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화백의 동네 그림에는 어김없이 달이 떠 있다. ‘효자동 1988-1’그림에도 달이 떠 있는데 하필 그믐달이다. 초승달과 그믐달은 그 성격이 반대다. 서구에서는 초승달을 new moon, 그믐달을 old moon이라 한다. 즉 그믐달은 낡은 이미지의 달이다. 서 화백의 동네 그림에 그믐달이 떠 있는 것은 그 동네가 낡고 오래된 주택가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게 아닐까?

그믐달은 새벽에 떠서 아침이 밝아오는 순간 사라지는 달이다. 따라서 이 그림의 시간적 배경을 자정 넘은 새벽녘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긴 어디서  한 잔 걸친 취객 둘이 비틀거리며 2차 할 숙소를 찾고 있어서 자정은 훨씬 넘었다. 동네 모든 집들이 불 끄고 닫은 광경이며, 하물며 밤늦도록 여는 구멍가게조차 문을 닫았으니 새벽이거나 새벽이 돼가는 시간이다.

새벽은 어두운 밤과 훤하게 밝아오는 아침의 중간지대다. 그렇기에 그림의 주조(主調)를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푸른색으로 한 게 아닐까? 또한 푸른색은 수많은 유채색 중 가장 조용한 느낌의 색이므로 새벽시간을 나타내기 적합하다.  사실 푸른색은 슬픈 정서의 뜻일 때가 잦다. 예로써 팝송 ‘LOVE IS BLUE'의 우리 말 번역이 ‘우울한 사랑’이다. 서 화백의 그림 속 동네는 슬픈 정서가 보인다. 보통 ’서민들의 애환(哀歡)’이란 말이 쓰일 때가 많은데 이 그림에서는 서민들의 애(:슬플 애) 쪽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다른 이유를 대려한다.

 

그림 제목의 ‘1988’이 무얼 뜻하겠는가. 88 서울 올림픽이 치러진 해를 뜻한다. 서울에서는 국제적 행사 올림픽을 치르느라 떠들썩하지만 그와는 무관하게 먹고 살기 바쁜 지방 어느 도시 어느 동네의 풍경을, 이 그림은 대변한다. 당시 TV에서 올림픽 주요 경기장면들을 밤새 반복해 방영했지만 이 그림 속 동네에서는 어느 한 집도 시청하지 않는다. 전등 끄고서 잠잘 뿐이다.      

그림의 계절은 가을이다. 88서울 올림픽이 치러진 계절이 가을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증거도 댈 수 있다. 그림 왼쪽 하단에 있는 ‘고추 말리는 광주리’가 그것이다. 고추 농사를 지은 이가 화창한 가을 햇볕에 태양초를 만든다고 고추를 광주리에 담아 주름진 슬레이트 지붕 위에 올려놓고는, 밤이 됐는데도 그 사실을 깜빡 잊은 것이다. 이런 장난스런 에피소드가 바로 서 화백의 ‘숨바꼭질’이라고 나는 규정한다. 숨바꼭질은 우리가 가만히 숨죽이고 찾을 때 가능한 짓이다. 우리는 서 화백의 그림에서 숨바꼭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집 주인이 해가 진 것을 깜빡 잊고 슬레이트 지붕에 방치한‘고추 말리는 광주리’. 그의 숨바꼭질은 결국은 휴머니즘의 한 모습이다. 서민 냄새가 물씬 나기 때문에.

가만 있자. 그의 숨바꼭질 중 가장 거대한 숨바꼭질을 놓칠 뻔했다. 그림 속 풍경 전체가 기울어져 있음을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반듯하게 서 있어야 할 전봇대까지 기울어 있는 밤 풍경. 이는 취객들의 비틀거리는 모습에 답이 있다. 사람이 술에 취하자 눈앞의 풍경까지 술 취한 듯 비틀거리는 모습인 거다. 문자를 쓴다면 유심론(唯心論)적 풍경이다.

 

서 화백의 숨바꼭질이 더 있다. 물론 우리가 숨죽이고서 가만히 찾아야 한다.  하늘에 뜬 그믐달과 거리가 가장 가까운 데 있는 기와지붕, 그 중에서도 추녀마루에 살짝 달빛을 칠해 놓았다. 이 또한 숨바꼭질이다. 달빛은 세상 만물에 골고루 비친다는 사실을 일부러 왜곡했다. 문 닫은 가게 앞의 이동식널빤지마루며, 지대 높은 곳을 위해 마련된 시멘트 층계 골목길, 단층 슬래브 건물의 옥상에 만들어놓은 옥탑방 또한 그의 숨바꼭질 장치다.  

서현종 화백의 ‘효자동 1988-1

88올림픽조차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는, 가난한 동네의 자정 넘은 새벽을 그렸다. 하지만 곳곳에 숨바꼭질하듯 마련된 회화적(繪畵的)인 장치 덕에 결코 서러움 속에서만 지내는 모습이 아니다. ()를 환()으로 전환시킬 여력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림의 새벽이 다하고 어떤 모습의 아침이 올지 당신 눈앞에 그려지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