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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뒤에 걔가 앉았다.

내가 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그런 인연에 근거한다.

 

31일은 공휴일이다.

32일 입학식 후, 1학년 3반 교실에 우리가 모이자 담임선생이 키 순서대로 앞에서부터 자리를 앉도록 했다. 복도 쪽 분단의 맨 뒤에 앉은 애가 걔였고 그 앞자리가 나였다.

나도 키가 큰 편이지만 걔는 더 큰 애였다. 큰 키의 애들이키 크고 싱겁지 않은 놈 없다는 속설을 대개 입증해주었지만 걔는 달랐다. 걔는 키 크고 무서운 아이였다. 노려보듯 가늘게 뜬 실눈에다가, 큰 키에 걸맞게 체구도 대단했다. 내가 키 173cm에 몸무게 65kg이었는데, 아마도 걔는 180cm90kg은 충분했다.

입학한 뒤 얼마간은 걔가 부각되지 않았다. 작은 애들처럼 큰 애들도 여럿 있으니 걔가 별스레 부각될 일은 아니었다. 또한, 여러 중학교 출신들이 모인 고 1 교실이라 서로 낯설어서 조용했다. 그러다가 출신 중학교는 다르지만 그 외에는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같은 또래라는 유대감 내지 친근감이 형성되면서 쉬는 시간마다 소란스레 떠드는 교실로 변했다.

그 때 걔가 나지막하게, 그러나 분명한 발음으로 내뱉었다.

씨발 놈들아, 조용하지 못 해?”

점심시간이었다. 애들 대부분이 미리 도시락을 먹었으므로 정작 그 시간에는 여기저기 몰려 앉아 떠드느라 바쁜데 그렇듯 걔가 쌍소리를 내뱉은 거다. 전체를 상대로 한 쌍소리는 처음이었기에 교실은 찬 물을 끼얹은 듯 일시에 조용해졌다. 미처 못 들은 애들이 누가 뭐라는 거야?’작은 소리로 쑤군댔다. 그러자 걔가 다시 한 번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씨발 놈들아, 내 잠 깨울 거야?”

교실은 완전히 평정되었다. 쌍소리의 출발지를 확실하게 두 눈으로 확인한 애들은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고 몸을 움츠렸다. 복도 쪽 분단의 맨 뒤에 앉은 거대한 체구의 존재가 무섭게 노려보는 데에야 간담이 서늘해질 수밖에.

나는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 걔의 그 쌍소리를 등 뒤로 생생하게 들었다. 마치 아프리카 초원에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던 맹수의 으르렁거림 같았다고나 할까. 초식동물들처럼 일제히 기죽던 가여운 우리 반 애들.

나는 떠들고 있던 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니 걔의 낮잠을 깨운 씨발 놈들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애써, 편치 않은 자존심을 자위하며 앉아 있는데…… 건너편 창가 분단의 맨 뒤에 앉은 큰 애가 자존심의 손상을 견디기 어려웠던지 한 마디, 그러나 조심스레 쌍소리는 빼고 내뱉었다.

, 나 참!”

걔의 처사가 못 마땅하다는 소리였으므로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쪽과 걔를 번갈아 살폈다. 걔는 책상에 상체를 엎드린 채로 그 창가 쪽을 사납게 노려보며 다시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뜳어? 씨발 놈아?”

그 말에 창가 쪽의 큰 애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며 침묵했다. 그 순간 우리 반에서 가장 주먹이 센 애가 누구라는 게 결정된 것이다.

 

다음 날 화학수업 시간이다. ‘판서한 내용을 공책에 옮겨 적으라고 담당 선생이 우리에게 지시해 놓고 교실을 한 바퀴 돌 적에, 걔가 아무 것도 적지 않고 앉아 있다가 적발되었다. 작으나 매섭게 생긴 선생은 걔를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한 뒤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넌 뭐냐? 뭔데 필기도 안 하고 멀뚱멀뚱 앉아만 있냐?”

우리는 긴장했다.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면서도 두려운 가슴들로, 필기를 멈춘 채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걔가 말했다.

제가 시력이 매우 안 좋거든요. 칠판 글씨가 안 보이니까, 나중에 다른 애들 공책을 빌려다가 베껴 쓸려고요.”

그제야 우리는 걔가 늘 가느다란 눈매로 노려보는이유를 알았다. 걔는 시력이 안 좋아서 눈을 찌푸리며 보는 것인데 전체적으로 풍기는 험상궂은 분위기 탓에 그조차 노려보는 것으로 오해했었다. 선생이 다시 물었다.

그럼 앞자리로 나와 앉아 필기하든지 해야지, 왜 뒤에 앉았냐?”

제가 앞에 앉으면 뒤의 애들이 제 몸에 가려 칠판이 안 보인다고 그럴 텐데요?”

우리는 와악! 웃었다. 선생은 할 말을 잃었다. 걔는 이제 그만 앉아도 되지요?’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자기보다 키 작은 선생을 내려다보았다. 선생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걔를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 후 다시 화학시간이 되었을 때에도 걔는 여전히 텅 빈 공책을 펴놓았다.

사실, 걔는 모든 수업시간마다 그 공책 한 권으로 수업을 받고 있었다.‘나중에 공책을 빌려다가 베껴 쓰겠다는 말은 허언이라는 게 드러난 셈인데 화학선생은 그냥 묵과했다. 아마도 그분은 자기 경험에 비추어 이런 판단을 내린 게 아니었을까?

만일, 먼저 시간의 판서 내용이 왜 하나도 적혀 있지 않느냐고 캐묻는다면 저 녀석은 분명 다른 불가피한 사정을 핑계대면서 다음 시간에는 반드시 해 오겠다고 또다시 둘러댈 게다. 그런 식으로, 어차피 공부하기는 틀린 놈이니까 그냥 내버려두고 교과진도를 나가는 게 옳다.’

하긴 걔는 불가피한 사정을 핑계로 댈 만한 게 있었다. 그 즈음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유도 2단이라는 체육특기자로 입학한 애였다. 그제야 걔가 큰 키에 걸맞은 체구까지 갖춘 이유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스스로는 시력이 안 좋아서 눈을 찌푸리며 지낸다지만, 맞대결 연습을 주로 하는 유도부 생활에서 그런 낯으로 굳어졌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걔는 순식간에 우리 반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걔를 위한 학급 내 불문율까지 만들어졌는데 정리한다면 이렇다.

첫째; 걔가 낮잠을 자는 점심시간이면 우리는 조용히 교실에 있든지, 그게 싫으면 밖으로 나가 놀아야 한다.

둘째; 걔는, 실장이 중요한 학급 일을 결정할 때에 반드시 그 의견을 들어보아야 하는 원로 같은 존재이다.

셋째; 걔가 수업시간에 지적받는 일이 생기면 우리는 선생님, 그 학생은 운동부 학생입니다.”라고 일러주어 선생이 사정을 봐 주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 7교시 수업 전에 모두 함께하는 청소시간에도 걔는 참여하지 않았다. 청소구역을 배정하는 실장이 걔한테도 복도 유리창 닦기일을 맡겼지만 부질없었다. 그 시간에 걔는 강당에 가서 유도 연습을 해야 한다고 둘러대고는 빈둥대며 놀다가 들어오기 일쑤였다. 사실, 운동부 연습은 방과 후 시간에나 하도록 학교에서 정해놓은 방침이 있었다.

그렇기에 4월초의 어느 날 걔가 교실청소에 합류한 것은 정말 뜻밖이었다.

둘이 함께 날라야 하는 무거운 2인조책걸상들을 걔는 혼자서, 그것도 들어 메치듯이 공중으로 번쩍 들어 날랐다. 책걸상들을 나르면서 바닥을 쓸고 닦아야 하는 교실청소는 청소구역 중 가장 고되고 힘든 곳인데 웬일로 걔는 두 팔을 걷어붙이며 도왔다. 그러자 교실청소 하는 애들이 아연 긴장했다. 빗자루와 막대걸레로 칼싸움장난도 하면서 어수선하게 이루어지던 난장판 교실청소가, 새마을 청소년들이 하듯 아주 성실하게 잘 되기 시작했다.

복도 쪽 청소 담당 애들까지 달라진 어떤 분위기에 놀라 성실하게 청소에 임했다.

우리는 입학 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청소를 하고 있었다.

걔가 청소에 나선 이유가 한 달 넘게 밖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내는 일에 싫증난 때문인지, 아니면 담임선생한테 뭐라 지적이라도 받아 개과천선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한 달이 넘은 그 때까지도 자신이 담임한 애들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지내는 담임선생을 보아서는 후자보다는 전자의 경우가 맞지 않을까? (이런 일이 내게 있었다. 학비 감면 신청 문제로 교무실의 담임선생을 찾아갔는데 나를 다른 학생과 혼동해서 무척 당황했었다.) 그렇다. 20분간의 청소시간마다 밖으로 나가 빈둥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한 달 넘게 그러다 보니 걔는 싫증이 났던 게다. 말하자면 재미삼아 청소에 나선 것이다.

걔가 교실청소에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지 이틀 만에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양동이 물을 버리는 일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반 교실이 2층 구석에 있어서, 막대걸레질을 하고 난 뒤의 양동이 물을 갖다버리는 게 여간한 고역이 아니었다. 담긴 물이 제법 무거운 데다가 서두르면 출렁거리며 교복을 적시니, 조심스레 천천히, 머나먼 1층 복도 끝까지 들고 가 바깥 하수구 구멍에 쏟아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막대걸레질 담당 애들끼리 순번을 정해서 하는 그 일의 그 날 차례가 바로였다. 퀴퀴한 걸레 썩은 냄새부터 고약한 양동이 물을 내려다보며, ‘이걸 어떻게 들고 가나?’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다가 걔와 눈길이 마주쳤다. 얼마 전 나는 걔가 부탁한 대로 공책 맨 뒷장에 그림을 그려준 적이 있었다. 걔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도와줄까?”

그러더니 양동이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들고 창가로 가서는 그 시커먼 물을 창밖으로 확 쏟아 버리질 않던가! 뭐에 닿은철버덕물소리와, 아래층에서 비명 같은 쌍소리가 난 것은 거의 같은 순간이었다. 바로 아래층은 3학년 교실인데, 3학년 선배들한테 그 더러운 물이 쏟아진 것이다. 하얗게 질린 우리에게 걔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러면 빠르잖아?”

나는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애당초 너는 청소하지 않는 게 남을 돕는 일이다!’하는 원망을 속으로 하면서 곧 닥칠 사태에 벌벌 떨었다. 다른 애들도 겁을 먹고서 서둘러 청소도구들을 정리하는데 걔는 빈 양동이를 멀찍이 놓은 뒤 빗자루들을 그 안으로 던져 넣는 놀이를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상체가 걸레 물에 흠뻑 젖은 3학년생 둘이 부릅뜬 눈으로 나타났다. 각목을 하나씩 들고 교실 앞쪽 출입구에 나타나 소리 질렀다.

야이 개새끼들아! 전부 책상 위에 무릎 꿇고 앉아!”

그 때 교실에는 20명 가까이 있었다. 교실청소는 재적 50명 중 20여 명이 배당될 만큼 힘든 구역이었다. 우리는 주섬주섬 책상 위에 무릎 꿇고들 앉았다. 걔도 무릎 꿇고 앉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따지고 든다면 양동이 물을 갖다 버리는 일이 본래 내 차례였으니 나도 무사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머릿속이 공포로 하얘졌기 때문이다. 3학년 선배는 입가에 허연 침까지 묻혀가며 소리쳤다.

자수해! 어떤 씹새끼가 아래로 물을 쏟았는지 말이야!”

범인을 잡는 대로 그 자리에서 요절내겠다는 듯 손에 쥔 각목을 자기 바지에 비비면서 그랬다. 순간 내 등 뒤에서 걔의 으르렁거림 같은 소리가 언젠가 그 날처럼 들렸다.

나다, 씨발 놈들아. 어쩔래?”

그러더니 걔는 어느 새 자기 책걸상을 높이 쳐들고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다시 내뱉는 소리.

죽을래, 씨발 놈들아?”

선배들은 기겁했다. 대단한 체구의 걔가 자신들을 노려보며 책걸상으로 내려칠 듯 다가가자, ‘어어어하는 입 모양을 지으며 출입구 밖 복도로 물러났다.

너 이따가 보자.”

소리나 남기고 사실상 달아나 버렸다. 걔는 뭐라 씨부렁거리면서 책걸상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는데 그 순간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마지막 7교시, 윤리 수업이었다. 그러잖아도 늘 어수선한 윤리 수업은 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윤리선생은 돋보기안경을 쓴 노인네였다. 돋보기안경을 썼지만 시력이 개선되질 못했는지 학생들 통제가 부실했다.

반 애들은 방금 전 사건을 화제로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갖가지 예측들을 해 보느라 바빴다. 다른 때보다 더 소란스러웠던지 노인네는 교탁을 치고는 고함쳤다.

제군들, 무슨 잡담들이 많은가? 질문할 게 있다면 직접 손들고 질문할 것이거늘!”

그러나 노인네는 솔직히, 우리가 뭘 질문해도 제대로 답해 줄지 의문이었다. 첫 수업시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반에서 공부 잘하는 애가 교과서에 등장하는 실존적 존재란 표현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세요.’요청했더니 노인네는 그러니까를 반복하며 횡설수설하다가 수업시간을 마친 것이다. 그 후로 윤리 수업 시간은 우리가 적당히 떠들어도 되는 시간처럼 되고 말았다.

노인네의 질문하거늘!’고함에 교실은 잠시 조용해졌다가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수업시간이 끝난 뒤물벼락 맞은 선배들이 어떻게 반격에 나설지 너무 궁금해, 노인네의 지루한 맹자 왈 공자 왈이 어서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학업에 정진하지 못하는 제군들의 장래를 염려하는 노인네의 탄식이 길게 이어지다가, 마침내 수업이 끝났다.

실장은 종례사항 여부를 알고자 교무실로 떠났다. 우리 반 담임선생은 내가 바쁠 때에는 실장을 통해서 종례사항을 대신 전하도록 하겠다.’ 면서 사실상 매일 실장을 통해 종례사항을 전하고 있었다. 하긴, 교무실이 1층에서도 먼 구석 쪽에 위치해 2층 구석에 있는 교실에 손수 종례하러 오는 게 힘들은 듯싶었다.

우리는 종례보다도 청소 시간의 사건 때문에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질 텐데하는 기대감(?)에 술렁이고들 있는데 과연, 창을 열고 복도를 살피던 애들이 소리쳤다.

“3학년 칼침이 떴다!”

시선들이 일제히 걔한테 집중되었다. 앞자리의 내 몸까지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집중된 시선들인데 정작 걔는 그냥 책상에 눈감고 엎드려 있었다. 윤리 수업시간부터 자는 건지, 아니면 무슨 생각중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겁먹은 소리로 주번, 빨리 교무실로 가서 담임한테 일러!”했고 또 다른 애는 나보고 , 빨리 걔를 깨워!”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걔의 어깨를 흔들려는데 문득 교실이 조용해지더니 낯선 목소리가 싸늘하게 들려왔다.

그래, 어느 씹새끼가 선배한테 겨 붙었어?”

앞 쪽 출입구에 칼침선배가 길이 10센티쯤 되는 잭나이프를 꺼내들고 서 있었다. 교내에서칼침 잘 놓기로 소문난, 무기정학 전력의 선배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뒤쪽으로 피했다. 나처럼 주위의 애들이 자리를 뜨자 모습이 드러났다. 걔는 책상에 엎드린 채 앞을 째려보았다. 좋지 않다는 시력으로 전방의 대상을 파악하는 듯했다. 칼침 선배가 걔를 향해 한 마디 내뱉었다.

너니, 씹새끼야?”

그러면서 반짝이는 잭나이프를 좌우로 한 번 움직였다. 그러자 걔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책걸상들 사이의 빈 공간에 서더니, 웃옷을 다 벗어 상체를 알몸으로 드러낸 채 앞으로 나아가며 외쳤다.

그렇다 개새끼야, 찔러 봐!”

그 때 교실 앞쪽에서 걔 표정을 본 애들의 말로는 아메리카 불곰이 포효하는 장면 같았다했다. 걔는 그런 표정으로 나아가면서 다시 소리 질렀다.

씨발, 내가 안 죽으면 그땐 네가 죽는 거야!”

그러자 칼침 선배는 잭나이프를 든 채로 이 새끼가 환장했나, 환장했나?”를 반복하며 출입구 밖 복도까지 뒷걸음으로 물러날 뿐이었다.

결국, 휭 하니 1층으로 내뺀 칼침 선배. 그러자 걔도 다시 웃옷을 찾아 입고 반대편 복도 끝, 층계로 사라졌다.

따라가 본 우리 반 애의 말에 의하면 걔가 바깥 화장실로 가더니 오줌을 냅다 갈긴 뒤, 담배를 한 대 빠는 것 같더라.’했다.

그 때 교무실로 담임한테 종례사항을 전달받으러 갔던 실장이 돌아와 우리들에게 외쳤다.

오늘도 종례사항 없다야!”

그러자 애들이 책가방들을 챙겨들고 교실을 빠져나가면서 씨발, 하지도 않는 종례, 아예 없애라 그래!”혹은 니미 담임이라고는!……하며 혀를 차기도 했는데 평소에 없던 거친 반응들이었다. 실장이아니 왜들 이러지?’하는 놀란 표정으로 교단에 서 있었다.

그럴 만했다.

1년 위도 아니고 2년 위인 3학년 선배를, 그것도 악명 높은 칼침 선배를 걔가 단숨에 물리치는 현장을 목격한 우리였으니…… 덩달아 끓는 피를 억제하기 힘들 수밖에. 맨 앞줄에 앉는 작은 애까지 교탁을 발길로 냅다 차고 교실을 나갈 정도였다. 하극상의 현장을 목격하는 일만큼 피 끓는 일이 어디 있을까? 그것도 선후배간의 상명하복이 전통이라는 학교에서.

애들이 대부분 빠져나갈 때 실장이 뒤늦게 묻는 말소리가 내 등 뒤로 들려왔다.

, 어떻게 됐니? 3학년에서 누가 안 왔니?”

 

걔가 교실청소를 계속할 거라 믿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건 다음 날부터 교실청소를 그만둘 줄이야.

걔는 다음 날 청소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 ‘양동이 물 버리기차례가 된 애가 걸레 물이 찬 양동이를 들고 창가 쪽으로 가는 척하더니 쓱 돌아서서 코미디언 서 영춘처럼 갈갈갈웃으며 복도로 나갔다.

우리는 따라 웃지 않았다. 당연했기 때문이다. 걔 말고 누가 감히 창밖으로 양동이 물을 내버릴 수 있을까? 벌써 교실청소는 책걸상도 나르다 말고 대충대충 쓸고 닦는 등 엉망으로 되돌아왔다.

7교시 수업 종이 울리자 걔가 어슬렁거리며 들어와 앉았는데 담배냄새와 화장실 냄새가 같이 따라왔다. 청소시간 내내 화장실에 틀어박혀 담배를 피우다 온 듯했다.

수업이 끝나고종례사항 없음이란 실장의 전달을 받은 뒤 각자 책가방을 챙겨들고 교실을 나서는데 다른 때와 달리 조용한 까닭이 있었다. 복도에 웬 3학년 선배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바짝 마른 몸매에 머리 한가운데 주먹만 한 흉터가 허옇게 파여 있어 살벌해 보이면서도 정작 표정은 온화했다.

그 선배는 교실에서 나온 걔를 맞아 다정하게 팔짱을 만들어 끼고 함께 복도를 걸어갔다. 걔 체구가 워낙 커서, 바짝 마른 선배가 마치 걔한테 매달려 가는 모양처럼 보였다.

그 후로도 흉터 선배는 우리 반 복도에 자주 나타나 걔와 어울렸다. 점심시간에는 걔와 같이 밖으로 나가길 자주했는데 목격한 애들의 말로는 화장실 한 칸에 둘이 들어가 담배를 함께 피우는 것 같다고 했다.

얼마 후 흉터 선배의 정체가 알려졌다. 폭력 써클 독수리의 데빵(‘우두머리’)이었다. 교내에 있다는 양대(兩大) 불법폭력 써클 독수리청룡중 한 써클의 데빵이 우리 반을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전설 속 인물 같은 존재를 현실로 보게 된 데 놀랐다. 그런 인물이 2년이나 후배인 걔와 어울리는 소탈한 모습이라니.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걔를 보호해 주는 모습이었다.

먼젓번 하극상 사건 뒤 칼침 선배가 속한 청룡써클에서 본격적으로 걔한테 다구리 놓을(‘집단으로 폭력을 구사하다’)채비에 나서자, 독수리 써클의 데빵이 재빨리 걔의 보호막을 자임한 것이다. 무서울 게 없어 보이던 걔가 낯선 선배의 보호를 받아들인 것은, 아무리 유도 2단의 실력이라도 쌍룡 써클 전체가 다구리 놓기에 나선다면 당해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청룡 측에는 칼침 선배 말고도 잭나이프를 쓰는 애들이 두엇 더 있어서 걔 혼자 감당하기란 무모한 일인 게 분명했다. 바로 몇 년 전인 1963년에, 세계 최강의 레슬러 역도산이란 분이 일본의 조무래기 야쿠자의 잭나이프에 찔려 허황되게 목숨을 잃은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 후 깡패세계에서 역도산이 뭐, 힘이 부족해 죽었나?’하며 자신에게 치명적인 잭나이프가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 유행어처럼 돈다 했다.

한 달쯤 지나, 걔가 독수리 써클에 정식으로 가입했다는 소문이 교내에 파다하게 나돌았다. 영화의 장면처럼, 열댓 명의 독수리 회원 모두 중화요리 집에 모인 가운데 걔가 회원들이 각자 새끼손가락의 피 한 방울씩을 보태어 만든 소주 한 잔을, 무릎 꿇고 받들어 마시며 신의를 다짐하는 식을 가졌다 했다.

놀라운 것은 1학년인 걔가 뎁빵인 흉터 선배의 후계자로 정해졌다는 사실이다. 파격적인 대우에 우리는 놀랐는데, 전후사정 얘기를 종합해 보면 그럴 만했다. 근년 들어 독수리 써클이 청룡 써클에 비해 회원 수에서 뒤지는 등 열세였기에 걸출한 인재를 파격적인 대우로 영입해서라도 판세를 역전하고자 한 속사정이었다.

피비린내를 머금은 먹구름이 교내에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독수리에서 걸출한 인재를 영입해 우세를 점하려는 시도를, 청룡에서 수수방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걸출한 인재가 자기네 칼침 선배를 망신시키면서 떠오른 인물이었으니 이래저래 독수리와 한 번은 맞붙어 승부를 결정지어야 했다.

겉으로는 평온한 학교였다. 아침마다 학생과() 선생들이 교문 앞에 서서 지각과 복장단정 지도를 하고, 매 시간 수업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종이 빠짐없이 울리고, 월요일의 애국조회 또한 거르지 않고 거행되고, 7교시 직전에는 전교생이 참여하는 청소시간이 진행되고, 종례시간 후 각 반 주번들이 학급일지를 담임선생한테 도장 받으러 다니느라 바쁘고……. 하지만 동시에 피비린내를 머금은 검은 구름 또한 학교에 시커멓게 드리우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한결같이 교복바지의 밑단을 교묘하게 넓혀 나팔바지 비슷하게 입고 담배냄새도 풍기는, 살벌한 눈매의 존재들이 걔에게 다가와 포옹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섬뜩한 우의를 다지고 있었다. 전에 없이 쉬는 시간도 편히 쉬지 못하는 생활로 바뀌면서 걔는 고단해졌다. 결국은 담임선생의 독일어 수업시간 중에 코골며 자기에 이르렀다. 담임선생이 판서를 멈추고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린교?”

나는 손을 뒤로 뻗어, 정신없이 코고는 걔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서너 번 흔들자 코고는 소리가 그쳤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갈 즈음에 다시 코고는 소리를 내었다. 담임선생이 다시 설명을 멈추고 물었다.

무슨 소린교?”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담임선생 어조를 흉내 내어 답했다.

오토바이 소리가 아닌교?”

교실에와하하!’폭소가 터졌다. 담임선생은 얼굴이 붉어진 채 자신이 우스개 가 돼버린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 때 끝 종이 울렸다. 담임선생은 체념한 표정으로 교실을 나갔다. 하긴 학급 종례도 교실이 멀어서 오지 않는 분이 생활지도에 시간을 낭비할 리 없었다. 애들이 여기저기서 무슨 소린교?’를 흉내 내며 낄낄거릴 때 나는 돌아앉아 걔를 보았다. 걔는 공책 위에 침까지 흘리며 엎드려 자고 있었다.

교내를 서서히 휘감기 시작한 어두운 태풍의 눈이 침까지 흘리며 고단하게 자고 있었다.

나는 걔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게 한 달 전 내 차례였던 양동이 물 버리기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 날 걔가 나를 돕는다고 했을 때 나는 얼른 사양하며 그 양동이를 들고 교실을 빠져나갔어야 했다.

달리 생각하면……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양동이 물 버리기 사건이 없었다 해도, 걔는 어차피 교내 폭력 써클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유도 2단이라는 공인된 실력에, 대단한 체구와 깡다구까지 갖춘 존재가 폭력 써클에 가입하는 일 없이 우리 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까? 물론 그런 데 휘말리는 일 없이 학교를 무난하게 잘 다니고 싶은 마음이 걔라고 해서 없었을 리 없다. 하지만 휘말리지 않으려 해도 휘말릴 수밖에 없는 것은 본인이 바로 거대한 회오리바람 그 자체인 때문이 아닐까? 아메리카 불곰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체구에 으스스한 눈매, 격렬한 감정의 폭발, 그런 것들을 뒷받침하는 깡다구와 운동능력.

그런 요소들을 다 갖추고서 어떻게 풍파 없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까. 양대 폭력 써클들의 악명이 타교에까지 널리 알려진 이 학교에서 말이다. 모든 건 얘의 숙명이다.

그런 생각까지 다다랐을 때 걔가 눈을 떠 내 눈길과 마주쳤다. 걔가 말했다.

, 너한테 보여줄 게 있는데…….”

그러면서 자기 공책의 맨 뒷장을 펴 보였다. 거기에는 무슨 그림이 커다랗게 볼펜으로 그려져 있었다.

걔는 어울리지 않게 수줍은 장난목소리로 한 마디 더했다.

나도 그림을 그려봤지롱.”

공책을 내 쪽으로 돌려놓자두 마리 토끼가 절구질하는 달나라그림이었다. 종이 면의 반을 넘는 크고 둥근 달 한가운데 두 마리 토끼가 웃는 얼굴로 다정하게 절구질하고 있었다. 잘 그렸다기보다는 무난한 스케치였다.

잘 그렸는데…….”

야아, 말도 마라. 이 그림이 좋아서 여러 번 연습장에 그려 본 뒤 공책에 최종적으로 그려놓은 거야.”

낙서장이나 다름없는 그 공책 말고도 따로 연습장이 있다니, 나는 우스운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걔는 흐뭇한 표정이었다. 그 때, 실장이 어느 샌가 교단에 서서 외치기 시작했다.

담임선생이 서울에 있는 사립학교로 가셨대. 교무실에 들렀더니 교무과장 선생이 그러더라고!”

그러자 애들이 제각각 떠들었다.

니미, 어째 종례 한 번 제대로 안 하는 게 이상하더라니까!”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씨발 어떻게 되긴, 별일 없지 뭐야!”

도대체 무슨 소리들인교?”

 

대머리 교무과장 선생이 다음 날 아침 조회시간에 들어왔다.

애써 침통한 낯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담임선생님께서 불가피한 사정으로 여러분들도 못 보고 급히 서울로 가게 된 것을 무척 안타까워하며…… 그런 마음을 여러분에게 대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당분간은, 다른 선생님이 임시로 학급을 맡으실 테니 그리들 알고 전과 다름없이 학업에 임해 주기 바랍니다. 알았죠?”

네에.”

대답하는 소리들이 작아요. 다시, 알았죠?”

네엣!”

대머리 선생이 사라진 뒤 실장이 교단으로 나와 부연했다.

우리 반 임시 담임은 윤리 선생님이야!”

그러더니 애들이 웃기도 전에 자기부터 먼저 웃었다. 원 세상에, 고루하고 답답한 노인네 선생이 임시 담임이라니! 실장은 애들의 웃음이 끝나기를 기다려 한 마디 더 했다.

오늘 종례시간에 들어오신다 했으니까, 너희들 절대 뺑소니치면 안 된다!”

그 즈음 종례시간에는 50명 재적 중에 20명 가까이 무단으로 불참하고 30명 정도만 남아 종례를 기다렸다. 담임선생이 거의 오지 않은 종례이니까 무단으로 귀가해도 될 듯싶지만 그러기에는 마음이 약한 애들만 남았던 거라면 지나친 자기비하일까? 마음이 약한 경우란 종례에 불참했다가, 담임이 들이닥쳐서 행동발달상황 란의 준법성에 다를 맞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경우이다. 나는 남아 있는 경우에, 걔는 무단으로 가는 경우에 속했다.

실장이 우리 분단 뒤로 와 걔한테 별도로 부탁했다.

노인네가 출석 점검할지 모르니까 종례 받고 가야 해.”

걔는 나 참!”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노인네 선생이 돋보기안경을 빛내며 종례시간에 나타났다. 교실 안팎은, 실장이 청소시간에 청소해달라고 애걸하며 다닌 덕에 깨끗해졌다. 소란스레 지내는 윤리시간의 선생이 아니라 임시 담임으로 나타난 때문일까, 애들은 뜻밖에도 조용히 앉아 있었다. 노인네 선생은 청소가 잘 되어있는 데다가 학생들도 빈자리 하나 없이 조용히 대기하고 있어 흡족해 했다. 돋보기안경 낀 얼굴에 미소가 겹치며 종례의 말씀을 시작했다. 우리로서는 장장 세 달 만에 경험하는 종례 말씀이었다.

제군들이 근래 들어서 성실하게 학교생활에 임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과연 오늘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될 줄이야…….”

하며 근엄하게 말씀을 이어가는데 그 때 뒤 출입문 밖에서 누군가 약하게 노크했다. 그러자 부근에 앉은 걔가 잠깐 기다려.’라고 소리죽여 답했다. 그래도 밖에서는 뭐가 급한지 계속 약하게 노크했다.

그 소리에 종례 말씀이 침해를 받자 노인네 선생은 말씀을 중단하고 앞쪽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는데, 복도의 누군가 그 낌새를 알아채고 후다닥 달아나는 소리가 났다. 노인네 선생은 할 수 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중단했던 말씀을 이으려는데 자신이 어디까지 말했는지 잊어버려 멍하니 서 있었다. 그 광경에 우리들이 깔깔대고 웃으면서 평소의 윤리시간처럼 소란스러워졌다.

노인네 선생은 전개하던 말씀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잘못 박힌 장승처럼 멀뚱히 서 있었다. 우리는 더 들어볼 것도 없는 종례 말씀이란 걸 우회적으로 전달하려는 듯 본격적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실장이 엉거주춤 일어서서 떠들지 말자는 간절한 표정까지 지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노인네 선생은 사태를 파악하였다. 중단된 말씀인 채로 종례를 마치기로 했다.

차렷, 경례!”

인사를 받은 노인네 선생보다 걔가 먼저 부리나케 뒤 출입문을 열어젖히고 빠져나갔다.

 

다음 날이었다.

2교시 수업이 시작되자 과목 담당선생이 판서부터 하는데, 걔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웬 쪽지를 건넸다. 공책종이를 한 장 찢어 만든 그 쪽지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꼰데가 날 찾걸랑 설사 때문에 화장실에 급히 갔다고 해.’

나는 필기하는 자세를 유지하면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잠시 후 걔가 뒤 출입문을 살며시 여는 소리가 났고 얼마 후 다시 닫히는 소리가 조용히 나더니, 나지막한 발걸음 소리로 사라져갔다. 그것이 사건의 직전 모습이었다.

걔는 그 길로 학교 옥상에 올라가 사건에 참가한 것이다.

독수리와 청룡, 양대 폭력 써클이 학교 옥상에서 승부를 가리는 패싸움을 벌이려다가 직전에 발각됨으로써 미수로 끝난 사건이었다. 지방 신문의 사회면에 대문짝만하게 ○○고 다수 학생 집단 폭력……이라 실리기도 했는데 유혈 참극이 벌어지기 직전에 발각됨으로써 학교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다고 선생들은 천만다행이란 표현을 거듭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피비린내 활극이 성사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만 컸다.

두 달 가까이 교내에 드리워지던 시커먼 전운이 어이없이 흩어지다니.

무더워져만 가는 날씨 탓에 수업받기가 점점 힘들어지면서독수리 대 청룡의 피비린내 활극을 기다리는 낙 하나로 버텼는데 그리 되다니.

불발로 끝난 사건이라도 그에 대해 주워들은 데까지, 아는 데까지 떠들어대며 아쉬움을 달래는 우리들.

사건 참가자들이 학생과 사무실 앞 복도에 무릎 꿇고 대기하고, 보호자들이 속상한 얼굴로 삼삼오오 학교로 소환되는 가운데 우리들은 사건의 전후 사정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사건의 전후 사정은 이러했다.

사건 전날 청소시간에 사소한 일로 독수리‘청에 속하는 두 학생이 주먹질을 벌였다. 화장실의 좁은 입구에서 어깨들을 부딪친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그러자 싸움을 지원하기 위해 각 써클의 회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그 중 누군가 좁고 더러운 곳에서 이럴 게 아니라 제대로 날을 잡아 넓은 장소에서 써클 간 대결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그 제안이 즉각 받아들여짐으로써 일단 휴전이 이뤄졌고 다른 회원들은 수업에 들어가고 데빵끼리 따로 남아 대결을 벌일 장소와 날짜, 규칙까지 의논했다. 그 결과 대결 장소는 널찍하고 호젓한 학교 옥상으로, 날짜는 이튿날 2교시로 정해졌다. 규칙은

첫째; 각자 알아서 2교시에 교실을 빠져나와 써클 별로 성원이 되면 곧바로 대결에 들어간다.

둘째; 대결 시 다치거나 잘못되어도 그 책임을 상대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처리한다.

셋째; 이번 일은 절대로 외부에서 모르도록 비밀리에 치른다. 부모한테도 말하지 않는다.

넷째; 이런 합의 사항들은 자기 써클의 명예를 걸고 지킨다.

이상의 내용들을 합의한 뒤 양 써클의 데빵은 각기 자기 써클 회원들을 긴급히 소집하여 합의 사항 전달 겸 다음 날 결전 대비 전략 회의에 들어갔다. 우리 반에서 임시 담임이 일장 종례 말씀을 할 때 누군가 교실에 있는 걔를 찾아와 급하게 뒤 출입문을 노크했던 게 그 때문이었다.

사건 당일 2교시가 되자 써클 회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옥상 위에 나타났다. 써클의 명예가 걸린 패싸움이라 여겨, 조퇴 외출 뺑소니 등 갖가지 방법으로 모두 수업을 빠지고 나타난 것이다. 각자 마련해 온 무기들을 꺼내들고 한판 벌일 찰라, 뜻하지 않게 교장선생이 나타나 이런 고얀 놈들!”이라 소리치는 바람에 모두가 무기들을 버리고 달아났으나 그 중 한 명이 붙잡히면서…….

사건의 전후 사정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우리는 실망이 컸다. 야구 방망이, 각목, 자전거 체인, 잭나이프 등 갖가지 흉기까지 준비하고 나선 패싸움이 어떻게 교장선생의 고함소리 한 마디에 시작도 못하고 흩어질 수 있을까? 아쉽다기보다는 이해 못할 사건이었다. 더욱 이해 못할 일은, 25개 학급의 큰 학교라 교장실에서 도장 찍는 일 하나만으로도 바쁠 교장선생이 그 날 따라 학교 옥상에 우연히 올라갔다가 패싸움 벌이려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사실이다. 이게 말이 되는 얘기인가? 써클 회원 중 누군가 사건직전에 몰래, 급히 교장실에 알린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등등의 추측으로 쉬는 시간마다 떠드는데, 나 혼자의 생각이지만 이해 못할 게 더 있었다.

그것은 사건뒤의 참가자들 모습이었다. 학생과 사무실 바깥 복도에 시커멓게 무릎 꿇고 앉아들 있다가, 학생과장 선생의 지시대로 반성문을 제출하고 야단맞고 하면서 순순히 징계 절차를 밟아나가는 준법적 태도들이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는 패싸움을 벌이려던 불법 폭력 조직원들의 행동치고는 너무 모순되지 않은가?

한 마디로 겉 다르고 속 다른 무리들의 짓거리라고 보아야 했다. 겉으로는 자기 써클의 명예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듯 나섰지만 속으로는 두려움에 벌벌 떨었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교장선생이 우연히그 시간에 옥상 위로 나타나 소리칠 때까지 무기들을 꺼내들고 을러대고만 있었다거나, “이런 고얀 놈들!” 한 마디에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무기들을 내 버리고 달아나기 바빴다는 일 등이 비로소 해명되는 것이다.

상대편 써클과 언제 한 판 맞붙는다.’고 예감하여 수시로 단합을 다지며 지내왔지만 늘 불안들 했으리라. 그러니 이제 양순하게 학생과장의 지시대로 처벌에 순응하는 것은, 한 달 넘는 무거운 불안에서 벗어나는 마음 편한 행동이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해 보면서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세상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정도는 알고 있는 나이였다. 학교 선생들은 늘 내가 너희들을 위해 백묵가루를 마시며 이 고생이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당신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사실, 그런 정도는 다른 애들도 다 알고 있지 않을까? 말들을 안 할 뿐이지.

나도 모르게 달나라의 토끼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걔의 달나라 토끼 그림이 생각나 뒤돌아보니 그 공책이 그대로 책상 위에 있었다. 주인이 사흘째 자리를 비웠는데도 공책은 별 일 없었다. 공책 주인이 무서워서 보존되었다기보다는, 맨 뒤쪽의 책걸상은 그대로 둔 채 청소하는 게으른 분위기 덕분이라 보아야 했다. 나는 공책을 내 책상에 갖다놓고 앞에서부터 넘겨보았다. 삼분의 일쯤 되는 분량까지는, 서너 장씩 과목 별 이름을 첫줄에 적고 구분돼 있었다. 어떤 과목은 몇 줄 판서 내용이 적혀 있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그냥 비어 있었고 심지어는 침 흘린 자국인지 눅눅했다. 그러다가 낯익은 그림들을 보았다. 비 내리는 거리를 바바리코트 차림으로 걷는 사내의 모습, 바람 부는 언덕에 서서 치맛자락을 흩날리는 소녀의 모습……. 학기 초에 내가 그려 준 것들이었다. 남의 공책에서 발견된 내 그림은 생소해 보였다. 마치 놀러간 남의 집에서 우연히 만난 내 동생들을 본 느낌?

공책은 중간 분량을 지나면서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고 쪽지 용도로 찢겨나간 흔적들이다가 다시 온전한 장들이 몇 장, 뒤로 남아 있었다. 역시 맨 끝장에는 걔의달나라에서 토끼들이 절구질하는 그림이 있었다. 나는 내가 그린 것과 비교해 보았다.

당연히 중학교 때까지 미술반 활동을 했던 내 그림이 더 세련되고 구도도 잘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왠지 걔 그림이 더 와 닿았다. 토끼 귀도 지나치게 길고 달도 타원에 가까운 촌스런 그림이었지만 이상하게 내 것보다 더 눈길이 끌리는 까닭은 뭔지.

종례 사항 없다아!”

실장이 전하는 소리에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종례시간이라 임시 담임인 노인네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누군가 실장한테 큰 소리로 씨부렁거렸다.

니미, 종례 안 할 거면 진작 집에 보내 줄 것이지!”

노인네 임시 담임은 그 동안 조회, 종례시간마다 빠지지 않고 나타나 출석 점검이라도 해 왔다. 당신의 고루한 성격 탓인지, 아니면사건후에 학생들 출석 점검에 철저를 기하는 학교 분위기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오늘은 종례시간이 돼도 나타나지 않아 10분 이상 기다리다가, 애들이 실장한테 교무실에 가 보라 했더니 그렇게 종례 사항 없다는 걸 전하는 것이다.

애들이 우당탕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도 책가방을 들고 뒤따라 나서다가, 실장이 자기 책가방을 챙기면서 교무실에서 본 일을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어떤 아주머니가 담임선생과 있는 거야. 담임은 웃으면서 그만 가셔도 됩니다하는데 아주머니는 연실 눈물까지 흘리면서 뭘 부탁드리느라 떠날 줄 모르는 거야. 무슨 부탁인가 귀 기울여 봤더니 애비 없이 키운 새끼, 이번에 사람 좀 만들어 달라.’는 거더라고. 바로 걔네 엄마더라니까. 글쎄 걔네 엄마도 딱하지, 잠시 며칠 담임 맡는 노인네한테 그렇게 울면서 자식을 부탁하면 뭐하나? 커다란 꿀 한 병까지 선물로 들고 온 모양이던데…….”

 

실장이 오판했다.

이틀 뒤 조회시간에, 노인네 선생이 편치 않은 낯으로 들어서더니 이렇게 말했다.

제군들. 금번에 학교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제가 이 학급의 담임을 계속 맡을 것 같습니다…….”

학교의 불가피한 사정이 뭔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내가 짐작하기에 먼저 담임의 후임자로 온 독일어 교사가 하필 앳된 처녀선생이라는 사실이 원인일 듯싶었다. ‘드센 사춘기 남자애들의 학급 담임을 처녀 여선생한테 맡기기 어려우니 현 임시 담임이 계속 맡을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교감선생이 노인네 선생을 설득하지 않았을까.

조회 종례를 꼬박꼬박 챙기던 노인네 선생은 그 날 오후의 종례부터 제대로 하지 않았다. 먼젓번 담임처럼 실장이 교무실로 와서 종례사항 유무를 여쭈어 본 뒤 교실에 가서 전하는방식으로 환원해 버렸다.

교실청소도 전체 책걸상들을 그대로 둔 채 각자 눈에 뜨이는 휴지들이나 주우며 끝내는 방식이 되었고 종례시간에 남아 대기하는 애들도 채 반이 되지 않았다. 마침내 실장은 조회 종례시간에 교무실로 가는 일을 주번에게 넘긴다고 선언했다. 담임선생이나 애들이나 모두 무관심한데 자기만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주번 맡은 애들은 투덜대며 마지못해 그 일을 떠맡았으나 언제 거부할지 몰랐다. 만일 그리 되면 우리 반의 조회 종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조회 종례라는 용어마저 없는 반이 되는 걸까? 그래도 되는 걸까?

한심한 분위기 속 교실로 걔가 귀환했다.

날마다 학생과로 등교해, 반성문을 쓰고 검사받고 그리고 합격해야만 귀가하는근신 처벌을 치르고 돌아온 것이다.

걔의 써클 내 위상으로 봐서 최소한 유기정학에 처해질 거라고 우리는 예측했으나 실제 처벌은 그렇듯 경미했다. ‘사건이 미수였던 데다가 걔에게 이번 사건말고는 다른 징계전력이 없는 때문이라 했다.

전력도 화려한 데다가 사건의 주도자인 데빵들은 자퇴나 전학 중 하나를 스스로 택하는방침에 따라 먼 시골로 전학 갔고, 나머지 참가자들은 징계전력의 경중과 유무에 따라 근신 혹은 유기무기정학에 처해지는 것으로 사건은 종료되었다.

걔가 교실로 귀환하던 날은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그 탓에 교실이 어둑해져, 자기 책상에 상체를 엎드리고 앉은 걔를 나는 뒤늦게 발견했다. ‘그간 잘 지냈니?’라고 묻기도 그렇고 해서 이렇게 간단히 물었다.

끝났니?”

걔는 엎드린 채 고개만 끄덕였다. 솔직히, 근신을 받던 얘기라도 듣고 싶었으나 당사자가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실장도 다가와 별 일 없었니?’하며 말을 걸었으나 걔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예전처럼, 공책 하나 책상 위에 놓고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조용히 귀환한 것이다.

담임선생이 걔를 교실에서 발견한 것은 사흘 뒤 윤리시간이었다. 담임선생은 걔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 언제 들어왔니?”

그 날부터 쉬는 시간마다 인상이 안 좋아 보이는 2학년, 3학년 선배들이 하나 둘 걔를 찾아와 포옹하고 돌아갔다. 그럴 때만 걔는 자기 책상 옆에 바로 서서 실눈으로 잔잔하게 웃으며 포옹에 응했다.

나는 깨달았다. 걔는 이제 한 써클의 데빵이었다. 먼저 데빵이 권고전학을 가면서 걔가 승계한 것이다.

그래서 써클 회원들이 새 데빵의 징계 마침을 축하하고자 다녀가는 모습이었다. 자기들도 징계 받는 중일 텐데 그렇듯 짬을 내어 알현하고 있었다. 걔는 1학년생임에도 전교를 제압할 어둠의 제왕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럴 만했다. 대단한 체구, 험상궂은 인상, 유도 2단의 실력, 깡다구에다가 근신일망정 데빵으로서 필수적인 처벌 전력까지 갖추었으니.

장마로 이어지려는지 비가 계속 구질구질 내리는데 어둑한 교실의 뒤편에서 쉬는 시간마다 다져지던 음산한 우의(友誼).

실내에 습기가 차 눅눅해진 데다가 갖가지 쓰레기들이 발에 걸릴 정도로 바닥에 넘쳐났다. 걔가 쉬는 시간에 한 마디 외쳤다.

실장!”

복도로 나가려던 실장이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걔가 이어서 말했다.

요새 청소들 안 하냐? 왜 이리 바닥에 쓰레기 천지냐?”

사실 그런 말은 담임선생이나 할 말이다. 그러나 실장은 답했다.

애들이 내 말을 안 듣거든.”

그래? 그럼 오늘 종례하자.”

알았어.”

실장은 차마 걔가 소집한 종례라는 걸 밝히지 않고 마치 담임선생이 전하는 것처럼 오늘 종례는 절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쉬는 시간마다 외치는 한편, 칠판 구석에도 오늘 종례 있음이라 적어 놓았다.

마침내 우리는 오랜만에 종례시간을 가졌다. 전원, 아니 한 명만 빠지고 다 참석했다. 오랜만의 종례라 긴장한 표정들로 앉아 있는 우리를 보며 실장이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요즈음 우리 반이 너무 엉망이라서 내가 종례시간을 갖고자 했다. 학급비 얼마 안 되는 것도 제대로 걷히지 않고 교실청소도 개판이라 쓰레기 천지이고……참으로 이런 문제들을 한 번 의논해야 하지 않냐?”

그쯤에서 걔가 실장, 나 좀 한 마디!”하며 발언권을 얻더니 공식적으로 으르렁거렸다.

너희들, 실장 말 잘 들어! 말 안 듣는 새끼는 나한테 혼날 각오해! ……그리고 이런 종례 때 그냥 무단으로 불참한 한 새끼는 누구냐? 그 새끼, 내일 각오하라 그래.”

그러고는 자기자리에 앉았다. 너무 세게 앉았는지 의자에서 삐걱 소리까지 났다. 얼어붙은 교실 분위기라 참았지만 사실 배꼽 잡고 웃을 일이었다. 바로 걔 자신이 종례 때 무단 불참을 일삼지 않았나?

우리는 실장의 종례 의도를 눈치 챘다. 실장은 한 번은 짚고 가려고 벼르던 것들을 라는 막강한 힘에 기대어 터뜨리고 있었다.

독일어 선생님 문제도 그렇다. 그 선생님이 우리 반에 수업 들어오기가 무섭다는 거야. 나를 따로 불러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아무리 나이 어린 처녀선생이라도 그렇지, 우리가 너무 말들 안 듣고 놀리는 게 아니니? 앞으로는 쎅스 하다가 독일어로 무엇입니까?’하는 그런 이상한 질문도 삼가고, 책을 읽으라 지시하면 딴 짓 하면서 시간을 끌지 말고 틀리더라도 읽고 그러자고…….”

그 외에도, 평소에 느낀 서너 가지 문제점을 격하게 발언하더니 마지막으로 차분한 어조로 바꿔 말했다.

오늘 교실청소는 다시 해야겠다. 너무 지저분해서 안 되겠어.”

마치 담임선생이라도 된 듯 그러는 데에 경악한 교실청소 담당 애들. 웅성거리며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걔가 다시 으르렁거리며 진압했다.

까라면 까, 씨발 놈들아!”

복도청소와 특별구역(학교에서 학급 별로 배정한 실외구역으로서, 우리 반은 강당 앞 정원이다.) 청소 애들은 먼저 귀가하고 교실청소 담당 애들만 남아 다시 청소가 시작되었다.

나는 교실청소 중 막대걸레 닦기였다. ‘책걸상 나르기애들이 책걸상을 교실 앞 쪽으로 옮김과 동시에 빗자루 쓸기애들이 바닥의 쓰레기들을 교실 뒤쪽으로 쓸어나가고, 그 다음에 막대걸레 닦기들이 교실바닥을 물걸레질하는 것이다.

막대걸레 다섯 자루의 걸레들이 모두 새까매지고…… 빗자루로 쓸어 모은 쓰레기들의 양도 엄청났다. ‘쓰레기통 비우기두 명이 쓰레기들을 강당 뒤에 있는 소각장에 갖다 버리느라 네 번이나 쓰레기통을 들고 그 먼 길을 다녀야 했다. ‘책걸상 나르기애들이 책걸상들을 원 위치로 다시 날라 놓느라 바쁠 때, 막대걸레를 적시느라 먹물처럼 된 양동이 물을 내다버리려고 양동이가 나섰다. 그 때 걔가 외쳤다.

그거 내가 할게.”

교단에 의자 놓고 앉아서 청소상황을 지켜보느라 심심했던 게 아닐까? 걔는 땟물이 가득한 양동이를 한 손으로 가벼이 들긴 했는데 복도로 해서 1층까지 내려가 하수구 구멍에 쏟아버리고 와야 하는 지겨운 일이란 생각이 뒤늦게 들었는지 잠시 주춤거렸다.

막대걸레 닦기’‘책걸상 나르기’ ‘빗자루 쓸기등 교실청소에 속하는 모든 애들이 걔의 다음 행동을 주시했다.

걔는 이윽고, 창가 쪽으로 걸었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3학년 선배들이 없는 순간을 살핀 뒤 냅다 창밖으로 양동이 물을 쏟아버렸다.

이러면 빠르잖아?”

교실청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정말 오랜만에 교실청소가 잘 이뤄졌다. 걔가 교단에 의자 하나 놓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교실청소가 잘 이뤄지다니……. 오랜만에 실장도 제 역할을 수행하였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담당 별로 검사를 한 뒤 귀가시켰다.

오후 늦도록 비 내리는 구질구질한 날씨였지만 교실에는 새벽처럼 신선한 공기가 들어찬 듯싶었다. 바닥에 작은 휴지 하나 떨어진 게 없을뿐더러 물걸레로 잘 닦은 덕에 기름칠한 듯 빛났다. 실장과 함께 교단에 서 있던 걔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총평했다.

잘했는데!”

실장은 걔 앞에서 수줍은 낯으로 미소 지었다. 그 때 나는 보았다, 청소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한 곳을. 실장과 걔가 서 있는 바로 뒤 칠판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마지막 수업의 판서가 허연 백묵 자국 그대로 남아 있을 줄이야.

칠판은 하나도 안 되어 있는데?”

내 말에 걔가 뒤돌아보더니 얼굴이 벌겋게 되어 으르렁거렸다.

실장, 어떤 씹새끼가 안 한 거야?!”

실장이 급히 청소구역 별 배정표를 보고 답했다.

아하, 아까 종례를 받지 않고 그냥 간 애야. 그러니까 이렇게 다시 청소하는 줄도 몰랐겠지.”

그래? 그 개새끼, 이래저래 손 좀 봐 줘야겠구먼. 어디, 이름 좀 보자고. 내가 실장 대신 혼내줄 거니까. ……, 이런 새끼가 우리 반에 있었어? 처음 보는 이름 같은데?”

우리 반 애 이름, 맞아. 얘는 창가 쪽 분단 맨 앞에 앉지.”

실장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일러주었다.

알았어, 알았어.”

걔가 오랜만에 제대로 몸의 힘을 쓸 기회를 맞았다는 듯, 어깨를 두어 번 으쓱거리며 교단에서 내려섰다. 그 때에 맞춰 주번이 걔와 실장을 두루 보며 물었다.

이제 교실 문을 닫아도 되니?”

실장은 말로써 허락했고 걔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허락했다. 마치 둘 다 담임 같았다.

다른 때와 다르게 주번이 교실 앞뒷문을 잠그는 것은 물론, 열린 유리창까지 찾아서 닫는 것을 보며…… 나는 실장과 걔의 발걸음에 맞춰 셋이 함께 복도를 걸었다. 나와 실장은 책가방을 들었지만 걔는 빈손이었다. 잠시 같이 가는 길이지만 분위기가 무거워 내가 웃길 목적으로 걔한테 말을 걸었다.

, 책가방 어디에다 두었냐?”

걔가 실눈으로 웃으면서 답했다.

나는 공책 한 권이면 돼.”

우리 셋은 와하하!’ 웃었다. 어둑한 복도에 웃음소리들이 울려 펴졌다. 1층으로 내려가서 밖으로 나서는 출입구에 섰을 때 걔가 어이없다는 듯, 그러나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형들한테 오늘은 먼저 가라고 했는데도 저렇게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잖아? 이러니 내가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

교문 옆에 같은 써클 회원으로 보이는 선배 서너 명이 서 있었다. 우산 하나를 펼치고 몰려 있어서 시커먼 덩어리 같았다. 걔가 달려가자, 우산 바로 아래로 모신뒤 자기들은 부분적으로 비를 맞으며 함께 사라져갔다. 지켜보던 실장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오늘 청소도 안 하고 간 애가, 키는 작지만 만만치 않거든. 그 애가 순순히 매 맞을 것 같지 않아 걱정이야. 그 애가 역전 동네에 사는데 거기 깡패들과 친하다는 말이 있어. 우리 반 애들이 그걸 잘 모르지. , 언젠가 누군가 담임 말투를 흉내 내어 담임이 열 받은 적 있었잖아? 바로 그 애야. 그 애가 오토바이 소리 아닌교했다고.”

 

나는 후회한다.

그 날 청소검사 때 걔의 뒤에 있던 칠판이 청소가 안 되어 있다고, 뭣 하러 말했나 싶다. 판서를 그냥 내버려둔다 해도, 다음 날 아침이면 주번 애가 1교시 수업 전에 지우개로 스윽스윽 닦아버렸을 텐데……. 힘도 별로 들지 않을뿐더러 제일 간단한 청소가 칠판 청소인데 그걸 뭣 하러 지적했는지.

내가 부질없는 짓을 감행한 까닭은, 걔와 실장에 대해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민 때문이 아닐까? 정작 자기 청소 구역도 모르면서 마치 담임처럼 교단에 서서 위엄을 떨던 걔와, 그런 걔의 힘에 기대어 청소검사를 실시하고는 걔가 잘했다.’고 총평하자 수줍은 얼굴로 미소 짓던 실장에 대해 나도 모르게 분노했던 게다. 그래서 결코 잘한 청소가 아니라는 것을 일러줌으로써 두 사람을 무색하게 만들고 싶었던 게다.

지난 4월초에 내 담당이었던 양동이 물 버리기가 걔를 써클에 가입케 하고 급기야는 한 써클의 데빵으로 이르는 출발점이 된 것처럼, 결국 내가 그 날 칠판 청소가 안 되어 있다고 지적한 게 비극적 사건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비극적 사건은 이러했다.

조회시간이었다. 주번이 교무실로 조회 전달사항을 받으러 간 직후, 전 날 칠판 청소도 안 하고 그냥 간 애가 교실로 들어왔다. 뒤 출입구로 조용히 등교한 것이다. 엎드려 있던 걔가 뒤돌아보며 공책에 적어놓은 그 애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 애가 발걸음을 멈추며 삭막한 어조로 반문했다.

난데 왜?”

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3학년 선배들에게 책걸상을 쳐들 때처럼 목덜미가 벌겋게 달아오르며 으르렁거렸다.

난데 왜 부르냐고? 이 개새끼야, 너 왜 칠판 청소도 안 하고 갔어?”

둘의 말소리밖에 다른 소리는 교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키 작은 애는 과연 만만치 않았다.

그러는 너는 청소 하니?”

이런 씨발 놈이…… 씨발 놈아, 나는 운동부야. 유도특기자로 입학한 것 몰라?”

운동부 연습은 방과 후에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 7교시 전 청소시간이 방과 후냐?”

걔가 대꾸를 못했다. 고장이 나 멈춰진 영화 장면의 주인공처럼 동작도 정지됐다. 잠시 후 신음소리 같은 한숨을 내쉬고 나서 천천히 뇌까렸다.

이런 씨발 놈은…… 한 번…… 혼나야 돼.”

그러면서 곰처럼 큰 걔의 두 손이 마치 살쾡이처럼 작은 애의 어깨를 움켜잡았는데, 순간 무엇이 번쩍이며 찔리는 소리가 났다. 걔는 잡아 메치려 했던 두 손을 들며 어허?’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어느 새 작은 애 손에 피 묻은 잭나이프가 쥐어있었다.

그길로 출입문을 콰당!’ 열어젖히고 달아나는 작은 애를, 걔가 왼쪽 가슴을 움켜쥔 채 뒤쫓았다. 요란한 발걸음 소리들을 따라 우리도 복도로 나왔다. 복도 바닥에는 핏방울들이 투두둑 흩뿌려져 있었다.

작은 애가 어느 새 교문 밖으로 달아나, 사라졌다. 걔가 가슴을 움켜쥔 모습으로 비틀비틀 쫓다가 멈추어서더니 이번에는 느리게 돌아가는 영화 장면처럼 천천히 고꾸라졌다.

그 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모처럼 화창한 날씨였다. 우리가 1층으로 내려가 고꾸라져 있는 걔한테 달려갔을 때 걔 몸 주위로 번지는 검붉은 핏물에 아침 햇빛이 반사됐다.

 

한 달 뒤, 토요일에 하계방학식이 있었다.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이 전교생을 향해 훈화했다.

여러분, , 다음 주 월요일부터 여름방학이 시작되는데, , 그 날은 마침 정부에서 정한 임시공휴일입니다. , 미국에서 쏘아올린 아폴로 11호가 달에 그 날 새벽에 착륙할 예정이라, , 그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서랍니다. , 우리 인류가 드디어 우주를 향한……

우리들은 햇볕이 따가워서 훈화가 어서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이어서 학생과장 선생이 마이크를 넘겨받더니 하계방학 중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발표했다.

……전염병이 의심되는 불량 식품을 멀리할 것이며, 깊은 강이나 험한 산같이 위험한 곳에도 절대 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만일 불가피하게 간다면 반드시 부모님의 허락을 받거나, 부모님과 동반해야 합니다……

어이가 없었다. 하계방학이라고 해 봤자, 일주일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721일부터 820일까지 4 주간 방학이라 되어있지만 첫째 주만 휴교일 뿐 남은 3주는 계속 보충수업을 받다가 개학인 것이다. 어쨌든 학생과장 선생의 주의사항 발표를 마지막으로 방학식이 끝났다.

한낮의 땡볕 아래 귀갓길을 서두르는 애들.

나는 1층 출입구로 해서 복도로 들어섰다. 한 시간 전만 해도 왁자지껄하던 공간이 무슨 마술이 이뤄진 듯 고요했다. 내 발걸음 소리가 터벅터벅 복도 바닥을 울릴 정도였다. 층계를 올라 2층 끝에 있는 우리 반 교실로 갔다. 우리 반 교실도 다른 반 교실들처럼 앞뒤 출입문 모두를 맹꽁이자물쇠로 잠가 놓았지만 역시 창문은 방치한 상태였다. 창문 하나를 열고 문턱을 넘어 교실로 들어갔다.

방학하는 날임에도 교실청소는 눈에 뜨이는 휴지나 줍는 정도로 끝낸 상태였다. ‘사건다음 날 잡혀 소년원으로 간 창가 쪽 작은 애 책상이나, 내 뒤의 걔 책상이나 한 달째 변동 없이 그대로 비어 있는 것이다. 외지에서 전학 올 애들의 자리로 학교에서 놔두는 것 같다고, 실장이 추측했다.

나는 걔 책상 속으로 손을 넣어 그 공책을 찾아냈다. 책걸상 한 번 옮기지 않고 대충 휴지나 줍는 식으로 정착돼 버린 교실 청소 덕분에 보존된 공책이다.

나는, 교장 선생의 임시공휴일……훈화를 듣다가 문득 걔의 달에서 절구질하는 토끼들 그림이 보고 싶어진 거다. 공책의 맨 뒷장을 펼쳐 그 그림을 찾았는데…… 없었다.

어떻게 된 걸까? 누가 찢어간 걸까? 그 그림이 명화 수준이라고? 그건 아닌데.

나는 공책을 다시 걔 책상 속에 넣고는 창문턱을 넘어 교실을 빠져나왔다.

 

이틀 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다는 꼭두새벽이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 사는 집 거실에서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발 하나 뻗기 어렵게 거실에 빽빽하게 들어찬 동네 사람들.

유명한 과학자들이 화면에 나와 잠시 후 벌어질 인류 역사상의 장거를 반복해서 브리핑해주었다. 그런 브리핑 소리에다가, 땀 냄새 발 냄새 진동하는 거실에서 나는 다소 어린아이 같은 생각으로 앉아 있었다.

걔의 공책에 그려져 있던 달나라에서 절구질하던 토끼들이 어쩌면 달 표면에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절대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하계방학 중 보충수업이 끝난 뒤 하루 쉬고 개학날이다.

노인네 담임선생이 어떤 애를 데리고 교실로 들어왔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가정사정으로 전학 온 학생이라고 그 애를 간단히 소개했다. 사실, 저렇게 전학 오는 애들은 사고를 쳐서 권고전학으로 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무슨 사고를 쳤을까?

여하튼, 서울 애라 그런지 햇빛 한 번 받지 않은 듯 뽀얀 얼굴이다.

자네한테 어느 좌석이 좋을까?”

담임선생이 그러면서 비어 있는 두 자리 중 창가 쪽 앞자리를 권했다. 서울 애의 키가 작은 편이니, 칠판 글씨가 먼 복도 쪽 뒷자리보다는 그 자리가 좋을 것이라는 판단일 테다. 그런데 서울 애가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답했다.

저 뒷자리에 앉고 싶은데요.”

담임선생이 뭐 이런 놈이 다 있나?’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서울 애는 내 뒷자리로 와 앉았다.

향긋한 냄새가 났다.

보통 우리들한테서는 땀 냄새나 김치 냄새나 혹은 담배냄새이거나, 잘해야 비누칠한 냄새가 나는 정도다. 그런데 이 애는 차원이 달랐다. 무슨 비싼 향수를 몸에 뿌리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화장 진하게 하고 다니는 여자들처럼.

평범치 않은 애다.

담임선생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1교시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처녀 선생이 가르치는 독일어 수업이다. 그녀는 원래 우리 반 담임을 맡을 뻔했다가, ‘처녀선생이, 드센 사내애들 담임을 맡는 것은 무리다는 중론으로 면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굿텐모르겐!”

하고 손을 흔들며 그녀가 앞 출입문을 열고 들어와 교단에 섰다. 우리도 같이 굿텐모르겐!’답하는데 그 때 나는 뒤의 서울 애가 조그맣게 뇌까리는 소리를 들었다.

조거 맛있겠네.”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나는 분명히 들었다. 야릇한 향수냄새와 처녀선생님을 감히 넘보는 음란한, 아니 음산한 아이.

그런 애가 거칠지만 순박한 데가 있던 걔의 뒤를 이어 그 자리에 앉은 것이다. 그렇다. 먼 훗날 내가 이 서울 애에 대하여 얘기할 수 있다면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그 애가 우리 반에 전학 왔을 때 하필 내 자리 뒤가 비어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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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방학 중 보충수업이 끝난 뒤 하루 쉬고 개학날이다.

노인네 담임선생이 어떤 애를 데리고 교실로 들어왔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가정사정으로 전학 온 학생이라고 그 애를 간단히 소개했다. 사실, 저렇게 전학 오는 애들은 사고를 쳐서 권고전학으로 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무슨 사고를 쳤을까?

여하튼, 서울 애라 그런지 햇빛 한 번 받지 않은 듯 뽀얀 얼굴이다.

자네한테 어느 좌석이 좋을까?”

담임선생이 그러면서 비어 있는 두 자리 중 창가 쪽 앞자리를 권했다. 서울 애의 키가 작은 편이니, 칠판 글씨가 먼 복도 쪽 뒷자리보다는 그 자리가 좋을 것이라는 판단일 테다. 그런데 서울 애가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답했다.

저 뒷자리에 앉고 싶은데요.”

담임선생이 뭐 이런 놈이 다 있나?’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서울 애는 내 뒷자리로 와 앉았다.

향긋한 냄새가 났다.

보통 우리들한테서는 땀 냄새나 김치 냄새나 혹은 담배냄새이거나, 잘해야 비누칠한 냄새가 나는 정도다. 그런데 이 애는 차원이 달랐다. 무슨 비싼 향수를 몸에 뿌리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화장 진하게 하고 다니는 여자들처럼.

평범치 않은 애다.

담임선생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1교시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처녀 선생이 가르치는 독일어 수업이다. 그녀는 원래 우리 반 담임을 맡을 뻔했다가, ‘처녀선생이, 드센 사내애들 담임을 맡는 것은 무리다는 중론으로 면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굿텐모르겐!”

하고 손을 흔들며 그녀가 앞 출입문을 열고 들어와 교단에 섰다. 우리도 같이 굿텐모르겐!’답하는데 그 때 나는 뒤의 서울 애가 조그맣게 뇌까리는 소리를 들었다.

조거 맛있겠네.”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나는 분명히 들었다. 야릇한 향수냄새와 처녀선생님을 감히 넘보는 음란한, 아니 음산한 아이.

그런 애가 거칠지만 순박한 데가 있던 걔의 뒤를 이어 그 자리에 앉은 것이다. 그렇다. 먼 훗날 내가 이 서울 애에 대하여 얘기할 수 있다면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그 애가 우리 반에 전학 왔을 때 하필 내 자리 뒤가 비어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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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 토요일에 하계방학식이 있었다.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이 전교생을 향해 훈화했다.

여러분, , 다음 주 월요일부터 여름방학이 시작되는데, , 그 날은 마침 정부에서 정한 임시공휴일입니다. , 미국에서 쏘아올린 아폴로 11호가 달에 그 날 새벽에 착륙할 예정이라, , 그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서랍니다. , 우리 인류가 드디어 우주를 향한……

우리들은 햇볕이 따가워서 훈화가 어서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이어서 학생과장 선생이 마이크를 넘겨받더니 하계방학 중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발표했다.

……전염병이 의심되는 불량 식품을 멀리할 것이며, 깊은 강이나 험한 산같이 위험한 곳에도 절대 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만일 불가피하게 간다면 반드시 부모님의 허락을 받거나, 부모님과 동반해야 합니다……

어이가 없었다. 하계방학이라고 해 봤자, 일주일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721일부터 820일까지 4 주간 방학이라 되어있지만 첫째 주만 휴교일 뿐 남은 3주는 계속 보충수업을 받다가 개학인 것이다. 어쨌든 학생과장 선생의 주의사항 발표를 마지막으로 방학식이 끝났다.

한낮의 땡볕 아래 귀갓길을 서두르는 애들.

나는 1층 출입구로 해서 복도로 들어섰다. 한 시간 전만 해도 왁자지껄하던 공간이 무슨 마술이 이뤄진 듯 고요했다. 내 발걸음 소리가 터벅터벅 복도 바닥을 울릴 정도였다. 층계를 올라 2층 끝에 있는 우리 반 교실로 갔다. 우리 반 교실도 다른 반 교실들처럼 앞뒤 출입문 모두를 맹꽁이자물쇠로 잠가 놓았지만 역시 창문은 방치한 상태였다. 창문 하나를 열고 문턱을 넘어 교실로 들어갔다.

방학하는 날임에도 교실청소는 눈에 뜨이는 휴지나 줍는 정도로 끝낸 상태였다. ‘사건다음 날 잡혀 소년원으로 간 창가 쪽 작은 애 책상이나, 내 뒤의 걔 책상이나 한 달째 변동 없이 그대로 비어 있는 것이다. 외지에서 전학 올 애들의 자리로 학교에서 놔두는 것 같다고, 실장이 추측했다.

나는 걔 책상 속으로 손을 넣어 그 공책을 찾아냈다. 책걸상 한 번 옮기지 않고 대충 휴지나 줍는 식으로 정착돼 버린 교실 청소 덕분에 보존된 공책이다.

나는, 교장 선생의 임시공휴일……훈화를 듣다가 문득 걔의 달에서 절구질하는 토끼들 그림이 보고 싶어진 거다. 공책의 맨 뒷장을 펼쳐 그 그림을 찾았는데…… 없었다.

어떻게 된 걸까? 누가 찢어간 걸까? 그 그림이 명화 수준이라고? 그건 아닌데.

나는 공책을 다시 걔 책상 속에 넣고는 창문턱을 넘어 교실을 빠져나왔다.

 

이틀 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다는 꼭두새벽이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 사는 집 거실에서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발 하나 뻗기 어렵게 거실에 빽빽하게 들어찬 동네 사람들.

유명한 과학자들이 화면에 나와 잠시 후 벌어질 인류 역사상의 장거를 반복해서 브리핑해주었다. 그런 브리핑 소리에다가, 땀 냄새 발 냄새 진동하는 거실에서 나는 다소 어린아이 같은 생각으로 앉아 있었다.

걔의 공책에 그려져 있던 달나라에서 절구질하던 토끼들이 어쩌면 달 표면에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절대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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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후회한다.

그 날 청소검사 때 걔의 뒤에 있던 칠판이 청소가 안 되어 있다고, 뭣 하러 말했나 싶다. 판서를 그냥 내버려둔다 해도, 다음 날 아침이면 주번 애가 1교시 수업 전에 지우개로 스윽스윽 닦아버렸을 텐데……. 힘도 별로 들지 않을뿐더러 제일 간단한 청소가 칠판 청소인데 그걸 뭣 하러 지적했는지.

내가 부질없는 짓을 감행한 까닭은, 걔와 실장에 대해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민 때문이 아닐까? 정작 자기 청소 구역도 모르면서 마치 담임처럼 교단에 서서 위엄을 떨던 걔와, 그런 걔의 힘에 기대어 청소검사를 실시하고는 걔가 잘했다.’고 총평하자 수줍은 얼굴로 미소 짓던 실장에 대해 나도 모르게 분노했던 게다. 그래서 결코 잘한 청소가 아니라는 것을 일러줌으로써 두 사람을 무색하게 만들고 싶었던 게다.

지난 4월초에 내 담당이었던 양동이 물 버리기가 걔를 써클에 가입케 하고 급기야는 한 써클의 데빵으로 이르는 출발점이 된 것처럼, 결국 내가 그 날 칠판 청소가 안 되어 있다고 지적한 게 비극적 사건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비극적 사건은 이러했다.

조회시간이었다. 주번이 교무실로 조회 전달사항을 받으러 간 직후, 전 날 칠판 청소도 안 하고 그냥 간 애가 교실로 들어왔다. 뒤 출입구로 조용히 등교한 것이다. 엎드려 있던 걔가 뒤돌아보며 공책에 적어놓은 그 애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 애가 발걸음을 멈추며 삭막한 어조로 반문했다.

난데 왜?”

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3학년 선배들에게 책걸상을 쳐들 때처럼 목덜미가 벌겋게 달아오르며 으르렁거렸다.

난데 왜 부르냐고? 이 개새끼야, 너 왜 칠판 청소도 안 하고 갔어?”

둘의 말소리밖에 다른 소리는 교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키 작은 애는 과연 만만치 않았다.

그러는 너는 청소 하니?”

이런 씨발 놈이…… 씨발 놈아, 나는 운동부야. 유도특기자로 입학한 것 몰라?”

운동부 연습은 방과 후에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 7교시 전 청소시간이 방과 후냐?”

걔가 대꾸를 못했다. 고장이 나 멈춰진 영화 장면의 주인공처럼 동작도 정지됐다. 잠시 후 신음소리 같은 한숨을 내쉬고 나서 천천히 뇌까렸다.

이런 씨발 놈은…… 한 번…… 혼나야 돼.”

그러면서 곰처럼 큰 걔의 두 손이 마치 살쾡이처럼 작은 애의 어깨를 움켜잡았는데, 순간 무엇이 번쩍이며 찔리는 소리가 났다. 걔는 잡아 메치려 했던 두 손을 들며 어허?’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어느 새 작은 애 손에 피 묻은 잭나이프가 쥐어있었다.

그길로 출입문을 콰당!’ 열어젖히고 달아나는 작은 애를, 걔가 왼쪽 가슴을 움켜쥔 채 뒤쫓았다. 요란한 발걸음 소리들을 따라 우리도 복도로 나왔다. 복도 바닥에는 핏방울들이 투두둑 흩뿌려져 있었다.

작은 애가 어느 새 교문 밖으로 달아나, 사라졌다. 걔가 가슴을 움켜쥔 모습으로 비틀비틀 쫓다가 멈추어서더니 이번에는 느리게 돌아가는 영화 장면처럼 천천히 고꾸라졌다.

그 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모처럼 화창한 날씨였다. 우리가 1층으로 내려가 고꾸라져 있는 걔한테 달려갔을 때 걔 몸 주위로 번지는 검붉은 핏물에 아침 햇빛이 반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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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가 교실로 귀환하던 날은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그 탓에 교실이 어둑해져, 자기 책상에 상체를 엎드리고 앉은 걔를 나는 뒤늦게 발견했다. ‘그간 잘 지냈니?’라고 묻기도 그렇고 해서 이렇게 간단히 물었다.

끝났니?”

걔는 엎드린 채 고개만 끄덕였다. 솔직히, 근신을 받던 얘기라도 듣고 싶었으나 당사자가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실장도 다가와 별 일 없었니?’하며 말을 걸었으나 걔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예전처럼, 공책 하나 책상 위에 놓고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조용히 귀환한 것이다.

담임선생이 걔를 교실에서 발견한 것은 사흘 뒤 윤리시간이었다. 담임선생은 걔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 언제 들어왔니?”

그 날부터 쉬는 시간마다 인상이 안 좋아 보이는 2학년, 3학년 선배들이 하나 둘 걔를 찾아와 포옹하고 돌아갔다. 그럴 때만 걔는 자기 책상 옆에 바로 서서 실눈으로 잔잔하게 웃으며 포옹에 응했다.

나는 깨달았다. 걔는 이제 한 써클의 데빵이었다. 먼저 데빵이 권고전학을 가면서 걔가 승계한 것이다.

그래서 써클 회원들이 새 데빵의 징계 마침을 축하하고자 다녀가는 모습이었다. 자기들도 징계 받는 중일 텐데 그렇듯 짬을 내어 알현하고 있었다. 걔는 1학년생임에도 전교를 제압할 어둠의 제왕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럴 만했다. 대단한 체구, 험상궂은 인상, 유도 2단의 실력, 깡다구에다가 근신일망정 데빵으로서 필수적인 처벌 전력까지 갖추었으니.

장마로 이어지려는지 비가 계속 구질구질 내리는데 어둑한 교실의 뒤편에서 쉬는 시간마다 다져지던 음산한 우의(友誼).

실내에 습기가 차 눅눅해진 데다가 갖가지 쓰레기들이 발에 걸릴 정도로 바닥에 넘쳐났다. 걔가 쉬는 시간에 한 마디 외쳤다.

실장!”

복도로 나가려던 실장이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걔가 이어서 말했다.

요새 청소들 안 하냐? 왜 이리 바닥에 쓰레기 천지냐?”

사실 그런 말은 담임선생이나 할 말이다. 그러나 실장은 답했다.

애들이 내 말을 안 듣거든.”

그래? 그럼 오늘 종례하자.”

알았어.”

실장은 차마 걔가 소집한 종례라는 걸 밝히지 않고 마치 담임선생이 전하는 것처럼 오늘 종례는 절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쉬는 시간마다 외치는 한편, 칠판 구석에도 오늘 종례 있음이라 적어 놓았다.

마침내 우리는 오랜만에 종례시간을 가졌다. 전원, 아니 한 명만 빠지고 다 참석했다. 오랜만의 종례라 긴장한 표정들로 앉아 있는 우리를 보며 실장이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요즈음 우리 반이 너무 엉망이라서 내가 종례시간을 갖고자 했다. 학급비 얼마 안 되는 것도 제대로 걷히지 않고 교실청소도 개판이라 쓰레기 천지이고……참으로 이런 문제들을 한 번 의논해야 하지 않냐?”

그쯤에서 걔가 실장, 나 좀 한 마디!”하며 발언권을 얻더니 공식적으로 으르렁거렸다.

너희들, 실장 말 잘 들어! 말 안 듣는 새끼는 나한테 혼날 각오해! ……그리고 이런 종례 때 그냥 무단으로 불참한 한 새끼는 누구냐? 그 새끼, 내일 각오하라 그래.”

그러고는 자기자리에 앉았다. 너무 세게 앉았는지 의자에서 삐걱 소리까지 났다. 얼어붙은 교실 분위기라 참았지만 사실 배꼽 잡고 웃을 일이었다. 바로 걔 자신이 종례 때 무단 불참을 일삼지 않았나?

우리는 실장의 종례 의도를 눈치 챘다. 실장은 한 번은 짚고 가려고 벼르던 것들을 라는 막강한 힘에 기대어 터뜨리고 있었다.

독일어 선생님 문제도 그렇다. 그 선생님이 우리 반에 수업 들어오기가 무섭다는 거야. 나를 따로 불러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아무리 나이 어린 처녀선생이라도 그렇지, 우리가 너무 말들 안 듣고 놀리는 게 아니니? 앞으로는 쎅스 하다가 독일어로 무엇입니까?’하는 그런 이상한 질문도 삼가고, 책을 읽으라 지시하면 딴 짓 하면서 시간을 끌지 말고 틀리더라도 읽고 그러자고…….”

그 외에도, 평소에 느낀 서너 가지 문제점을 격하게 발언하더니 마지막으로 차분한 어조로 바꿔 말했다.

오늘 교실청소는 다시 해야겠다. 너무 지저분해서 안 되겠어.”

마치 담임선생이라도 된 듯 그러는 데에 경악한 교실청소 담당 애들. 웅성거리며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걔가 다시 으르렁거리며 진압했다.

까라면 까, 씨발 놈들아!”

복도청소와 특별구역(학교에서 학급 별로 배정한 실외구역으로서, 우리 반은 강당 앞 정원이다.) 청소 애들은 먼저 귀가하고 교실청소 담당 애들만 남아 다시 청소가 시작되었다.

나는 교실청소 중 막대걸레 닦기였다. ‘책걸상 나르기애들이 책걸상을 교실 앞 쪽으로 옮김과 동시에 빗자루 쓸기애들이 바닥의 쓰레기들을 교실 뒤쪽으로 쓸어나가고, 그 다음에 막대걸레 닦기들이 교실바닥을 물걸레질하는 것이다.

막대걸레 다섯 자루의 걸레들이 모두 새까매지고…… 빗자루로 쓸어 모은 쓰레기들의 양도 엄청났다. ‘쓰레기통 비우기두 명이 쓰레기들을 강당 뒤에 있는 소각장에 갖다 버리느라 네 번이나 쓰레기통을 들고 그 먼 길을 다녀야 했다. ‘책걸상 나르기애들이 책걸상들을 원 위치로 다시 날라 놓느라 바쁠 때, 막대걸레를 적시느라 먹물처럼 된 양동이 물을 내다버리려고 양동이가 나섰다. 그 때 걔가 외쳤다.

그거 내가 할게.”

교단에 의자 놓고 앉아서 청소상황을 지켜보느라 심심했던 게 아닐까? 걔는 땟물이 가득한 양동이를 한 손으로 가벼이 들긴 했는데 복도로 해서 1층까지 내려가 하수구 구멍에 쏟아버리고 와야 하는 지겨운 일이란 생각이 뒤늦게 들었는지 잠시 주춤거렸다.

막대걸레 닦기’‘책걸상 나르기’ ‘빗자루 쓸기등 교실청소에 속하는 모든 애들이 걔의 다음 행동을 주시했다.

걔는 이윽고, 창가 쪽으로 걸었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3학년 선배들이 없는 순간을 살핀 뒤 냅다 창밖으로 양동이 물을 쏟아버렸다.

이러면 빠르잖아?”

교실청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정말 오랜만에 교실청소가 잘 이뤄졌다. 걔가 교단에 의자 하나 놓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교실청소가 잘 이뤄지다니……. 오랜만에 실장도 제 역할을 수행하였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담당 별로 검사를 한 뒤 귀가시켰다.

오후 늦도록 비 내리는 구질구질한 날씨였지만 교실에는 새벽처럼 신선한 공기가 들어찬 듯싶었다. 바닥에 작은 휴지 하나 떨어진 게 없을뿐더러 물걸레로 잘 닦은 덕에 기름칠한 듯 빛났다. 실장과 함께 교단에 서 있던 걔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총평했다.

잘했는데!”

실장은 걔 앞에서 수줍은 낯으로 미소 지었다. 그 때 나는 보았다, 청소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한 곳을. 실장과 걔가 서 있는 바로 뒤 칠판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마지막 수업의 판서가 허연 백묵 자국 그대로 남아 있을 줄이야.

칠판은 하나도 안 되어 있는데?”

내 말에 걔가 뒤돌아보더니 얼굴이 벌겋게 되어 으르렁거렸다.

실장, 어떤 씹새끼가 안 한 거야?!”

실장이 급히 청소구역 별 배정표를 보고 답했다.

아하, 아까 종례를 받지 않고 그냥 간 애야. 그러니까 이렇게 다시 청소하는 줄도 몰랐겠지.”

그래? 그 개새끼, 이래저래 손 좀 봐 줘야겠구먼. 어디, 이름 좀 보자고. 내가 실장 대신 혼내줄 거니까. ……, 이런 새끼가 우리 반에 있었어? 처음 보는 이름 같은데?”

우리 반 애 이름, 맞아. 얘는 창가 쪽 분단 맨 앞에 앉지.”

실장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일러주었다.

알았어, 알았어.”

걔가 오랜만에 제대로 몸의 힘을 쓸 기회를 맞았다는 듯, 어깨를 두어 번 으쓱거리며 교단에서 내려섰다. 그 때에 맞춰 주번이 걔와 실장을 두루 보며 물었다.

이제 교실 문을 닫아도 되니?”

실장은 말로써 허락했고 걔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허락했다. 마치 둘 다 담임 같았다.

다른 때와 다르게 주번이 교실 앞뒷문을 잠그는 것은 물론, 열린 유리창까지 찾아서 닫는 것을 보며…… 나는 실장과 걔의 발걸음에 맞춰 셋이 함께 복도를 걸었다. 나와 실장은 책가방을 들었지만 걔는 빈손이었다. 잠시 같이 가는 길이지만 분위기가 무거워 내가 웃길 목적으로 걔한테 말을 걸었다.

, 책가방 어디에다 두었냐?”

걔가 실눈으로 웃으면서 답했다.

나는 공책 한 권이면 돼.”

우리 셋은 와하하!’ 웃었다. 어둑한 복도에 웃음소리들이 울려 펴졌다. 1층으로 내려가서 밖으로 나서는 출입구에 섰을 때 걔가 어이없다는 듯, 그러나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형들한테 오늘은 먼저 가라고 했는데도 저렇게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잖아? 이러니 내가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

교문 옆에 같은 써클 회원으로 보이는 선배 서너 명이 서 있었다. 우산 하나를 펼치고 몰려 있어서 시커먼 덩어리 같았다. 걔가 달려가자, 우산 바로 아래로 모신뒤 자기들은 부분적으로 비를 맞으며 함께 사라져갔다. 지켜보던 실장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오늘 청소도 안 하고 간 애가, 키는 작지만 만만치 않거든. 그 애가 순순히 매 맞을 것 같지 않아 걱정이야. 그 애가 역전 동네에 사는데 거기 깡패들과 친하다는 말이 있어. 우리 반 애들이 그걸 잘 모르지. , 언젠가 누군가 담임 말투를 흉내 내어 담임이 열 받은 적 있었잖아? 바로 그 애야. 그 애가 오토바이 소리 아닌교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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