아내가 끝내 우리가 직접 농사지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그 쉽다는 들깨 농사나 짓자고 하자.’ , 내가 살기 위한 방도를 속으로 마련했다.

밭에 도착했다.

의아한 일이 생겼다. 아내가 먼저 차에서 내려 밭으로 내려간 뒤의 일이다. 아내의 반쯤 열린 손가방에 부동산에 관한 책이 들어 있는 게 보였다. ‘복부인 짓은 관둔 것으로 아는데 왜 이런 책을 갖고 다니나?’ 궁금했으나 굳이 묻고 싶지는 않았다. 오래된 작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사재기되팔기니 하면서, 친인척들의 명의를 빌려가며 수선 피우던 그 부동산 일이란 다시는 묻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파종 작업이 시작되었다.

두둑을 씌운 비닐에 약 삼십 센티 간격으로 주먹만 한 구멍을 내면서 파종했다. 감자와 옥수수, 두 가지로 작물을 결정했는데 씨감자는 한 조각씩, 옥수수는 두 알씩 심어 나갔다. 땡볕 아래 종일 허리를 숙이고 다니며 심었지만 비닐멀칭 작업보다는 덜 힘들었다. 툭하면 비닐을 하늘로 날려서 애먹이던 바람이 이제는 몸의 땀을 시원하게 식혀주기나 하고,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된다는 실감도 났기 때문이다.

파종을 끝내고 밭 주변에 앉아 있자, 서늘한 산그늘이 서쪽에서부터 드리웠다. 해가 기울도록 정신없이 일한 하루였다. 온몸은 뻑적지근하지만 파종을 끝내서 마음이 편했다.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저 검정비닐의 구멍들 속에서 옥수수와 감자 싹들이 나기나 할까? 만일 안 나면 그 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 때, 같이 앉아서 쉬던 아내가 침묵을 깼다.

여보. 그저께 멀칭 하다가 만 저 아래 열 두둑 있잖아요, 어둡기 전에 지금 마저 후딱 씌웁시다. 쓰다 만 비닐이 차 트렁크에 있거든요. 다른 데는 멀칭에다 파종까지 마쳤는데 저기만 저래 놓고 마니까 보기 흉하지 않아요?”

한 이불을 덮고 자도 어찌 이리 생각이 다를 수가 있을까. 나는 과연 저 밭에서 파종한 대로 작물이 나오기나 할까 하는 두려운 생각일 때 아직도 그저께 멀칭하다 만 열 두둑에 집착하다니. 나는 긴 말로 아내의 제의를 거절했다.

어지간도 해야지. 그래, 이 넓은 땅을 숨도 못 쉬게 비닐로 씌워 놓고…… 땅이 불쌍하지도 않아? 당신은잡초를 예방하는 방법이라지만 너무하지 않아? 좀 여유를 갖자고. 우리가 사십 개 두둑이나 씌웠으니, 저 나머지는 숨 좀 쉬게 내 버려두자고. 물론 잡초 좀 나겠지. 그 때, 김매면 되지. 내가 학창시절에 외갓집에 놀러 가면 텃밭을 김맸었거든. 그 시절에는 비닐멀칭 같은 것 않고도 맨땅에서 별 일 없이 농사를 잘 지었다고. 요즈음 농사는비닐까지 씌우고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거리야? 이건 자연환경에 해를 끼치는 짓이 아니겠어?”

나도 모르게 생태환경론자가 되었다. 아내가 말없이 있기에 내 열변에 감동한 거라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내는 나보다 여섯 살 어린데 상황에 따라서 내게 존댓말을 쓰다가 반말을 쓰다가 한다. 이번에는 반말로 대꾸했다.

그래 알았어. 남은 열 두둑은 그냥 내버려둬. 그런데 여보, 이제부터는 고랑이야. 아직은 괜찮지만 때가 되면 고랑에도 잡초가 엄청 나게 날 텐데 그걸 어쩌지?”

기가 막혀 내가 언성을 높였다.

"그럼, 그 지겨운 검정비닐을 고랑에도 씌우는 거야?”

아내가 애써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아니야. 이번에는 현수막이야.”

뭔 소리야?”

아내가 찬찬히 설명했다.

밭농사에서 고랑은 작물을 심는 두둑만큼이나 중요해. 배수로 도 되고 농부가 이랑 사이를 다닐 때 통로도 되지. 그러니 고랑에다가 비닐을 깐다면, 다닐 때 밟혀서 다 찢어져. 그래서 현수막을 구해다 까는 거야. 원래는 방초 부직포라는 걸 사다가 깔아야 하는데…… 돈이 드니까 대신 폐 현수막을 재활용하는 거지. 우리, 시청 가서 그 폐 현수막들을 얻어 옵시다.”

 

불법 현수막 철거를 담당하는 부서가 시청에 있었다. ‘밭에 깔 현수막을 얻으러 왔다했더니 그 부서에서 젊은 남자 직원이 우리한테 다가와 물었다.

혹시 그 밭이 도로에 접해 있습니까?”

현수막이 행인들 눈에 뜨이는 곳에 활용된다면 안 좋은 여론이라도 생겨날까 염려하는 것 같았다. ‘불법 현수막을 수거한 거라도 그렇지, 저렇게 아무렇게나 내돌려도 되는 거야?’하는 등의 여론일 테다. 그 의중을 눈치 채고 아내가 자신만만하게 응답했다.

우리 밭은요, 구거로 해서 한참 올라가야 나오는 산골짜기에 있어요.”

구거란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이다. 우리 밭이 맹지라고 밝히는 표현이라서 자랑거리는 못 되었다. 그가 웃으며 아내 이름과 주소, 밭의 위치를 장부에 적더니 청사 뒤편의 큰 창고로 안내했다. 창고 문을 열자, 세상에, 한 때 거리곳곳에 내걸려서 행인들의 눈길을 끌려 애쓰던 온갖 현수막들이 다 쌓여있었다. 시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거리에 내걸린 탓에 언제고 수거되어 소각될 참이었다. 그가 말했다.

필요한 만큼 챙기세요.”

우리는계약금 500만원이면 30평 럭셔리 명품 아파트 입주 OK’이란 현수막을 시작으로 모여라! △△초등학교 51회 동기회’‘ 한약 넣은 한방오리 출시!봉명식당’‘세상에서 가장 빠른 대출, ○○금융’‘ 눈물의 폐업. 반값 왕창 세일, 마지막 기회!’‘ 나는 가수다 출연 가수 특별 초청 공연!’ 등등, 별의별 현수막들을 다 챙겼다. 차 트렁크를 꽉 채웠는데도 아내는 그것도 모자라 뒷좌석까지 실으려 했다. 페인트 냄새도 나고, 경우에 따라서는낮게 걸렸다가 취객들의 오줌 세례를 받았는지 지린내를 풀풀 풍기는현수막들이 무슨 보물단지나 된다고.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제 그만 실어! 이 정도면 고랑에 다 깔고도 남아. 우리 차가 쓰레기수거 차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나흘간이나 고랑에 폐 현수막들을 깔았다.

이 작업은 쇠망치 한 자루와 부직포 고정 핀’, 두 가지 도구가 필요했다. 고정 핀은 자 모양인 십 센티 길이의 철사인데 농자재를 파는 데에서 묶음 단위로 팔았다. 고랑에 현수막을 깐 뒤 그 핀을 못처럼 대고는 쇠망치로 쳐서 바닥에 고정시키는 게 작업의 개요였다. 문제는 현수막의 길이가 짧다는 데 있었다. 우리 밭의 한 고랑 길이가 이십 미터 정도인데 현수막은 대개 오 미터였다. 고랑 하나 당 현수막 네댓 장을 이어서 할 수밖에 없었다. 이을 때 생겨나는 이음매에도 고정 핀들이 쓰였다. 비닐멀칭은 두루마리로 된 것을 쭉 펼쳐 나가면 되지만 현수막 깔기는 낱장 여럿을 이어서 나가는 거라 시간깨나 걸렸다.

나중에 한 번 계산을 해 봤다. ‘한 고랑 당 현수막이 네댓 장이 쓰이는데 나흘 동안 사십 고랑에 현수막을 깔았으니, 쓰인 현수막 수만 해도 최소한 백육십 장을 넘었다는 계산이 나왔다. 거기에 쓰이는 고정 핀들만 해도 셀 수 없이 엄청 났다. 현수막에다 고정 핀을 대고 망치질을 해대는 게 고랑 깔기의 주된 일이라서, 힘들어도 사내인 내가 도맡아야 했다.

뻐꾸기 울음소리 들리는 산속의 밭고랑에, 광고 글자들 요란한 현수막을 펼쳐놓고 그 위에 앉아서 망치로 고정 핀들을 탁 탁 탁 때려 박던 시간들. 바람이라도 불면, 반백이 되어가는 내 머리칼들이 헝클어져 날리면서내가 이러고 있는 게 과연 노후를 잘 보내고 있는 모습인가?’하는 처량한 생각도 들곤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종잇장같이 얇은 검정비닐과 다르게 현수막은 제법 무게가 있는 직물이어서 바람이 불어도 고정 핀만 확실하게 박혀 있으면 별 탈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흘 간 나는 원 없이 망치질 했다. 평생 동안에 할 망치질을 몰아 하듯, 손목이 저리도록 두들겨 박았다. 흙바닥에 직물인 천을 한 자루의 쇠망치로 고착시키는 그 행위. 천을 쑤욱 통과한 뒤 딱딱한 흙바닥에 콱 콱 박히는 자형 고정 핀의 날카로운 쇠붙이 감촉이라니.

아내는 지인들한테서 얻었다는 화초를 여기저기 심고 있었다. 얼마 전 차 안에서 본 작은 가방 속의 부동산 책보다도 더 의아한 아내의 행동이었다. 나는 현수막에 망치질을 하다 말고 아내한테 다가가 물었다.

아니, 밭일은 안 도와주고 여기서 뭐해?”

아내는 그제야꽃길 조성 계획을 털어놓았다.

우리가 여기 올 때마다 항상 다니는 길이 있잖아? 밭의 초입부터 밭의 꼭대기까지 이르는 이 길 말이야. 이런 길이 농로라 할 수 있으니까, 농로 가에 내가 금낭화를 한 줄로 심고 있다고. 우선은 이 농로를 하고 다음에는 다른 화초들을 구해서, 팔백 평 밭 둘레를 에워싸는 꽃길도 조성할 거야. 오뉴월부터 꽃들이 피면 우리 밭 주위가 얼마나 아름답겠어?”

한 때 복부인으로 설쳤던 여자가 산비탈 밭 주위에 꽃길을 조성한다니, 글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꺄우뚱하는 나를, 아내는 짐짓 외면하며 꽃길 조성에 전력하고 있었다.

 

현수막 깔기 작업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시청에서 갖고 온 현수막들이 오후에 동이 났다. 오십 고랑 중 스무 고랑밖에 깔지 못했다. 나는 현수막 위에 벌렁, 대자로 누웠다. 얼마나 숱하게 현수막들을 봤는지, 내 눈에 들어오는 하늘도 이음매 없이 펼쳐진 넓은 현수막 같았다. 고개를 돌려 농로 쪽을 보았다.

아내가 이틀째 금낭화를 심고 있었다. 금낭화 모종들이 담긴 작은 스티로폼 박스를 갖고 다니면서 한 포기씩 꺼내어 농로에 줄 맞추어 심고 있었다. 내가 망치질도 멈추고 현수막 위에 대자로 누워 자기를 지켜보는 줄 모르고 있었다.

여보.”

고요한 산속이라, 이십 미터 가량 거리에서 작은 목소리로 불렀는데도 아내는 들었다. 고개 돌리고 쳐다보는 아내한테 이어서 말했다.

현수막이 다 떨어졌어.”

거 봐요. 그래서 내가 그 날 시청에서 차에 현수막을 더 실으려 했던 거라고.’하며 아내가 잔소리깨나 해댔을 법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요. 내가 시청에 가서 더 얻어 올 테니까.”

하면서 차를 몰고 나가더니, 한 시간쯤 지나, 현수막을 잔뜩 싣고 왔다. 트렁크는 물론이고 뒷좌석에까지 실은 것이다. 다시 나의 현수막 작업은 이어졌다.

하염없이 다음,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그럴 때 아내는 변함없이, 농로에 금낭화만 심고 있었다. 우리 밭이 긴 고구마 모양으로 길쯤하게 생긴 지형이니까 그 긴 농로 따라 금낭화를 심기도 쉬이 끝날 일이 아니었다. 나흘 간, 나는 현수막 위를 옮겨 다니며 망치질을 했고 아내는 하얀 작은 스티로폼 박스를 끌고 다니면서 계속 금낭화를 심었다.

 

현수막 작업을 끝낸 나흘째 날이다.

지난번에 비닐멀칭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둔 열 두둑의 고랑 차례였다. 두둑은 맨땅으로 둔 채 고랑에만 현수막을 깐다는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자칫했다가는 아내한테서 여보. 이 참에 그 열 두둑도 마저 비닐멀칭을 해야 되지 않겠어?’하는 소리나 들을 것 같고…… 궁리 끝에 이틀 전처럼 농로에 있는 아내를 불렀다.

여보.”

아내가 고개 돌려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 남은 고랑들에다가 현수막을 마저 깔 수도 있지만 말이야.”

하며, ‘땅 좀 숨 쉬게 놔두자!’는 생태환경론적인 연설을 또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연설의 마무리 단계에서 스스로 맥이 빠지고 만 것은, 아내가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금낭화 심기를 멈추지 않는 때문이었다. ‘더 듣지 않아도 잘 아니까, 당신 좋을 대로 하라.’는 뜻이었다. 나로서는, 시작한 연설을 중단할 수 없어서 어물어물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 뒤, 남은 현수막들을 끌어다가 밭 가장자리에 쌓아놓고, 부근의 바위에 걸터앉아서 어둑해질 때까지 쉬었다.

눈앞에 펼쳐진 우리 밭의 광경. 사십 이랑이 검정비닐과 갖가지 현수막 순으로 나란하게 짝들을 이루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물결처럼 일제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어디서 본 듯했다. 전국체전의 마스게임 광경 같았다.

 

그 즈음이 가장 평화로웠던 때가 아니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잡초들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잡초들이 처음 눈에 뜨인 곳은 맨땅으로 남겨 둔 열 이랑이었다. 그 이랑의 두둑들에는 땅콩을 심었는데 물론 아내의 결정이었다. 땅콩이 잡초에 강하다는 얘기를 어디서 듣기라도 했는지, 그런 결정을 내렸었다. 일주일 지났을까, 그 두둑들에 잡초들이 무성하게 난 것이다! 고생하며 심은 땅콩은 싹도 틔우지 못했는데 잡초들이 나 보란 듯이 횡행하고 있었다. 고랑도 마찬가지였다. 비닐멀칭과 현수막 깔기를 하지 않은 이랑들이 잡초 밭이 되었다.

우리가팔백 평 밭 둘레에 화초 심기차가 다니면서 훼손된 농로 보수에 매달리느라 며칠 한눈을 판 사이에 그런 사달이 나고 말았다. 아내와 나는 다섯 두둑씩 맡아서 김매기에 들어갔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서, 김밥으로 점심을 때운 때 이외에는 쉬지 않고 전력한 끝에 저물녘에야 열 두둑 모두를 김맸다. 김맨 잡초들을 밭 가장자리에 따로 쌓았더니 손수레로 세 번은 실어다 버릴 분량이었다. 잡초가 삼분지 일 정도로 자랐는데도 그렇다면, 만일 다 자랐을 땐 대여섯 수레로 실어 버릴 만큼 될 테고 그 때는 두둑들을 완전히 뒤덮었을 것이다. 번식력이 대단한 잡초들이었다. 몸은 고단하지만 큰일을 해냈다고 안도의 숨을 쉬는데 아내가 말했다.

여보. 고랑도 김매야 돼.”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깟 고랑들이야, 뭘 심은 것도 아닌데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돼?”

아내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되면, 잡초가 고랑을 완전히 뒤덮으면서 배수에 문제가 생겨요. 두둑에 심어놓은 땅콩들의 뿌리가 다 썩어버리죠. 여하튼 잡초를 방치했다가는 아무 것도 수확할 게 없다 하더라니까.”

아내가 작년에 도시농업센터를 다니며 농사교육을 받았다는 게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납득이 되었다. 그렇기도 하고, 거금 들여 관정까지 파 놓고서 배수가 안 되는 고랑들이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됐다.

알았어. 어두워졌으니까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하자고.”

흙투성이 손발을 씻으러 밭 한가운데 관정 쪽으로 걸어가는데, 해가 저물어서 사방에 들어차는 어둠만큼이나 내 심정도 어두웠다.

 

간밤의 어둠이 채 사라지지 못하고 숲에 어슴푸레 남아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고랑에 난 잡초들과 전쟁이 시작됐다. 그런 고랑이 열 개나 되니까 호미로는 어림없어서, 내가 삽을 들고 나섰다.

삽날을 옆으로 낮게 뉘어서 잡초가 난 고랑의 바닥을 얇게팍 팍쳐 버리며 돌아다녔다. 너무 강하게 치면 고랑의 바닥이 깊이 파이고, 너무 약하게 치면 고랑 바닥은커녕 잡초들이 반 넘게 살아남고. 삽날로 내치는 힘을 적절하게 구사하느라 삽자루를 부여잡은 두 손에 쥐가 나기도 수십 번이었다. 수시로, 삽질을 멈춘 뒤 삽자루를 지팡이 삼아 잡고 서서 쉬어야 했다.

홀딱 벗고!”

검은등뻐꾸기가 숲 어디서 그렇게 울기 시작했다. 아내를 보았다. 밭 둘레에 조성한 꽃길 주변을 김매느라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아내는 지인들을 밭으로 초대할 계획이었다.‘산비탈 밭이지만 넓이가 팔백 평이나 되는데다가 꽃들로 아름답게 단장된 곳이라며 자랑하고 싶은 걸까.

홀딱 벗고!”

그럼, 아내는 과연 이 밭을 농사지을 의지가 있었나? 남편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밭에서 고생하는데, 자기는 지인들한테 꽃단장 된 밭 풍경을 보여주려고 바쁘다니. 작은 가방 속에 갖고 다니는 부동산 책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든 아내의 요즈음 행동이었다. 문제는 잡초들이 아내와 나의 미묘한 갈등과는 상관없이 사나운 기세로 창궐했다는 현실이다.

홀딱 벗고!”

아침 햇살이 훤하게 들어차면서 주위의 풍경이 밝고 어두움을 뚜렷하게 드러내었다. 나는 다시 삽자루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는, 생각지도 못하게 농사일에 휘말린 내 팔자를 향해단단히 고랑에 뿌리박은 잡놈의 풀들을 향해 사납게 삽날을 휘둘러댔다.

홀딱 벗고!”

 

며칠 사이였다. 비닐멀칭을 한 두둑들에서 감자와 옥수수의 싹들이 일제히 돋더니 부쩍부쩍 자라났다. 그 싹들 옆으로 잡초들도 돋아나서 함께 자랐다. 기가 막혔다. 화초들 주변을 김매는 아내를 불러 들여서, 같이 그 잡초들을 김매기 시작했다.

무더워지는 날씨 속에서 우리 부부는 비지땀깨나 흘렸다. 사십 개나 되는 두둑들의 김매기가 어둑해서야 끝났다. 흙투성이가 된 손발을 씻고서 집에 갈 준비를 하는데 웬 물방울들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어둑한 하늘이 헐리듯 떨어지는 빗방울이었다.

우리 밭이 산비탈이라 그런지 메말랐었다. 관정에 연결한 긴 비닐 호스로 수시로 밭에다 물을 주어도 얼마가지 않아 말라버렸었다. 다른 일을 접고 계속 물을 주며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봄비가 나흘이나 내렸다.

다행이었다. 적은 양으로 내리다 말다 하면서 대지를 축축하게 적셨다.

 

닷새 만에 밭에 왔더니 작물들이 부쩍 자라나 있었다. 비닐멀칭 한 두둑들에서 이십 센티 가까이 치솟은 옥수수들과 연보라색 꽃을 일제히 피운 감자들. 설레는 가슴으로 잘 자란 작물들 모습을 구경하며 내려오다가, 아래쪽의 땅콩을 심은 맨땅 두둑들에 이르러서 맥이 빠졌다. 어느 새 잡초들이 무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나흘간의 비에 되살아난 잡초들. 땅콩의 싹들을 찾아봤지만 흔적도 없었다. 아내가 뇌까렸다.

잡초에 작물이 녹아버린다더니…….”

녹아버린다는 말, 정말 실감났다. 뜨거운 물에 떨어진 얼음 조각처럼, 극성맞은 잡초들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땅콩의 싹들. 아내가 다시 뇌까렸다.

그냥…… 잡초 밭으로 내버려둘까?”

순간 나도 모르게 외쳤다.

무슨 소리야? 잡것들, 마저 검정비닐로 다 씌워야 돼.”

나는 성큼성큼 고랑을 걸어서 밭 꼭대기, 차 있는 곳으로 갔다. 트렁크를 열어서 남은 검정비닐 두루마리를 찾았는데 당체 보이질 않았다.

비닐, 어디 뒀지?”

화가 나서 물었더니

베란다에 두었잖아요.”

그냥 차에 두질 않고, 왜 옮겼어?”

당신 성질도 참. 내일 갖고 오면 되죠.”

아내는 밭에서 농로 쪽으로 가더니, 금낭화 주변의 되살아난 잡초들을 김매기 시작했다. 나흘간의 비에, 농로 가의 잡초들도 온통 되살아났다. 나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 아내가 김매다 말고 일어서며 물었다.

갑자기 어디 가려는 거야?”

농협 가는 거야. 검정비닐 두루마리와 방초 부직포라는 것도 사 오려 해. 열 고랑인데, 까짓 거 부직포가 비싸 봐야 얼마나 들겠어? 사 갖고 올 테니까 그리 알아.”

내 스스로 생태환경론을 부정했다. 얼떨떨하게 서 있는 아내를 룸미러로 보면서 밭을 벗어나, 이번 비로 질척거리는 구거로 들어섰다. 바퀴가 하천바닥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서 차를 몰고 내려가면서…… 아무리 보아도 이해하기 힘든 아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농사에 정진하자며 앞장설 때는 언제고 수시로 금낭화 주변이나 김매는 모습이라니. 이미 밭의 작물들에는 관심 없는 여자 같았다.

농사 처음에는 수동적이었던 내가 이제는 능동적으로 바뀌었는데, 아내는 그 반대가 된 듯했다. 구거를 내려와 가까운 농협 쪽으로 차를 몰면서아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럴까?’하는 의구심을 어쩌지 못했다.

 

농협에서 검정비닐 두루마리와 방초 부직포두루마리, 다 사 왔는데 검정비닐은 활용 못했다. 김매 놓고 비닐을 씌워야지, 그러질 않고 비닐부터 씌운다면 잡초들이 결국은 그 비닐을 뚫고 나올 거라 했다. 그토록 사나운 잡초였다. 아내가 밭농사를 잘 아는 도시농업센터 교육 동기한테 휴대폰으로 물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열 두둑의 잡초들을 다시 김매야 한다니, 나도 모르게 몸서리쳐졌다. 아내와 의논한 끝에잡초들을 그대로 둔 채 옥수수나 심기로 결론을 내렸다. 아내가 배운 지식에 의하면 비닐멀칭을 안 해 줘도 잘 자라는 게 옥수수란다. 그를 믿고 잡초 밭에 그냥 옥수수를 심기로 했다.

오랜만에 아내도 밭일에 나섰다. 우리는 다섯 두둑씩 맡아서, 삼십 센티 간격으로 옥수수를 두 알씩 심었다. 잡초들 속에서 싹을 내면 다행이라는, 지친 심정에 가까웠다.

잡초 무성한 고랑들 차례였다. 농사 초기에 아내한테 얘기 들었던, 전설의 방초 부직포가 고랑에 깔릴 순간이었다. 잡초들을 삽날로 쳐내고 부직포를 깔아야 하나 망설이는데 아내가 말했다.

여보. 방초 부직포는 무거운 데다가 햇빛도 차단하기 때문에 잡초들이 그 밑에 깔리면 저절로 죽는다고 배웠어. 그냥 방초 부직포를 깔아도 돼.”

나는 또 다시 열 고랑을 옮겨 다니면서 망치질깨나 해댔다. 낱장인 현수막들과 달리 방초 부직포는 검정비닐처럼 두루마리로 되어 있어서, 그 점 하나는 편했다. 고랑에 두루마리화장지처럼 풀어 깐 뒤 대략 삼사 미터 간격으로 고정 핀들을 때려 박았다. 얇은 천인 현수막들과 달리 두꺼운 합성수지 재질이니까 망치에 맞아 고랑 바닥에 박히는 고정 핀의 감각이 남달랐다. 현수막의 경우는 가볍게 박히는탁 탁느낌이었다면 합성수지 재질의 방초 부직포는 둔중하게 박히는 터억 터억느낌이었다.

아내는 맨드라미씨앗들을 관정 주위에 심고 있었다. 그곳이 살풍경해서 심는다고 변명했는데…… 사실 그럴 시간이면 작물들에게 관심을 쏟았어야 했다. 감자 작황에는 물 공급이 절대적이라는데 관정에 연결된 호스로 물 줄 생각은 않고 관정 주위에 화초씨앗이나 파종하다니, 도대체 아내는 뭣 하러 밭에 오는 거지?

 

그 작업이 끝나기 무섭게 현수막들이 깔린 삼십 고랑을 보수할 일이 생겨났다. 깔린 현수막들 중에 적지 않은 곳이 잡초들에 의해 붕긋하게 쳐들려져 있는 것이다. 혈기가 왕성한 총각의 그것처럼 현수막 밑의 잡초들이 위를 향해 솟구친 결과였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현수막이 벗겨지면서 고랑은 잡초 밭이 될 게 뻔했다.

무서운 잡초였다.

쳐들린 현수막을 찾아 벗겨내고는 그 밑의 잡초들을 김맸다. 그런 뒤 현수막을 원래대로 씌우고 망치로 고정 핀을 박아서 복원했다. 암 부위를 도려내고 신체를 복원하는 외과수술 같았다.

삼십 고랑이라 힘이 들어서, 분업 형태를 선택했다. 밭 둘레의 화초들 주변을 김매려던 아내도 내가 분업 형태의 작업을 제의하니까 꼼짝 못하고 응했다. 아내가 먼저잡초들에 의해 쳐들린현수막을 들어내고 김매면, 내가 그 현수막을 다시 고랑 바닥에 깐 뒤 고정 핀을 사정없이 때려 박았다. 원 세상에, 툭하면 현수막들에 망치질이나 해대면서 명퇴 후의 세월을 보내게 될 줄이야.

현수막을 깔던 처음부터 고랑 바닥에 언뜻 봐서는 이끼처럼 보이는잡초 싹들이 있었는데 지난번의 나흘간 비에 무섭게 자라나, 벌어진 사태였다. 나중의 일이지만 방초 부직포를 깐 데는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방초 부직포는 무거운데다가 검은색 일색이니 그 밑의 잡초가 제어되지만, 현수막은 얇고 가벼운 천이니까 햇빛이 투과되어서 잡초들이 기죽지 않고 솟구쳐 자랄 수 있었다. 소름끼치도록 극성맞은 잡초들이었다. 아내가 일주일이나 걸려서, 팔백 평 밭 둘레에 심었던 갖가지 화초들도 잡초들 속에서 녹아버리는중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옛날 외갓집의 텃밭이 비닐멀칭도 하지 않은 맨땅이었지만 지금 우리 밭처럼 잡초가 극성을 떨지 않았었다. 요즈음, 다른 집의 밭들만 봐도 이 정도로 잡초들이 기승을 부리는 풍경이 아니었다.

아내한테 이이해 못할 우리 밭의, 극성맞은 잡초 사태에 관해 설명해 주기를 바랐다. 아내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지난 삼월 초에밭을 갈 때너무 많이 퇴비를 줬나 봐요.”

무슨 소리야? 너무 많이 퇴비를 줬다니. 자세히 얘기해 봐.”

오늘 따라 민낯이라서 얼굴의 주근깨들이 유난한 아내가 말을 이었다.

밭의 규모에 따라 적정량의 퇴비를 주는 거라고 배우기는 했지만…… 우리 밭이 영 농사가 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산비탈인데다가, ‘처음 농사이지만 나보란 듯이 한 번 잘 지어야겠다는 욕심도 났었나 봐. 이십 킬로그램짜리 퇴비 백오십 포대 정도면 무난할 것을…… 이백오십 포대나 구입해서, 지난번에 밭을 갈 때 흙과 다 섞이도록 했거든. 그랬더니 작물들이 먹을 퇴비 성분을 잡초들까지 덩달아 먹으면서 이 난리인 모양이야.”

그랬구나. 퇴비를 과다하게 살포한 밭이 되면서 작물은 물론 잡초들까지 과하게 자라난 꼴이 된 거구나. 다른 집 밭보다 우리 밭의 작물들이 더 잘 자라고 있어서, 우리가 초보 농사꾼 치고는 잘하는 편이라고 우쭐했었는데 그런 엉뚱한 내력이 있었을 줄이야. 기가 막혔다.

이 산비탈 밭에서 세 달째 벌어지고 있는 잡초의 난리는 애당초 진압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내가 어제 힘들여 금낭화 주변들을 김맸지만 오늘 찬찬히 살펴보면 여기저기 물이끼처럼 무수한 잡초의 싹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제초제 살포나 예초기 동원 같은 극단의 잡초 제거 방법도 고려해 봤으나, 우리 밭의 잡초들이란 게 화초나 작물들과 뒤섞인 듯이 어우러져 있어서 소용없었다.

그럼, 저 잡초들을 어떻게 해야 해?”

내가 비명 지르듯 아내한테 물었더니, 놀랍게도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여보. 이제부터는 대충대충 농사를 짓자고. 우리가 농사지어야 생계가 해결되는 그런 처지도 아니니까. 다만…… 이렇게 앞으로 사 년 만 더 농사를 지으면 돼. 그래야 이 땅을 산 지 팔 년이 차고 그러면 양도소득세를 감면받거든. 그 때가 되면 당신이나 나나 더 늙어서 농사짓기도 어려울 텐데, 땅을 팔아버리는 게 당연할 테지.”

깊은 함정에 빠져버린, 그래서 영영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나의 열패감이라니. 끈질기기가 잡초 같은 아내의 부동산 투기 근성. 그 얼굴의 주근깨들마저 잡초 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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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업이 끝나기 무섭게 현수막들이 깔린 삼십 고랑을 보수할 일이 생겨났다. 깔린 현수막들 중에 적지 않은 곳이 잡초들에 의해 붕긋하게 쳐들려져 있는 것이다. 혈기가 왕성한 총각의 그것처럼 현수막 밑의 잡초들이 위를 향해 솟구친 결과였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현수막이 벗겨지면서 고랑은 잡초 밭이 될 게 뻔했다.

무서운 잡초였다.

쳐들린 현수막을 찾아 벗겨내고는 그 밑의 잡초들을 김맸다. 그런 뒤 현수막을 원래대로 씌우고 망치로 고정 핀을 박아서 복원했다. 암 부위를 도려내고 신체를 복원하는 외과수술 같았다.

삼십 고랑이라 힘이 들어서, 분업 형태를 선택했다. 밭 둘레의 화초들 주변을 김매려던 아내도 내가 분업 형태의 작업을 제의하니까 꼼짝 못하고 응했다. 아내가 먼저잡초들에 의해 쳐들린현수막을 들어내고 김매면, 내가 그 현수막을 다시 고랑 바닥에 깐 뒤 고정 핀을 사정없이 때려 박았다. 원 세상에, 툭하면 현수막들에 망치질이나 해대면서 명퇴 후의 세월을 보내게 될 줄이야.

현수막을 깔던 처음부터 고랑 바닥에 언뜻 봐서는 이끼처럼 보이는잡초 싹들이 있었는데 지난번의 나흘간 비에 무섭게 자라나, 벌어진 사태였다. 나중의 일이지만 방초 부직포를 깐 데는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방초 부직포는 무거운데다가 검은색 일색이니 그 밑의 잡초가 제어되지만, 현수막은 얇고 가벼운 천이니까 햇빛이 투과되어서 잡초들이 기죽지 않고 솟구쳐 자랄 수 있었다. 소름끼치도록 극성맞은 잡초들이었다. 아내가 일주일이나 걸려서, 팔백 평 밭 둘레에 심었던 갖가지 화초들도 잡초들 속에서 녹아버리는중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옛날 외갓집의 텃밭이 비닐멀칭도 하지 않은 맨땅이었지만 지금 우리 밭처럼 잡초가 극성을 떨지 않았었다. 요즈음, 다른 집의 밭들만 봐도 이 정도로 잡초들이 기승을 부리는 풍경이 아니었다.

아내한테 이이해 못할 우리 밭의, 극성맞은 잡초 사태에 관해 설명해 주기를 바랐다. 아내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지난 삼월 초에밭을 갈 때너무 많이 퇴비를 줬나 봐요.”

무슨 소리야? 너무 많이 퇴비를 줬다니. 자세히 얘기해 봐.”

오늘 따라 민낯이라서 얼굴의 주근깨들이 유난한 아내가 말을 이었다.

밭의 규모에 따라 적정량의 퇴비를 주는 거라고 배우기는 했지만…… 우리 밭이 영 농사가 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산비탈인데다가, ‘처음 농사이지만 나보란 듯이 한 번 잘 지어야겠다는 욕심도 났었나 봐. 이십 킬로그램짜리 퇴비 백오십 포대 정도면 무난할 것을…… 이백오십 포대나 구입해서, 지난번에 밭을 갈 때 흙과 다 섞이도록 했거든. 그랬더니 작물들이 먹을 퇴비 성분을 잡초들까지 덩달아 먹으면서 이 난리인 모양이야.”

그랬구나. 퇴비를 과다하게 살포한 밭이 되면서 작물은 물론 잡초들까지 과하게 자라난 꼴이 된 거구나. 다른 집 밭보다 우리 밭의 작물들이 더 잘 자라고 있어서, 우리가 초보 농사꾼 치고는 잘하는 편이라고 우쭐했었는데 그런 엉뚱한 내력이 있었을 줄이야. 기가 막혔다.

이 산비탈 밭에서 세 달째 벌어지고 있는 잡초의 난리는 애당초 진압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내가 어제 힘들여 금낭화 주변들을 김맸지만 오늘 찬찬히 살펴보면 여기저기 물이끼처럼 무수한 잡초의 싹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제초제 살포나 예초기 동원 같은 극단의 잡초 제거 방법도 고려해 봤으나, 우리 밭의 잡초들이란 게 화초나 작물들과 뒤섞인 듯이 어우러져 있어서 소용없었다.

그럼, 저 잡초들을 어떻게 해야 해?”

내가 비명 지르듯 아내한테 물었더니, 놀랍게도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여보. 이제부터는 대충대충 농사를 짓자고. 우리가 농사지어야 생계가 해결되는 그런 처지도 아니니까. 다만…… 이렇게 앞으로 사 년 만 더 농사를 지으면 돼. 그래야 이 땅을 산 지 팔 년이 차고 그러면 양도소득세를 감면받거든. 그 때가 되면 당신이나 나나 더 늙어서 농사짓기도 어려울 텐데, 땅을 팔아버리는 게 당연할 테지.”

깊은 함정에 빠져버린, 그래서 영영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나의 열패감이라니. 끈질기기가 잡초 같은 아내의 부동산 투기 근성. 그 얼굴의 주근깨들마저 잡초 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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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만에 밭에 왔더니 작물들이 부쩍 자라나 있었다. 비닐멀칭 한 두둑들에서 이십 센티 가까이 치솟은 옥수수들과 연보라색 꽃을 일제히 피운 감자들. 설레는 가슴으로 잘 자란 작물들 모습을 구경하며 내려오다가, 아래쪽의 땅콩을 심은 맨땅 두둑들에 이르러서 맥이 빠졌다. 어느 새 잡초들이 무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나흘간의 비에 되살아난 잡초들. 땅콩의 싹들을 찾아봤지만 흔적도 없었다. 아내가 뇌까렸다.

잡초에 작물이 녹아버린다더니…….”

녹아버린다는 말, 정말 실감났다. 뜨거운 물에 떨어진 얼음 조각처럼, 극성맞은 잡초들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땅콩의 싹들. 아내가 다시 뇌까렸다.

그냥…… 잡초 밭으로 내버려둘까?”

순간 나도 모르게 외쳤다.

무슨 소리야? 잡것들, 마저 검정비닐로 다 씌워야 돼.”

나는 성큼성큼 고랑을 걸어서 밭 꼭대기, 차 있는 곳으로 갔다. 트렁크를 열어서 남은 검정비닐 두루마리를 찾았는데 당체 보이질 않았다.

비닐, 어디 뒀지?”

화가 나서 물었더니

베란다에 두었잖아요.”

그냥 차에 두질 않고, 왜 옮겼어?”

당신 성질도 참. 내일 갖고 오면 되죠.”

아내는 밭에서 농로 쪽으로 가더니, 금낭화 주변의 되살아난 잡초들을 김매기 시작했다. 나흘간의 비에, 농로 가의 잡초들도 온통 되살아났다. 나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 아내가 김매다 말고 일어서며 물었다.

갑자기 어디 가려는 거야?”

농협 가는 거야. 검정비닐 두루마리와 방초 부직포라는 것도 사 오려 해. 열 고랑인데, 까짓 거 부직포가 비싸 봐야 얼마나 들겠어? 사 갖고 올 테니까 그리 알아.”

내 스스로 생태환경론을 부정했다. 얼떨떨하게 서 있는 아내를 룸미러로 보면서 밭을 벗어나, 이번 비로 질척거리는 구거로 들어섰다. 바퀴가 하천바닥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서 차를 몰고 내려가면서…… 아무리 보아도 이해하기 힘든 아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농사에 정진하자며 앞장설 때는 언제고 수시로 금낭화 주변이나 김매는 모습이라니. 이미 밭의 작물들에는 관심 없는 여자 같았다.

농사 처음에는 수동적이었던 내가 이제는 능동적으로 바뀌었는데, 아내는 그 반대가 된 듯했다. 구거를 내려와 가까운 농협 쪽으로 차를 몰면서아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럴까?’하는 의구심을 어쩌지 못했다.

 

농협에서 검정비닐 두루마리와 방초 부직포두루마리, 다 사 왔는데 검정비닐은 활용 못했다. 김매 놓고 비닐을 씌워야지, 그러질 않고 비닐부터 씌운다면 잡초들이 결국은 그 비닐을 뚫고 나올 거라 했다. 그토록 사나운 잡초였다. 아내가 밭농사를 잘 아는 도시농업센터 교육 동기한테 휴대폰으로 물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열 두둑의 잡초들을 다시 김매야 한다니, 나도 모르게 몸서리쳐졌다. 아내와 의논한 끝에잡초들을 그대로 둔 채 옥수수나 심기로 결론을 내렸다. 아내가 배운 지식에 의하면 비닐멀칭을 안 해 줘도 잘 자라는 게 옥수수란다. 그를 믿고 잡초 밭에 그냥 옥수수를 심기로 했다.

오랜만에 아내도 밭일에 나섰다. 우리는 다섯 두둑씩 맡아서, 삼십 센티 간격으로 옥수수를 두 알씩 심었다. 잡초들 속에서 싹을 내면 다행이라는, 지친 심정에 가까웠다.

잡초 무성한 고랑들 차례였다. 농사 초기에 아내한테 얘기 들었던, 전설의 방초 부직포가 고랑에 깔릴 순간이었다. 잡초들을 삽날로 쳐내고 부직포를 깔아야 하나 망설이는데 아내가 말했다.

여보. 방초 부직포는 무거운 데다가 햇빛도 차단하기 때문에 잡초들이 그 밑에 깔리면 저절로 죽는다고 배웠어. 그냥 방초 부직포를 깔아도 돼.”

나는 또 다시 열 고랑을 옮겨 다니면서 망치질깨나 해댔다. 낱장인 현수막들과 달리 방초 부직포는 검정비닐처럼 두루마리로 되어 있어서, 그 점 하나는 편했다. 고랑에 두루마리화장지처럼 풀어 깐 뒤 대략 삼사 미터 간격으로 고정 핀들을 때려 박았다. 얇은 천인 현수막들과 달리 두꺼운 합성수지 재질이니까 망치에 맞아 고랑 바닥에 박히는 고정 핀의 감각이 남달랐다. 현수막의 경우는 가볍게 박히는탁 탁느낌이었다면 합성수지 재질의 방초 부직포는 둔중하게 박히는 터억 터억느낌이었다.

아내는 맨드라미씨앗들을 관정 주위에 심고 있었다. 그곳이 살풍경해서 심는다고 변명했는데…… 사실 그럴 시간이면 작물들에게 관심을 쏟았어야 했다. 감자 작황에는 물 공급이 절대적이라는데 관정에 연결된 호스로 물 줄 생각은 않고 관정 주위에 화초씨앗이나 파종하다니, 도대체 아내는 뭣 하러 밭에 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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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어둠이 채 사라지지 못하고 숲에 어슴푸레 남아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고랑에 난 잡초들과 전쟁이 시작됐다. 그런 고랑이 열 개나 되니까 호미로는 어림없어서, 내가 삽을 들고 나섰다.

삽날을 옆으로 낮게 뉘어서 잡초가 난 고랑의 바닥을 얇게팍 팍쳐 버리며 돌아다녔다. 너무 강하게 치면 고랑의 바닥이 깊이 파이고, 너무 약하게 치면 고랑 바닥은커녕 잡초들이 반 넘게 살아남고. 삽날로 내치는 힘을 적절하게 구사하느라 삽자루를 부여잡은 두 손에 쥐가 나기도 수십 번이었다. 수시로, 삽질을 멈춘 뒤 삽자루를 지팡이 삼아 잡고 서서 쉬어야 했다.

홀딱 벗고!”

검은등뻐꾸기가 숲 어디서 그렇게 울기 시작했다. 아내를 보았다. 밭 둘레에 조성한 꽃길 주변을 김매느라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아내는 지인들을 밭으로 초대할 계획이었다.‘산비탈 밭이지만 넓이가 팔백 평이나 되는데다가 꽃들로 아름답게 단장된 곳이라며 자랑하고 싶은 걸까.

홀딱 벗고!”

그럼, 아내는 과연 이 밭을 농사지을 의지가 있었나? 남편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밭에서 고생하는데, 자기는 지인들한테 꽃단장 된 밭 풍경을 보여주려고 바쁘다니. 작은 가방 속에 갖고 다니는 부동산 책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든 아내의 요즈음 행동이었다. 문제는 잡초들이 아내와 나의 미묘한 갈등과는 상관없이 사나운 기세로 창궐했다는 현실이다.

홀딱 벗고!”

아침 햇살이 훤하게 들어차면서 주위의 풍경이 밝고 어두움을 뚜렷하게 드러내었다. 나는 다시 삽자루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는, 생각지도 못하게 농사일에 휘말린 내 팔자를 향해단단히 고랑에 뿌리박은 잡놈의 풀들을 향해 사납게 삽날을 휘둘러댔다.

홀딱 벗고!”

 

며칠 사이였다. 비닐멀칭을 한 두둑들에서 감자와 옥수수의 싹들이 일제히 돋더니 부쩍부쩍 자라났다. 그 싹들 옆으로 잡초들도 돋아나서 함께 자랐다. 기가 막혔다. 화초들 주변을 김매는 아내를 불러 들여서, 같이 그 잡초들을 김매기 시작했다.

무더워지는 날씨 속에서 우리 부부는 비지땀깨나 흘렸다. 사십 개나 되는 두둑들의 김매기가 어둑해서야 끝났다. 흙투성이가 된 손발을 씻고서 집에 갈 준비를 하는데 웬 물방울들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어둑한 하늘이 헐리듯 떨어지는 빗방울이었다.

우리 밭이 산비탈이라 그런지 메말랐었다. 관정에 연결한 긴 비닐 호스로 수시로 밭에다 물을 주어도 얼마가지 않아 말라버렸었다. 다른 일을 접고 계속 물을 주며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봄비가 나흘이나 내렸다.

다행이었다. 적은 양으로 내리다 말다 하면서 대지를 축축하게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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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들이 처음 눈에 뜨인 곳은 맨땅으로 남겨 둔 열 이랑이었다. 그 이랑의 두둑들에는 땅콩을 심었는데 물론 아내의 결정이었다. 땅콩이 잡초에 강하다는 얘기를 어디서 듣기라도 했는지, 그런 결정을 내렸었다. 일주일 지났을까, 그 두둑들에 잡초들이 무성하게 난 것이다! 고생하며 심은 땅콩은 싹도 틔우지 못했는데 잡초들이 나 보란 듯이 횡행하고 있었다. 고랑도 마찬가지였다. 비닐멀칭과 현수막 깔기를 하지 않은 이랑들이 잡초 밭이 되었다.

우리가팔백 평 밭 둘레에 화초 심기차가 다니면서 훼손된 농로 보수에 매달리느라 며칠 한눈을 판 사이에 그런 사달이 나고 말았다. 아내와 나는 다섯 두둑씩 맡아서 김매기에 들어갔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서, 김밥으로 점심을 때운 때 이외에는 쉬지 않고 전력한 끝에 저물녘에야 열 두둑 모두를 김맸다. 김맨 잡초들을 밭 가장자리에 따로 쌓았더니 손수레로 세 번은 실어다 버릴 분량이었다. 잡초가 삼분지 일 정도로 자랐는데도 그렇다면, 만일 다 자랐을 땐 대여섯 수레로 실어 버릴 만큼 될 테고 그 때는 두둑들을 완전히 뒤덮었을 것이다. 번식력이 대단한 잡초들이었다. 몸은 고단하지만 큰일을 해냈다고 안도의 숨을 쉬는데 아내가 말했다.

여보. 고랑도 김매야 돼.”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깟 고랑들이야, 뭘 심은 것도 아닌데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돼?”

아내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되면, 잡초가 고랑을 완전히 뒤덮으면서 배수에 문제가 생겨요. 두둑에 심어놓은 땅콩들의 뿌리가 다 썩어버리죠. 여하튼 잡초를 방치했다가는 아무 것도 수확할 게 없다 하더라니까.”

아내가 작년에 도시농업센터를 다니며 농사교육을 받았다는 게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납득이 되었다. 그렇기도 하고, 거금 들여 관정까지 파 놓고서 배수가 안 되는 고랑들이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됐다.

알았어. 어두워졌으니까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하자고.”

흙투성이 손발을 씻으러 밭 한가운데 관정 쪽으로 걸어가는데, 해가 저물어서 사방에 들어차는 어둠만큼이나 내 심정도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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