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회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6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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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로 유명한 일본 작가 이케이도 준. 그의 새로운 소설이 최근 출간되었다. 제목은 '일곱개의 회의'.

내가 이케이도 준이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한자와 나오키>란 일본 드라마 때문이었다. 일본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드라마라고 하길래 호기심으로 시청했다가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드라마의 원작이 되는 소설까지 읽어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 소설을 쓴 작가가 바로 이케이도 준이었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한자와 나오키'에는 살인처럼 독자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범죄나 거대한 음모 같은 게 나오지 않는다. 전개 되는 건 회사란 조직 사회 내부의 치열한 암투다. 권력을 손에 쥐고 불공정한 일을 획책하는 상사가 있고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거기에 맞서 자신만의 정의를 관철시키는 부하 직원이 있다. 그 대결이 작품을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간다. 연쇄 살인이나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음모가 진행되는 작품에 비해 다소 심심하게 여겨지는 소재지만 그런데도 <한자와 나오키>는 그런 소설 이상으로 재밌다. 한 번 손에 들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쉽사리 놓을 수 없게 된다. '왜 그런 몰입력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그건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마주하는 상황들이 현재 자본주의 속 회사라는 조직 내에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크거나 작거나 하는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리 다를 것 없는.


 이번에 나온 '일곱개의 회의'도 그러하다. 

 오로지 성과를 얼마나 낼 수 있느냐가 전부인 회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했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가 여기서 펼쳐지는 것이다. 먼저 그 드라마가 어떤 것인지 대략 소개하자면 이러하다. 무대는 당연히 회사다. 대기업인 '소닉'의 자회사 중 하나로 주로 주택 설비와 관련된 물품들을 제조, 판매한다. 규모는 중견 급. 그런데 이 회사애서 직원들에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누구보다 높은 성과를 내어서 회사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인정받는 영업1과 과장 사카도가 회사에서 가장 한량으로 성과도 없고 언제 짤려도 이상할 것 없는 잠귀신 핫카구에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 당했는데, 당연히 일도 안 하고 늘 자기 바쁜 핫카구가 짤릴 것이라 다들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사카도가 징계를 넘어 해고까지 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직원들에겐 그야말로 경천동지할만한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내막에 대해선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 사카도와 입사동기로 늘 그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하라시마는 최근 사카도의 뒤를 이어 그의 자리로 부임하게 되면서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된다. 그것도 잠귀신 핫카구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이유를 듣는 건 간단해. 하지만 그렇게 하면 넌 한 가지 중요한 권리를 포기하게 되는데, 그래도 상관없어?'(p. 48)





 '일곱개의 회의'는 이처럼 직장 내 괴롭힘 고발 사건으로 촉발된 미스터리를 주된 축으로 하여 진행된다. 이케이도 준은 2화에서 그 사건의 전모를 하나씩 차츰 밝혀나가는데, 장차 그 사건은 회사의 존립마저 좌지우지 하는 커다란 규모로 확장한다. 파급 효과는 회사의 도산과 직원의 전원 실업이라는 엄청난 것이었지만 그것을 가져온 방아쇠는 실로 사소했다. 성과를 내기 위해 한 번 눈 감고 불법의 유혹에 넘어 간 것이 자신 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를 헤어나올 수 없는 위기에 빠뜨린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악마의 유혹은 소설 내에서 단 한 사람만 받는 게 아니다. 그 사건이 수면으로 부상할 때마다 진실을 바깥에 밝혀야 할 책임을 지게 되는 이들 모두가 동등하게 받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연쇄 과정 중, 누군가가 성과 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했다면, 자신 보다 타인을 먼저 돌볼 줄 알았다면 해악의 규모가 그 정도로 증가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진실을 알게 된 자 대부분이 그러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 올 위험과 불이익만 생각했기에 회사에 속한 모두의 삶을 휘청거리게 만드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일곱개의 회의'는 8화에 걸쳐 이러한 과정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것도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현실감 넘치는 묘사로 말이다. 덕분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케이도 준은 단순히 사건의 경과만 나열하지 않는다. 소설 속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의 과거를 통해 그가 어떤 인생 경로를 걸어왔는지 밝혀 그 인물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순전히 욕심이 많거나 악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약함을 너무 크게 부풀렸고 그것이 안겨준 두려움에 굴복한 것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런에 이런 인물상은 그저 소설 속에만 등장하지 않는다. 회사 속에서 살아가는 이라면 어쩌면 자기 곁에서 혹은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에서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는 모습인 것이다. 우리 역시 언젠가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또는 회사에서 인정받고자 높은 성과를 낼수만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적이 있지 않았던가? 더러는 이것이 불공정한 처사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하면 하청 업체가 아주 힘들게 될 거라는 걸 아는데도 모른 척 눈 감고 밀고나가 버린 적이 있지 않았던가? 잠귀신 핫카구의 일갈대로 회사의 영혼을 판 사람이지 않았던가?


 그런 우리에게 이 소설은 핫카구의 말을 빌려 이렇게 힐난한다.


 "영혼을 판 남자의 말로가 고작 이거냐."(p. 325)


 '일곱개의 회의'는 이런 일갈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재밌지만 읽다보면 어느 순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자문하도록 만든다. 나 또한 영혼을 판 사람은 아니었는지, 나는 얼마나 내 영혼을 잘 지키고 있는지 하는 것들을.


 그런데 그 일갈은 우리 개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개인을 넘어 일본 사회 전체에 보내는 지탄이라고 본다. 최근 코로나 사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 양상은 더욱 일본이라는 나라가 정상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감염의 확산을 막아야 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정부와는 달리, 스스로 나서서 책임을 지려하기 보다는 사태의 진실을 감추거나 그 책임을 남에게 떠맡기는 듯한 처사를 점점 더 많이 목도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일본에서 코로나가 얼마나 커다란 규모로 확산될 것인지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일곱개의 회의'에서 주축이 되었던 사건의 전개 양상과 너무나 흡사하다. 소설 속 책임 있는 자들이 은폐와 방관으로 일관하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못 막아 파멸이라는 철퇴를 맞았듯이 지금의 일본의 관료들 또한 그러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소설 속 비극은 나사라는 아주 작은 부품이 가져온 것이었다. 조직에서 개인은 종종 나사에 비유된다. 나사가 맡은 자리에서 제 역할을 잘 해야만 기계 전체가 제 모습을 잘 유지하고 돌아가듯 조직 내 개인 또한 그러하다는 뜻이리라. 이는 소설이 잘 보여준 것처럼 거대한 조직의 운명도 나라는 아주 작은 나사에 달려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설 속 사건도, 현재 일본의 모습도 나사가 자기가 짊어져야 했던 책임을 제대로 했더라면 보다 긍정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물론 그 책임이란 조직이 원하는 성과가 아니라 보다 고귀한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는 결단을 뜻한다. 그것이 바로 핫카구가 강조하는 영혼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영혼을 지킬 때, 그 영혼의 목소리에 따르는 결단을 내리고 실천할 때 나사는 더이상 단순한 하나의 부품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속한 거대한 조직의 운명마저 결정할 수 있는 존재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이처럼 보다 고귀한 윤리적 가치를 따르는 건 자신의 품격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회사의 평가는 최하였지만 유일하게 자신의 영혼을 팔지 않았던 잠귀신 핫카구가 그 누구보다 거대한 존재감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리라.


 '일곱개의 회의'는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여 책임을 지는 행위가 어떻게 자신 또한 구원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제목처럼 회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바로 나 자신과의 회의를. 영혼을 단단히 지킬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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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얼굴의 여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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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부터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검은 얼굴의 여우'는 미쓰다 신조의 소설  최고 걸작이다


 2016년에 발표된  작품이 지금에서야 소개된  너무 안타깝다  일찍 소개되었다면 분명  작품은  많이 소개되고 널리 읽혀졌을테니까 말이다 소설은 미쓰다 신조의 대표작이라   있는 ‘도조 겐야 시리즈 아니다그렇지만 도조 겐야와 비슷한 시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바로 일본 패전 직후의 시기를 말이다 시기를 염두에 두고 말하건대도조 겐야 시리즈에  불만이 있었다그런 시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전쟁 국가 일본 때문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한국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던 것이다도조 겐야 시리즈를 정말 좋아하면서도 그걸  시리즈의 한계로 여겨왔던 참인데이번 ‘검은 얼굴의 여우에서는 내가 한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식민지 조선의 문제를 다소 놀랍게도 정면으로 다루고 있었다사실 2011년에 일어난 3.11 사태와 아베 정권에 힘입어 일본 우익이 날로 목소리를 크게 내던 마당에 조선에 대한 일본의 만행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작품을 내기는 쉽지 않았을텐데미쓰다 신조는 ‘검은 얼굴의 여우에서 그걸 해냈다그렇다고 해서  작품이 추리 소설의 재미가 떨어지는 것도 결코 아니어서개인적으론 도조 겐야 시리즈보다  재밌게 읽었다아무래도 최고 걸작이라는 말을  문장부터  수밖에 없었다모처럼 나온 미쓰다 신조의 신작이 이토록 커다란 만족감을 주어서 팬으로서 정말 기쁘다.



 

 후반에 놀라운 반전이 여러  펼쳐지기에 이야기를 소개하기가 조심스럽다가급적 직접 읽었을 때의 재미를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말해본다면 이러하다.

 

  청년이 일본을 방황한다이름은 모토로이 하야타

 그는 현재 삶의 의미를 잃었다기차 역에  있지만 어디로 가야   모른다그는 전쟁에 참여했고 전쟁 국가 일본이 아닌 만주와 한국 사람들이 모두 평등하게 공존할  있는 새로운 일본 국가를 만들기 위해 건국대학이란 곳에서 열심히 공부도 했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오직 폐허만이 존재하는 영혼이 되어 이리저리 정처없이 흘러다닐 뿐이다그러다 그를 탄광으로 데려가 광부로 만들어 착취하려는 이를 만난다강권에  이겨 따라갈 수밖에 없게  찰라누군가 그를 구해준다눈에 띄는 미남인 그의 이름은 아이자토 미노루 일면식도 없는 자신을 구해주었느냐고 하야토가 묻자예전에 알았던 한국 청년인 정남선 때문이라고 미노루는 답한다하야토의 모습에서  청년을 떠올렸다고그를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했기에.

 

 하야토는 미노루가 일하는 탄광에서 일하기로 한다오직 생산성만 강조하며 광부들을 위한 안전 설비는  몰라라 하는 회사의 태도 때문에 언제라도 갱도가 무너져 생매장당할 수 있는 막장 속 생활은 힘겹기만 하다. 그야말로 패전 후 일본 국민들이 느꼈던 불안과 공포를 빼다 박은 것 같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야타는 이러한 일본의 가장 밑바닥에서의 체험을 통하여 일본 재건의 씨앗을 찾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 속에서 갱도로 내려가는 걸 잔뜩 두려워하면서도 하루하루 적응해 나간다.


 그러나 마치  희망을 비웃길도 하듯예고 없이 일어난 낙반 사고로 하야토가 가장 의지하고 있는 미노루가 실종되어 버리는 사태가 일어난다.

 낙반이 일어나면 유독 가스가 삽시간에 갱도에 가득차 시간이 지날수록  안에 있는 사람이 생존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는 상황미노루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하아토의 애타는 마음은 아랑곳 않고 유독 가스로 인해 구조대 파견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가운데 불구의 몸으로 탄광촌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기도'란 한국인이 검은 여우를 모시는 사당의 금줄로 자신을 목을 매어 자살한 상태로 발견된다기도가 죽을 당시 낙반 사고 때문에 마을엔 아이들만 있고 어른들은 없었는데기도가 죽기 전에 검은 얼굴을  여우가 기도의 집으로 들어간 것을 한 아이가 보고는 아이들 모두가 집을 지켜 보는 상황이 된다 마디로 기도가 죽은 집은 아이들 눈이 벽이 되어  밀실이었던 것이다그런 가운데 기도의 집으로 들어갔던 검은 얼굴의 여우가 집을 나오는 모습은 목격되지 않은 채, 그야말로 집 안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기도의 죽음은 자살로 굳어지는 중인데, 이튿날 이웃에 살던 전직 특수 고등경찰인 기타다가 기도와 똑같이 밀실 상태에서 금줄에 목을  시체로 발견된다공교롭게도   마침 미노루의 형인 류이치가 미노루의 집을 찾아오다가 검은 얼굴의 여우가 기타다의 집으로 들어가는  발견한다.

 

 

 검은 여우는 언제나 낙반으로 생매장 당할지 모르기에 미신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광부들에게 재앙을 가져오는 것으로 여겨지는 불길한 신이었는데잇달아 발생한 죽음에 동일하게 검은 여우가 출몰하자 탄광촌은 광막한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에 휩싸인다


  신은 곡식을 관장한다는 여우신 이나리와는 조금 달랐다하얀 여우님과 검은 여우님 신을 모셨기 때문이다. ‘백여우님’ 혹은 ‘백신님으로 모시는 여우신은 풍요의 신이다. (…) ‘흑여우님’ 혹은 ‘흑신님으로 두려워하는 여우신은 흉작의 신이다여기서는 갱내의 모든 사고를 의미했다.(p. 91)


 하지만 검은 여우의 저주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바로 다음 기타다와 붙어 다녔던 인물이자 죽은 기타다를 하야토와 함께 가장 먼저 발견한 니와 역시 밀실인 자기 집에서 금줄에 목이 졸린 시신으로 발견된다삽시간에 발생한  개의 죽음이 모두 동일한 형태라 이제 도저히 자살이라고 생각할  없게  경찰은 기타다와 니와와  함께 붙어다니던 스가자키를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의심한다


 금줄 연쇄 살인사건.

 이름을 붙인다면 이 정도로 어울리는 사건명도 없을 거이다. 요컨대 검은 얼굴의 여우는 금줄에 구애받고 있다.

 어째서일까.(p. 392)


 그들에게 도박빚이 있었다는  이유였다 하야토를 마음에 들어하여 아마추어 탐정 흉내를 내는 하야토에게  귀기울여주던 난게쓰 뜻밖의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는다과거의 어떤 갱도 안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검은 얼굴의 여우의 이야기를.

 

 홀로 일하고 있는 젊은 남자 광부에게 찾아와 처음엔 그를 도와주다가 나중엔 여인의 몸으로 그를 홀려 다시는 지상으로 나가지 못하게 갱도의 어둠 속으로 데려가 버린다는 검은 얼굴의 여우는 난게쓰 혼자만 만난  아니었다일본 전역의 갱도에서 그런 존재를 만난 사람이 더러 있었 사라져 버린 이들도 많았다실종된 미노루와 기타다 패거리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어쩐지 미노루는 기타다와 미와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그들이  탄광에 모이는  두려워하는 기색을 내비치기도 해서 탄광촌엔 죽은 미노루가 검은 얼굴의 여우가 되어 죽은 사람들을 데려간  아니냐 하는 소문이 돌 된다그들이 소문에 더욱 열을 올리게  것은 무엇보다 마을에서 죽은 이들이 모두 빠져나갈 길이 하나도 없는 밀실이었기 때문이다자살이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는 공간에서 살해당했다고 하니 아무래도 인간이 아닌 존재의 짓이라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러나 하야토는  모든 사건엔 드러나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단서를 모은다뒤이어  다시 2번이나  누군가가 죽지만 굴하지 않고 최대한 진실에 다가가려 노력한다.

 

 ‘검은 얼굴의 여우 줄거린 대강 이러하다

 흔히 도조 겐야 시리즈의 특징을 호러와 미스터리의 결합으로 설명하곤 한다 소설 또한 그런 특징이  살아나 있다난게쓰의 고백으로 알게 되는 검은 얼굴의 여우 괴담과 탄광에서 발생하는 연쇄 살인의 미스터리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호러로도미스터리로도 분위기와 재미가 한껏  살아나 있는 명작이다하야토가 어쩌다 탄광까지 흘러오게 되었는지  사연을 들려주는 초반부가  지루할 순 있는데거기만 잘 넘기면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마지막까지 거침없이 읽게 된다.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힘이 정말 강하다. 실제로  이걸 휴일의  카페에서 하루 종일 읽었다거기다 도저 겐야 시리즈 내내 흐르던 사회파 미스터리의 면모 또한 여전히 잃지 않고 있다아니이번엔 지금 일본 분위기에선 쉽게 말하지 못하는 전범국가 일본의 만행을 가감없이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잘못이었는지 오늘의 일본이 그것에 대해 반성해야 하는지 또한 밝히고 있어서  강해졌다고 하겠다하야토가 주인공이 되는 새로운 시리즈이긴 하지만 도조 겐야 시리즈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하는 말인데그런 의미에서 정말 ‘검은 얼굴의 여우 미쓰다 신조가 도조 겐야 시리즈를 통해  오던 것의 절정이라 하지 않을  없다.


  괴담을 끌어오고 호러적 분위기를 잘 연출하지만 그렇다고 밀실 트릭이 허황된 건 아니다. 트릭들은 엄연히 현실 세계의 질서를 잘 따르고 있고 그것을 간파할 수 있는 단서 또한 내용에 다 심어져 있다. 다시 말해 작가가 추리 게임을 공정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엘러리 퀸의 소설이 그랬듯이 이 소설도 자신의 추리 소설을 작가와 겨뤄볼 수 있을 것이다. 예전부터 미쓰다 신조를 긴다이치 코스케 탐정 시리즈로 유명한 요코미조 세이시의 계승자라고 일컬었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미쓰다 신조의 저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신다면 '검은 얼굴의 여우'는 정말 멋진 선물이 될 것이라 감히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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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1-01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조 겐야 시리즈 거의 못 봤어요 아마 한권밖에 못 봤을 거예요 그래도 미쓰다 신조가 나오는 건 거의 봤네요 작가 시리즈하고는 다른 거, 작가 시리즈도 그것하고 작가 시리즈는 다르게 말하는 듯하더군요 작가 시리즈도 《사관장》 《백사당》만 봤군요 《작자미상》은 사고 아직도 못 읽었네요

우연히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나왔다는 말 봤는데, 한국에도 나왔군요 두번째도 나온 듯해요 여기에는 한국 사람 이야기도 나오는군요

헤르메스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앞에는 말하다 그만둔 듯... 한해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책 만나고 글도 쓰고 다른 거 하고 싶은 것도 하시면 좋겠네요


희선
 
어느 가문의 비극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5
고사카이 후보쿠 외 지음, 엄인경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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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일본은 미스터리 소설 강국으로 인식된다미스터리 소설 쪽으로 유명한 작가도 많고 해마다 많은 미스터리 소설들이 출간될 뿐만 아니라 독자층도 넓어 판매량도 상당하다일본은 매년 ‘ 미스터리가 대단해 같은 미스터리 소설 대상 작품도 발표하는데우리나라 독자들 또한 어떤 작품이  상을 탔는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진다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일본이 어떻게 해서 그만한 미스터리 소설의 강국이 되었는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문학의 경우순전한 무에서 창조되는 경우란 없다오늘날 우리가 어떤 문학이 부흥하는  보고 있다면 그건 그것이 지닌 역사 속에서 성장한 것의 결과일  분명하다일본 미스터리 소설 또한 그럴 것이다그러고 보면 일본 미스터리 소설은 역사가 아주 깊다일본에서 소위 근대 소설이라는 것이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 있었으니까 말이다그들이 서양 문학 세례를 받았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화했던 것이 서양의 미스터리 소설이기도 했다 시기 활동한 에도가와 란포는 서양의 미스터리 소설을 거름 삼아 일본 특유의 추리 소설 세계를 창조했다그건 긴다이치 코스케 탐정 시리즈로 유명한 요코미조 세이시도 마찬가지였다이러한  세대들의 적극적 수용과 독창성을 향한 노력이 시간 속에서 천천히 숙성되어 오늘날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 세계를 구현한 것이 분명하다그러니 아무래도 과거의 일본 미스터리 소설은 과연 어땠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없다.



 

 그러나 오래도록  관심을 충족시킬  있는 기회를 만나기란 어려웠다주로 현대의 일본 미스터리 소설들만 소개될 초창기의 작품들은 거의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던 차에 작년정말 반가운 시리즈를 하나 만났다바로 고려대학교 일본추리연구회가 의욕적(2018년에 시작되어 벌써 6권까지 나왔으니 ‘의욕적이라  만하다.)으로 발간하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여기서는 무엇보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 초창기의거의 일본 추리 소설의 원형이라 해도 좋을작품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덕분에 나는 그동안 나의 고전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 대한 호기심을 유일하게 채워주었던 ‘일본의 탐정 소설(‘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까지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역사를 다루는 책이다.)이란 책에서 오직 이름으로만 접했던 작가와 작품들을 실제로 만날  있게 되었다이처럼 해묵은 호기심을 비로소   있게 되었으니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아무래도 좋아하지 않을  없다.

 

 쓰노다 기쿠오의 중편 작품을 표제작으로 하는 어느 가문의 비극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이다여기엔. ‘법의학자’ 출신답게 주로 자신의 전공인 의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으며 ‘에도가와 란포 스승으로도 유명한 고사카이 후보쿠 단편  (‘’연애 곡선’, ‘투쟁’) ‘에도가와 란포’, ‘오시타 우다루 함께 ‘일본 탐정 소설의 3 거성으로 불리며 흔히 ‘사회파 추리소설 구분하기 부르는 말로 순수하게 미스터리 해결에만 집중하는 추리소설을 일컫는 본격이란 단어를 처음 썼던  고가 사부로 단편  (‘호박 파이프’, ‘꾀꼬리의 탄식’) 그리고  고가 사부로를 추리 소설 작가로 입문하게 했으며  역시 3 거성  하나인 오시타 우다루 ‘이란 단편 하나와 앞서 말한요코미조 세이시와 더불어 장편 추리소설의 시대를 함께 열었던 쓰노다 기쿠오 ‘어느 가문의 비극 실려 있다.  모두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정작 작품은  어디서도 만나볼  없었던 이들이라 특히  반가웠던 책이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고카사이 후보쿠의 ‘연애 곡선이다

 제목만으로 내용이 얼른 짐작되지 않는  단편은 정말 제목 그대로 연애 곡선을 소재로 하고 있다이야기는  결혼을 앞둔  남자가 받은  통의 편지로 시작한다 편지는  의학자가  것으로 알고보니 그는 남자가 결혼하려는 여인을 오래도록 사랑한 사람으로 남자 때문에 커다란 실연을 겪어 그것을 기회로 마침내 연애 곡선을 발견하게 되었다면서  과정을 소상하게 밝힌 것이었다 ‘연애 곡선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곡선이 과연 어떻게 미스터리로 형상화되는지 궁금하다면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법의학 출신 작가답게  과정이  설득력있게 재현되어 있으며 추리소설다운 마무리도 일품이다뒤이은 ‘투쟁 얼마 전에 작고한 천재 의학 교수인 모리가 마지막으로 맡았던 기타자와란 남자의 자살 사건을  제자가 친구에게 소개하는 편지로  소설이다지병으로 39세에 요절한 작가가 거의 마지막에 발표한 작품으로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는 단편이다마지막에 밝혀지는 놀라운 진실은 사건의 배후에서 이뤄진  천재 교수의 불꽃 튀는 대결을 보여주는데(제목이 ‘투쟁   때문이다.), 이러한 천재의 대결에서   작가가 에도가와 란포의 스승으로 불리워지는지 알것 같기도 하다뛰어난 지성을 지닌 천재들의 대결은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에서 자주   있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이어서 만나본 고가 사부로  단편은   작가가 일본 추리소설 3 거성  하나인지 짐작하게 했다그가 처음 만든 말이기도  본격 맛을 충분히 지향하면서도 2 세계 대전(꾀꼬리의 탄식) 관동 대지진(호박 파이프같은 거대한 자연 재해가 가져다  사회적 충격의 여파를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덕분에 요코미조 세이시가  보여준미스터리와 기존 사회 질서의 몰락을 교묘하게  뒤섞는 것이 어디서 연원한 것인지    있었다호박 파이프 등장한 자경단의 설정이나 범인의 진실된 정체는 경찰로 대표되는 기존의 사회 질서가 이제 더이상 지속될  없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끼게 했으며 그건 2 대전 이후 가속화된 화족의 몰락을 중점적으로 그리고 있는 꾀꼬리의 탄식에서도 여전했다흥미로운 설정에 기반하여 호기심을 유발하는 미스터리를 계속 발생시키며 끝까지 결말을 궁금하게 만들어가는 능력도 좋았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맥락 속에다 집어넣어 급격하게 변해버린 사회적 상황 앞에서 자신의 무력감과 혼돈을 곱씹는 그당시 일본인들의 자화상을 세밀하게 구현하고 있었던 것이다때로 범죄를 다루는 미스터리 소설은 범죄라는 상황 때문에 순문학보다 인간이나 시대상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낼  있는데 그런  느끼게   작품들이었다때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식의 해결로 인해 조금 흠이 보이 하지만 감히 명성에 걸맞는 작품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시리즈가 처음 시작될 때 나왔던 책들과 나란히 함께 찍어보았다.]

 

 

  미스터리 보다 유일하게 심리 묘사에  많이 치중하여 이색적인 색채로 다가오는 오시타 우다루의 ‘ ‘대지진이 일어나기 1 전인 1922이라는 작중 언급이 없다면 그대로 최근 나온 일본 추리소설로 믿을만한 소재와 전개를 보여주고 있어 한층  흥미롭다요즘 나오는 일본 추리소설에서 자주 다루는 붕괴한 가정과 그로인해 혼란과 불안에 휩싸인 자녀의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또한 고가 사부로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당대 사회의 맥락 속에 넣어 해석할  있다여기서 모든 갈등의 원천이 되는 주인공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리한 교육을 멋대로 강요하는 폭군이자 아내에게 늘상 가정 폭력을 행사하는 존재로 이러한 그는 그대로 전쟁을 획책하며 국민을 강제 동원하던 군국주의 국가 일본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소설은 불현듯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이 가진 미스터리의 진실과 그것이 남긴 여파를 차분하게 그려나가고 있는데그런 전개 속에서 폐인의 궤적을 거듭하는 아들의 모습과 아버지와 전혀 다른 인생 항로를 걷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군국주의 국가 일본이 가져올 미래와  병폐를 가급적 억제할 대안은 어떤 것인지 슬며시 드러내고 있다  편에다 짧은 분량의 작품이라 과연 들었던 명성대로 오시타 우다루의 역량을 확인할  있을까 조금 걱정했었는데충분히 만끽할  있어서 더욱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마지막은 표제작이자 가장 ‘본격’ 미스터리의 맛을 보여준 쓰노다 기쿠오 ‘어느 가문의 비극이다만일 당신이 오직 재미를 위해  책을 선택했다면 바로 그걸  작품에서 흠뻑 맛볼  있을 것이다. 1947년에 발표되었지만(원래 제목은 ‘총구를 마주하고 웃는 남자였다.) 소설이 묘사한 시대상을 논외로 한다면 그렇게 오래되었다고 전혀 여겨지지 않으며 이것이 가지고 있는 이중삼중의 미스터리와 반전이 전해주는 재미를 생각한다면 이런 작품이  이제야 소개되었는지 의아함마저 느끼게 했던 작품이었다재미가 가득한 작품이므로  내가 이런 재미를 느끼게 되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면 아무래도 이야기를 소개하지 않을  없을  같다그래서 가급적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다카기 고헤이가 자신의 침대에서 얼굴에 총을 맞아 죽은 상태로 발견된다평소 하녀를 포함 여동생친아들까지 포함해 여러 사람에게 아주 잔인하게 굴었던 그이기에 살인 동기를 가진 용의자가  많은 상황이다거기다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후 3시의 알리바이가 모두에게  있다과연 다카기 고헤이는 누구에게 살해된 것인가여기에 가가미 게이스케는   사람을 의심한다그건 바로 고헤이의 친아들 고로가가미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카페에서 그가 소동을 일으키는  목격한 적이 있다이것이 바로 소설의  장면이기도 하다거기서 가가미는 고로가 계속 시간을 상기시키는 것에 의혹을 가진다나중에 살해 시각이 하필이면 고로가 소동을 일으켰던 시간과 동일하여 그에게 완벽한 알리바이가 성립되자 고로에게 향하는 의혹의 시선은 한층  짙어진다그러던 차에 고로와 연인으로 알려진 하녀 유코가 자신이 고헤이를 살해했다고 자백한다그러나 드러난 증거에 비추어 누군가를 비호하기 위해 유코가 일부러 자백했다는  밝혀지고 가가미는 유코가 고로를 위해 거짓 자백한 것으로 판단하고 집요하게 고로를 뒤쫓는다그런데 그만 고로가 살해되는 일이 벌어진다중요한 용의자였던 고로가 갑자기 살해되자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지고 그러던 차에 새롭게 용의자가 나타난다과연 그가 진범일까?

 

 이런 식으로처음부터 진실을 알고 싶게 만드는 설정을  하고 던져주더니 그걸 계속 거듭된 수수께끼로 불려나가 결말을 도저히 궁금하지 않을  없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알리바이 깨드리기와 비밀 장치 살인 그리고 뜻밖의 범인  셜록 홈즈와 엘큘 포와로혹은 란포의 ‘아케치 코코로 긴다이치 코스케 같은 탐정이 활약하는 고전 추리소설의 스타일이 아주  살아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좋아한다면 정말 환호작약하지 않을  없을 것이다적어도 나는 그랬다그러나 이런 재미도 재미지만 소설을 말할  무엇보다 빼놓지 말아야  것이 있다바로 탐정 캐릭터형사인 가가미 바로  존재인데언뜻 조르주 심농의 유명한 형사 ‘매그레 연상시키기도 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그는 가급적 말없는 관찰자로 자처하며 오직 수사에만 묵묵히 전념한다탐정은 보통 수다스러운 편인지만 가가미는 전혀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그것이 한없이 개성적인 색채를 지녀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이다사실 이처럼 흔치 않은 캐릭터는 양날의 검이다 묘사하면 더없이 매력적으로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저 허무맹랑하게 생각되기 십상이다바로 그걸 나누는 것이 작가가 자신의 캐릭터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인데쓰노다 기쿠오는 전자다그리 무리하지 않은 설정과 필치로 가가미란 캐릭터를 설득력있게 형상화하는 것을 보노라면 자신의 캐릭터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을  없다덕분에 매력이  살아난 가가미 형사가 활약하는 또다른 작품을 만나고 싶어진다 마지막에 실려 있는 작가의 약력을 보니 정말 많은 작품들을 출간했던데부디  하나로 그치지 말고 다른 작품들도 소개되었으면 좋겠다이왕이면 가가미 형사가 활약하는 것으로.

 

 처음엔 오랜 호기심으로 잡아  시리즈였지만 책이 거듭될 수록 예전엔 미처  매력을 몰랐던 작가와 작품들을 새롭게 만나는 재미가  컸던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이번에 만난 ‘어느 가문의 비극 내가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를 다시   크게 확인시켜  책이었다더구나 추리소설이 그리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도 그저 재미만 추구하지 않고 작가가 직면한 시대의 어둠과 고통을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뜻깊었다사람에게 새로운 것을 알게되어 인식의 지평이 날로 확대되는 것만큼 좋은 일로 다가오는 것도  없을 것이다적어도 일본 추리소설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게 그런 좋은 것을 느끼게  주는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가 앞으로도 꾸준히 발간되어 더욱  많은 읽고 아는 재미를 경험하게  주었으면 좋겠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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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변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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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으로 글을 시작해 보고 싶다. 나라는 정체성은 정말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이들을 보면 뇌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 같다. 지인도 잊고, 가족도 잊고, 끝내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리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뇌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한다면, 이식된 그 사람 또한 뇌로 인해 뇌가 가진 정체성을 가져버리게 되는 것일까? 모든 장기 이식이 가능해진 이 시대에 뇌 또한 언젠가 이식되지 말란 법은 없기에 이런 호기심을 품어보는 것도 그리 몽상만은 아니리라. 그렇지 않아도 예전 어떤 책에서 심장을 이식 당한 이가 그 심장을 기증한 이의 부모에게 마치 자기 부모를 만나는 것만 같은 특별한 감정을 품게 되었다는 걸 읽은 적이 있다. 기억과 사유가 불가능한 심장마저 그러하다면 뇌가 이식되었을 경우 정체성의 혼란 혹은 변화는 아무래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갑작스레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최근 이런 소재를 다루고 있는 소설 하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소한 변화'다.원래는 91년에 발표된 '변신'이라고 한다. 그것을 완전히 새롭게 번역하고 저자와 협의를 거쳐 '사소한 변화'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발간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주인공 나루세 준이치가 부동산 중개사 사무실에서 인질극을 벌이는 범인에게서 창문으로 도망치는 소녀를 구하려다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나루세는 죽지 않았다. 도겐 박사가 세계 최초로 성인 뇌이식 수술을 성공하여 다른 이의 뇌를 이식한 채, 멀쩡하게 살아난다. 이대로 기적처럼 두번 째로 주어진 새로운 삶을 사랑하는 메구미와 함께 살아가나 했는데 살다보니 차츰 자신에게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나루세는 원래 그림을 좋아하고 메구미의 초상화를 즐겨 그렸었는데, 어느새 그림에게 관심이 없어지고 예전만큼 그림도 잘 그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 아주 즐기며 보았던 영화들조차 이젠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 없고 눈물을 흘리며 보았던 영화조차 따분하게 생각될 뿐이다. 변한 건, 취향과 능력만이 아니다. 성격까지 변해서 주위 사람과 별 트러블 없이 잘 지내던 그가 곧잘 타인들을 비난하고 폭력까지 휘두르게 된다. 자꾸만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자신에게 혼란을 느끼면서도 죽을 뻔했던 사건의 후유증이라 여기며 넘겼지만 더이상 그럴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메구미에 대한 마음이 변하여 이제 더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옆 방에 살고 있는 대학생이 하도 한심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 분노가 치밀어오른 커다란 살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칼까지 거머쥐고 들어가서 죽여버릴까 문 앞에서 서성일 정도로.


 제목처럼 더이상 사소한 변화로 치부할 수 없게 된 나루세는 이렇게 된 이유가 뇌 이식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이식된 뇌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도겐 박사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것을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한 도겐 박사의 반응에 더욱 의혹을 가지게 된 나루세는 혼자 힘으로 뇌를 기증한 자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아주 충격적인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나루세 준이치는 뇌를 통째로 이식당한 것은 아니다. 그저 회생시킬 수 없는 일부를 이식받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이치는 변화를 느낀다. 점점 더 기증자의 취향과 성격이 되고 기증차럼 행동하고 생각하게 된다. 육체는 온전히 준이치의 것이지만, 그는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뇌는 그냥 뇌일 뿐이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도 10만 분의 1이라는 기적의 확률로 다시 얻게 된 삶이니만큼 그냥 삶의 새로운 출발이라고 받아들이면 안되겠느냐고 말하는 도겐 박사에게 준이치가 이렇게 절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신은 몰라. 뇌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지껄이는 당신은 말이야. 뇌는 특별한 거야. 당신이 상상이나 할 수 있어?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내가 달라. 내일 눈을 뜨면 거기 있는 건 오늘의 내가 아니지. 먼 과거의 추억은 전혀 다른 사람 것이 되고 말지. 그렇게밖에 느껴지지 않아. 오랜 시간을 들여 남겨온 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려. 그게 어떤 건지 아나? 가르쳐줄까? 그건... (...) 그건 죽음이야. 살아 있다는 건 그저 숨이나 쉬고 심장이 뛰는 게 아니야. 뇌파가 나온다고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산다는 건 발자국을 남기는 거지. 뒤에 남은 발자국을 보며 저건 분명 내가 낸 거라고 알 수 있어야 살아 있는 거야. 하지만 지금 나는 예전에 남긴 발자국을 봐도 내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 이십 년 이상 살아온 나루세 준이치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고."(p. 270)


 자신은 사라져버릴 것이라며 준이치가 예견한 그대로 준이치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다. 원래 제목 그대로 '변신'하는 것이다. 파리 하나 죽이지 못했던 그가 단지 시끄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개의 목을 자르고 끝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운명은 가혹하게도 10만 분의 1의 확률로 일어난 기적을 그대로 저주로 바꿔버린 것이다. 도대체 누구의 뇌이기에 준이치를 차가운 살인마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과연 준이치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는 가운데 이제 준이치의 살의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인 히무라 메구미에게로 향한다.


 일본에서 100쇄나 찍고 무려 125만 부나 팔린 작품답게 꽤 흥미롭고 재밌는 작품이다. 뇌 이식이라는, 다소 공상과학적인 설정이지만 탄탄한 리얼리티로 독자를 무리없이 그 세계에 안착하도록 하고 있으며 타인의 뇌 이식과 관련된 정체성 혼란의 문제도 나루세 준이치를 둘러싼 일상의 변화와 심리의 세세한 묘사를 통해 독자 피부에 와 닿도록 만들고 있다. 때문에 후반에 가서 이뤄지는 나루세 준이치의 청천벽력 같은 변화도 그리 허황되게 여겨지지 않는다. 뇌 이식과 완전히 달라지는 정체성 때문에 여러모로 조던 필의 영화 '겟 아웃'이 연상되는데, '사소한 변화' 또한 그 영화만큼 흥미로운 텍스트이니 그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이 소설 또한 만나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도겐 박사의 이름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혹시 이 소설을 오마쥬 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양서류 인간'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SF 작가인 알렉산더 벨라예프의 '도웰교수의 머리'라는 소설이다. 


 우리나라엔 70년대에 아동용 SF로 이렇게 소개된 적이 있다.

그 때의 홍보 문구가 '죽었어야 할 도웰 박사가 머리만 살아 있다니!'였다.


 벨라예프의 데뷔작으로 러시아에서 영화까지 만들어진 바 있다. 거기서 죽은 인간을 되살리기 위해 뇌를 연구하는 학자가 바로 도웰 교수다. 뇌를 통해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점에서 둘이 하고 있는 일도 유사하므로 '도겐'이란 이름은 이 '도웰'에서 따오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그런데 비슷한 건 이 하나만은 아니다. 그 소설에서 권총에 맞아 숨져 나중에 머리만 다시 살아있게 되는 카페의 댄서, 빌케는 나루세가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과정과 비슷하고 또한 그 빌케는 나중에 다른 어떤 여성의 신체와 접합하여 온전한 육체를 소유하게 되는데 그 원래 신체의 주인은 화가였고 빌케는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음악을 좋아한다는 점도 '사소한 변화'의 설정과 닮아 보인다. 이 정도라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작품을 쓰면서 벨라예프 작품에 영감을 받았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그렇다고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말길 바란다. 그저 '사소한 변화'를 좀 더 재밌게 즐기기 위한 조미료 같은 거라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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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성역 1 - 노아즈 아크, Novel Engine POP
카지오 신지 지음, toi8 그림, 구자용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일본의 문학상 중엔 '성운상'이라는 게 있다. 한 해 동안 발표된 SF 소설 중에 가장 좋은 작품에다 주는 상이 바로 성운상이다. 1970년에 시작된 것으로 역사도 제법 오래되었다.

이 상을 수상한 작품 중에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으로는  고마츠 사쿄의 '일본 침몰'이나 칸바야시 쵸헤이의  '전투 요정 유키카게',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 아리카와 히로의 '도서관 전쟁'등이 있다. 수상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꽤 권위있는 상이라 할 만하다. 갑작스럽게 성운상 얘기를 하게 된 것은 또 하나의 성운상 수상작이 우리나라에 최근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카지오 신지의 '원수성역'이다. 수상한 해는 2016년.




 카지오 신지는 1947년 생으로, 1971년에 SF 단편으로 데뷔했으니 경력이 꽤나 오래된 작가다. 91년에 '셀러맨더 섬멸'로 일본 SF 대상까지 수상한 바 있어 꽤 명망 있는 SF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2005년 부터 시작하여 10년 넘게 써왔던 소설이 바로 '원수 성역'이다. 모두 3권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그 중 첫 권인 '노아즈 아크'가 이번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이다.


 여기서 '노아즈 아크'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뜻한다. 이런 제목이 나오게 된 연유가 있다. 소설에 나오는 지구 역시 성경에서 그랬던 것처럼 종말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홍수는 아니다. 원흉은 태양이다. 태양의 불꽃이 점점 커져 그 화염 속에 지구가 삼켜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라면 지구 전체에 일대 혼란이 일어나야 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미리 안 사회지도자 계층이 철저하게 숨겼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지구를 탈출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말이다.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일상을 영위하는 동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재력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노아즈 아크'란 우주선을 만들어 170만 광년 거리에 있는, 지구와 똑같은 환경을 가진 '에덴'이란 별로 달아날 준비를 착착 진행한다. 자신의 죽음마저 위장할 정도로 아주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했기에 많은 지구인들은 그들이 우주로 떠난 뒤에야 종말의 시계가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믿었던 이들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것도. 하지만 절망하기는 이르다. 대통령의 딸을 사랑했던 공학도 이안에 의해 우주선 없이도 '에덴'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영화  '스타트렉'에서 흔히 보았던 순간 이동 기술. 소설에선 '점프'라 부르는 그 기술은 사람을 그대로 순간 이동시켜 170만 광년 거리에 있는 별로 보낼 수 있다. 어떻게 보낼 수 있는가에 대해선 자세히 따지지 말자. 이 소설은 닐 스티븐슨의 '세븐 이브스' 같은 하드 SF가 아니니까.


 그러나 이 '점프'라는 기술은 그리 안전하지 않다. 보내긴 보내지만 어디로 떨어질 지 미리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하늘에 떨어져 추락사할 수 도 있고 바다에 떨어져 익사할 수도 있으며 아예 별에 도착하지 못하고 우주 공간에 내던져질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무사히 별에 도착할 확률은 1700분의 1. 그래도 몇몇은 살아남아 '에덴'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소설 처음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사히로 역시 그 중 하나. 그는 가족 모두와 함께 점프했으나 오직 자신만이 살아서 별에 도착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슬퍼할 겨를이 없다. 여기저기 사람을 잡아먹는 기묘한 생물이 많이 사는 그 별에서 생존을 해야 하니까.


 그렇게 계획 없이 점프한 이들에 의해 '에덴' 여기저기에 부락이 만들어진다. 오직 생존만이 지상 목표였기에, 그 생존을 위해 부락민 전부의 힘을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었고 그로 인해 부락을 제외한 모든 바깥 영역을 위험과 적대의 곳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어 때로 점프한 이들이 만든 부락 서로도 상대방을 식인 괴물로 여기는 일도 존재한다. 이처럼 다 다르게 살아가는 그들이었지만 하나만은 같았는데, 그건 바로 자신을 버리고 몰래 우주로 달아나버린 '노아즈 아크'에 대한 분노다. 부락민들의 일치단결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벌어지는 종교 행사에서 그들은 한결같이 노아즈 아크에 대해 저주를 내린다. 그 원한을 꼭 갚아야 한다면서.


 이제 제목이 왜 '원수 성역'인지 아셨을 것 같다. 그렇게 노아즈 아크를 원수로 알고 분노와 적대를 표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 드디어 노아즈 아크가 착륙한다. 그들은 그들대로 장기간 우주 항행에서 주로 가족 없이 홀로 탄 이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을 막기 위해서 인위적인 이데올로기를 유포시켰다. 그건 바로 지구가 이미 종말을 고했으며 전 우주에 인류는 자기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류의 보존을 위해서라도 헛되이 목숨을 끊지말고 힘을 뭉치자고 말이다. 당연히 그런 믿음으로 에덴에 상륙한 '노아즈 아크'에게 에덴의 거주민들이 자기와 같은 인간으로 보일 리 없다. 결국 점프한 이들과 노아즈 아크는 제목처럼 보기만 하면 이빨부터 드러내는 사이가 된다. 과연 그 싸움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그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 권이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소개한 줄거리로 '원수 성역'이 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이 뭔지 어쩌면 알아차렸을 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데올로기라는 걸 말이다. 점프민들은 척박한 대지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유포하고 '노아즈 아크' 역시 고급 인력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내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적대 관계는 얼른 1950년대에 존재했던 냉전 시대를 떠올리게 만든다. 어쩌면 정말로 바로 그것을 SF적 상상력에 인류학을 가미하여 풀어내고 있는 게 '원수 성역'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류학 운운 한 것은 소설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단선적으로 전개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들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독자는 하나의 시야로 작품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노아즈 아크'와 '에덴'과 관련된 사건을 다양한 시야로 보게 된다. 이런 까닭에 이데올로기 같은 문제도 눈에 들어오지만 종말이 예정된 삶도 끝까지 지속할 의미가 있을까 같은 다소 형이상학적 질문도 문득 생겨난다. 하여, 얼른 생각나는 것은 카멜레온인데 이렇게 다채로운 색깔을 지녔기에 재미도 재미지만 성운상을 탄 게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여하튼 좋은 SF란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얼른 2권을 만나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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