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겠다는 데에 딱히 제약은 없다. 집 마당 가장자리를 삽으로 파서 작은 밭을 만든 뒤 상추를 재배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옥상 있는 집에 산다면 옥상으로 흙을 날라 밭을 만든 뒤 고추를 재배할 수도 있다. 여하튼 밭이 있고 농사짓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인 의미의 농사는 법적인 의미의 농사와 차이가 있다. 법적인 농사는 밭 넓이가 최소한 1000㎡ (약 300평)이 되어야 한다. 만일 그 넓이가 못되는 밭에서 농사를 짓는다면 법적으로는 '농부'가 못된다. ‘농부’로 인정되면 비료라든가 농자재 등을 구입할 때 정부 보조로 할인 혜택을 얻는다. 비료 같은 경우에는 시중가의 반값 정도이다. 그 외도 갖가지 혜택이 있다.
밭에 놓는 농막 또한 법적으로 인정하는 농막이 있다. 가건물이되 그 넓이가 20㎡(약 6평)을 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불법 시설물이다.
무심 내외의 춘심산촌은 넓이가 1000㎡ 이상이어서 명실상부한 밭이다. 밭 가장자리에 설치한 컨테이너 농막 또한 20㎡가 채 안 된다. 하긴 몇 년 전 농사를 처음 시작할 때 내외는‘마음 편히 농사짓자’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법 준수만큼 마음 편한 일이 어디 있을까. 컨테이너 농막 또한 법이 허용하는 면적의 것으로 정한 게 그 때문이다.
세상이 편리해져서‘농막’을 쉽게 설치했다. 컨테이너를 제작해 파는 공장에 갔더니 각양각색의 컨테이너 농막들이 널려 있던 것이다. 마치 슈퍼마켓의 진열된 물건들처럼 말이다.
무심 내외는 녹색 컨테이너를 택하고 값을 치렀다. 분홍색 같은 튀는 색보다는 담백한 녹색이 밭에 어울릴 듯싶었다.
세상 좋아진 게 이뿐 아니다. 농막에 전기도 잇고 관정에서부터 물도 이어서, 간단한 음식조리는 물론 농사 틈틈이 쉬는 공간으로 충분하다. 농막의 전기 공급은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었다.
무심 내외가 함께 춘심산촌에 가서 농사지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더러는 무심 혼자일 때도 있다. 아내가 봉사활동 하느라 시간이 나지 않는 경우다. 그러면 무심은 혼자 차를 몰고 춘심산촌으로 간다.
무심 혼자 밭일 하다가 쉬고자 할 때 농막이 제 역할을 한다. 라디오를 켜서 음악방송을 찾는 것이다. 외진 골짜기 춘심산촌이지만 FM이 잡힌다. 나중에 알았지만 백여 리 먼 데 있는 화악산 덕분이다. 일대에서 가장 높은 그 산 정상에 전파중계소가 있다는데 그 덕을 보는 셈이다.
5평 남짓한 농막 안에 혼자 누워 FM음악을 듣는 즐거움! 세상 시름 다 잊고 음악 속에 익사(溺死)한다. 고백한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대단한 음악가의 음악을 듣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듣는다. 태진아의 ‘옥경이’, 채은옥의‘빗물’, 김범수의 ‘하루’ 등이 작은 공간을 꽉 채울 때 무심은 어느덧 노후에 이른 세월의 무상함마저 잊는다.
그러다가 시장기가 느껴지면 라면을 끓여먹는다. 반찬이라고는 김치 하나밖에 없지만 반찬 많은 집에서 먹는 것보다 맛이 오히려 낫다. 반찬 가짓수가 적은 만큼 라면 맛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평생 살아가는 맛 중에‘음식 먹는 맛’을 빠트릴 수 있는가.
이 글을 쓰는 지금은 한겨울이다. 농막이 아닌 집의 서재에 앉아 있다. 농막은 문이 잠긴 채 춘심산촌 밭을 지키고 있다. 어서 이 추운 겨울이 지나 농막 문을 열고 그 정겨운 공간에 들어설 새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