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스 버티고 시리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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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만약 당신이 그 불가능에 속한다면, 적어도 두 가지 경우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첫째 너무 모범생으로 살아왔거나 둘째 정의감이 매우 투철하거나. 왜냐하면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주된 매력은 반영웅을 그리는 데 있고, 그것을 잘 소화할 수 있어야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만일 재미를 느끼게 된다면 그 때부터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걷잡을 수 없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반영웅, 안티 히어로를 그리는 데 뛰어난 작가. 거기에 한해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는 작가. 그런 도널드 웨스트레이크가 '내가 그리면 누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악도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지 잘 보여주마!' 하고 쓴 작품이 바로 '액스'다.



 제목은 도끼를 뜻하는 '액스'이지만, 소설에 도끼가 나오진 않는다.

 책 뒷 표지에 실린 박찬욱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액스'는 박찬욱 감독이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작품에다 그가 늘 영화로 만들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참고로 '액스'는 'Z'로 유명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에 의해 2005년에 영화로 만들어진 바가 있다.)) 직장에서 해고 당할 때, '도끼질 당했다'고 하는 영어 표현에서 기인한 제목이라고 한다. 맞다. 이 소설은 구조조정으로 인한 정리해고 된 실업자가 주인공이다. 이름은 버크 데보레. 그는 23년 동안이나 일한 제지회사에서 하루 아침에 정리 해고를 당했다. 느닷업는 도끼 날에 목이 휙 날아간 것이다.


 지위 혹은 신분을 가리키는 영어 'status'는 '서다'라는 뜻의 라틴어 'statum'에서 유래했다. 즉 사회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해야 사람들 앞에 제대로 설 수 있다는 것이 단어 자체에 아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사에서 해고당한 버크는 이제 설 수 있는 두 다리가 없는 셈이다. 2년간 열심히 구직 활동을 했으나 돌아온 것은 차디찬 거절 뿐이었고 쪼들리는 가계에다 아들은 원하는 것을 사주지 못하자 절도에 손까지 댄다. 현재도 미래도 암울할 뿐이다. 이대로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한 버크는 중대 결심을 한다.

 자신이 재취업 하는데 방해가 될만한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모조리 제거하기로.


 그는 잠재적 경쟁자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직종의 취업 광고를 거짓으로 신문에 낸다. 그래야 이력서를 자신이 받아볼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자신에게 해가 될 경쟁자들을 선별하여 이력서에 나와 있는 개인 정보를 사용해 그들을 찾아가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은 계획한 대로 착착 진행되어 그는 결국 여섯 명의 경쟁자들을 골라내기에 이른다. 이들이 타겟이다. 그는 고인이 된 아버지가 남긴 유품에서 우연히 발견한, 무려 50년 동안이나 사용하지 않았던 루거 권총으로 미국 각지에 있는 그들을 하나 하나 찾아가서 죽이기로 한다. 제지 회사에서 일을 하며 누구보다 특수 용지에 관한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던 그는 이제 이것이 그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추호도 실패를 용납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성공시켜야만 하는 프로젝트. 오직 그것만 중요할 뿐이다. 알지도 못하는 얼굴에 다짜고짜 권총을 쏘고 설령 머리의 절반이 날아간 데도 그에겐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시간만이 중요할 뿐이다. 이것은 합격 날짜가 정해진, 기한이 있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세상엔 살인 동기가 허다하게 있겠지만 '액스'의 주인공 만큼이나 기상천외하고 그래서 또 어이없는 동기가 과연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읽으면서 그 어이 없음이 왠지 모르게 점점 공감으로 변해가니 이것이 또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저력이다. 노조가 파업할 때마다 흔히 보게 되는 문구가 하나 있다. '해고는 살인이다!', 바로 이것이다. 소설은 정말 해고는 살인과 다름 없다는 것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처음 만날 때 꼭 '무슨 일 하세요?' 하고 묻곤 한다. 그가 사회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은연 중에 캐내려는 것이다. 처음으로 물어볼 만큼 거기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크다. 그런데 우리가 그러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내 자아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차지하는 자리를 통해 세상이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나 역시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뼈져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이 가진 공포 중에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커다란 공포는 없다. 소설은 그 공포를 충실히 재현한다. 그래서 그 압도적인 공포에 눌려 허우적거리다 보면 그런 선택도 할 수 있겠구나 어느 정도 납득하게 된다. 버크의 이런 말이 그것을 거든다.


 그들이 앗아 간 건 내 인생입니다. 내가 아니고요. 그들은 내게서 융자를 갚을 능력, 아이들을 돌볼 능력, 아내와 좋은 시간을 보낼 여유를 앗아 갔습니다. 직장은 직장일 뿐입니다. 직장은 내가 아니라고요, 퀸란 씨. 지난 5개월 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압니까? 한때 서로 의지하며 친하게 지내 온 동료들이었습니다. 나랑 같이 해고된 수백 명의 직원 말이죠. 우린 항상 그 신뢰를 앞세워 함께 싸워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내 적이 됐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되어버렸으니까요. 그게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카운슬러들은 절대 이런 얘길 하지 않죠. 우리가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는 것. 더 이상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p. 252 ~ 253)


 해고를 당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그는 사회가 철저히 숨기고 있던 이 진실을 볼에 얼음을 대듯 선명히 깨닫는다. 지금과 같은 고도 경쟁 체제에서는 모두가 모두의 적이라는 것을. 공교롭게도 이 소설은 1997년에 나왔다. 우리가 한창 IMF를 겪고 있을 무렵이다. 날마다 여기저기서 대량의 정리해고가 쏟아지던 IMF 시절. 소설 속 버크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리라. 그런데 그런 현실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데 더 큰 비극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아무런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더 이기적이 되었을 뿐. 바로 그런 욕망이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괴물이 설치게 만들었다. 알고보면 버크의 진화형들을. 납득도 가고 악행을 통해 점점 더 강해지는 그를 보면 매력도 느끼지만 결코 지지할 수는 없는 것은 버크의 그 길에, 그가 다다르게 될 종착역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버크의 길을 완전히 내칠 수도 없는 것이, 그가 취한 한 가지 삶의 태도는 정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바로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의지한다는 것. 버크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누누이 자신에게 말한다. 이 시궁창에서 벗어나게 해 줄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라고! 자신이 이런 진흙탕에 빠지게 된 것은 내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게 기댔기 때문이라고.


 도널드 웨스트레이크가 반영웅을 자주 그리는 것도 여기에 있다. 누군가 만들어 준 삶에 무턱대고 안주하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길 원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프론티어 정신. 반영웅은 바로 그런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위한 존재들이다. 이러한 순전한 자기에의 의지, 여기까지는 지지할 수 있을 듯하다. 정말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일조차 태연하게 남에게 맡겨 버리는 이들이 많으므로. 그렇게 정말 고쳐야 할 사회 문제에 대해 무임승차 하려는 이들이 아직도 잔뜩 있는 세상이므로.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 그래야 하는가? 그것이 지나쳐 타인을 그저 수단으로만 삼는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기에 대해선 나는 오리무중이다. 고민 거리로 남겨둘 수밖에.


 그냥 재밌게 읽을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해고와 실직을 늘 다모클레스의 칼처럼 머리에 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결코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라서 저도 모르게 감정이 깊이 실리고 현재와 미래의 나를 생각하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냉정한 분석 보다 내가 이렇게 되면 내 삶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그래서 내겐 이보다 더 무서운 게 없는 공포 소설이기도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내 목에 해고의 도끼날이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읽는다면 누구에게나 정녕 소름 돋는, 서늘한 소설이지 아닐까? 무더운 여름밤에 딱 읽기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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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7-25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 주말에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액스> 정말 대단하더군요.

딱 20년 된 소설인데도 작금의 상황과 어떻게 이
렇게 맞아 떨어지는지...

ICE-9 2017-07-25 11:54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로 읽힌다는 데 더 큰 비극이 있는 것 같습니다. ㅠ ㅠ
모임 분들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참으로 궁금하네요.^^
 
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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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스릴러 소설을 소개할  때, 흔히 '압도적인 서사'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도 이곳 저곳에서 많이 보여 이제는 홈쇼핑 방송의 '매진 임박'만큼이나 신뢰도가 바닥인 말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이 소설에 대해서만은 그 말을 쓸 수밖에 없다. 페데리코 아사트의 '다음 사람을 죽여라'는 정말 '압도적인 서사'이다. 여기서 '압도'에 대해 보다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압도인가? 그것은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힘이다. 그 힘이 너무나 강력하여 읽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저 얼른 이야기의 마지막을 보고 싶을 뿐이다. 거침없이 넘어가는 페이지 때문에 572쪽에 이르는 분량조차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소설. 다른 거 하나도 필요 없이 그냥 이야기만으로 읽을 가치가 구현되는 소설. 그것이 바로 '다음 사람을 죽여라'다.



 한 남자가 자기 집 거실에서 머리에 브라우닝 권총을 겨누고 자살하려 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두 딸은 지금 여행 중이다. 돌아와 거실 바닥에서 죽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는 사이 누군가 시끄럽게 현관 문을 두드린다. 타이밍 안 좋게 찾아온 외판원이겠거니 여기는데, 이런 '테드'라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꼭 만나야 한다는 게 아닌가? 순간, 기묘한 위화감이 들긴 했지만 어차피 곧 죽을 거 무슨 상관이냐 싶어서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문득 테이블 위에 쪽지가 보인다. 분명 자신의 글씨이지만, 쓴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쪽지의 글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문을 열어.

그게 네 유일한 탈출구야.(p. 12)


 마치 이 상황을 정확히 예언한 것처럼 말하는 쪽지 때문에 그는 낯선 방문객에게 문을 열어주고 집 안으로 맞아들인다. 그의 이름은 저스틴 린치. 변호사다. 그는 테드가 자살할 작정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면서 자살은 가족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니 이왕이면 남에게 살해당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자신의 조직에 들어오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가족의 아픔을 헤아리고 있던 테드는 귀가 솔깃한다. 그래서 조직이 원하는 대로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간 블레인이란 작자를 죽인 뒤, 자기처럼 자살하기 위해 조직에 먼저 들어 와 있던 웬델이란 남자도 죽이기로 한다. 필수 절차다. 그렇게 두 번의 살인을 해야 만 조직이 자신을 자기가 웬델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죽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왜 소설의 제목이 '다음 사람을 죽여라'인지 우리는 납득한다. 결국 테드는 두 건의 살인을 무사히 저지른다. 그런데 린치는 웬델에게 아무 가족이 없다고 말했는데, 그래서 테드도 죽일 것을 수락한 것인데, 죽이고 나서야 그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도 자신과 똑같이 사랑스런 아내와 귀여운 두 딸이. 게다가 맙소사! 이름마저 똑같은 가족들이. 실제? 아니면 악몽?


 린치가 말한 정보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 때문에 그에게 뭔가 수상쩍은 구석이 있다고 느낀 테드는 자신의 유언장을 맡긴 로비차우드 변호사를 찾아간다. 신뢰에 금이 간 린치의 신상을 털기 위해서다. 하지만 때가 좋지 않았다. 집이 파티 중이었던 것이다. 누구는 자살을 시도하고 살인까지 하고 온 참인데 누구는 부부 동반으로 파티의 수다를 즐기고 있다. 그것도 공교롭게도 자기도 잘 아는 고등학교 동창들이. 세상 일이 공평하지 않은 거야 한 두 번 겪는 일이 아니니 무심히 넘긴 테드는 로비차우드에게 저스틴 린치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로비차우드의 답변을 기다리다 우연히 블레인 사건의 진실이 린치만 아는 비밀스러운 게 아니라 만인에게 공개된 것임을 알게 된다. 블레인 케이스 역시 린치에게 속았던 것이다. 바로 그  때, 그는 유리창으로 정원에 주머니쥐가 있는 것을 본다. 어제 꾼 꿈에서 잘려나간 아내의 다리를 뜯어먹고 있던 그 주머니쥐다. 바로 그 주머니쥐가 가까이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노리고 있다. 공황상태에 빠져버린 테드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러 경고하는데,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정원으로 뛰쳐나가보니 쥐는 온 데 간 데 없다. 달아난 게 아니라 원래 없었던 것이다. 과연 그 쥐는 정말 환상이었을까?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린치를 찾아간 테드는 그에게서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자기가 죽였던 웬델이 실은 자신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것을. 린치가 사진까지 보여주는 통에 믿지 않을 수 없다. 아내의 배신으로 더욱 둔중한 타격을 당해버린 테드는 린치의 사무실에서 나가다가 또 다시 주머니쥐를 보게 되는데...


 여기까지 소개하면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제목인 '다음 사람을 죽여라'는 사실 맥거핀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소설이 전형적인 스릴러가 아니라 뭔가 좀 다른, 독특한 스릴러라는 것을. 그렇다. 사실 이 소설은 끊임없이 독자의 예측을 뒤집는다. 제목과 첫 부분을 읽고 얼른 '보물섬'으로 유명한 로버트 스티븐슨의 '자살클럽'과 유사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우리의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보기 좋게 빗나간다. 왜냐하면 파트 2가 시작되자마자 파트 1에 있었던 일들이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블레인이 죽는 것은 똑같지만 웬델은 살기 때문이다. 거기다 테드와 대화까지 나누며 놀라운 사실까지 알려준다. 아내와 바람을 피운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바로 린치였다고! 그것도 린치와 똑같이 사진까지 내보이면서. 그런데 그 사진엔 린치의 것과 다른 점이 있었다. 린치의 사진엔 상대 남자의 얼굴이 나오지 않았었는데, 웬델의 사진엔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얼굴은 바로 린치의 얼굴이었다.


 과정의 반복. 하지만 완전히 다른 결말.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리는 없을테니 이 소설은 초현실적인 것을 다루고 있는 것인가? 페데리코 아사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남미 작가. 남미하면 역시 가브리엘 마르케스로 대표되는 마술적 리얼리즘. 그렇다면 이 소설도? 아니, 그렇지는 않다. 이 소설은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니다. 다음에 우리가 보는 것은 앞에서 우리가 본 모든 것이 실은 테드가 정신과 의사인 로라 앞에서 진술하는 고백이라는 것이다. 그는 벌써 몇 달째, 로라 앞에 계속 같은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자신이 자살하려고 하는데, 린치가 찾아와서 '다음 사람을 죽여라' 게임을 하고 그대로 블레인과 웬델을 죽이는 이야기를. 그런데 지금 와서 웬델의 결말이 달라진 것이다. 로라는 그것을 두고 테드가 이제 다른 주기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그렇게 상담이 반복될수록, 주기가 달라지고 그만큼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라고. 그러자 테드의 상상 속에서 웬델이 경고한다. '로라는 네 머릿속에 꽁꽁 숨겨둔 뭔가를 알아내려는 거야. 결코 남이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말이야.'


 그렇다면 이것은 일종의 게임인가? 지금까지 테드가 말했던 것이 그저 테드의 공상이 아니라 모두 실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얼른 테드가 어떤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고 로라는 상담을 교묘하게 이용해 테드가 숨겨둔 진실을 찾아내는 이야기로 파악한다. 그러나 그 파악 역시도 뒤에가서 또 배반 당한다. 간간히 반복되었던 체스와 얽힌 테드의 어린 시절 기억. 바로 그것이 실은 아주 무서운 진실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지는 것이다. 그것은 테드가 계속 꾸는 빨간 차의 뒷 트렁크로 나타난다. 꿈 속에서 테드는 그 트렁크의 문을 여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과연 트렁크 안에 무엇이 있기에, 그것이 그의 어린 시절 기억과 어떻게 연결되기에 그런 것일까? 마지막에 드러나는 이야기는 초반에 우리가 생각했던 이야기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본 작가 미쓰다 신조는 이 소설을 두고 '독자의 모든 예상을 가차없이 배신하는 소설'이라 말했다. 여기엔 조금의 거짓도 없다. 당신이 무엇을 예상했듯 늘 뒤통수를 얻어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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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죽이다 데이브 거니 시리즈 3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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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는 거니는 세상에서 딱 두 사람 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하나는 정말 싫어하고 다른 하나는 정말 좋아한다.

 전자의 거니는 현재 생사를 확실히 모른다.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그의 모습을 본 것은 그가 성매매 한 것을 몰래 촬영한 동영상이었다. 진짜 끝까지 더러운 기분을 느끼게 하는 작자였다. 후자의 거니는 전자의 거니가 준 상처를 치유해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지리산 공기도 포장하여 만 8천원에 판다고 하던데, 그처럼 현실의 갑갑함을 덜어주는 숨통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는 현실의 존재가 아니다. 픽션의 존재다. 풀 네임은 데이브 거니. 뉴욕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형사였다. 많은 이들이 살아있는 전설로 여기는 존재. 그러나 지금은 40대에 돌연 일선에서 물러난 뒤 초야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미국의 스릴러 작가, 존 버든 유일하게 쓰고 있는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그의 나이가 그렇기도 하지만 확실히 데이브 거니는 중년의 남자에게 특별히 더 살갑게 다가올 캐릭터다. 그가 중년의 위기와 거기서 비롯된 우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남들에게 잘 보여주지는 않으나 그는 눈물이 참 많은 남자다. 가족들이 자기도 잊어버린 생일을 챙겨줄 때, 어느새 장성해 버린 아들의 모습에서 그가 어렸을 때 자신이 해준 게 거의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을 때, 나날이 커져가는 자신의 무력감을 느낄 때,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자신의 자존심이 어느 순간 한없이 처량하게 생각될 때, 그는 눈물을 쏟는다. 그는 결코 통과하기 쉽지 않은 구부러진 길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누구에게나 그 나이라면 한 번은 찾아오는 그런 길을. 2012년에 나온 데이브 거니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기꺼이 죽이다'는 바로 그런 시간을 통과한다. 그에게 '착한 양치기 사건'을 의뢰한 킴의 말마따나 '사랑, 상실 고통'의 시간을...



 거니는 2주 전 세 개의 총탄이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일을 당했다. '악녀를 위한 밤'에서의 일이다. 첫 번째 총알이 손목을 관통했다. 그 후, 그는 내내 이명을 듣는다. 그것은 신호였다. 자신이 더이상 사람들의 경탄과 찬사를 받는 '슈퍼캅'이 아니며 그렇게 능력있기는 커녕 자신의 삶을 제대로 꾸려가지도 못한다는 신호. 이명은 이야기 속 네델란드 소년이 들었던 것처럼, 자신의 삶이라는 둑에서 줄줄 새어 나오고 있는 물소리였다. 곧 둑이 무너지고 삶은 파국이 되고 말 것이라는 불길한 조짐. 그것은 귀만이 아니라 손의 통증으로도 나타난다. 마치 '너는 예전의 너가 아니야. 넌 이미 내리막 길에 올라탔어.'라고 줄기차게 속삭이는 것처럼.


 중년의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아침에 마주하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에게서 듣는 그 말을. 처음엔 어깨를 으쓱하며 '뭐, 어쩌겠어' 하는 정도로 떨칠 수 있지만 시간이 흘러도 계속 반복되면 쉽사리 떼어낼 수 없는 점성과 무게를 갖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견디기 어려운 시점이 닥쳐오고 억울한 마음이 북받쳐서 차라리 모든 걸 끝장내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악마를 깨우고픈 유혹을 받는다. 얼마 전 작고한 죠엘 슈마허 감독의 이름을 널리 알린 영화 '폴링 다운'의 마이클 더글라스가 분한 백인 중년이 잘 보여주듯이.


 

 이 영화에 비추어 보자면 중년의 위기를 잘 극복하는 것은 언제 뛰쳐나올지 모를 내면의 악마를 잘 재우는 일이기도 하다.  존 버든도 이런 생각을 한 것일까? 공교롭게도 '기꺼이 죽이다'의 원래 제목은 'LET THE DEVIL SLEEP'이다. '악마를 재워라'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말은 거니가 킴의 집 지하실에서 범인에게 듣게 되는 말이지만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소설에 이 악마와 마주하는 이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것도 세 명이나! 


 물론 하나는 앞서도 말했듯 데이브 거니다. 다른 하나는 '착한 양치기'를 추적하다 인생을 통째로 말아먹고 거니처럼 은둔해 살고 있는 전직 형사 맥스. 마지막으로 범인이다. 거니의 악마는 먹이를 노리는 악어처럼 눈만 수면 위로 떠오른 상태지만, 맥스의 악마는 이미 한 번 부상해 그것과 함께 살아가고 있고 범인은 벌써 악마에게 먹혀버렸다. 이런 식으로 놓고 보면 거니를 중심으로 맥스와 범인이 하나의 일련된 흐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 어쩌면 작가는 독자에게 맥스와 범인을 거니에 대한 하나의 가설적 인물로 제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만일 그것이 옳다면 그것은 어떤 가설인가? 그것은 거니에게 만일 아내 매들린이 없었다면, 혹은 아들 카일이 없었다면, 그리고 친구 잭 하드니가 없었다면 거니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가설이다. 맥스와 범인은 거니만큼 똑똑하고 냉철한 존재였다. 한 가지만 떼어 놓고 보면 거니와 맥스 그리고 범인은 그리 다를 게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거니는 얼마든지 맥스 혹은 더 나쁘게는 범인의 자리에 거할 수 있었다. 딱 하나만 없었다면 말이다. 그것이 바로 가족과 친구다. 자신의 불안과 상처를 쉽게 드러낼 수 있고 그 번민과 고통을 자신보다 더 잘 헤아려서 보듬어주는 존재들. 그것이 있었기에 거니는 비틀거리면서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굳센 의지로 악마를 다스리고 인간의 삶을 지켜갈 수 있었다. '기꺼이 죽이다'는 바로 그런 것을 알려 준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에게 무엇이 더 크게 소중해지는 것인가에 대해. 하여 갈수록 노쇠에 대한 우울과 자존감 결여로 쉽게 뛰쳐나오는 악마를 단단히 결박할 수 있도록. 적어도 돈 몇 푼에 적폐세력에 영혼을 팔고 태극기를 흔들며 '공주님' 운운하는 노인이 되지 않는 길을.


 바로 그런 여정을 '기꺼이 죽이다'는 공들여 세공하고 있다. 544페이지에 이르는 상당한 분량으로. 이야기는 모두 세 파트로 나뉘어져, 첫 부분은 거니가 예전에 알았던 기자의 딸이 진행 중인, '착한 양치기 무작위 연쇄 살인 사건'의 희생자 유가족을 다루는 '살인의 고아들'에 참여하여 과거의 그 사건을 알아간다는 이야기고, 두 번째 부분은 미제로 끝난 그 사건에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미심쩍은 부분을 거니가 발견하고 그로인해 범인에게 위협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며, 마지막 부분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는 거니의 추적으로 위기를 느낀 범인이 유가족을 거듭 살해하는 범죄를 다시 저지르고 그것을 막기 위해 범인을 잡을 함정을 판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엔 약점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사건과 관계된 미스터리다. 여기의 진실은 식상함을 줄 수 있다. 이미 애거서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과 브라운 신부의 '이상한 발걸음 소리'를 비롯하여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오리지널은 아니다. 그런 트릭은 이미 구약 때 다윗이 우리야 장군에게 썼던 것이니까.(스포일러가 되기에 여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다른 약점은 풀어나가고 있는 미스터리에 비해 이야기의 분량이 다소 많다는 것이다. 그 여정이 너무 세밀하게 나와있어 어쩌면 군더더기가 많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약점들을 존 버든이 몰랐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전작들에서 그가 얼마나 이야기를 치밀하게 구성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소설에 와서 다소 식상한 미스터리에다 구성이 느슨해 진 것엔 어떤 의도가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거니가 현재형으로 보여주는 중년의 우울과 도사린 악마를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란 주제와 관련해서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그건 어쩌면 독자들에게 거기나 쫓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거니를 더 주목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겠느냐고 대답하고 싶다. 다시 말해 군더더기로 느껴질 만큼 촘촘히 새겨나간 거니의 심리가 이 소설이 진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며 '착한 양치기'는 그저 '슬램 덩크'의 유명한 대사처럼 거드는 왼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실 이 소설에 와서야 거니는 비로소 슈퍼캅의 잔영에서 벗어나 비로소 인간이 된 것 같다. 그만큼 그 영혼 안에 무엇이 웅크리고 있는지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점 때문에 나는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캐릭터를 베개에 비유할 수 있다면 그 전까진 베갯잇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이제서야 인간다운 면모를 지닌 솜털이 꽉 채워져선 비로소 누워볼만한 베개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치밀한 관찰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추리에 이제 인간미까지 지니게 된 이 캐릭터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된다. 2012년 작품이 이제 나왔으니 다소 늦은 셈인데, 2014년에 나온 '피터팬은 죽어야 한다'는 부디 빨리 나오길 바란다. 제목에서 이미 또 다른 중년의 고민이 펼쳐질 것이 엿보이는 지라('피터팬 증후군'은 중년에게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이 아니었던가? 프로이트 말에 따르면 유아로의 퇴행은 삶이 힘겹고 자신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수록 늘어난다고 한다.)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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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도시 Z
데이비드 그랜 지음, 박지영 옮김 / 홍익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아마존. 과학 기술이 이처럼 발달한 오늘날에도 그 곳이 여전히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는 것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인류가 그렇게 내버려둔 건 아니다. 오랫동안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학자들이 아마존을 완전히 파악하려 노력했지만 인간의 탐구심은 아마존을 겹겹이 싸고 있는 무성한 밀림을 뚫기가 어려웠다.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이토록 인간에게 적대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는 아마존에 과연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토양은 곡물이 자랄 수 없을 만큼 척박하고 치명적인 질병을 불러오는 각종 동식물이 지천에 있으며 인간의 생명을 가차없이 위협하는 육식동물마저 즐비한 아마존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문명을 이룩할 정도로 정착할 수 있었겠느냐는 얘기다. '리바이어던'으로 유명한 토머스 홉스는 아마존에 대해 아예 이렇게 단정해버리기도 했다.


 그곳엔 예술도, 학문도, 사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최악은 끝없는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다.


 당시만 해도 문명의 성립 여부에 대해서는 환경 결정론이 우세했다. 어떤 문명이 태어나고 번성하려면 환경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금지된 것에 매혹되기 마련이고 주류 입장에 반기를 들고 싶은 충동 역시 생기기 마련이다. 환경 결정론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들은 자신의 꿈과 명성을 위해 문명 불가의 대지로 낙인 찍힌 아마존으로 기꺼이 뛰어들었다. 정말로 많은 이들이 영국이 제국이었던 시절부터 아마존을 탐험하러 떠났다. 거기에 있다는, 아마존에도 문명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증거가 될 전설의 '잃어버린 도시 Z'를 찾아서 말이다. 그러나 도시는 발견되지 않았다. 탐험에 성공한 이들보다 실패한 이들이 훨씬 많았고 끝내 아마존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19세기 가장 유명한 탐험가 '퍼시 H 포셋'도 그 중 하나였다. 아니, 그는 그들 중 가장 유명한 자였다. 솔직히 그는 가장 성공이 점쳐지던 탐험가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사건이기도 하다.



  때는 1864년. 당시 라틴 아메리카가 잦은 국경 분쟁을 겪고 있었다.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볼리비아 등 국경을 맞대고 있던 국가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검은 금'이라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은 자원인 '고무' 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아마존은 고무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었고 많은 나라들은 아마존 주변으로 국경을 이루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검은 금의 유전과도 같은 아마존을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게 위해 싸우고 있던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수요가 많은 자원이라면 무조건 제 주머니 안에 넣어야 하는 영국이 이것을 가만 내버려 둘 리 없다. 영국은 얼른 분쟁의 원인이 되는 국경을 명확히 정리한다는 명분으로 아마존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파악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면 발로 답사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바로 그 때, 떠올랐던 사람이 모로코에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 단신으로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자신의 정부 스파이이기도 한 유명 탐험가 '퍼시 H 포셋'이었다. 영국 정부는 그를 당장 아마존으로 보냈고, 그는 영국이 부여한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했다. 그렇게 한 번 아마존을 무사히 관통한 그였기에 '잃어버린 도시 Z'를 찾아가는 이번의 탐험 역시 성공할 것이라 내다보는 것은 당연하달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명성이 워낙에 높았기에 아마존에서의 그의 실종은 탐험 역사에서 전설로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포셋의 생사 여부를 알기 위해 아마존을 찾아 떠났고 원주민에게 죽었다거나 거기에 정착하여 아들을 낳았다거나 하는 온갖 풍문들이 나돌았다. 물론 여전히 그의 최후에 대해선 밝혀진 바가 전혀 없다.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고 주로 그런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미국 여러 유명 잡지에 전문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데이비드 그랜은 2004년, 역사적으로 미스터리한 죽음들을 추적하다 '잃어버린 도시 Z'를 찾아 떠났다가 실종되어 버린 퍼시 해리슨 포셋에 대한 글을 만나게 되었다. 그 글에 매혹된 그는 포셋처럼 정말 아마존에 고대 문명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자기가 직접 포셋의 발자취를 따라 아마존을 탐험할 생각을 한다. 그는 결코 탐험가도 아니고 탐험은 커녕 사냥이나 등산조차 좋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잃어버린 도시 Z'는 바로 그렇게 하여 탄생된 책이다. 이 책에는 그가 어떻게 포셋의 발자국을 따라 나서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와 아마존과 포셋의 여정 그리고 실종 후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까지 충실히 담겨져 있다.



 소년 시절, 잡지에 간간히 소개되던 탐험 이야기에 매료 당한 바 있거나 아직도 그 때의 로망을 잊지 못하여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나 로버트 E 하워드의 '솔로몬 케인' 혹은 헨리 라이더 해거드의 '솔로몬 왕의 광산'을 뒤적이는 사람들과 아마존 그리고 포셋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이들에겐 아주 즐겁고 흥미로운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아마존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당시 많은 이들이 공포를 느꼈던 아마존 정글 속 식인종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거기서 아마존에도 문명이 있었다는 게 밝혀지는 것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문명의 흔적이 사람의 발길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그런 곳에 있었던 곳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분명 '잃어버린 도시 Z'를 찾아 떠났던 많은 이들이 수없이 거쳐갔을 거기, 그런데도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이 문명의 흔적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그건 바로 굳어진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는 서양의 문명 관습에 너무나 길들어져 있어서 그것과 전혀 다른 자연 환경의 아마존이 서양 문명과 완전히 다른 형태로 문명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조금도 생각해 보지 못하고 그저 서양 문명과 닮은 꼴의 건조물을 찾으려 했기에 늘 다니던 길목에 버젓이 있었던 흔적조차 쉬이 놓쳐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유럽인과 아마존 사람들의 태생적 차이 때문일 것입니다. 유럽은 비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살기 때문에 건축물이 하늘을 향해 치솟는 수직적 형태를 띨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마존을 비롯한 남미 대륙은 땅이 넓기 때문에 건축물을 굳이 높이 쌓을 필요가 없습니다. 중국의 고대 건축물이 하나같이 수평적 형태인 이유도 남미의 그것과 동일합니다.(p. 313)


 두말 할 것도 없이 적폐의 생각이 만들어낸 사각이었다. 비단 아마존이나 문명만이 아니라 이런 일이 바로 우리 삶에도 비일비재할 것이라 본다. 무조건 옛 것에 집착하고 나만이 옳다는 생각에 빠져버리는 바람에 정작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 조차 어이없이 놓쳐버리는 일이.


 

  이번에 나온 '잃어버린 도시 Z'는 사실 두 번째의 발간이다. 이렇게 책이 다시 나온 것은 이 책을 원작으로 하여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만든 영화가 곧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리틀 오뎃사'로 데뷔했는데 그 때부터 내내 한 개인이 낯선 공동체에 적응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2013년에 나온 전작 '이민자'가 대표적이다. '잃어버린 도시 Z' 또한 서양 문명에 깊숙이 침윤된 자가 그의 눈에 한없이 낯선 아마존에 섞여드는 과정이니 그레이가 늘 해왔던 것의 연장선 상에 있는 셈이다. 4년 동안 자신의 작업에 대한 그의 생각이 또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영화가 기대된다. 찰리 허냄이 맡아 연기한 포셋은 원래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닥터 스트레인지'를 찍느라 하차하는 바람에 찰리 허냄에게 돌아갔다. 포셋과의 싱크로율은 컴버배치가 높기 때문에 그가 주연을 하지 못한 건 좀 아쉽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그렇게 좋은 영화도 아니었기에 더 커지는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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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팩스 부인과 여덟 개의 여권 스토리콜렉터 55
도로시 길먼 지음, 송섬별 옮김 / 북로드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미국 뉴저지 출신으로 현재는 코지 미스터리계 대모로 평가받는 도로시 길먼의 대표 시리즈인 '폴리팩스 부인'을 이제서야 읽어 보았다. 시리즈 첫 작품은 아니고 이번에 나온 세 번째 작품이다. 제목은 '폴리팩스 부인과 여덟개의 여권'. 도로시 길먼은 43세부터 77세까지 무려 35년 동안 14권의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를 썼다. 이혼으로 인해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그녀가 자신의 인생이 점점 쓸모없어지는 것 같아서 그러지 않으려고 뭔가 자기 삶에 대한 응원 같은 것으로 쓴 이 시리즈는 작가만큼이나 남편과 사별한 뒤 자식도 다 떠나보내고 홀로 쓸쓸하게 노년을 보내던 할머니가 뜻하지 않게 CIA의 스파이로 활약하며 인생의 전성기를 보낸다는 이야기다. 뭐랄까? 비유하자면 애거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과 이언 플레밍의 '007'의 콜라보라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존 르 카레 식의 어두운 스파이 물을 좋아해서 코지 미스터리 분위기의 스파이라고 하니 그닥 끌리지 않았고 거기다 할머니가 스파이로 활약해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나 싶어서 엄청 유명한 시리즈인 줄은 알지만 스킵해버렸는데 견물생심이라고 세 번째 작품까지 나온 것을 보니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발간된 지 몇 십년이 지난(이번에 나온 폴리팩스 부인과 여덟 개의 여권이 출간된 연도는 세상에 1971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계속 나오는가 문득 궁금해져 속는 셈 치고 읽어버렸다.


 그런데 왠걸... 꽤 재밌었다. 선우용녀에 빙의라도 된 듯 '뭐야 뭐야' 하면서 이야기에 거침없이 빠져들어 갔다. 폴리팩스 부인은 멕시코와 이스탄불에서의 스파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현재는 원래 사는 곳인 뉴브런스윅(이곳은 저자의 고향이기도 하다.)에서 스파이가 되기 전에 자신의 주력 분야였던 원예에 충실하고 있다. 현재 그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프로젝트는 손가락선인방의 꽃을 밤에 피우는 것. 소설은 그것의 성공과 함께 시작한다. 폴리팩스가 성공의 기쁨에 젖어있을 무렵, CIA의 카스테어스와 비숍은 불가리아에 파견되었던 정보원 쉽코프에게서 이상한 정황을 보고 받는다. 누군가 불가리아에서 비밀리에 정탐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쉽코프에게 다가와 그가 지금 불가리아 비밀경찰(이 때 불가리아는 사회주의 국가였다.)에 노출되었으니 이러이러한 경로로 빠져나가라고 하면서 만일 무사히 미국까지 가게 되거든 자신의 동료들이 불가리아를 탈출할 수 있도록 여권 여덟 개를 만들어 갖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처음 반신반의했던 쉽코프는 집에 갔다가 비밀경찰들이 있는 것을 보고 한번 더 속는셈 치고 그가 말해준 경로로 찾아간다. 그런데 정말 불가리아를 무사히 빠져나왔던 것이다. 그 사실을 들은 카스테어스와 비숍은 불가리아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그것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거기 있는 쉽코프를 도와준 이들과의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여덟 개의 여권을 갖다주려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과연 누구에게 그 일을 맡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일이 잘못되면 불가리아와 미국과의 관계가 완전히 경색될 수도 있다. 되도록 정보원 티가 나지 않는 인물이 필요하다. 결국 카스테어스는 비숍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폴리팩스에게 다시 한 번 일을 맡긴다. 여덟 개의 여권을 그것을 위해 특별하게 제작한 모자에 숨겨 불가리아에 갖다 주도록.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 있는 릴라 호텔. 폴리팩스 부인이 묵게 되는 바로 그 호텔이다. 실제 있는 곳이다.

 혹시 여기 가게 되신다면 폴리팩스 부인을 생각하며 한 번 묵어보시길...


 처음엔 그렇게 단순한 임무였다. 그래서 카스테어스도 폴리 팩스 부인에게 맡긴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다 그렇듯 카스테어스의 예측 대로 흐르지 않는다. 불가리아로 가기 위해 바꿔 탈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던 베오그란데 공항에서 일은 터졌다. 폴리 팩스 부인은 거기서 우연히 배낭 여행 중이던 일단의 미국인 청년들을 만났는데, 절대 불가리아로 가지 않겠다던 필립이란 청년이 불가리아에 왔고 그만 간첩 혐의로 비밀경찰에 체포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필립과 같이 있던 데비란 아가씨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폴리팩스 부인은 자신의 임무와는 별개로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는 필립의 고초를 자기라도 나서서 해결해주려 한다. 그런데 그 일이 그만 불가리아의 비밀경찰까지 얽혀서는 폴리팩스 부인이 상상한 것 이상의 재난을 가져 온다. 무려 세 번이나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는 것도 모자라 끝내 불가리아 역사상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감옥까지 잠입하도록 만든다. 바야흐로 카스테어스와 비숍은 다시 한 번 속쓰림을 달랠 위장약을 연거푸 들이켜야 할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속표지의 모습이다. 소설에 나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표지에 신경을 많이 썼다. 전작을 못봐서 전작도 이런 표지인지 모르겠다. 이런 표지라면 다 소장하고 싶다.(나는 의외로 이런 외관에 약하다. 으음...) 아무래도 작품의 연식이 연식인지라 장르소설의 빈티지적 취향을 자극하는데(옛날 장르소설을 즐겨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이 느낌을 아실듯), 그런 작품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지 표지도 거기에 맞춰 빈티지스럽다. 마음에 든다.


 처음엔 폴리팩스 부인이 받은 미션이 별 것 아니라서 '할머니 스파이가 다 그렇지 뭐' 하고 흥미가 한풀 꺾였었는데(그래도 내처 읽었던 것은 폴리팩스 부인과 그녀에 대해 인간적인 연민을 가지고 있는 카스테어스와 비숍이 빚어내는 케미 때문이었다. 분명 폴리팩스 부인의 상관인 그들이 폴리팩스 부인이 엄마, 그들이 자식으로 유사 모자 관계를 보여주어 흥미로웠다. 이런 것이 전반부터 느껴질 정도로 소설의 캐릭터 형성이 참 좋다. 특히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폴리팩스 부인과 동행하게 되는 데비와 정체불명의 불가리아 협력자 찬코의 캐릭터 묘사가 뛰어나다. 데비가 자신도 언젠가 폴리팩스 부인이 찬코에게 받았던 것처럼 남자에게서 그런 시선을 받고 싶다고 고백할 정도로 폴리팩스 부인과 찬코가 나누는 우정은 소설에서 가장 감미로운 부분 중 하나다.) 불가리아에 도착하고 나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지라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결말이 날까 궁금하여 증기기관차 화로에 석탄을 마구 던져넣듯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냥 푹 빠져서 재미만을 추구한다면 분명 만족스런 독서가 될만한 작품이다. 왜 이 시리즈가 인기 있는지 제대로 체감했다고나 할까.


 소설에서 폴리팩스 부인과 데비가 지나쳐 갔던 시프카 패스(Shipka Pass). 아시다시피 불가리아는 1396년부터 1878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876년 4월, 불가리아인들은 수백년에 걸친 오스만 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나고자 봉기를 일으켰다. 이것에 대해 터키인들은 무자비한 탄압으로 응답했는데 결국 많은 불가리아인들이 학살당했다. 시프카 패스는 그 때 가장 많은 불가리아인들이 학살당한 장소로 이름 높다. 무려 2만 8천명의 사람이 터키인들에게 무참히 도륙되었던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18명에 불과했다. 불가리아는 자신의 가장 아픈 역사를 이렇게 기념하고 있다. 폴리팩스 부인은 이곳을 지나가며 그런 사정을 데비에게 설명한다. 이런 역사는 나중에 필립의 비극과 오버랩 되면서 묘한 반향을 일으킨다. 과거의 피해자가 현재의 가해자가 되는 이러한 아이러니는 어떠한 연유로 생겨나는 것인가 하고.


 그런데 그것 이상으로 내게는 이 이야기가 깊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최근에 일어난 한 비극적인 사건 때문이었다. 바로 북한에서 1년 넘게 억류되어 있다가 혼수상태로 미국에 송환되자마자 사망한 웜비어 말이다. 그는 여러모로 소설 속에서 간첩 혐의로 불가리아 비밀경찰에게 억류당하는 필립과 비슷하다. 일단 나이가 그렇고 풀려나자마자 심장마비로 죽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물론 여기엔 불가리아 비밀경찰을 장악한 이그나토프의 음모가 서려있다. 명확하게 혼수상태와 사인이 판명나지 않는 웜비어에게도 어떤 음모가 깃들어있는지 모를 일이다.) 무려 56년 전의 소설에 바로 오늘날 일어난 이야기가 들어 있으니 놀랍기도 하고 소설 속 세계와 현실 세계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한 편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똑같은 비극이 여전히 계속되는 것을 보면 역사의 발전이라는 것에 깊은 회의가 든다. 사실 폴리팩스 부인이 필립의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 대사관을 비롯하여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필립의 생사와 안전에 대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정부와 언론이 그러했듯이. 만일 폴리팩스 부인마저 모르쇠했다면 필립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최후를 맞았을 것이며 그 죽음을 통해 권력을 영원히 쥐려고 했던 이는 자기 소망을 이루었을 것이다. 어쩌면 무모하고 누군가에겐 귀찮기만한 그녀의 관심이었지만 그 하나가 많은 이들에게 삶의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주고 불가리아 또한 올바르게 통치할 계기를 마련해준 것을 보면 진정한 역사의 발전이란 이렇게 비록 우리처럼 작은 자라 하더라도 그 어떤 약자에게 닥친 비극도 나와 무관하지 않으며 바로 나의 일인 것처럼 관심을 갖고 실제 뭔가 실행하는 자들 덕분에 이뤄지는 것 같다.

 뭐, 이런 거창한 이야기는 사족에 불과하다. 캐릭터의 매력과 재미만으로도 책의 가치는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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