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중국사는 내가 지금까지 사 본 단행본 중 가장 비싼 책이다. 사실, 가격이 4만원이 넘는다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결코 구입하지 않았을 게다.

 

그 시작은 이랬다.

인터넷으로 세상 소식들을 살피다가 우연히절반의 중국사라는 책이 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격에 대한 안내 없이 중국 작가가오홍레이란 분이 쓴 책인데 (김선자박사가 번역) 중국 소수민족의 역사를 다뤘다고 간략히 덧붙였다. 그렇다면 내 학창 시절 국사책에 등장하던 흉노, 거란, 몽골, 말갈……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준다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이 책을 꼭 사 봐야겠다는 욕구에 불타올랐다.

중국은 좋으나 싫으나 우리 한반도에 항상 영향을 끼치는 거대한 나라다. 그런 나라의 역사를 수나라 당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식으로 중원 땅 위주로 안다는 게 얼마나 허술한 짓일까. 중원의 역사는 중원 내 역학관계에서 이뤄지기도 하지만 중원 밖의 힘에 의해서도 불가피하게 이뤄진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울 터. 이 기회에 중원 땅 주변의 오랑캐 나라들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보자고 작심했다.

곧바로 책 명절반의 중국사와 출판사 이름을 쪽지에 적어 컴퓨터 책상 위에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주방에 있는 아내가 나중에 컴퓨터를 하려다가 그 쪽지를 보면 인터넷 서점 알라딘을 통해 책을 구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신간서적을 구입할 때마다 인터넷 활용에 능한 아내의 힘을 빌린다.

이튿날 아침,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쪽지에 적어 놓은 책을 신청해 놓았어.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더라고.”

얼마인데 그래?”

“432백 원.”

뭐야?!”

나는 기겁해 소리쳤다. “취소해. 나는 그 정도로 비싼 책인 줄 몰랐어.”

아내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도 참! 글을 쓴다는 사람이,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값이야 어떻든 사 봐야지 안 그래? 그렇기도 하고 이미 내 카드를 긁었어. 사흘 내로 택배로 올 테니까 받아서 읽어 봐.”

남편의 지적 호기심을 존중하는 아내라니. 무척 고마웠지만 그래도 그렇지, 10만원의 반 가까이 되는 돈을 책 한 권 사는 데 쓰게 하다니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내 지갑에서 거금 5만원 지폐 한 장을 꺼내 아내한테 건네며 말했다.

이거 그 책값이야.”

아내가괜찮아.’하면서 그 돈을 되돌려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책이 사흘 후 택배로 왔다. 과연 비싸게 가격을 매길 만했다. 뒤에 붙인 주석까지 총 1037 페이지나 되는 아주 두꺼운 책이었다. 작년 여름에 생애 처음으로숨죽이는 갈대밭’(창작 소설집)을 서점가에 배포해 본 귀중한 경험이 있는 나다. 그래서 이런 쓸쓸한 말을 아내 앞에서 뇌까렸다.

이 비싸고 두꺼운 책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팔릴까? 감히 말하건대 만일 이 책이 100권 넘게 팔린다면 우리나라의 인문학은 희망이 있는 거야.”

그 날부터 나는 거실 소파에 죽치고 앉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젊은 날이라면 맨눈으로 쉬 읽었겠지만 이제는 도수 높은 안경을 걸친 채로 읽어야 하므로 눈의 피로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쉬다가를 거듭했다.

고백하건데 재미없는 책이었다면 초반에 조금 보다가 서가에 팽개치듯 꽂아놓고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 게다. 아내한테는책의 활자가 너무 작아서 눈이 아파 못 읽겠어!”라는 핑계를 대고 말이다.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내용이 아주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열흘 넘게 걸려 800여 페이지 본문을 완독했다. 본문 뒤로는 역자가 자신의 의견을 담은 주석을 달았는데 이 부분만 깨알 같은 활자로 200페이지가 넘는다. 현재 이 주석까지 읽기 시작했다. 주석 또한 재미있어서다.

절반의 중국사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재미있는, 중국의 소수 민족들 역사 이야기라 하겠다. 얼마나 재미있냐면주석을 다 읽고 나면 본문만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더 읽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는 사실 하나로 알 수 있다. 이름부터 흥미로운 흉노, 거란, 몽골, 말갈……들의 별의별 이야기들을 한 번 보고서 읽었다고 말한다는 게 왠지 어불성설일 것 같았다.

이야기.

인류에게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천성이 있다. 그에 관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있다. 아득한 옛날 원시인으로 살 때어느 곳으로 어떻게 길을 가야 먹을 게 많다는 정보가 아주 소중한 생존요건이었는데 그것이이야기의 모체이며 그 후 인류는 이야기라면 만사제치고 귀 기울이게 되었단다.

절반의 중국사에는 워낙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하다.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적어본다.

1. ‘절반의 중국사란 제목이 뜻하듯 사실 중국의 역사는 한족만의 역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2. 숱한 정변들이 소개되는데 아들이 왕위를 차지하려고 아버지(임금)를 해치는 경우들이 적지 않았다. 어디 그뿐이랴, 아비(임금)가 아들의 여자를 빼앗아 자기 여자로 삼기도 했다. 원한 맺힌 적의 우두머리를 잡으면 참수한 뒤, 말려서 해골바가지로 만들어 자기 요강으로 삼는 경우도 있어서…… 사람이 동물보다 못할 수 있음을 절감했다.

3. 절세미녀를 적()의 왕비로 보냄으로써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사라지고 오랜 세월 평화가 유지되는 경우들도 적지 않았다. 미녀 얘기 중서시에 관한 얘기가 기억난다. 그녀가 강물에 얼굴을 비치면 물속의 고기들이 그 미모에 놀라 숨쉬기를 멈춤으로써 강바닥으로 가라앉아 죽었다는 것이다. 물론 전설을 옮긴 것인데 얼마나 동화적이고 재미있는지!

 

이 정도만 적는다. 만일 구구절절하게 적는다면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질지 모르고 그 결과 모처럼 심혈을 기울여 서점가에 이 책을 만들어 내놓은 분들의 노고가 헛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인문학의 번성이며, 그러려면 인문학 계통의 책들이 많이 팔려야 한다는 소신을 나는 갖고 있다.

책 읽기 좋은, 선선한 가을은 아니다. 하지만절반의 중국사같은 이야기 풍성한 역사서를 선택해 읽는다면 무더워만 가는 이 여름을 무난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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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17-06-20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한 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그나저나 사모님께서 5만원을 그냥 가져 가시다니...ㅎㅎ

무심이병욱 2017-06-2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절반의 중국사‘에는 정말 많은 스토리들이 담겨 있더라고요. 돈 5만원이 결코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요즈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