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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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지에 나와 있는 말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스티븐 킹의 강력 추천이라는 말 또한 마찬가지다. 뭐, 한 두 번 속아봤어야지. 장르 소설계의 펠레 아니던가. 그러니 그런 띠지를 보면 '범죄도시'의 악역 장첸의 억양으로 '니 내가 호구로 보이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그러나 정말 예외 없는 법칙은 없나 보다. 띠지에 나와 있는 말도 순도 100%의 진실일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책을 만났으니까 말이다. 그것이 바로 C.J 튜더의 '초크맨'이다.





 재판에 증인으로 불러나온 것처럼 선서라도 하고 싶다. '본인은 본 법정에서 진실만을 말할 것이며 거짓을 말할 시 위증의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라는 식으로. 이 소설에 한해선 그렇게 말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띠지에 나와 있는 말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스티븐 킹 강력추천!'밖에는 없으니 괜히 변죽만 올린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다. 어쨌든 스티븐 킹이 강력 추천할 만하다. 아니, 이런 작품을 추천하지 않으면 어떤 작품을 추천할까 싶기도 하다. 내가 아는 스티븐 킹이라면 이 작품이 쏙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의 설정은 여러 모로 스티븐 킹 적이니까 말이다. 아마도 당신 역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즐겨 읽었다면 '초크맨'에서 익숙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스탠 바이 미'라든가, '드림 캐처' 혹은 '그것' 같은. 그렇게 이 소설은 어린 시절 친구인 다섯 명이 주역이며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살인이 있고 시체가 있으며 누명을 받아 죽음에 이른 자가 있으며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비밀들이 곳곳에 산재하며 놀라운 반전도 마련되어 있다. 만일 당신이 소설의 가치를 재미에 두고 있다고 한다면 당장 읽어볼 것을 권한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말한다. '초크맨'은 올해 읽은 스릴러 중 가장 재밌는 소설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읽은 보람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 소설에 재미만 있다고 하면 너무 실례일 것 같다. 하지만 그 주제에 대해 자세히 말해버리면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어 그러지도 못하니 유감이다. 그러니 소설의 주제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말하기로 하자. 이 소설의 주제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소설에 직접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그래 안다. 많이 들어 본 말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삶도, 사람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미숙하고 어리석은 우리들은 이걸 자꾸 까먹는다. 보이는 것을 전부라 여기고 쉽게 속고 오판하며 엄청난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그러니 이 세상이 아직 사기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다닌다는 사실이야 말로 우리가 여전히 보이는 그대로를 믿고 있다는 거의 방증이다. 그게 자신에 대해서라면 스스로 머리를 몇 대 쥐어박거나 술잔이나 기울이며 울화를 삭히면 되겠지만 타인에 대해서라면 다르다. 보이는 그대로 판단했다가 그들이 받지 않아도 될 상처를 주게 되었다면 그 죄는 또 어떻게 풀어야 한단 말인가? '초크맨'은 바로 여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삶에서 우리가 쉽게 하는 잘못들이 여기에 아주 진하게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타인의 삶을 온전히 알고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건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만큼은 할 수 있다. 쉽사리 비난하고 정죄하지 말고 먼저 보이는 것과 다른 사연은 없는지 먼저 물어보고 알아보는 정도의 노력은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어쩌면 타인에 대한 섣부른 판단 역시 근본에는 남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는 마음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칸트는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했겠지.


 쓰다보니, 이런 '초크맨'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 했네. 표지에 나와 있는 그림이 바로 '초크맨'이다. 그림 자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려 소통하는 걸 말하는 것이다. 마을의 아웃사이더인 다섯 아이들은 그렇게 분필로 바닥에 그림을 그려 서로와 연락한다. 그런데 누군가 그 '초크맨'을 통해 사건을 일으킨다. 얼마 전 축제에서 끔찍한 사고를 당했던 한 금발 소녀가 숲속에서 살해된 것이다. 그것도 머리가 사라진 채로. 그 사건을 계기로 화자이자 주인공인 에드의 삶은 결정적으로 바뀌어 버린다. 그런데 그로부터 30년 후, 한 통의 편지가 에드에게 도착한다. 30년 전, 살인 사건의 범인은 따로 있다는. 다시 찾아온 과거가 일으키는 회오리 바람 안에서 새로운 살인이 벌어지고 30년 간 묻혀 있었던 비밀들도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비밀은 웅변한다. 모든 게 보이는 대로 믿는 바람에 일어난 비극이라는 것을.


 나는 쓰면서도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 있을까 싶다. 이 소설에 이런저런 말은 쓸데 없다. 그저 읽으면 된다. 그러면 절로 알게 된다. 이 책의 가치는.

 문답무용! JUST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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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10-06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킹이 강력 추천했다는 말은 정말일까요 갑자기 그게 진짜인지 알고 싶기도 하네요 그걸 알려줄 사람은 없군요 스티븐 킹 이름이 있어서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스티븐 킹 소설 별로 못 봤군요 제대로 봐야 할 텐데, 보이는 게 있다 해도...


희선
 
거울 속 외딴 성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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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일을 소설로 풀어내는 게 아닐까 생각되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일본 작가인, 츠지무라 미즈키이죠. 이 말은 제가 그의 작품을 아직 딱 하나밖에 읽지 못해서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네, 저는 그의 데뷔작이기도 한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만 읽었는데요, 거기에 묘사된 십대 아이들의 일상이나 심리가 아주 생생하게 그려져서 아무래도 작가가 직접 겪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죠. 그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라 이름을 뇌리에 새겨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그의 작품을 또 다시 만나게 되었네요.

 그것이 바로 '거울 속 외딴 성'입니다.


 2018년 서점 대상 수상작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서점 대상은 점수제로 운영되는데 역대 최고 점수를 받았다고 하니 도저히 찾아 읽지 않을 수 없더군요. 표지까지 예뻐서 더욱 소장 욕구를 높였구요. 




제목에서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과연 설정은 판타지였습니다. 제목 그대로 거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외딴 성이 나오거든요.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판타지와는 결이 좀 달랐어요. 외부의 적을 물리치거나 세계를 구원하는 거창한 것은 아니고 세상에서 이렇게 저렇게 상처 받은 아이들이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고코로란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현재 학교에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거의 집단 따돌림에 맞먹는 엄청난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죠. 가뜩이나 예민한 나이에 타인에게서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집단으로 아무 이유 없이 공격을 당하다 보니 세상이 잔뜩 무서워져 버린 것입니다. 그는 매일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신 거울에서 빛이 나는 걸 발견합니다. 호기심에 거울 쪽으로 손을 뻗었는데, 거울에 손이 닿자마자 그만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립니다. 거울 속으로 들어와버린 고코로 앞에 나타난 것은 늑대 가면을 쓴 여자 아이. 그 아이로 인해 고코로는 외딴 성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자신과 똑같이 학교에 가지 않고 있는 여섯 명의 아이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성 깊은 곳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소원의 방'이 있어.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소원을 이루는 자는 한 명 뿐이야. 빨간 모자들."

 "빨간 모자?"

 "(...) 너희들은 길을 잃고 헤매는 빨간 모자들이지."(p. 51)


 그렇게 일곱 명 중 한 명이 성에서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열쇠를 찾을 때까지 내년 3월을 기한으로 계속 성으로 오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물론 강제는 아닙니다. 찾고 싶을 때만 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에 있는 동안은 뭘하든 자유입니다. 굳이 열쇠를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다만 밤에는 올 수 없습니다. 성에 올 수 있는 시간은 학교에 있어야 하는 시간과 일치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외딴 성은 일곱 명의 아이들에게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 있을 수 있는 아지트가 되어 버립니다. 아이들은 성에 와서 게임을 하고 이런저런 수다도 떱니다. 그러면서 혼자는 절대 만들 수 없는, 또래와의 관계를 맺어갑니다. 그러는 가운데 타인을 대하는 법,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법 등등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서로 상처를 주지 않는 관계란 어떤 것인지 하나하나 배워나가죠. 인용한 말에 나왔듯, 이 소설은 그림형제의 유명한 '빨간 두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빨간 두건 소녀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딴 짓을 하다가 길을 잃고 그만 늑대에게 희생당하고 말았죠. 하지만 이 소설에서 늑대는 길을 잃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도록 돕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 변형이 재밌게 여겨지더군요. 아, 그러나 무서운 늑대도 있습니다. 금지된 시간에 성에 있게 되면 정말로 무시무시한 늑대가 나타나 아이를 잡아가 버리니까요. 어쨌든 환경의 변화로 별안간 세상의 거센 공격을 받아 자신만의 외딴 방에 갇혀버린 아이들이 외딴 성을 통해 그런 세상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도록 치유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함께 한다는 경험이, 서로를 소중히 여긴다는 마음이 자신 또한 얼마나 현명하고 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이고, 결국 자신의 마음이 강해지지 않으면 어디에 있더라도 지옥을 만난다는 걸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세계 혹은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곳엔 많은 세계와 길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마음 또한.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 나왔듯이 네트(세계)는 광대하니까요.


 이 소설은 직접 읽으면서 느끼는 게 최고의 독서법 같기에 책에 대한 말은 이 정도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우리나라에도 요즘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홀로 지내는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고 그저 약간 다르게 오늘의 시간을 지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리고 혹시 그런 삶에 상처를 받고 싶다면 위로와 그런 상처따위 전혀 받을 필요 없다고 말하고픈 마음으로 이 책을 그들 곁에 놓아주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슷한 나이의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도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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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10-06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아이들이기에 서로 알았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세상에는 비슷한 생각이나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렇다 해도 자신이 가장 힘들다 생각하지만... 비슷한 사람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아쉬워하지 않고 다들 무언가 아픔이 있겠지 생각하면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여러 권 만났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쓰는 듯해요 여자 친구들 이야기, 읽지 못했지만 결혼하려는 사람과 그 둘레 사람 이야기도 있고(이건 드라마로 봤군요), 죽은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츠나구, 이건 영화로 만들었더군요), 지난해에는 입양...


희선
 
블랙 라이트 특급열차 철도 네트워크 제국 2
필립 리브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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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털 엔진'으로 SF 계에 그 이름을 널리 떨친 필립 리브가 청소년을 위한 새로운 SF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철도 네트워크 제국 시리즈'이지요. 이번에 시리즈 2권이 나왔습니다. '블랙 라이트 특급열차'가 바로 그것입니다. 내용은 당연하게도 '레일 헤드'에서 이어집니다. '레일 헤드'는 레이븐이라 불리는 철도 네트워크 제국의 가장 강력한 저항자가 그 제국을 비밀리에 다스리고 있는 가디언들이 금지한 새로운 'K -게이트'를 여는 것이었죠. 이야기는 그렇게 열려진 게이트로 뛰어들어 주인공 젠 스탈링과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지칭하는 모토릭 노바가 미지의 차원으로 나아가며 시작됩니다. 거긴 아직 레일이 깔려있지 않은 곳. 모든 것이 미지의 영역입니다. 아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모르는 그 세계에서 젠과 노바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야기는 젠과 노바의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1권을 읽으셨다면 혹시 레이븐의 사주를 받아 젠을 황제가 타고 있는 열차에 태웠던 소녀, 챈드니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1권의 후반에서 그는 그 일로 레일 포스에게 체포되어 냉동형(여기서는 형벌이 냉동 상태로 두는 것입니다. 100년이든, 200년이든)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왔었죠. 그 챈드니가 여왕이 된 트레노디에 의해 풀려나 시녀가 됩니다. 원래부터 철도 제국에 대한 반감이 컸고 독립심 또한 강했던 챈드니는 종속과 굴종의 의미밖에는 없는 시녀라는 위치를 달가워하지 않고 늘 달아나려 합니다만 모처럼 가지게 된 트레노디와의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섣불리 실행에 옮기진 못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철도 제국 앞으로 엄청난 위기가 다가옵니다. 황제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프렐 가문이 1권에서 발생한 황제의 죽음으로 권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그 자리를 차지하려 전면전을 펼쳐 온 것입니다. 황궁은 삽시간에 살육의 광장이 되고 트레노디는 챈드니의 도움을 받아 겨우 탈출합니다. 이들 역시 젠과 노바처럼 이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영역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라 발견하게 된 것일까요?  실제로 철도 네트워크 제국에는 거대한 미지의 영역이 존재했습니다. 우주 곳곳에 철로를 깔아 마치 철도 네트워크 제국이 우주 전부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거기에도 엄연한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곳이 바로 2권의 제목이기도 한 '블랙 라이트 영역'입니다. 이름에서 이미 미지의 공간이라는 게 한껏 드러나네요. 가디언들은 바로 이 블랙 라이트 공간 때문에 새로운 게이트를 열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늘 폐쇄만 고집해 온 그들에게 블랙 라이트는 한 마디로 개방과 그 열림을 통한 변화의 부름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지배자였던 그들은 아집에 빠져 변화를 거부했습니다. 그 자폐의 화신 같은 존재가 나타나 트레노디와 챈드니 그리고 젠 스탈링과 노바와 같은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을 강력하게 공격합니다. 그가 바로 쌍둥이 가디언입니다. 과연 쌍둥이 가디언과 젠 스탈링 일행 중에 누가 승리를 거머쥘까요? 


 이들의 대결 속에서 철도 네트워크 제국이 은밀히 감춰두고 있었던 비밀을 서서히 드러나는 2권은 1권이 그랬듯 역시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유럽은 다르겠습니다만 우리나라만 해도 철도라는 존재는 일상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편이죠. 기차라는 어쩌면 벌써 향수의 존재일지도 모를 그것을 가져와 무대를 우주로 옮겨 흥미로우면서도 꽤 설득력 있는 설정으로 현실감까지 맛보게 하는 철도 네트워크 제국 시리즈는 '모털 엔진' 시리즈에서 느꼈던 필립 리브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만듭니다. 제가 특히나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것은, 모험과 활극으로 가득한, 그러니까 50년대 SF가 잘 보여주었던 스페이스 오페라 느낌이 많이나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그런 소설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었던 기억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주 나더군요. 기차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여러모로 향수를 자극하는 이 이야기가 앞으로는 또 어떻게 펼쳐질지 정말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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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이브스 3 - 5천 년 후, 완결
닐 스티븐슨 지음, 송경아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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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종말과 재건이라는 거대한 스케일로 눈길을 끌었던 닐 스티븐슨의 '세븐이브스'의 마지막 3권이 드디어 나왔군요.

 2권을 읽고 뒷 얘기가 너무나 궁금했기에 허겁지겁 집어서 읽어보니, 3권은 2권의 시점에서 무려 5천년이나 지난 뒤로군요. 7명의 이브에서 시작된 인류는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다행히 멸종되지 않고 약 30억 명의 인구로 불어나 있었습니다. 1권과 2권의 이야기는 갑자기 달이 폭발하고 그 파편이 지구 위로 마구 떨어지는 '하드레인' 때문에 지구가 멸망할 것이 확실시 되어 소수의 인원을 우주에 보내어 인류 재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인구가 30억 명으로 늘었다는 얘기에 그렇다면 인류가 다시 지구 위에서 살게 된 게 아니야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닙니다. 인류는 아직 지구 적도 궤도 위에 고리를 이루어 거주지를 형성하고 바로 거기서 살고 있습니다. 5천 년이란 시간이 흐르다 보니, 소수의 인류도 어느덧 분화되어 자신의 모태가 되었던 일곱 명의 이브에 따라 하나의 종족을 이루게 되었죠. 2권에서 인류 재건을 위해 태아를 임신했던 7명의 여성이 진정 이브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한 차례 종말을 경험하고 겨우 재건 되었지만 인류가 가진 습성은 그리 변하지 않아, 5처년 동안 생겨난 일곱 개의 종족은 나뉘고 갈라져, 오늘날의 세계와 같이 많이 적대적인 모습은 아닙니다만 종교와 인종으로 갈라져 있는 오늘날 세계와 그리 다르지 않은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립이 또 없는 것은 아니어서, 지구 재건을 두고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에 맞도록 지상을 바꾸는 '테라포밍'에 관하여 '빨리 해치우자'는 레드파와 '천천히 하자'는 블루파로 나뉘어, 마치 50년대의 냉전 시대처럼,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3권의 이야기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멸종된 것으로만 알았던 지상의 인간들이 5천 년 동안 생존해 있었고 우주에 있던 인류가 그랬듯이, 그들 나름대로 진화의 과정을 거쳐 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1권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기서 로봇 전문가로 나왔던 다이나는 하드레인으로 지구가 멸망하기 직전 그녀의 아버지와 마지막 통신을 하는데요, 그 장면에서 다이나의 아버지는 근처의 광산에 사람들이 대피소를 만들어 피해있으며 자신도 그 곳으로 갈 것이라는 말을 하죠. 그렇게 지하 깊숙한 곳으로 대피했던 자들이 놀랍게도 생존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잠수함을 타고 바다 속으로 피난하기도 했는데요. 그들 역시 생존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각각 '디거'와 '핑거'로 불립니다. 3권은 '후생유전학'에 기반하여 늑대의 유전자가 환경에 따라 푸들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DNA가 외부 환경 요인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 5천 년 동안 완전히 다른 자연 환경에서 진화해 온 디가와 핑거가 인간과 좀 다른 특성을 가지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어쨌든 이 두 종족의 발견이 레드와 블루의 '힘의 균형' 상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상을 자신의 뜻대로 테라포밍 하기 위해서 지상 종족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 두 진영이 각자의 속내에 따라 그들에게 다가간 것이죠. 그런데 디거는 자신의 영토에 기지를 세운 블루 진영을 침락자로 간주하여 레드와 손을 잡습니다. 디거가 레드와 손을 잡음에 따라 균형이 레드 쪽으로 기울게 되자 블루는 핑거와 얼른 손을 잡습니다. 그렇게 이제는 일곱이 아닌 아홉이 모처럼 다시 부활의 숨을 쉬기 시작한 지구를 무대로 예전의 냉전시대와 똑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맙니다. 과연 이 사태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과연 인류는 1권과 2권의 사태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일까요? 정녕 분리와 대립이 인간 유전자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일까요? 그리하여 공존과 평화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이 모든 것의 해답은 아무래도 직접 확인하시는 것이 좋겠죠?


 늘 그랬듯이 이번 3권도 꽤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1권에서도 말했듯이 닐 스티븐슨의 소설은 역시 아주 현실적이고 정교한 SF 설정 때문에 읽는 것이죠. 이번 작품에서도 그러한 스티븐슨의 재능은 빛을 발합니다. 인류가 우주 콜로니를 어떻게 만들고 유지하며 이동하는가에 대해 구체적이면서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니까요. 그것도 눈에 그리듯이 서술하고 있어 소설을 읽으며 뭉게뭉게 떠오르는 상상에 쉽게 구체성을 더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5천 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긴 했지만 인류 재건이라는 거대한 스케일을 어떻게 매조지할까 많이 궁금했었고 또 스케일이 큰만큼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좀 되었는데 이 정도면 잘 끝맺음 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닐 스티븐슨 덕분에 모처럼 아주 거대한 스케일의 스토리 안에서 마음껏 상상력의 유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것에 한없이 매몰되어 바로 눈 앞의 것만 생각하며 어제와 오늘이 그렇게 다르지 않은 무료한 일상 속에서 이처럼 거대한 규모와 시간을 마음에 담아보는 것도 꽤 좋은 경험 같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확장이 또 소설을 읽는 맛이겠죠.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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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모노클 시리즈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민경욱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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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보았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인 '타락천사'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극중에서 청부살인업자로 나오는 여명이 아주 늦은 밤의 버스 안에서 어떤 남자를 우연히 만난다. 남자는 오랜만에 만난다면서 반갑게 인사하는데, 여명은 할 수 없이 인사에 응하면서 조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남자가 요즘 무슨 일하냐고 묻자, 곤혹스러움은 더욱 짙어진다. 그러는 가운데 여명의 독백이 이렇게 지나간다.

 '청부살인업자에게도 고교 동창은 있다.'


 청부살인이라는, 사회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예외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우리와 그리 다를 바 없는 한낱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니면 현재엔 비록 청부살인업자라는 괴물이 되었을 지 몰라도 과거의 한 때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어쨌든 청부살인업자, 그도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대중 문화 속에 등장하는 청부살인업자는, 특히 주인공인 경우엔 대부분 같은 인간이라는 뜻에서 인간다움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그 인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주인공의 청부살인은 주로 범죄자 같은 악인을 표적으로 삼는다. 살인의 정당성을 주어서 주인공이 저지르는 살인이 가지는 부정성(否定性)을 희석시키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공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주인공에 대한 공감이라는 연료가 없으면 멀리 갈 수 없는 자동차와 같은 존재니까 말이다.


 청부살인업자가 나오는 영화 중에 가장 유명한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에 나왔던 주윤발 캐릭터를 생각해 보라. 언제나 마피아의 보스만 표적으로 삼고 거기에 휘말려 한 여가수가 불행하게 시력을 잃게되자 죄책감을 느끼고는 곁에서 끝까지 돌보는 것까지 하지 않던가? 보통은 이렇게 묘사한다. '청부살인업자'란 캐릭터는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살인자'란 단편에서 처음 등장시킨 뒤로, 하드보일드 장르에 단골로 등장했다. 그러나 주인공인 경우엔 그런 비정(非情)함이 잘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괴물을 더욱 괴물로 만들 뿐이니까 말이다.




 장 피에르 멜빌의 영화 '사무라이'에 나왔던, 알랭 드롱이 분했던 킬러가 대표적이다.('사무라이'는 '첩혈쌍웅'의 원본과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 내내 대사 한 마디 없다. 언제나 굳은 침묵으로 무표정할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살인을 거리낌 없이 저질러 사회의 예외적 존재가 되는 그는 그 외양으로 인해 더욱 그렇게 된다. 침묵과 무표정은 그를 불가해한 존재로 만든다. 그는 인간일까, 괴물일까? 우리는 궁금하다. 거기에 멜빌은 살인하는 그를 목격했지만 고발하지 않는 여인과의 관계를 통해 알랭 드롱이 인간이라는 것을 슬쩍 드러낸다. 비록 지금은 괴물이지만 마음 한 편엔 인간다움이 있어, 언젠가 인간이 되려 하는 괴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그의 죽음이 씁쓸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고독'이라고 제목을 붙였을만큼. 이처럼 비록 일말이나마 인간다움을 품고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독자는 그를 끝까지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온통 검게 칠해진 페이지만 있는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 없듯이.



 이시모치 아사미의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는 제목에 나와 있듯 청부살인업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청부살인을 한다. 한 번 의뢰를 받아 청부살인을 하면 650만엔이 그의 수중에 떨어진다. 그가 직접 의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의뢰를 받는 이는 따로 있다. 그 일은 현재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는 이가 맡고 있는데, 그와 주인공이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중간에서 둘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존재가 또 하나 있다. 그는 현재 지방 공무원이다. 의뢰를 맡는 사람은 그 중간에 있는 전달자만 만나고, 주인공 역시 그 전달자만 만난다. 이렇게 하면 의뢰를 받는 자와 청부살인을 하는 자 중 누가 체포되더라도 나머지 한 사람은 보호받을 수 있다. 물론 중간 전달자가 체포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하지만 그는 의뢰도, 청부살인도 하지 않고 단순히 의뢰 받은 것과 청부살인업자가 살인을 맡을 것인지 말 것인지만 전할 뿐이니 법망에 걸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무튼 주인공이 한 축을 맡고 있는 청부살인은 이런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는 단편집이다. 주인공이 의뢰를 받아 청부살인을 하는 게 주된 줄거리인 단편이 모두 일곱 개 실려 있다. 맞다. 당신은 이 책에서 일곱 번의 청부살인을 보아야만 한다. 그런데 주인공에게 살해당하는 사람들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마피아의 보스이거나 범죄자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주인공은 냉정하게 살해한다. 오로지 돈을 위해서. 그리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살해당하는 것을 보는 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렇다고 청부살인업자가 어떤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어서 한층 더 불편하다.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는 독특한 컨셉의 소설을 가지고 있다. 청부살인업자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가 탐정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게 그렇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가 주를 이룬다. 주인공은 청부살인을 하기 위해 목표 대상을 스토킹 하는데(이런 식으로 보다 잘 죽이기 위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그의 이해는 어디까지나 원활한 살인에 맞춰져 있다.) , 그 때마다 목표물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수수께끼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를테면 첫 단편에서 타겟인 여성이 밤마다 몰래 나와 검은 물을 버리는 것과 같은. 


 그는 타겟들이 그러는 이유를 죽여 놓고 난 뒤 추리 한다. 이처럼 소설은 주인공이 의뢰를 받고, 타겟을 따라다니다 수상한 행동을 목격한 뒤 처리하고 그 행동의 이유에 대해 추리한 것을 중간 전달자에게 말해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미스터리가 소소한 것이기에 흔히 말하는 일상 미스터리 계에 넣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 보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청부살인업자가 탐정인 일상 미스터리 계 소설이라고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 두 가지가 조합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시도는 매우 신선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그리 성공적이진 않다. 오로지 돈을 위해 별로 죄도 없는 사람을 살해하고, 살인에 비하자면 하찮은 것에 불과한 수수께끼를 목숨보다 더 비중을 두고 생각한다라? 잘 납득되지 않는 설정이다. 더구나 주인공은 타겟에게 절대 감정이입 하지 않으려고 의뢰인의 신원도, 그 동기도 묻지 않는다. 그런데 사소한 행동에는 왜 의문을 품는 것일까? 그것을 헤아리려면 상대의 입장에 서야 하니, 그 또한 감정이입의 요소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모순으로 보인다. 그저 미스터리를 가져오기 위해 설정된 호기심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무리한 설정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이런 걸 설정했다는 자체에서 난 작가의 윤리 의식 역시 조금 꼬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작가의 모습은 내게 마치 잠자리 날개를 뜯으면서 왜 잠자리에겐 날개가 네 개밖에 없고 이렇게 쉽게 뜯겨나갈까 궁금해하는 아이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주인공에게 애인이 있는데, 그 애인이 주인공이 청부살인업자라는 걸 알면서도 사귀고 있다는 점이다. 뭐, 이 넓은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소설에 대놓고 나오니 상식적인 견지에서 얼른 납득이 안 된다.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는 평범한 제목처럼 소설의 주역들은 대부분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떤 특별한 계기나 뚜렷한 동기 없이 어쩌다 청부살인업계로 흘러든 사람들이다.(주인공이 과거를 술회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이런 회사에서 일하고 있더라 하는 느낌이다. 소설은 지속적으로 살인청부업계가 그리 먼 세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치과의사, 공무원, 중소기업 경영 컨설턴트, 만화가가 이들의 직업인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언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이렇게 소설은 평범함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살인청부도 그런 평범한 세계 속에 속한다고 알린다. 주인공의 애인이 그러하듯, 우리와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이들이 살인청부를 쉽게 용납하는 것처럼.


 과연 여기에 문제는 없는 것인가? 소설을 읽으며 나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돈 때문에 이토록 쉽게 사라지는데도 모두들 그걸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이란 과연 어떤 곳인가? 타인의 삶을 하찮게 바라보는 곳.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허다한 갑질 사태를 볼 때 드는 마음 그대로 바로 그런 곳이 지옥은 아닐까? 타인에 대하여 정작 궁금해하고 헤아려야 할 대상은 삶이라는 것이건만, 본질이 되는 삶은 홀연히 사라지고 삶에 견주자면 한없이 사소할 행동의 의미에만 천착하는 건 그저 내게 흥미 있는 것만 취하려는, 그렇게 타인을 피상적으로 소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소설은 바로 여기서 재미를 주려고 하는데, 이것은 그대로 남의 삶을 하찮게 만드는 것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니 이런 태도가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소설에도 어느 정도 윤리적 틀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윤리적 틀의 주된 축은 타자의 삶에 대한 존중이다.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서 등장한 청부살인업자 주인공들이 가졌던 인간다움도 근본엔 그것이 있었다. 타자의 삶이란 결코 나만을 위한 소비의 대상이 아니다. 하물며 장르 소설이라 하여도 그러하다. 이 소설은 2017년에 나왔다. 이런 소설의 등장이 당시 일본 사회의 기저에 흐르는 공기와 어쩌면 관련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 나오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이런 것을 느꼈기에 나중에 한 번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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