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1026 사태가 수습되는 과정에서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실권을 쥐게 됐고 결국 그는 이듬해인 1980년 장충동 체육관에서 11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정말 웃기는 것은, 그에 앞서 치러진 대선이 전두환 단독 입후보였다는 사실이다. 정치지도자 3김씨(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를 이런저런 구실로 아예 입후보하지 못하도록 강제해 놓은 것이다.

선거도 국민의 직접 선거가 아닌, 통일주체대의원들에 의한 간접선거였다. 애당초 국민의 민의는 제대로 반영될 수 없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과정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한 전두환 장군.

 

나는 정치 상황에 별 관심이 없는 편이었으나 그렇듯 말도 안 되는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 된 과정에는 몹시 분개했다. 그렇다고 한낱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딱히 그 의사를 표현할 방법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할 때 교지(校誌)에 교사 기고수필로써 낸 글이 구슬치기 론()’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동네 아이들이 구슬치기 놀이를 한다. 구슬은 가게에서 파는 유리 혹은 플라스틱 제품이다. 자기 구슬로 남의 구슬을 겨냥해 맞히면 자기 것이 되는 놀이다. 그럴 때 한 아이가 기상천외한 구슬을 갖고 나타난다. 아령의 둥근 부분을 따로 떼어내서 연마해 만든 수제(手製) 쇠 구슬이다. 다른 아이들이 가진, 연한 유리플라스틱 구슬들은 상대가 될 수 없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쇠 구슬이 동네 구슬치기 마당을 휩쓴다.

 

공정치 못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내가 이겼다!’고 하는,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이 되는 엉터리 정국을 우화화한 것이다. 그렇게 교지에라도 발표해 놓으니 조금은 내 분개한 심정이 가라앉는 듯했다.

 

그 교지가 춘고(春高)소양강 36교지이다. 무려 34년 전 교지다.

당시 학생이었던 서현종 화백이 용케도, 그 교지 속의 구슬치기 론을 찾아내 페북에 올렸다. 비록 문장은 거칠지만 한창 젊은 내가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어린이들은 구슬치기 놀이 자체를 모른다. 노후의 내가 그 때의 내게 안부 인사를 전한다.

 

 

잘 있는가? 한 번 보고 싶구먼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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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look so sad'하며 시작되던 알그린의 For the good times. 요절한 우리나라 가수 배호처럼 창자를 쥐어짜는 듯한 창법과 목소리에 나는 단번에 반했다. 태백산맥 너머 바닷가 작은 읍에서 시작한 객지 하숙생활의 외로움을 그렇게 달랬다.

제가 너무 좋아서 가사를 번역해 봤다는 게 아닙니까? 그랬더니 마지막으로 침대에 함께 누운 연인을 달래는 새벽녘의 이야기이더라고요. 창 밖에 내리는 빗방울 소리를 언급하는 가사 내용이란!”

내 회고에 사내가 첨언했다.

사실, 팝송 가사는 한 편의 시()인 경우가 많습니다. 삶의 애환과 사랑이 절절이 담겨 있는 거죠. 사실 알그린의 For The Good Times

하면서 당시 미국 내 음악평론가들이 평한 내용을 해박하게 해설해주었다. 그뿐 아니다. 어느 새 그 곡을 찾아 틀어주었다. 花樣年華 실내 공간을 꽉 채운 흑인 소울(SOUL) 가수의 애절한 음색.

당시에는 우리나라 가수도 좋았지요. 이장희. 얼마나 노래를 잘 만들고 잘 불렀습니까? ‘그 애와 나랑은’‘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등은, 명곡입니다.”

김정호도 좋았지요. ‘하얀 나비’‘이름 모를 소녀.”

송창식도 좋았지요. ‘창 밖에는 비 오고요, 바람 불고요’”

저는 그분들이 천재라는 생각입니다. 정작 우리나라 가수라서 잘 모르고들 있는데 그분들은 세계 어디다 내놓아도 뒤지지 않습니다.”

“‘아침이슬을 만든 김민기도 천재이지요.”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앰프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새 밤 9시가 가까워졌다. 사내가 말했다.

손님이 없어도 저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지내니까 행복합니다. 오늘처럼 음악도 좋아하고 얘기도 나눌 수 있는 분이 오면 더 행복하지요.”

사내의 배웅을 받으며 花樣年華를 나섰다. 다시 쌀쌀한 전염병의 밤거리에 들어섰다. 음악처럼 우리 마음을 쉽고 편하게 달래주는 예술이 있을까. 영혼까지 쉬 다가오는 음악들. 사내의 花樣年華 카페는, 쌀쌀한 밤거리 같은 세상에서 따듯한 영혼을 고수(固守)하는 곳이란 생각을 해 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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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자리에 앉은 내게 물었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저는 커피 마시면 밤잠을 못 이루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걸로 주시죠.”

사내가 얼마 후 유자차를 끓여 내왔다. 나는 내 책들(‘숨죽이는 갈대밭 ‘K의 고개’)을 건네며 말했다.

제가 드리려고 갖고 왔습니다.” 사내가 책들을 받으며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그 말에 나는 내가 소설 쓰게 된 내력을 털어놓았다. ‘젊은 시절의 꿈인 소설을 쓰고 싶은 갈망에 30년 교직을 명퇴했다는 것과 그에 얽힌 얘기다. 얘기는 자연히 먹고 사는 일과 예술을 조화시키는 문제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예술에 꿈을 갖는 이들이면 숙명적으로 겪어야 하는 문제다. 쉬운 답은 없다. 얘기 끝에 사내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 카페의 실내 색이 강렬해서 놀라지 않았습니까? 일러스트와 디자인을 하는 아들 녀석이 직접 구상하고 직접 페인팅 한 거죠. 여기 건물주가 와서 보고는 놀라서 이러지 뭡니까? ‘아니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그래요?’하하하.”

함께 웃다가 내가 의견을 말했다.

괜찮아 보입니다. 뭐라 그럴까, 야수파 그림 속 같다고 할까요?”

저도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마음 편해지는 색들입니다. 아들 녀석이 화양연화라는 상호도 작명했지요.”

두 시간 가까이,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우선은 음악 얘기다. 사내의 수십 년 음악 사랑을 보여주듯 벽을 가득 채운 LP 나는 음악의 홍수 속에 빠져서 주체하기 힘들어졌다. 간신히 내가 좋아하는 팝송의 제목 하나를 기억해 냈다.

제가 젊은 시절, 그러니까 70년대 중반쯤 알그린의 For the good times을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고는 흠뻑 빠지지 않았겠습니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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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 있는 음악카페라, 나는 길에서 그대로 문을  들어섰다. 바짝 마른 사내가 음악 속에 있었다. 세상에, 음악소리 못지않게 강렬한 실내 색채라니! 천장, 바닥 , 벽까지 초록색과 주황색이 주조를 이뤘는데 의외로 어지럽지는 않았다. 그 까닭이 뭘까? 나는 야수파(野獸派) 그림 속에 들어서서 재즈를 듣는 낯선 경험부터 하였다.

사내가 잠시 머뭇하다가 나를 알아보았다. 사실 우리는 처음 만난다. 내가 페북 친구인 정재식 씨한테 ‘최대식’이란 이름의 동기동창이 춘천에서 음악카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시작이다. 음악처럼 쉽게 마음을 달래주는 예술이 어디 있던가. 더구나 그 옛날(70년대)처럼 DJ가 손님이 청하는 음악을 틀어주기까지 한다니. 나는 불현 듯 밀려오는 70년대 음악다방의 향수에, 용기 내어 최대식이란 이름의 DJ 사내한테 먼저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 화양연화 음악카페에 가보고 싶은데 위치가 어떻게 됩니까?”

“석사동 행정복지센터 아십니까?”

“네, 그 자리에 건물을 새로 짓고 있는 동사무소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 건물과 농협 사이로 5분 거리에 화양연화 카페가 있습니다.”

“몇 시까지 하나요?”

“원래는 밤 10시까지인데 요즈음 전염병 때문에 손님들이 많지 않아 9시까지로 줄였지요.”

“그럼, 제가 밤 7시부터 8시 사이에 찾아가겠습니다.”

그런 사전 통화가 있은 뒤 얼마 후 집을 나선 것이다. (계속)


참조1. 정재식: 교통 오지인 북산면 삼막골에서 살다가 얼마 전 비교적 교통 좋은 고탄으로 이사한 금속공예가. 이사하면서 반려견의 집까지 새로 지어 사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멍첨지가 안락한 새 개집 속에 누워 밖을 내다보는 흐뭇한 표정(?)이라니! 한 편 작년에 ‘삼막골 사내 정재식’이란 제목의 연재수필을 페이스북에 게재한 바 있다. (블로그‘무심 이병욱의 문학산책’에도 동시 게재.)

참조2. 야수파: 20세기 초 유럽에 나타난 전위적 경향의 하나로 강렬한 원색과 거친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미술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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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20-03-07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건강하시죠? 감사의 인사 드리려고요. 선생님 블로그에 서평을 써 주셨더군요. 그것도 8월에. 전 정말(!)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진즉에 알았으면 감사의 말씀 드렸을텐데...(저도 선생님 못지 않게 무심합니다 ㅠ ㅠ). 세심한 세가지 평가는 앞으로 글을 쓰는데 많은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국어 선생님이 해주신 평이라 더더욱 의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무심 선생님. 꾸벅.

무심이병욱 2020-03-07 19:18   좋아요 0 | URL
대체로 남자들은 무심한 편입니다. 하하하
저는 찔레꽃 님의 성실한 ‘책 만들기‘에 감명 받은 바 큽니다. 국어선생 못지 않게 맞춤법 문맥 등이 정확해서 감탄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성실하게 좋은 책을 계속 내리라 믿습니다. 문운을 기원합니다.
 


사실 우리가 3,4,5월을 묶어‘봄’이라고 부르는 것은 편의적이다. 어디 4계절이 명확히 구분되면서 진행되던가? 봄이 온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쌀쌀한 겨울바람이 부는가 하면 심지어는 눈까지 내리곤 하는 것이다. 그 반대로 한겨울인 2월 초순에 따듯한 영상의 기온이 열흘 넘게 전개되기도 한다.



오늘이 3월 4일.

입춘(立春)은 한 달이나 지나,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 하루 전이지만 날씨는 겨울 어느 날처럼 쌀쌀했다. 더구나 밤 시간대이니. 그러잖아도 바이러스 성 전염병이 전국을 휘몰아쳐서 춘천의 밤거리에는 인적마저 뜸하다.



음악과 커피를 대접한다는 화양연화 카페를 찾아 밤거리를 걷기 30여 분. 석사동 주택가에서 작은 네온사인 글씨의‘花樣年華’를 발견했다. 편하게 한글로‘화양연화’라 할 법한데 굳이 한자를 고집한 것에 사내(최대식)의 한 면모를 짐작하게 했다.



그렇다. 화양연화는 아무래도 한자로 표기해야 제 맛이 날 듯싶다. 꽃 화(花)와 빛날 화(華)가 함께 쓰임으로써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나타낸다는 ‘花樣年華’의 뜻이 절로 와 닿는다.



참, 이런 이름의 영화가 있었다. 홍콩 왕가위 감독의 2000년 작품으로 장만옥과 양조위라는 톱스타를 캐스팅하여 중년의 완숙한 사랑을 담았다. 사내가 그 영화를 보고서 이 카페의 이름으로 원용한 걸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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