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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이상 관람가라 되어 있으니 솔직히 어른들이라면 진지하게 볼 영화는 못 되었다. 이야기 줄거리는 순정만화의 공식처럼 첫사랑의 소녀가 백혈병에 걸리면서……벌어지는 내용이었다. 대동강 변에서 이수일이 순애야. 너는 그토록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좋았더냐!”하고 외치는 신파극처럼 매우 감상적(感傷的)이었다. 하긴 이수일과 심순애가 등장하는 장한몽또한 이 영화처럼 일본이 고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내가 이 일본 영화를 본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제목이 길면서도 매우 시적이었다.

 

 

세상의 중심이란 말은 일반명사의 조합이 아니라 일종의 고유명사였다. 관련 내용을 소개한다.

울룰루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이다. 높이 348m, 둘레가 9.4나 된다. 호주 원주민들은 수천 년 동안 조상이 모이는 성스러운 곳,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는다. 지구의 배꼽이라고도 하며, 생전에 꼭 봐야할 명승지로 꼽아 매년 5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간다. 하지만 대륙 사막의 중앙부에 위치하여 차량으로 왕복 3.000km 이상을 이동해야 하고, 비행은 국내선 편도 3시간으로 쉽지 않은 여행이다.”

이상하게도 지구상의 원주민들이 붙인 지명들은 한결같이 어린이스럽다. 그래서 시적이다. 시는 사물에 대한 순수한 마음의 언어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황량한 벌판 한복판에 있는 큰 바위를 지구의 배꼽이라 이름 붙였다니 얼마나 천진난만한가. 현장사진을 봐도 누운 아이의 튀어나와 있는 배꼽을 그대로 닮았다.

배꼽은 인체의 중심에 있다. 울룰루를 세상의 중심이라 부를 만하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이 호주로 가, 그 바위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바위는 세상의 중심이므로 그녀에 대한 주인공의 사랑마음이 심저(心底)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호수에 그려지는 동심원 물결의 한가운데이다. 세상의 중심에 서서 사랑을 외치다니, 그 외침이 얼마나 멀리멀리 퍼져나갈까. 삶은 유한하되 한 번 사랑은 영원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눈물겹다.

요즘 사는 일이 재미없어진 분들께 이 영화 보기를 권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을 거라 확신한다. 순정 멜로 영화는 사실 어른들이 감상하기에 유치하지만, 가끔은 메마른 감정을 축축하게 적셔줌으로써 삶을 환기시키는 효과가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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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고 있는 지역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평소에는 모르다가, 영화의 배경장면으로 등장했을 때 아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저렇듯 아름다웠나!”하고 놀라며 감탄하기 일쑤다. 어젯밤 몹시 추운 날씨임에도 아내와 함께 다른 길이 있다는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간 건 그 때문이다. 우리가 춘천에 살고 있는데 이 영화가 춘천을 주요 배경으로 아름답게 촬영되었다지 않던가


 

 

   영화를 보고 난 뒤 아내와 나는 영화 감상평을 얘기 나누었다. 그 결과 다음의 의견들이 모아졌다.
1. 자살 사이트에서 만나 자살하는 장소로 선정한 춘천의 겨울 풍경은 일품이었다. 로케이션을 잘했다는 뜻이다. ‘죽음의 차가운 예정 장소이기는 하나 아름다운 겨울 미학을 보여줌으로써 결국은 재생의 희망을 모색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2. 남자 주인공을 발굴해내었다. 선한 눈망울이지만 우울함이 짙게 배어 있는 표정이어서 마치 '자살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았다.
3. 결말이 아쉬웠다. 자살을 공모한 두 사람 모두 극적으로 되살아난다는 게 현실감이 없었다. 둘 중 한 사람만 극적으로 살아나는 것으로 결말지어야 리얼리티도 있고 관객들 가슴에 와 닿지 않을까? 주인공 둘 다 되살린다는 것은 우리에게 마치 자살 방지 계몽 영화한 편을 본 느낌을 갖게 했다. 하긴, 이 영화의 제목 다른 길이 있다부터가 이미 계몽적이다. 이 기회에 감독에게 권하고 싶다. 영화의 주제는 그렇더라도 제목은 추상적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예를 들어 겨울의 끝이나 춘천 어디서라는 제목은 어떨까?
4. 대체로, 배우들이 맡은 역을 성실하게 연기했는데 일부 연기자는 경직된 연기로써 실망시켰다. 또한,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주위에 토사물이 널려있는 게 자연스러운데 그렇지 않고 단정한 장면으로 처리돼 있어 아쉬웠다.
 
  지구 온난화 탓일까, 근래 들어 많이 약화됐지만 춘천의 겨울은 춥기로 악명이 높았었다. 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겨울 풍경도 갖고 있었다. 춘천 토박이들도 잊고 살았던 춘천의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새삼 되돌아보게 만든 이 영화의 관계자들에게그 노고에 격려의 박수를 쳐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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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는 사람만등장하지 않는다. 자연현상도등장하여 사람 이상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라는 영화가 바로 그렇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말로야 스네이크를 나는뱀 구름이라고 우리말 화()하고 싶다. 물론뱀의 구름이란 뜻이 아니고뱀 같은 구름이라는 뜻이다.‘웅장한 알프스의 계곡 사이로 거대한 뱀 한 마리처럼, 긴 구름이 스르륵 지나가는 자연현상이 과연 이 영화에서 맡은 역은 무엇일까?

 

 

 

 

  나는 이뱀 구름갈등 많은 인간사와 대조되는 묵묵한 자연 현상으로서 한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화려한 젊은 시절이 지나간 늙은 여배우, 그녀를 옆에선 돕는 매우 까칠한 여비서, 그런가 하면 늙은 여배우와 비교되는현재 잘 나가는 젊은 여배우……이렇게 세 사람의 숨 쉴 틈 없는 갈등 전개가 아무 말 없이 예나 제나 한결 같은 모습의 뱀 구름 현상과 비교 및 대조되었다는 분석이다. 이는 우리 옛 시조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상략)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하략)’

 

 

 

  잘 나가는 젊은 여배우와 비교되는 자신의 초라한 처지에 몹시 갈등하지만, 결국은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늙은 여배우의 쇠락(衰落).

    이 영화의 감독이 마지막 장면에서 마리아의 표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도 언젠가는 늙어서 시들어 버린다. 그와 달리 여전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대 자연의 풍광…….  그렇기에주인공 마리아가 결국은, 뱀 구름을 닮아가는 표정으로 이 영화가 막을 내린다는 영화평론가의 말씀에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격한 갈등에서 출발해 체념 및 순응이라는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주인공 마리아와 달리 뱀 구름은 그런 일 없이, 한결 같은 존재의 모습으로 이 영화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긴, 인간은 자연과 동격이 아니라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스토리 전개상 9부 능선쯤에 다다랐을 때다. 늙은 여배우 마리아가 함께 공연하는 젊은 여배우 조앤한테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를 몇 초간 보다가 퇴장하는 것으로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지만당신은 그럴 만큼 중요한 역이 못 된다.’는 냉랭한 대답이나 듣고 마는데…… 두 여자의 내밀한 갈등이 일방적인 자존심 추락으로 순식간에 종결됨을 보여주는 백미 장면이다.

 

 

 

  그 후 마리아는 조잡하기 짝이 없는 SF영화의 주인공 역까지 받아들이는 인물로 전락한다. 삶을 관조하거나 달관하는 표정이 아닌, 단지 쇠락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하긴, 흐르는 세월 앞에서 그 누가 장사이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말로야 스네이크’를 나는 ‘뱀 구름’이라고 우리말 화(化)하고 싶다. 물론 ‘뱀의 구름’이란 뜻이 아니고 ‘뱀 같은 구름’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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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시 폐지가 확정되었다. 사실 그 놈의 사시 때문에 이 땅의 멀쩡한 청춘들이 얼마나 많이 상처받고 폐인이 되었나? 범죄의 여왕이란 영화는 그런 폐인이 급기야는 살인을 저지르면서 삶의 나락에 떨어짐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자식 앞에서는 죽음도 무릅쓰는 이 땅의 어머니 상을 구현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403강하준(허정도)’이 보여주는 사시 제도의 폐해’, 그 무게감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느꼈다.

    

허정도는 특별한 생김의 배우는 아니었다. 극히 평범한 인물이어서 만일 골목길에서 마주쳤다 해도 배우 허정도임을 모르고 그냥 지나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표정 연기는 일품이었다. 나는 무표정이 표정 연기 이상의 감명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사시 공부 하는 늙은 청년의 절망을 허정도처럼 잘 보여주는 배우가 어디 있을까! 초점을 잃은 듯 상대를 보던 그의 무표정 연기는 겨울바람 부는 허허벌판의 허수아비 그 이상이었다.

범죄의 여왕은 비교적 잘 만든 영화이다. 모든 배우들이 저마다 맡은 역에 최선을 다한 결과라 여겨지는데 나는 특히 403호 강하준 역의 허정도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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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는 예술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작품을 감상하는 이에게 공감을 주고 나아가 감명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청전에서 심봉사가 맹인임에도 아무 불편 없이 성큼성큼 잘 걸어 다닌다면 관객들의 실망이 클 것이다. 비록 극 속의 맹인이라도 배우는 그 역을 맡는 순간부터 모든 관객들이 맹인으로 착각하도록 연기할 의무를 지니며, 이것이 예술작품에서 리얼리티가 소중하게 대접받는 까닭이다.

 

 

 

 

 

 

그런데 우디 앨런은 로마 위드 러브라는 영화에서 이 리얼리티를 아무렇지도 않게 위반한다. 목욕할 때만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장의사를 오페라 무대에 등장시켜, 똑같은 목욕 환경 속에서 노래 부르도록 함으로써 청중들의 환호를 받게 만든다는 설정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실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생겨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샤워기에서 요란하게 쏟아지는 물소리와 함께 부르는 노래가그 소란스러울 잡음이 어찌 청중들에게 감명을 주는 노래로 환호 받을 수 있을까?

 

  평범한 직장인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하룻밤 새에 유명인이 되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난데없이 등장한 창녀를 자기 친척들에게 결혼할 예비 신부라고 소개하고 다니는 기막힌 상황이 어디 있을까?

 

사랑에 빠진 순간 당신이 캐스팅 되었다는 감독의 전화가 오자 그 자리에서 일초도 망설임 없이 남자를 떠나는 여배우가 어디 있을까?

 

 

 

 

 

대화할 때 통역해 주는 사람이 필요한 사돈 간(우드 앨런과 장의사)인데 어느 순간부터 통역자 없이 얘기를 주고받으며 사건을 전개하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관객 누구도 우디 앨런의 이런 리얼리티의 결례를 문제 삼지 않는다. 왜냐고? 애당초 이 영화가 시작될 때 등장한 교통경찰이 이제부터 로마에서 갖가지 사랑 얘기가 벌어진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날 때 역시 누군가 창문을 열어젖히고 나서서 이제 얘기들이 마감되었다고 친절하게 밝혔으니 --------애당초 우디 앨런은 리얼리티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한바탕 사랑 얘기 좀 하겠다고 관객들에게 양해부터 구한 것이다.

 

  하긴 우리가 극장을 찾는 까닭은 잠시라도 현실(리얼리티)을 벗어나기 위함이 아닐까. 굳이 극장에서까지 리얼리티를 만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우디 앨런은 마음 놓고 장난했다. 리얼리티를 무시한 얘기들을 보여줌으로써 ------또 다른 의미의 리얼리티를 깨닫게 했다.

 

 

 

 

 

 

청춘 남녀의 사랑은 사실, 수시로 무너질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닐까? 누구나 하루아침에 유명 가수가 되는 것과 같은, 황당한 명예욕을 감추고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몸으로 활개치고 싶은 욕망이 내게 숨어 있지 않을까? 우리가 겉으로는 고상한 대화를 나누지만 그 순간 더럽고 음험한 속셈이 숨어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런 장면에서 분명히 등장인물이지만 수시로 유령처럼 나타나 그 속셈을 일러주는 알렉 볼드윈. 이 또한 철저한 리얼리티의 파괴 장면이자, 우리 모두의 가슴 속을 뜨끔하게 만든다.)

 

  우디 앨런이라는 괴짜 영화감독에 관한 신문 기사(대개 여자 문제)는 몇 번 보았으나 실제 그의 영화를 감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리얼리티가 무시되는 순간 또 다른 의미의 리얼리티를 대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번 영화로 깨달았다.

 

우디 앨런은 영화로 장난을 치지만 그 장난은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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