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는 교명을 밝히기도 싫다. 20년 넘게 세월이 흘렀어도 내게는 여전히 이상한 학교다. 이 이상한 학교에서 만난 태원이. 우리는 어언 40대 중반의 중견교사였다.

별나게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에 집착하는 이상한 학교. 나는 3학년 담임까지 맡아 일요일에도 반 학생들의 자습을 감독해야 했다. 그 즈음 외수형은 시내 교동의 번듯한 2층 집에서 살고 있었다. 세를 든 게 아니다. 자기 집이다. 아래층은 살림 공간으로 하고 2층에서 집필하는, 문인으로서는 이상적인 생활이었다. 83년경 윗샘밭 길가 허름한 단층집을 벗어나 시내 교동 집을 구입해 산 지 벌써 10여년.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형의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각오가 현실화된 것이다. 형은 윗샘밭 시절에 이런 각오였다.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오직 소설만 써서 처자식을 먹여 살리겠다.”

지난 얘기이지만 내가 742월 저 먼 삼척의 중학교 교사로 첫 발령을 받고 춘천을 떠날 때그리고 문학회후배들한테 이런 예언을 남겼다.

봐라. 외수형은 30살을 못 넘길 거야.”

당시 외수형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살아 뼈만 남았었다. 그런 몸으로 그 추운 73년 겨울을, 방학을 맞아 귀향한 어느 후배의 빈 방에서 나고 있었다. 그런데 20년쯤 지나 이제는 주목받는 인기 작가로서 2층집까지 장만했다니!

그런 지인의 성공은 내게 자극이 되었다. 물론 형처럼 소설만 써서 처자식을 먹여 살린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고 그저더 나이가 들기 전에 나도 소설을 써야 하는데하는 안타까움이었다. 내 안타까움을 태원이가 감지했다. 교내 복도에서 만난 내게 목소리 낮춰 말했다.

내가 말이다, 네가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쓸 수 있는 작은 공간을 교내에서 찾았어. 이건 비밀이야. 따라와 봐.”

따라갔더니 학교 보일러 실 한 편의 빈 공간이었다. 어느 새 책걸상도 한 조 갖다 놓았다.

어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원이가 덧붙여 말했다.

겨울에는 보일러를 작동시킬 거니까 시끄러워 안 되겠지만 그 외 다른 계절은 그럴 일이 없으니 조용하기가 절간 같은 곳이지.”

고마워서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친구가 귀하게 찾아낸 글을 쓸 수 있는 비밀 공간을 나오면서 나는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작품 하나를 반드시 쓰고야 말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을 실천하기에는 학교 현실이 너무 고되었다. 결국 한 번도 그 공간을 사용 못하고 이상한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992월말 다시 모교로 인사 발령을 받았다.

교원 정년이 65세에서 62세로 낮아지면서 동시에 명퇴 바람이 돌풍처럼 일던 즈음이었다. 태원이가 나보다 먼저 2년 전에 모교로 갔으므로 나는 우리가 또다시 모교에서 재회하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태원이가 명퇴해 버린 것이다. 

전태원 화백의 ‘ston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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