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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오늘의 젊은 문학 5
문지혁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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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에는 비극의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과 비극 속에서 길을 개척해나가는 사람들, 가까스로 비극을 비껴가지만 무언가를 상실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다이빙’과 ‘폭수’, ‘아일랜드’는 아이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가족을 잃은 고통 속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떠난 이를 기억하며 슬픔을 감내하는 일 뿐이다. 어떤 방식으로도 해소될 수 없는 상실감은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해소되지 못한 채 막을 내린다.


 ‘서재’와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는 종이책이 금지된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 이 세계에서 모든 지식은 ‘넷(net)’을 통해 공유되고 학습되지만, 방대한 지식이 무한대로 저장되어있는 넷이 채우지 못하는 공백이 존재한다.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는 세상을 되찾기 위해 기약 없는 싸움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한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창작물의 가치와 소중함이었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가까스로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피한 인물인 ‘나’의 이야기이다. 사고 이후로 그는 ‘확률’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그가 성수대교 붕괴와 관련된 소설과 논문을 쓰며 둘 중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길을 잃은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은 그가 « 창문 속이 아니라 그림 밖의 존재. 다리를 다시 짓고, 꽃을 꽂아 둘 수 있는 사람. 추모하지만 결코 영정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사람 » (201p)이기 때문일 지도 모르지만, 그가 사고를 비껴갔다고 해서 비극까지 비껴갔다고 할 수는 없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아내와 동업자를 죽이고 도망가는 신세가 된 ‘박’의 이야기 ‘애틀랜틱 엔딩’과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를 잊고 나와 곤란해진 ‘나’의 이야기 ‘어떤 선물’에서도 마찬가지로 곤경에 빠지고 사건에 휘말린 인물들이 서사를 이끌어간다.


 불현듯 찾아 든 사건과 불행으로 인해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은 정상궤도를 이탈해 불안정한 비행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어딘지 모를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위태롭게 나아가는 이들의 삶은 낯선 방향으로 흘러간다.

  예측불가능한 우리의 삶도 소설 속 인물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비극은 늘 우리 주변에 실재한다. « 흔들리고 요동치는 다리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매순간 다음 걸음을 내딛는 것 뿐이다 » (250p)에 등장한 작가의 말처럼 우리도 마찬가지로 어떤 확률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는 일은 언제나 불안한 일이겠지만, «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다리를 건너고, 새 다리를 짓고, 어떤 다리를 부수며 살아간다 »(250p)는 문장 덕분에 나는 도무지 예견할 수 없는 확률로부터 비롯되는 두려움을 조금은 떨쳐버릴 수 있었다.

 꼭 정해진 결말에 도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는 듯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 덕분에 마음이 여유로워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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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위로 -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곽아람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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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공부가 위로가 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게 공부란 언제나 수단에 가까운 것이었고, 공부는 위로가 되기엔 너무 고통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내가 공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던 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부터였다. 먼 나중을 생각하고 선택한 전공이 아니라 순전히 호기심과 관심으로 선택했던 프랑스어문화학은 예상했던 것보다 흥미로웠고, 프랑스어가 어렵고 복잡한 언어라는 것을 깨달은 뒤에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미래를 생각하면 불어는 좋지 않은 선택이라고 나를 만류했던 부모님은 행복하게 공부하는 딸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누그러뜨리셨다. 

 

 그렇게 나는 취업이 잘 되지 않는다고 평가 받는 전공을 공부하면서 마음에 교양과 행복이 겹겹이 쌓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충만해진 마음은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나에게 « 대학 시절의 공부 여정을 되돌아보며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써내려간 » 곽아람 기자의 « 공부의 위로 » 첫 독자를 모집한다는 이벤트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었다. 


« 공부의 위로 »는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한 곽아람 기자가 대학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수강한 교양과목으로 구성되어있다.

 저자가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한 만큼 미술사와 고고학 관련 수업이 수록되어 있지만 전공과 무관한 불어나 중국어, 법학, 심리학 같은 수업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 다양한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었다. 


 수업 자체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수업에서 느꼈던 것들과 그것들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쓰여있는 부분들이 특히 좋았고, 당장은 무용해 보이는 공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힘이 된다는 말 자체가 또다른 위로가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불안한 마음을 잠재울 수 있었는데, 그동안 내가 공부한 것들이 내 안에 쌓여 유의미한 자취를 남겼다고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마지막 학기를 이 책과 함께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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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특별 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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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의문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물음표가 아니라 말줄임표로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내용을 옮긴이의 말을 읽으며 제목이 더 아련하게 느껴졌고, 한층 더 깊어진 여운을 만끽하며 책을 덮을 수 있었다.


 200 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짧은 이야기속에서 폴과 로제, 시몽이 번갈아가며 자신의 심리를 나타내는 형식을 이루고 있는 소설은 어렵지 않게 읽히는 듯 하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사강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대하는 세 사람의 심리를 현실적이면서도 세심하게 표현한다. 항상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만은 없는, 이러저리 흔들리는 인간의 심리를 보여주는 문장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소설 속 세 사람 중 한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나의 경우에는 소설에서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핵심적인 인물, 폴에게 심취한 채로 소설을 읽어나갔다. 폴은 30대 후반의 여성으로 6년째 로제와 교제하고 있는 인물이다. 자유분방하고 구속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로제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그에게 어떤 불만도 표시하지 않은 채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상처”(137p) 들을 입은 채 그와의 관계를 지속해 나간다. 그런 그녀의 앞에 젊고 아름다운 청년 시몽이 나타나게 되고 로제와는 또 다른 태도로 자신의 사랑을 관철시키고자 애쓰는 그를 보며 그녀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서로 다른 성격과 태도로 폴을 대하는 두 남자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 둘을 바라보는 폴의 감정은 이리저리 흔들리게 되는데 천국과 지옥을 오고가는 듯한 그녀의 심리상태를 묘사하는 사강의 문체가 인상깊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삼각관계’라는, 어떻게 보면 진부한 소재를 주제로 한 소설이지만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 난 뒤에 남는 여운은 영화나 드라마를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사랑이라는 한 단어를 실현시키는 데는 무수히 많은 방식들이 존재한다는 것과 우리가 흔히 ‘루틴’이라고 부르는 익숙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며 소설은 끝이 난다. 


 우리는 익숙함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 조차 잊어버리고 그저 그 ‘루틴’속에 자신을 몸을 맡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익숙함을 벗어나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다시 그 속으로 회귀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인 것일까. 


 옮긴이의 작품 해설에 따르면 ‘사강의 작품이 강조하는 것은 사랑의 영원성이 아니라 덧없음’이라고 한다. 김남주 번역가의 말처럼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사랑의 아름다움이나 다채로움이 아니라 허무함과 씁쓸함, 덧없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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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2021 서울국제도서전 리커버 특별판)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배수아 옮김, 신신 디자인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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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정말 좋아하는데 너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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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 (리커버 에디션)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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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하려고 북펀드 참여했어요!! 정세랑작가님 책은 전부 소장하고 있는데 이렇게 리커버 버전 나와서 너무 좋아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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