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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가을, 흑백텔레비전이 분수에 맞지 않는 이상한 짓을 시작했다.

 

정시 뉴스 직전마다 뜨던대통령 말씀이란 장면부터 이상했다. 무궁화무늬로 대통령 말씀을 에워쌌지만 무궁화의 고운 빛깔이 나타나지 못하는 까닭에, 질 낮은 흑백 전단처럼 보였다. 그런 장면으로 대통령 말씀이 게시되는 거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여 가수가 등장해서조국찬가를 부르는 장면도 이상했다. 펄럭이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두 팔까지 흔들며 힘차게 노래 부르지만 빨강 파랑이 아닌 흑백 태극이라, 왠지 음울해 보였다.

심상치 않은 정국이라고 나는 직감했다. 텔레비전의 이상한 장면들이, 흔들리는 민심을 회유해 보려는 당국의 안간힘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에 배달된 신문들에도 불안한 정국임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보도되고는 있었다. 여공들이 야당 당사로 자리를 옮겨 농성하다가 경찰에 진압되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났다던가, 강경 발언을 한 야당 총재를 국회에서 제명시켰다던가 하는 사건 보도가 그랬다. 당장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큰 제호들로 요란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 내용이 축소되면서 다른 흥미로운 큰 사건으로 바뀔 게 틀림없었다. 애당초 신문은 심심풀이 땅콩장사가 아니던가?

신문 보도를 폄하하는 입장이라서, 나는 정국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대통령 말씀이나조국찬가같은, 색깔이 나와야 되는 장면들을 흑백 장면들로 급조해 방영하니 그 느낌은 섬뜩했다. 분명 정국이 심상치 않았다. 감당 못할 큰일이 태풍처럼 음산하게 코앞에 다가왔는데…… 과연 다른 선배 교사들도 나와 같은 느낌인지 궁금했다.

출근해서 교무실 분위기를 살폈다.

별 일 없이 평온했다.

여전히 교감선생은 회전의자에 파묻혀 졸고 앉았고, 그 앞의 과장선생들은 그 모습을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묘한 눈빛으로 웃다가 수업에 들어가고 있었다. 새벽까지 관사에서 교감선생과 내기화투를 치다가 출근들 한 모양이었다.

수업이 없어 남아 있는 평교사들도 바둑 두거나, 줄판에 등사원지를 대고 뭘 쓰거나, 교과서에 참고서의 내용을 옮겨 적거나, 하고 있었다. 전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한 모습들이었다. 무언가 섬뜩하게 전개되는 정국이라고 직감한, 걱정스런 모습들이 아니었다. 하긴, 나는 그들을 진작부터 나라가 돌아가는 일을 걱정할 위인들이 아니다.’고 속으로 판단내린 적도 있었다.

한 분, 김 선생님만은 예외였다. 수학교사인 그분은 항상 반정부적인 태도를 갖고 있어서 그런 면에서 예외적인 존재였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 소식도 없이 모 기관에 끌려간다는 세상이므로 그분이 드러내놓고 반정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간이 농담처럼 내뱉는 말씀은 그런 성향의 소유자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을 순시하다가 농촌에서 헌신하는 새마을 지도자들을 친히 접견하여 격려하는 뉴스가 나오면 그분은 퉁명스레 이렇게 내뱉었다.

아니, 대통령께서 그렇게 할 일이 없는 거야? 별 볼 일 없이 농사짓는 사람들까지 불러다가 칭찬해주고 그럴 정도로 말이야.”

크지는 않으나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졸고 있던 교감선생은 그럴 때마다 깨어 기겁한 어조로 허어, 김 선생! 그 무슨 오해받을 말씀을!’하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졸다가도 교사의 위험한 발언에 즉각 대처하는 교감선생의 능력에 나는 놀랄 뿐이었다. 내가 어디서 듣기에는, 교감선생이 625동란 때 북파 특수공작원으로 활약했다는데……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었다.

김 선생님은 운동장수업을 마치고 들어오는 교련선생한테 한 마디 하기도 했다.

아니, 북괴가 당장 쳐들어온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애들을 총 쌈 가르친답시고 고생시키는 거요?”

교무실 분위기가 일순 싸늘해졌지만 당사자인 교련선생이 헤헤 웃으며 나도 먹고사느라 하는 짓이지 어떡하겠수?’받아넘기면서 모두 함께 폭소를 터뜨리게 되니, 다행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두 분은 먼저 학교에서도 같이 근무했던 사이로 가끔씩 술잔도 나눈다 했다.

어떤 사연으로 그분이 반정부적인 성향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순 없지만 어쨌든 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정국에 대하여 그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나는 판단하였다.

그분은 키가 작았다. 내가 수업을 조금 일찍 마치고 복도의 창가에서 기다렸더니, 그분이 당신 키보다 큰 삼각자를 한 손에 든 채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기하 단원에 들어간 듯했다. 지나가는 학생들 키에 가려져 삼각자만 보이다가 서서히 머리가 드러나면서 내 쪽으로 가까이 왔다. 나는 새삼스레 고개를 꾸벅여 인사하며 말을 건넸다.

선생님, 다음 시간에 수업 있으세요?”

아니요.”

그럼, 교정에 있는 벤치로 갈 수 없을까요?”

아니, 우리 시인께서 웬일이셔?”

그분은 언젠가 내가 회식자리에서 박인환의목마와 숙녀를 암송해 보인 뒤 시인으로 대우해 주고 있었다.

금싸라기처럼 떨어지는 가을햇살 아래, 플라타너스 잎들도 금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플라타너스 옆 벤치에 앉자마자 그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국이 심상찮지요?”

그분은 대답 없이, 앉은 자세로 자기 두 발을 들어 검은색 양말이 보이는 슬리퍼 앞쪽을 내려다보았다. 읍내 오일장에서 샀을 것 같은 싸구려 플라스틱 슬리퍼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불원간 무슨 큰일이 생기지 않겠어요?”

그분이 다시 두 발을 내렸는데 다리가 짧아 땅에 닿지 않고 공중에 떠 있었다. 그 상태로 내게 답했다.

하기는, 마산 같은 데에서 벌이는 학생들 데모가 심상치 않다 하더라고. 뉴스에는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내가 어디서 전해 듣기에는 419 비슷한 분위기라던데.”

역시 뭔가를 알고 있는 분이었다. 나의 직감에 대한 기대까지는 충족시키지 않고 기껏 이런 말을 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던 것이다.

, 그러다가 줘 터지면 다시 잠잠해지는 게 우리나라 백성들 아니겠수? 어서 교무실로 들어갑시다. 교감선생이 창문으로 우리 둘을 내다보고 있을지 몰라요.”

 

나는 원래 정치현실에 관심이 없었다. 대학 다닐 때 교련 반대 데모로 캠퍼스 전체가 들썩거려도 무심하게 문학회지 발간에 매달려 지낼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그 가을, 정국에 대한 두려운 직감까지 하게 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난생처음인 객지생활이었다. 병역까지 동사무소 업무 보조로 때웠으니 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동해안 작은 읍으로 네 시간이나 시외버스 타고 와서 시작한 교사생활. 고향은 험준한 태백산맥 너머 아득한 곳에 있었다. 교직원 삼십 명 내외의 학교에는 어울릴 만한 또래도 없었다. 그럴 만 했다. 내 또래라면 삼 년 만기의 군대에 있을 테니, 일 년 남짓 방위 복무를 마치고 학교에 첫 발령 받은 나와 조우될 수가 없었다.

퇴근하면 돌아다닐 데도 마땅치 않은 시골 읍이었다. 결국 나는 하숙방에 틀어박혀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이나 보며 외로움을 달래다가 정국이 심각하다고 직감하게 된 게 아닐까? 내 작은 하숙방의 십사인치 텔레비전은 태백산맥 너머 넓은 세상을 그리워하는 촉수나 다름없었다. 그 촉수에 뭔가 섬뜩한 게 감촉되었다. 분명, 방영되는 음울한 흑백 화면 뒤에서 무언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전개될지는 뚜렷하게 짐작되진 않았다. 믿었던 그분마저 별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나는 뒤늦게, 교무실에 굴러다니는 신문들을 모아 유심히 읽기 시작했다. 전에는 심심풀이땅콩이라 여기고 건성으로 보던 것들이었다. 여전히 흥밋거리 위주로 편집된 기사들이지만 텔레비전에서 직감되는 무엇의 보완 자료들로서는 충분하였다.

태풍 앞에 선, 위기의 난국인 게 분명했다. 삼 년 전 ‘10월 유신선포 때부터 수시로 난국이란 표현이 등장했지만 이번에는 그 느낌이 달랐다. 교무실에는 신문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사람이 둘로 늘어난 셈이었다. 비는 시간마다 그분 혼자 신문들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더니 이제는 나까지 합류한 것이다. 그분이 며칠 전 교정의 벤치에서 일어나며 일러준 말이 떠올라, 정치면의 해설을 읽다가 교감선생 쪽을 돌려다보았다.

교감선생이 황급하게 눈길을 거두어 낮잠 자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전통적으로 야당성이 강한 모 신문에서는 사설을 통해자칫 국가 위기사태로 진전될 수도 있는 현 시국에 대하여 당국은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며 심각한 우려까지 표명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런 식의 사설은 물에 물 탄 듯 아무 것도 아닌 잡문이었다. ‘…… 될 수도 있는’‘…… 근원적인 해결책등은 뭔가 대단한 것을 말하는 듯싶지만 실상 딱 부러지게 내세우는 것 없이, 긴급조치 위반이나 모면하는 말장난이었다. 다만국가 위기사태라는 표현은 제시하는 바가 있었다. 그분이 말한 ‘419와 비슷하다는 마산 쪽 사태를 암시하는 것일까?

잠시 눈길을 돌려 교무실 창밖을 보았다.

가을햇살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교련수업을 받고 있었다. 목총으로 찌르기 동작을 되풀이하다가 한 학생이 실수했는지 교련선생이 따로 불러내어 지휘봉으로 그 가슴팍을 쿡쿡 찌르며 나무라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멈춰 선 채, 따로 선 두 사람의 까만 그림자가 한 덩이로 엉겨 있었다. 묘한 장면이었다. 야단치고 야단맞느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선 두 사람인데 정작 그림자들은 땅바닥에서 한 덩이로 다정하게 엉겨 있었다.

정국이 심상치 않다는 내직감, 저런 평화로운 운동장 풍경과는 전혀 연결되는 구석이 없었다.

정국이 심상치 않다는 직감이라니, 그건 다 내가 심심한 탓이다.’

나는 객지에서 무료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퇴근하면 하숙집으로 직행할 게 아니라 다른 취미거리라도 찾아봐야 할 듯싶었다. 당구장에 가 보는 건 어떨까? 나는 당구장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침침한 대폿집은 즐겼지만 형광등 불빛 환한 당구장은 기피하였다. 정말 이해 못할 나의 촌스러움이었다.

퇴근길에 조심스레, 읍에 하나뿐인 당구장에 들어가 보았다. 담배연기 가득한 속에, 나보다 몇 살 위일 것 같은 사내들이 긴 큣대를 창처럼 들고 서성이는 분위기에 질려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당구장은 조용한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낚시가 어떨까? 한 동료교사는 낚시가 얼마나 좋은지, 토요일만 되면 수업이 끝나는 대로 바닷가로 달려가려고 낚시꾼 복장으로 출근할 정도였다.

낚시가게에 들렀다.

낚시도구를 사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물고기 낚는 일에 갖가지 도구들을그 중에는 비싼 것도 있었다.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이 선뜻 납득되지 않는 것이다. 가게주인한테 죄송하지만 나중에 다시 들르겠습니다.’양해를 구한 뒤 나왔다.

어울릴 만한 또래가 보이지 않는 이 시골 읍에서 나는 역시 하숙방에 누워 텔레비전이나 보는 게 마음이 편했다.

하숙집으로 향했다.

아주머니가 차려 준 저녁밥을 먹은 뒤 텔레비전을 켰다. 모든 프로그램을 집중해 보는 것은 아니었다. 내 방안에 누군가 쉴 새 없이 떠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편할 뿐이었다. 비록 누군가가 전자제품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텔레비전의 정규 프로그램이 느닷없이 중단되더니, 장중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며대통령 유고라는 자막이 화면에 떴다!

가까운 태백산맥 아래 철광산에서 자력이 방출되면 이 지역의 전자제품들에 문제가 생기는데 하필 그 시점이었다.‘대통령 유고란 자막이, 금간 유리창의 글씨처럼 흔들리면서도 화면에서 사라지지는 않았다.

비포장도로 가까이 있는 하숙집이라 한밤중에는 지나가는 차량들의 바퀴에 밟히거나 퉁겨지는 자갈들소리가 유난했다. 그런 소리들까지대통령 유고자막의 장중한 배경 음악을 수시로 방해하는 좁은 방안에서, 나는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가슴속의 무엇을 간신히 억누르며 앉아 있었다.

내가 제대로 직감했구나!’

개업하자마자 첫손님의 운수를 정통으로 맞춘 점쟁이 심정 같다고나 할까. 통쾌감에 뭐라 외치고 싶었지만 늦은 밤에 그럴 수는 없었다. 내가 고향에 있었더라면 아는 이들을 대폿집에 불러다 모아놓고거 봐, 내 직감이 맞았다니까!’하면서 술잔을 부딪치며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계속 텔레비전을 지켜보았으나 관련 보도도 없이 장중한 음악만 들려줄 뿐이었다. 문득 짐 가방 속의 트랜지스터가 생각났다. 발령 받고 이곳으로 올 때 소중하게 챙겨온 내 애장품이었다. 텔레비전을 월부로 사다 놓으며 그 동안 잊힌 물건처럼 되었었다.

트랜지스터도 텔레비전과 다를 바 없었다. 예의 장중한 음악을 지루하게 내보내면서 간간이 대통령 유고에 따른 속보나 예고할 뿐이었다. 그 속보가 언제 나온다는 기약도 없었다. 나는 다른 주파수를 찾다가 평양방송에 들어섰다. 억센 이북 억양의 사내가 긴급하게 떠들고 있었다.

알립니다, 알립니다, 남조선의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영도자께서 서거하셨습니다.”

문공부장관은 눈물 그렁그렁한 표정으로 사건을 전하고 있었다. 험준한 태백산맥 너머 동해안 지방이라, 신문은 아무래도 늦었다. 교감선생 옆에 켜 놓은 삼십 인치 텔레비전에서는 문공부장관의대통령 서거 경위에 대한 브리핑이 반복돼 방영되는데, 배달된 신문들에는 대통령 유고?’라는 큰 제호나 뽑혀 있었다.

충격 속에 맞이한 아침이었다. 중앙정보부장과 경호실장의 말다툼 와중에서 대통령이 총격을 받아 사망하게 되었다는 브리핑 내용은 액션 영화의 스토리 같아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뜻밖에 교무실은 평온하였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 동료교사들은 텔레비전 앞을 떠나 출석부와 교재를 챙겨들고 주섬주섬 교실로 향하였다. 다만 학생과장이 일부러 익살맞은 표정으로 교감선생한테 물었다.

나라가 난리 났다는데, 정상수업 합니까?”

무슨 쓸 데 없는 소리야! 괜히 수업하기 싫으니까 별 소리 다해! 어서 수업 들어가라고.”

에이, 좋다 말았네.”

학생과장이 낄낄 웃으며 수업 교재와 출석부를 들고, 다른 교사들을 뒤따라 교무실을 나갔다.

김 선생님, 그분은 말없이 근무하고 있었다.

평소 태도를 보아서는 뭐라 한 마디 언급할 만한 사변인데 침묵을 준비하고 출근이라도 한 듯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분의 그러한 표정에 당황한 나는 머뭇거리다가 어느 새 뒤따라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왠지 그래야 될 듯싶었다.

학생들도 평소와 다름없이 등교하여 교실에 앉아 있었다. 내가 수업을 시작할 때 실장 녀석이 머뭇대다 손을 들더니 물었다.

선생님, 오늘 정상수업 합니까?”

방금 전 교감선생한테 학생과장이 하던 질문과 똑같아서 나는 놀랐다. 더욱 놀란 것은 나 역시 교감선생처럼 답변한 때문이었다.

원 녀석, 공부하기 싫으니까 별 핑계를 다 만들려고 그래. 어서 수업 준비나 해!”

수업을 마치고 복도로 나왔다.

마침 그분도 옆 반에서 나와, 우리는 복도를 함께 걸어갔다. 나는 눈이라도 마주치고 싶은데 그분은 낯선 사람처럼 말없이 걸어만 갔다.

교무실로 들어섰다.

교장선생이 교감선생 옆에 서 있었다. 월요일에만 있는 직원회의처럼 당신이 서 있는 모습이라긴급 직원회의가 열렸음을 알았다. 운동장에서 들어온 교련선생을 마지막으로 직원 모두가 참석했음이 확인되자 교장선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비상시국을 맞았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교직원들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자기본분을 다 해야 합니다. …….”

말씀은 길었으나 더 이상 유심하게 들을 게 없었다. 뒤이어 교감선생이 발언했다.

당분간 무단외출을 삼가고……

하면서 그에 따른 구체적인 복무지침을 언급하였다. 긴급 직원회의가 이십여 분 열렸던 탓에 3교시 수업은 십 분이 잘려나간 사십 분 수업이 되었다. 그뿐이었다. 그 외에는 달라진 게 없는 일과였다. 아니다. 7교시 본 수업 뒤 이어지는 보충수업 두 시간 중 한 시간을 교감선생이 잘랐다. 그게 큰 변화였다. 다른 날보다 퇴근시간이 앞당겨져 교무실이 떠들썩해졌다. 교감선생이 목소리를 한 옥타브 높여서 외쳤다.

일찍들 귀가하세요. 통금도 확대됐으니 이럴 때는 일찍 귀가하는 게 신상에 좋습니다!”

교감선생의 별명은물문어였다. 그냥 문어도 아니고물문어라 별명 붙은 것은 흐물흐물한 느낌의 거동에 연유한 게 아니었을까? 일과시간 대부분을 당신의 회전의자에 파묻혀 조는 것으로 흐물흐물 지내던 그가, 종일 안경알을 빛내며 텔레비전을 지켜보았다. 그렇다, 변화라면 그 또한 변화였다.

나는 교무실을 나설 때 그분을 찾았다. 내 직감이 들어맞았음이 입증된 날에 술 한 잔 나누지 않고 귀가할 수는 없었다. 어느 새, 짧은 두 발을 총총히 움직여 교문을 나서는 그분의 뒷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뒤쫓아 가려다가 포기했다. 발걸음을 평소처럼 하숙집 쪽으로 돌렸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그 시월 이십칠일의 교무실을 다시 생각해 본다.

어떻게, 이십 년 가까이 통치한 자가 총격으로 숨졌는데보충수업을 한 시간 줄이는정도로 평상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교장선생이 심각한 표정으로자기 본분을 다 하자는 훈시를 했지만 그 영향을 받은 결과는 결코 아니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인솔교사들을 모아 놓고 훈시할 때도 같은 말씀을 하는 분이었으니 교사들 귀에 담겨질 리 없었다.

그 날의 납득하기 어려운평상적인 학교 분위기는 어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았을 때 몸을 바짝 움츠리고서 주변을 살피는 건 약자의 본능이었다. 당연히 우리는 약자였다. 교무실의 누구도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거대한 두려움 속에서 우리는 주변을 조심스레 살폈었다. 김 선생님 그분조차 입을 굳게 다물었고 나까지 덩달아 그러면서 그 하루를 보냈었다. 물문어 교감선생이 흐물거리던 몸을 바짝 세워 텔레비전을 종일 지켜보던 것은, 그러한 두려움의 정체를 찾아보려던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 날 밤 나는 하숙방에 누워 감격하고 있었다.

마침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구나!’하는 감격이었다. 장기 집권자에 대한 애증 차원이 아니라, 어떤 지겨움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감격하고 있었다. 조국근대화니 경제부국 달성이니, 아무리 거창하게 선전해도 한 인물이 다스린 땅에서 십팔 년이나 살아온 지겨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인물은 내 초등학교 사학년 시절부터 직장을 잡은 현재까지, 교과서 벽보 신문 잡지 텔레비전 등등의 매체를 통하여 항상 매섭게 지켜보던 눈길이었다. 그런 눈길이 일격에 쓰러졌다는 믿지 못할 역사적 시점에 나는 살고 있었다. 역사적 격변이라는 거대하고 도도한 흐름까지 온몸으로 느끼며 하숙방에 누워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게는 반정부적인 성향이 있었다. 뒤늦은 자각이었다. 내가 김 선생님 그분에게 호감을 가진 것만 봐도 충분히 입증되는 사실이었다. 십팔 년이나 진행된 일인치하의 날들에서 감히 지겹다.’는 말들도 못하고 지내는데 그나마 유일하게 아니, 뭐 이리 심심하지?’라고 돌려서라도 투덜대는 게 그분의 매력이었으니까.

나는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은 켜 놓았으나 제대로 보지도 않으면서 혼자만의 감격에 겨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자정 넘어 잤다.

다음 날도 학교는 평상을 유지했다.

다만 전 날처럼, 교감선생이 졸지도 않고 텔레비전을 지켜보는 게 별스러울 뿐이었다. 신문까지 당신 책상에 갖다 놓고 틈틈이 보는 모습이었다. 김 선생님 그분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신문은 거들떠도 않고 말없이 앉아 있다가 종이 울리면 수업에 들어가는, 그분답지 않은 모습을 이틀째 보여주었다. 그렇다, 1026 이후로 교감선생뿐만 아니라 그분도 별스러워져 있었다.

온통 흰 국화로 치장한 국장이 방영되는 날, 수업이 비는 교사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그 화면을 지켜볼 때도 그분은 말없이 자기 자리에 앉아 교재연구를 하고 있었다. 교련선생이 다가가 농담했다.

어디 아파? 왜 그리 말이 없어졌어?”

그분이 담담하게 답했다.

교과서 진도가 많이 떨어졌거든.”

그래? 난 뭔 삐친 일이라도 생겼나 했지.”

교과서 진도가 떨어졌다는 그분의 말은 거짓이었다. 바로 전 시간에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복도를 지나면서 얼핏 봤는데, 어느 반 교실에 있던 그분은 결코 진도를 바삐 나가는 모습이 아니었다. 수학문제 몇 개를 칠판에다 적어놓고는 혼자 창가에 서서 운동장 쪽을 망연히 내다보고 있었다.

국장이 치러진 직후에 텔레비전에는 난데없이머리가 많이 벗겨진 사내가 등장하여 누군가를 노려보는 표정으로 사건의 경위를 밝혔다. 범인으로 드러난 중앙정보부장이 초췌한 모습으로 포승줄에 묶인 채 범행을 재연하는 현장 장면도 방영되었다. 당일의 술좌석은 핏자국이 흥건했다. 그런 화면들을 말없이 지켜볼 때 서무과 박 주사가 황급하게 교무실로 들어오더니 교감선생한테 전언통신장부를 전했다. 교감선생은 장부를 펼쳐 한 번 보고는 당신 등 뒤에 있는 작은 칠판에 백묵으로 두 줄 적었다.

1. () 박대통령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읍사무소에 개설했음.

2. 비는 시간들을 이용해서 각자 분향소에 다녀오기 바람.

교사들은 술렁거렸다. 읍사무소가 학교에서 오 리 넘게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그 먼 데까지 시간을 내어 다녀올 수 있느냐는 불평불만이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수업이라도 한 시간 빼 버리고 단체로 다녀오게 했으면하는 바람이었다. 흐물거리는 몸짓이지만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교감선생이 한 마디 하였다.

, 자전거 타고 가면 그리 먼 거리가 아닙니다. 자전거가 없는 분은 학생들 거라도 빌려 타고 다녀오시든지.”

그분이 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교감선생님, 분향소에 다녀오는 것이 의무입니까?”

물문어 교감선생은 당황하여 의자에 앉았는데도 휘청거렸다.

…… 의무라고는 쓰여 있지 않으니까…… 알아서 판단하세요. 나는 전언통신장부에 있는 대로 전했을 뿐입니다.”

장부를 돌려받고도 남아 있던 박 주사가 호들갑스레 나섰다.

아니에요, 가야 할 겁니다. 거기에는 자기 직장과 이름을 적어놓는 방명록이 있는데 나중에 그것을 관계기관에서 회수해 간다는 말이 있어요.”

박 주사는 서무과 말직에 있는 노인네였다. 예우상 주사라고 불러주지만, 실상은 고용직 서기였다. 정년이 일 년 남아 있었다. 그분은 교감선생에게 향했던 자세를 박 주사 쪽으로 바꾼 뒤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

그럼, 박 주사께서는 참석하실 겁니까?”

박 주사는 당연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아무 말 없이 서랍에서 담배 한 가치를 꺼내어 피워 물었다. 길게 내뿜는 연기가 그분의 머리 위로 올라가 사방으로 흩어져갔다. 그 연기를 신호로 삼은 듯 교련선생이 애들 같은 장난기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빌 때 빨랑 자전거 타고 다녀와야지!”

각자 수업이 비는 시간들을 이용해서 읍사무소를 다녀오기 시작했다. 학생과장은 교무과장에게 가서, 내 이름이나 대신 적어 줘.’ 부탁하고 앉아 있다가 아무래도 찜찜한지에이, 까짓 거 구경삼아 가보지 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앞서 출발한 교무과장을 허겁지겁 뒤쫓아 갔다.

나는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지겨운 눈길을 당사자가 죽은 뒤에도 대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까짓 거 될 대로 되라지. 분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파면이야 시키겠나.’

교재연구에 몰두해보지만 아무래도 편치 않은 마음이었다.

이런 일로 내 자신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각오까지 다지며 비는 시간마다 그대로 교무실에 남아 있었다.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하루였다.‘자전거를 이용하면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라는 교감선생의 말씀을 비웃듯 한 시간 넘게 걸려 다녀오는 교사들이 많은 탓이었다.‘분향소 앞에 줄지어선 인파가 대단했다고들 했다. 읍내에 있는 여러 관공서의 직원들 수만 해도 적지 않은데 일반인들까지 몰려들었다니 그럴 만했다.

수업할 교사가 미처 귀교하지 못한 학급들 때문에 교내가 소란스러워지자, 교감선생 혼자 자습들을 시키느라 복도를 수시로 오가는 둥 참 어수선하게 지나간 하루였다.

교감선생한테 물문어란 별명이 붙을 때에는 문어란 동물이 보이는 음흉스러운 이미지도 반영되지 않았을까. 교감선생은, 어수선하게 지나가는 하루의 끝 무렵에 나의조문 불참을 확인하던 것이다. 교무실 뒤편의 주전자 물을 마실 양 내 앞을 지나가다가 문득 생각난 듯 멈춰 서서 이렇게 물었다.

, 우리 국어선생님은 밤에나 분향소에 가시려나?”

나는 당황했다가 잠시 후 답했다.

, 퇴근길에나 들러볼까 합니다.”

 

그 날 밤 그분이 나를 찾아왔다.

철광산의 자력 방출 탓으로 흐릿한 텔레비전 화면이라 트랜지스터를 켰는데 그것도 잡음이 심했다.‘하숙방에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밤이라면 읍사무소 분향소에나 가볼까?’하는 장난스런 생각마저 들었다. 밤에도 분향소를 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럴 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그분의 음성이 들렸다.

우리 시인이여, 계십니까?”

그분은 취해 있었다. 내가 그분의 몸을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방문턱에 걸려서 넘어졌을 게다. 그런 몸으로 어떻게, 소주 큰 병을 떨어트리지도 않고 들고 왔는지 놀라웠다.

내가 주인 집 부엌에서 갖고 온 김치를 안주로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그분이 먼저, 딸꾹질을 하면서 말씀하였다.

나는 말입니다,(딸꾹) 이번에 시인이야말로 사물의 핵심을 꿰뚫는 직관의 소유자임을 통감했습니다. 어떻게 1026 같은 큰 사건을 직감할 수 있었는지요! (딸꾹) 돌아가는 정국에 항상 관심 많던 내가 정작 이번과 같은 중요한 사변은 예측조차 못했다니, 정말 스스로 실망감이 커서 (딸꾹) 허탈합니다. 결국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키도 작아 볼품도 없는데 (딸꾹) 단지 교사 자격증 하나로 버티는 인생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자조밖에 없는 거죠.(딸꾹) ……오늘밤 내가 시인을 찾아온 것은 이런 푸념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질문할 게 있어서입니다. 시인이여,(딸꾹) 이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보름 가까이 대면조차 꺼리더니 자학적인 말씀에 질문까지. 나는 술기운을 빌려 답했다.

얼마나 지겨운 장기 집권이었습니까? 십팔 년이라니, 강산이 두 번 가까이 변한 세월이 아니었습니까? 그런 지겨움이 극에 달하여 이번에 궁정동 사건으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중앙정보부장도 지겨웠던 겁니다. 어쩌면 박 대통령 자신도 지겨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스스로 지겹다고 끝낼 대통령 자리는 아니기에, 궁정동 사건처럼 모두 술에 취한 가운데 끝장나기를 바란 게 아니었을까요? ……이제는 지겹지 않은, 다른 세상이 전개될 겁니다. 그 세상은 누군가 매서운 눈길로 국민을 살펴보는 일 없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세상이 아닐까요?”

술기운 탓인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무렴, 박 대통령 자신도 지겨워서 끝내고 싶었을까? 어쨌든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감하였다.

나는 이런 질문도 하였다.

그 지겨운 장기 집권자가 세상을 떴다는데, 어떻게, 모두들 두려워하면서 분향소를 다녀올 수 있을까요? 정년이 일 년밖에 남지 않은 박 주사까지 기를 쓰며 분향소를 다녀오다니, 이런 낮은 민도라면 다가올 자유로운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분이 답했다.

“(딸꾹) 여기 시골 사람들이나 그렇지, 도시의 깨어있는 시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시골이라 해도 (딸꾹) 우리 같은 지성인들도 있지 않습니까? 시인이여. (딸꾹)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습니다.(딸꾹)”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세 세상에 대한 갖가지 정견들이 거론되는 시국이었다.

어쨌든 자유가 만발한 새 세상이 시작될 거란 사실 하나는 확실해 보였다. 다만,‘언제시작되느냐에 대해 그분과 나의 견해가 좀 달랐다. 나는 내년 봄쯤으로 보았고, 그분은 내년 가을쯤으로 보았다. ‘아직은 유신 잔당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게 그분이 대는 근거였다. 사실, 그런 시점에 대한 견해 차이는 별 게 아니었다. 기껏 서너 달 차이였다.

우리는 흥건한 공감 속에 취해 있었다.

다음 날의 수업을 위해 술자리를 끝내기로 하였는데 시간은 이미 통금시간을 지났다. 내 하숙방에서 주무시고 가라 했으나 그분은 충분히 갈 수 있다.’면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나는 웃옷을 걸치고 따라나섰다. 공무원이 통금에 걸렸다가는 경을 크게 칠 비상시국이었다. 그래도 외진 시골인데 별 일 있겠나.’하는 생각으로 우리는 대화도 삼가고 어두운 골목길을 택하여 조용히 걸었다.

전세로 있다는 그분 집 앞에 다다랐을 때 그분은 내 어깨를 두 팔 벌려 잡았다. 키가 작은 분이니 나를 경배하는 자세처럼 보여서 하마터면 나는 웃을 뻔했다. 그분은 꼬부라진 발음으로 선언했다.

시인이여, 우리 새 세상을 맞이합시다.”

나는 다시 골목의 어둠 속으로 돌아섰다.

하숙방에 돌아와 내 차림새를 보니 엉망이었다. 언제 도랑에 빠졌던지 발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고 바지 한 쪽은 한 뺨 가까이 찢겨 있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외롭고 따분한 객지생활에서, 술잔을 나눌 수 있는 그분과 한 직장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나이 차가 열 살 가까이 나고 자주 갖는 술자리가 아니었지만.

그 즈음 내게는 자정 넘어, 텔레비전으로 일본의 스모 경기 장면을 보는 취미가 생겼다. 동해 바다 건너 일본의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방출한 장면이 어쩌다 포착되는 건지, 아니면 근해에 와 있는 일본 어선이 매개체가 되어서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취했는데도 잠이 쉬 오지 않아, 일본의 뚱뚱한 스모 선수들이 싸우는 경기를 지켜보다가 잠들었다.

 

그 날 밤이 좋은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그분과 술자리를 다시 갖지 못했으니까.

고향의 부모님이 좋은 처녀가 있으니까 꼭 만나 보라.’며 전화를 주었기에 나는 주말마다 버스 타고 태백산맥을 넘어가 그 여자를 만난 뒤 돌아오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일은 진전되지 못했다. 나는 장남이란 의무감이 앞서 있었고 그 여자는 다른 남자도 만나면서 저울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전 날 밤부터 자욱하게 낀 안개가 아침에도 그대로 남은 십이월 십삼일이었다. 텔레비전이 긴급 뉴스를 전했다.

“1026 시해사건 때 범인 김재규와 묵시적 동조를 한 게 드러난 계엄사령관 등 일당이 전격적으로 체포되었습니다.”

신문은 그 때도 늦은 걸음이어서 안개 속 총성, 심상치 않은 안개 정국의 제호나 뽑은 채 배달되어 있었다.

시월 말에도 등장했던 머리가 많이 벗겨진 사내가 온 국민을 노려보는 표정으로 사건의 전말을 하나하나 발표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옆의 텔레비전을 다시 켜 놓고 지켜보던 물문어 교감선생이 한 마디 내뱉었다.

다시 군인들 세상이 시작되었구먼!”

그리고는 텔레비전을 더 보지도 않고 회전의자에 몸을 깊게 꾸겨 넣고 잠자기 시작했다. 수업이 비는 교사들이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보며 쑤군거리고들 있었다. 나는 그분을 찾아보았다.

그분은 말없이 교재를 보고 있었다. 창백한 표정이었다.

그 날 밤 나는 소주 한 병과 구운 오징어를 봉지에 담아 들고 그분의 집을 찾았다. 대문도 없는 집이므로 그냥 마당에 들어서서 가쁜 숨을 가다듬고 정중하게 불렀다.

김 선생님, 계십니까?”

응답이 없었다. 전등불빛이 둥그렇게 안방 문창호지에 어려 있으니 안에 아무도 없을 리가 없었다. 나는 소리 높여 다시 불렀다.

계십니까!”

내 큰 목소리에 어느 집 개가 컹컹 짖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돌아서야 하나 망설이는데 방문이 열렸다. 그분의 아내 되는 분이 방안의 전등불빛을 등 뒤로 받으며 나왔다. 잔기침을 콩콩 하면서 내게 말했다.

몸이 안 좋으셔서 (콩콩) 초저녁부터 주무시고 (콩콩) 계시거든요. 어떡할까요? 너무 몸이 안 좋으시니(콩콩)

나는 잠시 서 있다가 고개를 한 번 꾸벅이고는 그냥 되돌아섰다.

어두운데다가 춥기까지 한 겨울 밤의 골목길.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창이던 곳이 얼어 있어서 구두나 바지 밑을 더럽힐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조심스레 걸어오면서 왠지 이 겨울이 여느 해 겨울보다 길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글쎄 그게 직감인지, 쓸쓸한 마음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 달 뒤 80년대가 시작되었다, 화려한 컬러텔레비전의 시대도 열렸다. ‘머리가 많이 벗겨진 사내가 컬러로 나타나 온 국민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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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이 좋은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그분과 술자리를 다시 갖지 못했으니까.

고향의 부모님이 좋은 처녀가 있으니까 꼭 만나 보라.’며 전화를 주었기에 나는 주말마다 버스 타고 태백산맥을 넘어가 그 여자를 만난 뒤 돌아오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일은 진전되지 못했다. 나는 장남이란 의무감이 앞서 있었고 그 여자는 다른 남자도 만나면서 저울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전 날 밤부터 자욱하게 낀 안개가 아침에도 그대로 남은 십이월 십삼일이었다. 텔레비전이 긴급 뉴스를 전했다.

“1026 시해사건 때 범인 김재규와 묵시적 동조를 한 게 드러난 계엄사령관 등 일당이 전격적으로 체포되었습니다.”

신문은 그 때도 늦은 걸음이어서 안개 속 총성, 심상치 않은 안개 정국의 제호나 뽑은 채 배달되어 있었다.

시월 말에도 등장했던 머리가 많이 벗겨진 사내가 온 국민을 노려보는 표정으로 사건의 전말을 하나하나 발표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옆의 텔레비전을 다시 켜 놓고 지켜보던 물문어 교감선생이 한 마디 내뱉었다.

다시 군인들 세상이 시작되었구먼!”

그리고는 텔레비전을 더 보지도 않고 회전의자에 몸을 깊게 꾸겨 넣고 잠자기 시작했다. 수업이 비는 교사들이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보며 쑤군거리고들 있었다. 나는 그분을 찾아보았다.

그분은 말없이 교재를 보고 있었다. 창백한 표정이었다.

그 날 밤 나는 소주 한 병과 구운 오징어를 봉지에 담아 들고 그분의 집을 찾았다. 대문도 없는 집이므로 그냥 마당에 들어서서 가쁜 숨을 가다듬고 정중하게 불렀다.

김 선생님, 계십니까?”

응답이 없었다. 전등불빛이 둥그렇게 안방 문창호지에 어려 있으니 안에 아무도 없을 리가 없었다. 나는 소리 높여 다시 불렀다.

계십니까!”

내 큰 목소리에 어느 집 개가 컹컹 짖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돌아서야 하나 망설이는데 방문이 열렸다. 그분의 아내 되는 분이 방안의 전등불빛을 등 뒤로 받으며 나왔다. 잔기침을 콩콩 하면서 내게 말했다.

몸이 안 좋으셔서 (콩콩) 초저녁부터 주무시고 (콩콩) 계시거든요. 어떡할까요? 너무 몸이 안 좋으시니(콩콩)

나는 잠시 서 있다가 고개를 한 번 꾸벅이고는 그냥 되돌아섰다.

어두운데다가 춥기까지 한 겨울 밤의 골목길.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창이던 곳이 얼어 있어서 구두나 바지 밑을 더럽힐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조심스레 걸어오면서 왠지 이 겨울이 여느 해 겨울보다 길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글쎄 그게 직감인지, 쓸쓸한 마음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 달 뒤 80년대가 시작되었다, 화려한 컬러텔레비전의 시대도 열렸다. ‘머리가 많이 벗겨진 사내가 컬러로 나타나 온 국민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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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답했다.

“(딸꾹) 여기 시골 사람들이나 그렇지, 도시의 깨어있는 시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시골이라 해도 (딸꾹) 우리 같은 지성인들도 있지 않습니까? 시인이여. (딸꾹)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습니다.(딸꾹)”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세 세상에 대한 갖가지 정견들이 거론되는 시국이었다.

어쨌든 자유가 만발한 새 세상이 시작될 거란 사실 하나는 확실해 보였다. 다만,‘언제시작되느냐에 대해 그분과 나의 견해가 좀 달랐다. 나는 내년 봄쯤으로 보았고, 그분은 내년 가을쯤으로 보았다. ‘아직은 유신 잔당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게 그분이 대는 근거였다. 사실, 그런 시점에 대한 견해 차이는 별 게 아니었다. 기껏 서너 달 차이였다.

우리는 흥건한 공감 속에 취해 있었다.

다음 날의 수업을 위해 술자리를 끝내기로 하였는데 시간은 이미 통금시간을 지났다. 내 하숙방에서 주무시고 가라 했으나 그분은 충분히 갈 수 있다.’면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나는 웃옷을 걸치고 따라나섰다. 공무원이 통금에 걸렸다가는 경을 크게 칠 비상시국이었다. 그래도 외진 시골인데 별 일 있겠나.’하는 생각으로 우리는 대화도 삼가고 어두운 골목길을 택하여 조용히 걸었다.

전세로 있다는 그분 집 앞에 다다랐을 때 그분은 내 어깨를 두 팔 벌려 잡았다. 키가 작은 분이니 나를 경배하는 자세처럼 보여서 하마터면 나는 웃을 뻔했다. 그분은 꼬부라진 발음으로 선언했다.

시인이여, 우리 새 세상을 맞이합시다.”

나는 다시 골목의 어둠 속으로 돌아섰다.

하숙방에 돌아와 내 차림새를 보니 엉망이었다. 언제 도랑에 빠졌던지 발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고 바지 한 쪽은 한 뺨 가까이 찢겨 있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외롭고 따분한 객지생활에서, 술잔을 나눌 수 있는 그분과 한 직장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나이 차가 열 살 가까이 나고 자주 갖는 술자리가 아니었지만.

그 즈음 내게는 자정 넘어, 텔레비전으로 일본의 스모 경기 장면을 보는 취미가 생겼다. 동해 바다 건너 일본의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방출한 장면이 어쩌다 포착되는 건지, 아니면 근해에 와 있는 일본 어선이 매개체가 되어서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취했는데도 잠이 쉬 오지 않아, 일본의 뚱뚱한 스모 선수들이 싸우는 경기를 지켜보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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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그분이 나를 찾아왔다.

철광산의 자력 방출 탓으로 흐릿한 텔레비전 화면이라 트랜지스터를 켰는데 그것도 잡음이 심했다.‘하숙방에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밤이라면 읍사무소 분향소에나 가볼까?’하는 장난스런 생각마저 들었다. 밤에도 분향소를 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럴 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그분의 음성이 들렸다.

우리 시인이여, 계십니까?”

그분은 취해 있었다. 내가 그분의 몸을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방문턱에 걸려서 넘어졌을 게다. 그런 몸으로 어떻게, 소주 큰 병을 떨어트리지도 않고 들고 왔는지 놀라웠다.

내가 주인 집 부엌에서 갖고 온 김치를 안주로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그분이 먼저, 딸꾹질을 하면서 말씀하였다.

나는 말입니다,(딸꾹) 이번에 시인이야말로 사물의 핵심을 꿰뚫는 직관의 소유자임을 통감했습니다. 어떻게 1026 같은 큰 사건을 직감할 수 있었는지요! (딸꾹) 돌아가는 정국에 항상 관심 많던 내가 정작 이번과 같은 중요한 사변은 예측조차 못했다니, 정말 스스로 실망감이 커서 (딸꾹) 허탈합니다. 결국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키도 작아 볼품도 없는데 (딸꾹) 단지 교사 자격증 하나로 버티는 인생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자조밖에 없는 거죠.(딸꾹) ……오늘밤 내가 시인을 찾아온 것은 이런 푸념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질문할 게 있어서입니다. 시인이여,(딸꾹) 이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보름 가까이 대면조차 꺼리더니 자학적인 말씀에 질문까지. 나는 술기운을 빌려 답했다.

얼마나 지겨운 장기 집권이었습니까? 십팔 년이라니, 강산이 두 번 가까이 변한 세월이 아니었습니까? 그런 지겨움이 극에 달하여 이번에 궁정동 사건으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중앙정보부장도 지겨웠던 겁니다. 어쩌면 박 대통령 자신도 지겨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스스로 지겹다고 끝낼 대통령 자리는 아니기에, 궁정동 사건처럼 모두 술에 취한 가운데 끝장나기를 바란 게 아니었을까요? ……이제는 지겹지 않은, 다른 세상이 전개될 겁니다. 그 세상은 누군가 매서운 눈길로 국민을 살펴보는 일 없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세상이 아닐까요?”

술기운 탓인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무렴, 박 대통령 자신도 지겨워서 끝내고 싶었을까? 어쨌든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감하였다.

나는 이런 질문도 하였다.

그 지겨운 장기 집권자가 세상을 떴다는데, 어떻게, 모두들 두려워하면서 분향소를 다녀올 수 있을까요? 정년이 일 년밖에 남지 않은 박 주사까지 기를 쓰며 분향소를 다녀오다니, 이런 낮은 민도라면 다가올 자유로운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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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하루였다.‘자전거를 이용하면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라는 교감선생의 말씀을 비웃듯 한 시간 넘게 걸려 다녀오는 교사들이 많은 탓이었다.‘분향소 앞에 줄지어선 인파가 대단했다고들 했다. 읍내에 있는 여러 관공서의 직원들 수만 해도 적지 않은데 일반인들까지 몰려들었다니 그럴 만했다.

수업할 교사가 미처 귀교하지 못한 학급들 때문에 교내가 소란스러워지자, 교감선생 혼자 자습들을 시키느라 복도를 수시로 오가는 둥 참 어수선하게 지나간 하루였다.

교감선생한테 물문어란 별명이 붙을 때에는 문어란 동물이 보이는 음흉스러운 이미지도 반영되지 않았을까. 교감선생은, 어수선하게 지나가는 하루의 끝 무렵에 나의조문 불참을 확인하던 것이다. 교무실 뒤편의 주전자 물을 마실 양 내 앞을 지나가다가 문득 생각난 듯 멈춰 서서 이렇게 물었다.

, 우리 국어선생님은 밤에나 분향소에 가시려나?”

나는 당황했다가 잠시 후 답했다.

, 퇴근길에나 들러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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